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성공적인 인생이란

Author
kgmcc
Date
2021-05-05 10:32
Views
327
본문 : 열왕기하 5장 13-15절

날짜 : 2021년 5월 5일

 

<열왕기하 5장 13-15절>

13.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5.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몇 년전에 월스리트 저널이 미국사람을 대상으로 이런 내용의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가장 많은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95퍼센트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많은 사람은 행복한 결혼생활이 성공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90퍼센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두가지 대답을 할수있는 복수 설문 조사 방법이었습니다. 그다음에 세번째로는 좋은 친구를 갖는 것을 성공이라고 대답을 했고- 83% 그리고 네번째로는 자기 분야에서 정상이 되는 것을 성공으로 보았습니다-80%. 다섯번째는 권력 또는 영향력을 소유하는 것을 성공으로 보았고-18% 여섯 번째는 부자가 되는 것을 성공으로 보았습니다 -16% 이니까 굉장히 적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일곱번째는 명예를 얻는 것을 성공으로 보았습니다-8% 이었으니까 우리가 생각해온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이런 내용의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현재 무엇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이 두 번째 질문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버는 일에 제일 많은 시간을 투자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95%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을 성공으로 생각하는 것이 여섯 번째이었지만 제일 많은 시간을 돈을 버는 일에 투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명예를 얻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90%. 이것도 마찬가지이죠. 명예를 얻는 것을 성공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일곱 번째 인데 두 번째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권력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고 대답을 했고-83% 네 번째로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20% 그리고 다섯번째로는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일에-10% 마지막 여섯 번째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일에 시간을 투자 한다는 것입니다-7%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가장 성공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투자하는 시간은 제일 작게 나왔던 것입니다.

