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너무 심한 형벌

Author
kgmcc
Date
2021-05-12 11:06
Views
17
본문 : 열왕기하 5장 16-27절

날짜 : 2021년 5월 12일

 

<열왕기하 5장 16-27절>

16.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20.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21.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22.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24.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25.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6.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27.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이번주는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내용을 가지고 은혜의 시간을 나누게 되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사람이 기도를 하던 중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네가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기도 생활을 해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내가 너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기로 했는데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가지만 말을 해다오.‘

그러자 이 사람이 무엇을 달라고 하면 좋을까 잠시 생각 했습니다. 평생동안 먹고 살아갈수 있는 돈을 달라고 할까? 아니면 질병이 없는 건강을 달라고 할까? 솔로몬처럼 지혜를 달라고 할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알고 계시기 때문에 차라리 하나님께 맡기면 제일 좋은 것을 주실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보시기에 저에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축복이 되는 선물을 주시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굉장히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 그래. 내가 인간들에게 주고 싶어하는 선물은 무엇보다는 인간들이 나와 함께 하는 것에 있다. 나와 동행하며 살아가면 아무것도 없어도 축복된 생활이지만 나와 아무 상관이 없이 살아간다면 아무리 많은 소유물을 가졌다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야. 그러니까 너는 늘 나와 동행하며 살아갈수 있도록 지금처럼 열심히 기도 생활을 해나가도록 해라‘ 그래서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기도생활만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이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생활을 계속해나갔는지, 아니면 하나님에게 결정권을 맡긴 것을 후회를 했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을 보시면 나아만 장군은 자신의 나병이 깨끗하게 낫게 되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한 몸이 된 이 나아만이 그당시 가졌던 감정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아만은 자기나라로 돌아가기 전에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이전에는 엘리사가 자기를 만나러 나오지도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자존심이 상했던 나아만이었습니다. 하지만 병이 낫고 한 후에 나아만은 자기가 먼저 엘리사를 찾아가서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져온 많은 양의 금과 은 그리고 귀한 옷을 엘리사에게 줄려고 합니다. 하지만 엘리사 선지자는 그 예물을 받지 않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엘리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16.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내가 그앞에서(여호와 앞에서라는 의미)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이 문장을 원어로 보시면 현재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한두번 행동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나아만과 엘리사는 예물을 주고 받으면서 이 예물을 받으십시요. 아니 못받습니다. 받으라니까요. 안받겠다니까요. 그러지 말고 받아주세요. 쓸데없는짓 하지 마시고 도로 가져가세요. 안됩니다. 저도 안된다니까요. 이렇게 계속 실랑이를 벌렸다는 의미입니다. 이 나아만은 지금 돈으로 따질수 없는 은혜를 받았지 않았습니까? 나병에 걸려 죽게 되면 이 금은보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돈은 자기나라에 아직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나아만은 하나도 아까운 생각이 없이 진심으로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엘리사에게 이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아만이 가져온 금은 패물은 굉장한 액수의 양입니다. 지난번에 살펴보았지만 은이 약 750파운드(340Kg)이고 금이 120파운드(54Kg) 입니다. 40파운드 짜리 쌀 18포대의 무게 만큼의 은과 40파운드 짜리 약 쌀 3포대 정도 무게의 금입니다. 그리고 귀한 의복 열벌입니다. 어마어마한 예물입니다. 하지만 엘리사 선지자는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뇌물이기 때문에 받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부정한 예물이기 때문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자기의 병을 고쳐준것에 대한 감사의 예물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사가 받아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 예물입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그리고 보는 사람도 다 감사하게 생각할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왜 받지 않는 것입니까? 이 엘리사 선지자는 돈이 필요없을 만큼 부자인 가요? 그것도 아닙니다. 엘리사는 돈이 참 필요한 상황에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밑에는 선지 생도들이 있었습니다. 이 선지 생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아서 선지자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인데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엘리사가 나아만이 가져온 예물을 받아가지고 이 선지 생도들을 후원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선지생도들을 도우는 일 외에도 그 돈으로 선한 사업을 얼마든지 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엘리사는 나아만이 가져온 예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왜요? 뇌물도 아니고 부정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돈 쓸곳도 많이 있는 데 말입니다. 이것은 나아만에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해서 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 나아만이 병고침을 받고 나서 감사한 마음으로 주는 예물을 받았다면 이 나아만은 돌아가서 하나님이나 엘리사가 자신이 가져온 예물 때문에 고쳐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엘리사를 만나러 갈려고 하는 것을 보면 이렇게 말을 했을 것입니다. ‘야, 너희들이 가져가는 그정도의 예물로는 부족해. 내가 가져간 그만큼의 예물은 되어야지. 그래야 하나님이 감동을 받으시고 고쳐주시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 많은 예물을 가져갔는데도 처음에는 얼마나 푸대접을 받았는지. 너무 자존심이 상해 화가 나서 그냥 돌아갈려고 했어. 그러니까 그정도로 예물을 가져가면 망신만 당할거야’ 이렇게 말을 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어떤 댓가를 바라고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닌것을 분명하게 나아만에게 알게하기 위해서 한푼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메시지는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곳에서 나병이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바로 죄 때문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아만이 걸린 나병은 바로 우리 인간이 지은 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병과 죄는 여러모로 비슷한 특성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나병은 다른사람에게 옮기고 번지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도 옮기고 번지게 합니다. 조는 것처럼 말입니다. 공부시간이나 예배시간에 한 사람이 졸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도 괜히 졸리지 않습니까? 하품을 하면 괜히 나도 하품이 나오게 되는 것처럼 나병이나 죄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둘째로 그래서 나병을 걸린 사람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집니다.

