수요설교

요나 강해8.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Author
kgmcc
Date
2021-02-24 12:39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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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나 4장 5-11절

날짜 : 2021년 2월 24일

 

<요나 4장 5-11절>

5.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오늘로서 두달만에 요나 강해서가 끝나게 됩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 고향인 덴마크에 있는 큰 상점에서 하루는 도둑이 들었는데 이 도둑은 그 상점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도 가져가지는 않았답니다. 그대신에 그 상점에 있는 물건들의 가격표를 뒤섞어 놓았답니다. 수백달러나 하는 귀하고 가치가 있는 가구와 같은 물건에는 몇 달러의 가격표가 붙어있었고 몇 센트하는 연필이나 노트에는 50달러 70달러의 가격표가 붙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굉장한 혼란을 겪었던 사건을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밤 상점에 침입을 한 도둑은 아무 물건을 훔쳐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도둑은 가장 중요한 것을 훔쳐 간 것입니다. 그 도둑은 각각 상품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를 훔쳐갔던 것입니다. 그 상품들이 지니고 있는 각각의 가치를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그 가게는 혼란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무엇이 더 가치가 있고 무엇이 덜 가치가 있는지 혼동을 하며 살아가는 요나의 모습이 나옵니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 보다는 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을 위해서 땀을 흘리고 수고하며 살아가는 요나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나의 모습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모습일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요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를 하시는 사역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선순위를 망각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요나와 같은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사역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첫째로 요 나와 같은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준비하십니다.

6절입니다. “6.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사’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위해 박 넝쿨을 준비하셨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을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신 것은 물론 아닙니다. 5절을 보시면 요나는 니느웨 성 바깥 동쪽 언덕위에서 초막을 짓고 니느웨 성이 멸망하나 안하나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5절입니다. “5.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사실 지금 요나는 니느웨 성안을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 사역의 자리를 떠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스스로 성질을 내고 분노 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의 장소를 떠났습니다. 지난주에 살펴 보았지만 요나가 처음에는 분노의 언어를 막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제 말을 하지 않고 행동을 합니다. 사실 우리도 이렇게 행동하지 않습니까? 화가 나면 할 소리 안 할 소리 구별하지 않고 막하다가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부부싸움을 하는데 처음에 말로 하다가 안통하면 그다음단계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남편인 경우는 무엇이든지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고 아내의 경우는 말없이 보따리 싸고 집을 나가버리는 일이 생깁니다.

요나도 분노의 말로는 통하지 않자 하나님이 맡기신 그 사역의 자리를 나가버립니다. 그리고 니느웨 성이 보이는 동쪽 언덕위에 올라가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디 너희들이 잘 되어가나 힌번 보자.’ 이런 심정을 가지고 자신에게 맡겨진 그 사역의 자리를 떠나 바깥에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종종 볼수 있습니다. 교회서 여전도회나 남선교회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자 멀찌감치 떨어져서 팔짱끼고 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어디 내가 없이 잘되어가나 보자”

이러한 모습은 마치 오늘 본문에서 요나는 초막을 짓고 그 그늘아래 앉아서 성읍을 지켜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초막은 나뭇가지를 얽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뜨거운 태양을 완전히 가릴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니느웨 성을 지켜보고 있는 요나가 뜨거운 햇볕 때문에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상태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요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박 넝쿨을 준비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박 넝쿨을 주셔서 그 박 넝쿨 그늘로 인해서 이 요나를 시원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요나는 지금 불순종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최소한 삼일동안 사역을 해야 할 니느웨 성을 하루만 하고 하나님께 화를 내고 니느웨 성을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시고자 하는 구원이 아닌 멸망과 심판의 결과를 기다리며 니느웨성을 바라다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요나에게 박 넝쿨을 주셨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내가 순종하는 길을 가지 않았는데 일이 잘 풀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일은 이전에도 요나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반대방향인 다시스로 가기 위해서 요나가 욥바 항구에 갔을때 다시스로 가는 배가 마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곧바로 배를 탈수 있었습니다. 불순종했는데 일이 잘 풀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갔는데 길이 열린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저 사람이 저길로 가면 안되는데 자꾸 그길로 가는 경우를 볼때가 있습니다. 나도 알고 그사람도 그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닌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이 그길을 계속 가는 것은 형통한 길이 열려 있으니까 계속 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박 넝쿨 그늘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입니다. 내 인생을 걸고 붙잡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칠, 팔십년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 비하면 박 넝쿨의 생명은 너무 짧습니다. 내 인생에 비하면 박넝쿨의 수명은 하룻 동안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비하면 우리 인생은 새벽에 잠시 보였다가 사라지는 아침안개와 같이 순간적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 비하면 박 넝쿨의 수명은 하룻밤동안입니다. 우리 인생이 어느것을 붙잡아야 하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길로 가는데 형통해지는 그 시간은 큰 폭풍이 불어오기 까지 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길을 가지 않고 떠나 있는데도 호박이 넝쿨채 들어왔다. 이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룻동안만 인 것 입니다. 이 박 넝쿨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있으면 조금 편하고 없으면 조금 불편한 그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일수도 있고 건강일수도 있습니다. 사회적 직위와 교회 직분 일수도 있습니다. 있으면 우리 인생에 조금 편리한 그 무엇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6절 후반부를 다시한번 보시면 요나가 그 박넝쿨을 보고 심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6.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심히 기뻐하였더니” ‘심히 기뻐하였더니’ 요나가 기뻐한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니느웨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자기 몸을 시원하게 해주는 박 넝쿨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인간은 박 넝쿨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박 넝쿨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므로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나가 이 박 넝쿨을 인해서 기뻐하고 박 넝쿨을 아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것은 아닙니다. 더 기뻐하고 더 아껴야 할 것을 요나가 붙잡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박 넝쿨은 덜 중요한 것입니다. 부차적인 것이고 일시적입니다. 있으면 조금 편하고, 없으면 조금은 불편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박 넝쿨 때문에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을 놓쳐버리고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책망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생을 살아가는 자녀들은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하나를 준비 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십니다.