이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서 저는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생각과 행동과도 비슷한 면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합니까? 라는 질문을 해보면 틀림없이 그 첫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님처럼 사랑이 넘치고 인격적인 삶을 살고 싶다라고 하는 고백이 나올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이 첫째 둘째순서는 물론 바뀔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라고 하는 질문에는 기도를 하는 시간이나 성경을 읽으면서 보낸다고 하는 시간이 아주 적은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는 추측을 해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간절히 원하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이것을 이루기 위해 행동으로 까지 이어지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투자하는 시간이 그만큼 없으니까 자신의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 해볼수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물어본 내용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차원에서의 성공의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을 성공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성공이라고 보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성공이라고 하면 성공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순종을 할때 성공한 인생이라고 보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출세를 하고 부자가 되고 그리고 좋은 부모나 행복한 부부가 되어 살아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돈 벌고 부자가 되어서 살아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고 행복한 부부가 되고 좋은 친구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성공했구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곧 성공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공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인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시면 나아만이 순종을 통해서 병 고침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나아만은 많은 금은 보화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에는 엘리사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가 자기가 오는 것을 보면서 반갑게 환영을 해줄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두손을 들고 자기 병을 위한 치유 기도를 해줄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보낸 종으로 부터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그러면 너의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리라”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아만은 자기가 군대장관이 된 이후부터는 자기 나라 왕 이외에 명령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명령을 받기 보다는 명령만 하면서 살았던 이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도 아닌 그가 보낸 종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엘리사가 보낸 종이 전하는 명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에 자존심이 상한 나아만은 분노하면서 되돌아갈려고 했습니다. 11절과 12절입니다.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그때 이 나아만의 신변을 돌보고 있던 종들이 나아만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하는 13절 말씀입니다.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지금 이 나아만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은 굉장히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보통 종이라고 한다면 무조건 주인에게 아부하거나 부추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군님, 아니 장군님을 이렇게 푸대접을 할 수가 있습니까? 이 시골 마을에 처박혀서 살아가고 있는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얼굴을 나타내 보이지도 않고 이렇게 장군님을 무시하는 것입니까? 장군님 그냥 돌아가시면 안됩니다. 이런 친구들은 혼을 내주어야 합니다. 장군님은 그냥 가만히 계십시오. 저희들이 깨끗하게 정리해버리겠습니다” 이렇게 나아만 장군보다 자기들이 더 흥분하고 더 분노하는 척하면서 나아만 장군의 비위를 맞출수도 있습니다. 그래야. 자기에게 돌아오는 반사이익이 더 많을테니까요. 하지만 이 나아만 종들은 진정으로 주인 나아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대장님이나 주인님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대장님 저 선지자가 이것보다 더 한일을 하라고 해도 병이 낫기 위해서는 따라해야 할 상황이 아닙니까? 해골에 고인 물을 마셔라 해도 마셔야 하고 사람의 인분을 몸에 일곱 번 처발라 해도 발라야 할 상황이 아닙니까? 그런데 강물에가서 깨끗하게 씻으라고 하는데 그런것쯤은 할수 있는 것 아닙니까? 장군님”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나아만이 자존심이 상해서 폭발했던 분노를 누그러 뜨리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나아만이 축복을 받을수가 있었던 것은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인것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시대에 이런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분노를 누그러뜨릴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분노를 누그러 뜨리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촉발시키는 행동을 하는것을 봅니다. 누가 부부싸움을 하고 자기에게로 와서 하소연을 하면 무조건 자기를 찾아온 그사람 편을 들어주기만 하는 행동을 할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부부싸움을 가라앉혀야 할텐데 오히려 한술 더 떠서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말과 행동을 할수 있는 길은 인간의 생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아만 종들이 무엇이라고 했나요? 13절 마지막 부분을 다시한번 보시면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당신에게 말씀하기를 씻어서 깨끗하게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라는 그 내용을 상기시켜 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회복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중간 과정이 자존심 상하고 내 생각과는 달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결과는 회복입니다. 형통입니다. 지금 저 엘리사가 보낸 종이 하는 내용은  '장군님의 몸이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강물에서 씻으라고 하니까 할만하지 않겠습니까? 날씨도 더운데 시원하게 멱 감는다고 생각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이런식으로 말을 한 것입니다. 종들의 말을 듣고난 이 나아만은 분노를 누그러 뜨리고 요단강에 가서 나병에 걸린 몸을 씻는 장면이 14절에 나옵니다. 14절입니다.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요단강에 간 이 나아만은 몸을 씻기위해서 자신의 병든 부분을 감추고 있던 계급장이 달린 옷을 벗었습니다. 부하들이 있는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과 자신의 껍데기를 다 벗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 옷을 벗어버리자 나병에 걸린 이 나아만의 수치스러운 몸이 드러났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나요? 하나님앞에서는 감추고 계급장 자랑 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속에 나병과 같은 병이든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나아만은 자신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인채 요단 강물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본문은 14절 중간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람이 명령한대로 순종을 해서 마지막 일곱 번까지 강물에 몸을 담구었다는 것입니다. 요단 강에 일곱 번째로 몸을 담그는 순간 자신의 살이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하게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어린아이의 살이 얼마나 부드럽고 얼마나 깨끗합니까? 잡티 하나 없는 것이 어린아이의 살이잖아요. 그리고 어린아이의 살을 만지면 얼마나 몰랑몰랑 합니까? 고름이 생기고 썩어져 가던 나아만 장군의 살이 아물게 되어서 딱지가 생기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어린아이의 살처럼 부드럽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아만이 군대장관이라는 계급과 자존심과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놓았을 때 이 나아만 장군의 소원을 외면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남들앞에 자랑스럽게 자신의 권력과 명예와 부를 과시했던 껍질을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알몸이 되어 말씀에 순종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나아만이 말씀에 순종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나아만이 가지고 있었던 부끄러움과 수치를 다 벗겨주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생각 내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왜요? 내 생각과 내 자존심과 하나님의 생각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한번만 강물에 몸을 담그라고 하지 않고 일곱 번 물에 몸을 담그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일곱 번 강물에 들어갔을 때 낫게 해주시는 하나님께서 한번 물에들어갈 때 낫게 해주실 능력이 없으시겠습니까? 그리고 한번만에 낫게해주시면 하나님의 능력을 더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데 말입니다. 성경에서 일곱 번이라는 숫자는 완전과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7을 하나님의 숫자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는 일곱째 되는 날에는 안식을 하셨습니다. 완성을 의미하죠. 그리고 여리고 성을 여섯째 날까지는 하루에 한번씩 돌다가 일곱 번째 날에는 제사장을 앞세우고 나팔을 불고 찬양하면서 일곱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소리로 외치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렇게 일곱은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완전 숫자입니다. 성막뜰에서 잡을 때 나오는 피를 양동이에 담아 그피를 속죄소에 뿌릴때도 일곱 번 뿌렸습니다. 완전하게 죄 용서함을 받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일곱 번은 완전과 완성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숫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곱 번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아만에게 요구한 순종은 온전한 순종 완전한 순종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일 나아만이 여섯 번째까지 몸을 씻고 나서 그만두었다면 몸이 깨끗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부분적인 순종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순종 완전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왜요 이 완전한 순종은 내생각 내 자존심을 다 내려놓을 때에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 두번만에 몸이 깨끗하게 되었다면 아직 내 자존심이 살아있다고 하나님은 생각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곱 번까지 순종을 하게 하시고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나아만은 온전한 순종을 통해서 성공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순종하는 인생이 곧 성공적인 인생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가지 이유에서 우리는 순종이 곧 성공인 것을 알수있습니다.