죄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지게 됩니다. 나병이 사회에서 분리하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나 사이를 분리 시키는 것이 죄입니다.

세째로 나병은 제사장만이 정하다라고 평가를 내릴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어떤 나병환자에게 정하다라고 할 수 있나요? 레위기 13장 12절에서 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2.제사장이 보기에 나병이 그 피부에 크게 발생하였으되 그 환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퍼졌으면 13.그가 진찰할 것이요 나병이 과연 그의 전신에 퍼졌으면 그 환자를 정하다 할지니 다 희어진 자인즉 정하거니와 14.아무 때든지 그에게 생살이 보이면 그는 부정한즉 15.제사장이 생살을 진찰하고 그를 부정하다 할지니...“

이 말씀을 그냥 보면 이해가 잘 안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더 잘 이해가 안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어짾튼 이해가 잘 안되는데 라고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13절 말씀을 보세요. ‘나병이 과연 그의 전신에 퍼졌으면 그 환자를 정하다 할지니’ 나병이 전신에 퍼졌으면 그 환자를 보고 깨끗하다고 제사장은 말하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하게 나병이 퍼졌으면 정하다라고 제사장은 판결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분적으로 나병이 퍼져있어서 부분적으로는 생살이 보이고 하면 부정하다라고 판정하라는 것입니다. 이상하죠? 아직까지 아무런 느낌이 없으십니까?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한 죄인들입니다. 그러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는 완전한 죄인이다 라고 고백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니까요. 하지만 내가 죄를 짓고 살아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면에서보면 선한 구석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어떤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세리와 창기들이었습니다. 세리와 창기들은 그당시에 완전한 죄인들이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세리와 창기들은 나같은 인간은 구원받고 하늘나라에 들어갈수가 없다고 인정해온 사람들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앞에 의롭다 함은 인정 받았습니다. 그사람들은 자기와 완전한 죄인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달랐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나는 저런 사람들과 같이 완전히 썩어빠진 죄인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들은 나병에 걸린 부정한 자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요. 구원은 내가 완전한 죄인임을 고백할 때 은혜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정하다 라고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나병으로 덮혀서 정함을 받게된 인간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부분적으로는 생살이 남아 있어서 부정한 사람들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으로부터 정하다라고 인정을 받았던 기록은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인간은 모두가 다 하나님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내가 완전한 죄인임을 인정할 때 구원을 받게 되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내가 완전한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때 하나님께서는 의롭다라고 하시고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기독교의 구원관은 너무 간단합니다. 사실 좀 어렵게 할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요단강에서 몸만 씻지말고 자유형으로 400미터를 수영을 하게 하고 그리고 200미터는 배형으로하고 그리고 다시 개구리 수영법으로 100미터 그리고 잠수해서 50미터 정도 물속에서 수영해라. 이렇게 요구하면 그래도 구원을 위해 뭔가 한 것 같은 데 말입니다.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뿐인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길이 너무 단순하다가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의 구원관이라 할수 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공짜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엘리사는 이 나아만에게 구원은 전적으로 공짜로 베푸어주시는 은혜이다 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나아만이 가져온 예물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물을 누가 받았나요?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받았습니다. 20절입니다. “20.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이 게하시는 자기 주인 엘리사가 예물을 받지 않고 나아만을 그냥 돌려보낸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게하시는 나아만을 뒤쫓아가서 거짓말을 합니다. 다 달라고 하면 너무 많아서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적은 양을 요구합니다. 22절입니다. “22.그가(게하시)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나아만 당신이 떠나자 마자 바로 멀리 떨어져 사는 제자 두명이 선생 엘리사에게 왔습니다. 그런데 그 선지 생도들에게 줄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좀 받아오라고 제 주인이 저를 보내서 제가 이렇게 급히 왔습니다. 이렇게 거짓말 한 것이죠. 그렇다면 이 게하시는 왜 주인 엘리사가 받지 않을려고 한 것을 게하시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받아낼려고 하는 것입니까?

 

첫째는 탐심 때문입니다.