박 넝쿨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시기는 하나님이시기도 하십니다. 7절과 8절입니다. “7.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우리말 성경은 확실하지 않지만 성경 원문을 보시면 이 벌레는 단수로 사용되어졌습니다. 영어 성경에도 단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벌레 한 마리입니다. 성경에서 벌레는 하찮은 존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끼고 애지중지 하는 그 모든 것을 무너지게 하기 위해서 어떤 강력한 군대를 보내시지 않으십니다. 하찮은 벌레 한 마리이면 충분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내가 받은 그 어떠한 축복도 하나님이 보내시는 하찮은 벌레 한 마리이면 충분합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견고하고 안전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육신에 벌레 한 마리가 들어오면 내 건강이 심각해질수 있습니다. 벌레보다 훨씬 더 적은 코로나 바이러스만 들어와도 우리 건강은 심각해지게 됩니다. 몇 번 수술을 받으면 내 재산은 빈털터리가 됩니다. 건강 재산 가정 한꺼번에 무너질수 있습니다. 우리의 박 넝쿨은 이렇게 약한 것입니다. 벌레가 박 넝쿨 밑둥치를 씹어버리면 그 박 넝쿨은 그냥 끝입니다. 매년 봄에 저는 집 뒷마당에 고추를 심습니다. 고추를 심고 두달 정도 되면 고추나무가 어느정도 자랍니다. 그런데 처음 몇 년 동안은 참새보다도 더 조그만 새가 날아 와서 고추나무 밑둥치를 쪼아서 고추 나무를 짤라버리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그루씩 그 작은 새가 일주일사이에 일곱 그루 고추나무 밑 둥치를 싹뚝 짤라버린 것입니다. 혹시나 살릴수 있을까해서 스카치 테입으로 붙여보았지만 소용없이 다 말라 죽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고 난이후 만일을 대피해서 예비용으로 화분에다가 심어놓았다가 피해가 생기면 즉시로 보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추가 어느정도 클때까지는 뒷마당을 자주 지켜봅니다.

그러니까 그 벌레가 박넝쿨 전체를 씹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박넝쿨 밑둥치만 씹어버리면 끝납니다. 그리고 뜨거운 동풍이 불게 되면 그 박넝쿨은 금방 시들어 말라서 날아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이 벌레 한 마리로 인해서 저와 여러분의 건강과 물질이 말라지고 쪼그라 들수 있습니다. 내 주변의 인간 관계가 줄어들고 나의 신분과 직분이 주는 신뢰가 떨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벌레 한 마리를 보내시면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만일 이러한 일이 생기게 되면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벌레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곧 바로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끝까지 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십니다.

