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Author
kgmcc
Date
2021-05-26 11:02
Views
13
본문 : 사사기 14장 4-7절

날짜 : 2021년 5월 26일

 

<사사기 14장 4-7절>

4.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5.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6.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7.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니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

 

지난 주 수요일부터 삼손에 관한 내용으로 같이 은혜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삼손은 한번만 넘어진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넘어지는 것을 봅니다. 삼손의 넘어짐과 실패가 계속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삼손에게 계속 은혜를 베푸어 주십니다. 삼손이 사사로서 그 사명을 감당할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해주십니다. 우리 같으면 포기하고 끝내버릴 것 같은데 하나님은 포기 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삼손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삼손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첫째로 이방여인과의 결혼에 관한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방여인과 결혼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혼을 통해서 당신 자신의 구원 사역을 이루어 가십니다. 4절입니다.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그때에’ 여기서 그때는 3절을 보시면 삼손이 자기 부모님에게 이방 여인인 딤나 여인과 결혼을 하겠다고 말할때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 4 절의 말씀을 지난주에 살펴보았지만 성경 원문을 보시면 ‘삼손이 틈을 타서’ 가 아니라 ‘그가 틈을 타서’ 인데 여기서 그는 삼손이 아닌 하나님으로 많은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을 봅니다. 삼손이 이방여인과 결혼을 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계획이다 라고 해석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블레셋사람들을 치기 위해서 삼손을 블레셋 여인과 정략적인 결혼을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의 부모는 이런 전략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것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삼손의 그 결혼을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기 위해서 삼손으로 하여금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도록 허락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본문을 그렇게 해석하게 되면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도록 조장하시는 분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이방여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7장 3절입니다. ‘3.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러니까 삼손이 이방여인과 결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불법을 동원하지 않으십니다. 삼손이 이방여인과 결혼을 한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결코 옳은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정욕을 따라 자기의 눈에 반한 딤나여인과 결혼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삼손의 인생은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여인과 결혼함으로 인해서 삼손은 인생의 긴 터널가운데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만나서는 안될 사람을 만나게 됨으로서 삼손의 불행이 시작 된 것 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삼손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구원해내고자 하는 그일을 계속 행하셨던 것입니다. 이 삼손에 의해서 블레셋사람들이 얼마나 두려워 떨었는지 모릅니다. 삼손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블레셋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비록 삼손이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하나님게서는 삼손의 그 잘못된 선택까지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실려는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삼손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도 임할수 있게 되시길 죽복합니다.

 