 

첫째는 순종을 통해서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은 순종을 통해 병 고침을 받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만일 나아만이 화를 내고 그냥 자기나라로 돌아갔다면 병고침을 받지 못하고 나병환자가 되어서 비참하고 외롭게 인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을 함으로서 불치병이 고침을 받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크고 작은 기적들은 살펴보십시오. 모두가 다 순종의 과정을 통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도. 물이 포도주가 된 것도.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갈라진것도 모두가 다 순종을 통해 이루어진 기적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시기 전에 먼저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반드시 인간의 순종을 통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왜냐하면 순종을 해야 그 기적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상식에 어긋나고 자존심이 상하게 까지 하시면서도 순종을 하게 하십니다. 그래야. 그 기적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고백을 할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순종이 바로 성공의 길을 걸을수 있는 가장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적을 원하면서도 순종의 길을 걷기는 싫어합니다. 왜 그런지 저는 그것이 알고 싶다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기적이 필요할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순종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아마 순종은 웬지 모르게 굴욕적이고 자존심 상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아만이 많은 부하들 앞에서 옷을 벗고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고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는 것은 부끄러움이요 굴욕으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더 길게 본다면 그길은 굴욕이 아니라 성공의 길인 것입니다. 고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해결자이신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성공의 키를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알게되었으니 이제 나아만이 성공의 인생을 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둘째로 순종이 왜 성공입니까? 왜나하면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은 순종을 통해 나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시겠습니다.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나아만은 순종을 통해 기적을 경험하고 난이후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외는 다른 신이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17절을 보시면 한걸음 더 나아가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할렐루야! 하나님과 상관없이 온갖 우상을 섬기며 살았던 사람이 그리고 그렇게 감정적이고 교만이 있었던 사람이 순종을 통해 기적을 경험하고 나니까 뭐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제부터는 이 종이 번제물을 다른 신에게 드리지 않고 하나님만 에게만 드리면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최대의 성공은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아만은 인생의 최대 성공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보면 어느날 갑자기 나병이 찾아올수 있습니다. 건강의 나병, 경제적인 나병, 인간관계의 나병, 신앙의 나병, 탐욕과 정욕의 나병이 내 인생에 어느날 갑자기 찾아올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아만을 보십시오. 이 나아만은 결국 자신의 생각과 자존심과 계급장을 내려놓고 순종을 햇습니다. 순종을 하는 순간은 내자신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내가 하나님을 의지할수 있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것이 곧 성공의 길을 가는 인생입니다. 돈많고 권력이 있고 명예가 있다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은 인생은 나병인생인 것을 오늘 본문은 나아만의 모습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서 성공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게 부딪치는 생각과 자존심과 환경을 내려 놓을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당신의 자녀의 인생에 성공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순종하시는 인생을 살아가심으로 성공의 인생길을 걸어갈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