견물생심이라고 게하시는 나아만이 가져온 예물을 보는 순간 욕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일단 욕심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면 그다음에 죄를 범하기는 쉽습니다. 게하시가 어떻게 고백합니까? 20절 후반부입니다. “20.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반드시 무엇을 가지겠다라고 하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면서 가지겠다고 뒤쫓아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욕심이 생기면 하나님 이름을 아주 쉽게 팔게 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이름을 팔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종종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분별할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는 것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탐심이 있느냐 없느냐로 분별하면 됩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능력이 있는 사역자라 할지라도 그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욕심과 탐심이 있으면 하나님 이름을 쉽게 이용할수도 있는 사람으로 분별하시면 됩니다. 게하시는 그당시 가장 유명한 선지자 엘리사 밑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욕심이 생기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에게 돌아와서는 아무에게도 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또 합니다. 거짓말은 계속 거짓말을 부릅니다. 이 게하시가 계속 이렇게 거짓말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욕심 탐심 때문입니다. 야고보 1장 15절입니다.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어서 골로새서 3장 5절 후반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5.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탐심을 이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성경은 우상숭배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사람은 탐욕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탐심이 생기면 영적인 어두움이 나를 사로잡게 됩니다. 영적인 어두움이 생기면 하나님도 이용하고 하나님의 사람도 이용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게하시가 그동안 신앙생활을 잘해왔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게하시가 한순간 그 많은 금은보화를 보고 가져야 하겠다고 탐심을 먹는 순간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물질을 가지게 되는 추한 인간이 되는 것을 우리는 볼수 있습니다. 한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이 탐심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생길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계속 키워나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탐심이 내 마음에 자꾸 생기게 되면 그 생각을 과감히 내 버리는 것이 추한 인생을 살지 않은 길인 것을 명심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게하시는 자기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받지 말아야 할 예물을 받았던 것입니다.

20절 전반부 말씀입니다. “20.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스스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나오는 엘리사의 생각과는 대조적이죠..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는 받지 아니하리라” 엘리사는 언제나 스스로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 앞에서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엘리사도 인간인데 그 많은 물건을 보고 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그 돈으로 신학교도 짓고 가난한 선지 생도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그러면 저 나아만이 자기가 가져온 물질 때문에 고쳐주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진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에게 나아만이 주는 예물은 절대로 받지 말아라 라고 하는 말씀을 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니까 엘리사가 결단코 받지 않았던 것이죠.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엘리사도 못이기는체 하고 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게하시와 엘리사와 다른 점입니다. 게하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을 했습니다. 욕심이 있고 탐심이 생길때는 절대로 자기 스스로 계산하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도 우리안에는 여전히 죄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판단하고 생각을 하면 욕망과 탐욕과 본성을 따라서 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수있습니다.

게하시가 뒤따라가서 거짓말을 해서 예물을 취했는데 나아만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게하시가 요구한 양보다 훨씬 더 많이 줍니다. 23절을 보시면 금 두달란트 은 두달란트 옷 두벌을 줍니다. 거짓말 한번에 굉장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게하시에게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어떤 저주가 임합니까? 27절입니다. “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게하시는 그 즉시로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까지 나병에 걸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많은 재물이 나병에 걸린 게하시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재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같이 동행하지 않는 인생은 저주인 것을 게하시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질이 없다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인생은 축복입니다. 물질은 이땅에 있을때만 필요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죽음이후에도 필요하신 분이십니다.

 
  • 형벌이 너무 심하지 않는가?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게하시가 지은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너무 엄한 저주를 내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거짓말 한번에 게하시가 나병에 걸린것도 형량이 심한데 그 자손까지 나병에 걸리게 하신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 심하다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의 본질을 따져보면 게하시의 엄청난 죄를 저질렀습니다. 게하시가 지은 죄는 단순히 거짓말을 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의 죄가 아닙니다. 이 게하시가 지은 죄는 불법적으로 물질을 가져간 강도와 같은 차원의 죄도 아닙니다. 이 게하시가 지은 죄는 값없이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한 죄입니다. 엘리사는 이 나아만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나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종을 보내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엘리사가 이렇게 행동을 한 이면에는 나를 의지하지말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병이 나은 나아만이 감사해서 엘리사를 찾아와 예물을 줄려고 했을 때 엘리사는 결단코 그 돈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죄사함 받고 병고침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었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믿으십니까? 우리가 받은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은 이 구원에 위해서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한 것이 있다면 말씀에 순종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 뿐입니다. 내가 남보다 더 좋은 성품을 가졌고 더 선한일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인간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사람들이 이용할 때 가장 모독을 받으셨다고 여기십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보면 하나님이 그저 주시는 구원에 대해 이런 저런 말로 미혹시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대해서만은 조건을 내걸고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것은 용서할수 없는 큰 죄악이라고 보십니다. 그럼으로 구원은 십자가의 사랑을 믿을 때 아무 조건없이 그저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확신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게하시는 우리 인간이 보기에 너무 심하다라고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은혜는 말 그대로 은혜입니다. 말씀에 순종해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외 다른 것은 없습니다.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나아만은 이스라엘 땅에서 가지고 간 흙으로 제단을 만들어 하나님에게만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나아만의 일생처럼 저와 여러분도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살아가시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