뜨거운 동풍이라는 것은 북 아프리카에서부터 지중해 연안으로 불어오는 열풍을 의미합니다. 이 바람은 사막을 통과해서 오기 때문에 굉장히 뜨거운 바람입니다. 열풍이라고도 말합니다.  요나가 얼마나 견디기 힘이들었으면 “사는것 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라고 이렇게 고백을 했겠습니까? 하나님은 박넝쿨을 준비하시기도 하지만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요나를 보면서 알게 됩니다. 자. 이러한 요나의 모습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이 배워야 할 교훈을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 저와 여러분이 요나를 살펴본 것은 바로 이 교훈을 얻기 위함에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이 요나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것을 우리도 아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10절과 11절입니다. “10.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가 아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박넝쿨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좌우를 분변하지 못한 다는 것은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니느웨 성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나라인 앗수르 국가를 위해서는 주변에 사는 다른 나라 백성들을 잔인하고 냉정하게 죽이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의무로 생각했지 그것이 악한 일 인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니느웨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아끼실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아직 몰랐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가 아닙니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우리나라 성경은 이 한번으로 끝나지만 성경 원문을 보시면 현재 분사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번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실 때부터 시작해서 십자가에 달려 숨을 거두실때까지 계속 지속적으로 이러한 기도를 드리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길을 가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리고 채찍질에 맞아 피를 흘리고 넘어지면서도 예수님은 이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침 뱉음을 당하고 빰을 맞으실때도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옆구리에 창을 찔리고 비웃음과 조롱을 당하실때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몇 개 남은 옷을 뺏앗기시고 마지막 남은 한조각 속옷마저도 그들이 서로 가져가기 위해 십자가 밑에 앉아서 제비뽑기를 할때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것을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자신이 죄인인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돌아서기만 하면 용서해주시고 구원해 주실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사람들을 아끼시기 때문에 그 니느웨 성안에 있는 가축까지도 아끼십니다. 사실 우리가 아끼는 박 넝쿨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10절을 보시면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우리가 박 넝쿨에게 생명을 준것도 아니고 우리가 자라게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박넝쿨이 시들게 되었다고 불평을 하며 살아갑니다. 9절입니다. “9.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우리나라 성경보다는 영어성경으로 보시면 요나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우리는 더 잘 알수 있습니다. “But God said to Jonah, "Do you have a right to be angry about the vine?" "I do," he said. "I am angry enough to die."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이 박넝쿨에 관해서 네가 성낼 권리가 있느냐?’ 그러니까 요나가 ‘예, 권리가 있습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요나는 그 박 넝쿨에 대해서 내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를 내고 원망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박 넝쿨이 내 것이라는 권리를 주장할수는 없습니다. 박 넝쿨은 축복입니다. 은혜입니다. 주어진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주장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재산이 내가 가진 건강이 내가 가진 사업체는 내것이 아닙니다. 내것이면 내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게 막을수 있어야죠. 건강도 재산도 가족도 못떠나게 막을수 있어야죠. 내것이라면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가야죠. 다 두고 가야 하는 것은 내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진짜 내것은 하늘나라에서 받게 되는 것이 내것입니다. 영원히 살면서 영원히 가지게 되니까 내것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있는 박넝쿨은 내 소유가 아니라 은혜요 축복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조금 편하고 덜 힘들게 살아가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박넝쿨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원망하거나 불평할 자격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오히려 박넝쿨이 있는 동안이라도 내가 편하게 지낼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 우리가 이러한 박넝쿨을 사랑하고 아낀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보내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 박 넝쿨이 필요하기 때문에 박 넝쿨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중요한 교훈은 다만 하나님께서 더 아끼시는 것을 우리도 더 아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아껴야 할것을 덜 아끼고 덜 아껴야 할 것을 더 아끼면서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것은 우리를 아끼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아끼시기 때문에 큰 폭풍과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니느웨 사람을 아끼시기 때문에 요나의 표적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처럼 큰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심판을 받을까 두려워 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박 넝쿨을 준비하시지만 벌레와 동풍도 준비하십니다. 아끼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위해서 이삭을 준비하시고 이삭을 위해서는 숫양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7년 대 흉년을 앞둔 애굽 사람들을 위해서 요셉을 준비하시고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 모세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나안땅 정복을 위해서 여호수아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큰 물고기가 아니라 큰 폭풍을 보면서 원망 불평할 수 있습니다. 박 넝쿨이 아니라 벌레와 뜨거운 동풍속에서 원망 불평할 수 있습니다. 자유가 아니라 광야 속에서 원망 불평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준비하신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아끼시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도 아끼고 사랑하셨다면 요나와 같은 저와 여러분은 당연히 사랑하고 아끼시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우리는 이땅에서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한순간의 기쁨과 행복을 맛볼수는 있어도 지속적으로 기쁨과 행복을 맛볼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진정한 평강을 누릴수는 없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이세상에서 살기에 적합한 존재가 아닙니다. 물에서 떠난 물고기가 물을 만날 때 비로서 행복을 가질수 있듯이 우리 믿는 성도들도 본향인 천국에서 살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릴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저와 여러분이 너무나 귀하고 아까운 존재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덜 중요한 가치가 있는 박넝쿨 같은 것에만 붙들고 의지하고 살아가는것 보다는 하나님이 아끼시는 것을 나도 아끼며 살아가도록 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십시다.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조직인 IS가 몇 년전에 성이었던 모술을 점령했을 때 요나의 무덤을 폭파시켜버려서 지금은 사라졌지만 요나의 무덤이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 본문이후에 요나는 니느웨성에서 사역을 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요나는 하나님이 아끼시는 것 자기도 아끼면서 남은 생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아끼시는 생명, 하나님이 아끼시는 사람 나도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갈수 있어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이세상 살아가는 동안 덜 중요한 가치가 있는 박넝쿨에 매달려 살아가는 인생보다는 하나님이 아끼고 중요하게 여기시는 생명을 저와 여러분도 아끼고 중요하게 여기며 남은 생애를 살아갈수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