하나님이 삼손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두 번째로 젊은 사자로부터 보호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5, 6절입니다. 5.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6.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처음에는 삼손의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계속되는 자기 아들의 간청을 더 이상 반대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딤나에 내려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삼손이 젊은 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점은 본문 6절 후반부에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삼손의 부모는 삼손이 사자를 만나 죽인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쥐새끼 한 마리 죽인 것도 아니고 사자를 맨손으로 찢어 죽인 이 엄청난 사건을 삼손의 부모가 알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알고 싶다입니다. 그런데 본문 5절을 자세히 보시면 두가지 사건을 동시에 다루고 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는 삼손이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간 사건이고 또 다른 하나의 사건은 삼손이 딤나의 포도원에 간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삼손이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갔지만 딤나의 포도원에는 삼손 혼자만 간 것입니다. 그러면 삼손이 왜 부모님을 따돌리고 딤나의 포도원에 혼자 갔을까요? 그것은 나실인으로서 마셔서는 안될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서라고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민수기 6장 3절과 4절을 보게 되면 나실인에 대한 규례가 나오는데 포도주를 마셔서는 안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삼손이 그 말씀을 어기고 포도원에 간것입니다. 삼손이 딤나의 포도원을 찾았을 때 그시간, 그장소에 그 젊은 사자가 삼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그냥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삼손을 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지르는지라’ 저는 하나님께서 정욕을 따라 그릇된 길로 가는 삼손을 막으시고 깨닫음을 주기 위해서 그시간, 그장소에 그 젊은 사자를 보내셨다고 믿습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이와 유사한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발람이라고 하는 선지자가 잘못된 예언을 하기 위해서 갈때에 하나님께서는 나귀를 동원하여서 그가 가는 길을 막으십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저와 여러분이 나에게 주어진 신분과 사명을 망각하고 그릇된 길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길에 사자를 만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죄악된 길을 가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의 길을 막으시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깨달을수 있어야 합니다. 사자가 길을 막고 소리를 지를 때 저와 여러분은 내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설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 삼손이 깨닫았습니까?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 내가 지금 나실인의 신분을 망각하고 잘못된 길로 갈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셔서 나의 길을 막을려고 하시는 구나’ 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삼손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길을 가는데 갑자기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나서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든다고 생각해보세요. 강아지라도 겁이 납니다. 그런데 강아지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젊은 사자입니다. 원래 원어로 보면 젊은 숫사자입니다. 이 젊은 숫사자가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으니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뭐 피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경우는 곧바로 기절해버린 사람들일것입니다. 젊은 사자를 만났을 때 삼손의 손에 쥐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사자에게 잡혀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 가운데 빠진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여호와의 영이 임했습니다. 그러자 삼손이 그 사자의 입을 염소 새끼의 입을 찢듯이 찢어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강한 여호와의 영이 임했으면 삼손이 맨손으로 그사자의 입을 찢어서 죽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삼손을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 가운데서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사자를 찢어죽인 이 사실을 부모가 알지 못했다는 것은 삼손에게 어떤 상처도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어디 하나 상한데가 없는 삼손이었기에 부모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삼손을 안전하게 보호하셨습니다. 여러분 삼손이 이방여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딤나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고 포도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호와의 영으로 함께하사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가운데서 삼손을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삼손이 육체의 정욕을 쫓아 자신이 원하는 그릇된 길로 가다가 위기를 자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삼손을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죽음의 위기 가운데있는 삼손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삼손에게 베풀어주신 은혜

세번째는 지킬수 없게 된 약속을 지킬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 사건이후에 삼손은 딤나여인과 결혼을 하고 잔치를 벌립니다. 10절입니다.

‘10. 삼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청년들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그당시 풍습에 따라 결혼 잔치를 일주일동안 하게 되었는데 11절을 보게 되면 삼십명의 블레셋 사람들을 초대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십명의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잔치의 분위기가 한창 고조 되어갈때 삼손이 갑자기 수수께끼를 냅니다. 그런데 이 수수께기는 삼손이 자기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내용을 문제로 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 수수께기의 답을 알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자신있게 이 수수께기를 걸고 내기를 합니다. 12절입니다. ‘12.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그리고 13절입니다. ‘13.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말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지금은 흔한 것이 옷이지만 그당시의 사람들에게 옷은 재산목록 1호가 될 만큼 가치가 있고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겉옷은 아무나 입지 못했습니다. 이 겉옷과 베옷을 얻기위해서 블레셋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고 의논을 했지만 그 수수께기의 답을 얻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삼손의 아내에게 협박을 해서 답을 알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약속된 일주일이 되자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에게 답을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삼손이 약속한 대로 그들에게 겉옷 삼십벌과 베옷 삼십벌을 주어야 했습니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삼손도 그렇지만 특별히 자기 아내와 그 가족들이 위험에 처하게 될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은 삼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19절 상반부입니다. ‘19.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성령이 갑자기 임하셨다는 것은 삼손이 처한 입장이 아주 급박한 상황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손은 여호와의 영이 공급해주시는 힘으로 아스글론에 가서 그곳 사람들을 쳐죽이고 그들의 옷을 벗겨서 수수께기 푼 자들에게 주게 합니다. 그래서 삼손이 약속을 지키게 합니다. 삼손이 지내왔던 그 일생을 지금 이시간 대략 살펴보면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삼손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후에 삼손은 아내를 빼앗기게 되는데 아내를 빼앗긴 삼손이 복수심에 타올라서 여우 삼백마리를 잡아 두 마리씩 서로 꽁지를 묶어서 그 꽁지에 불을 붙입니다. 그래서 그 여우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블레셋 사람의 곡식을 다 불에 태우게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블레셋사람들이 복수를 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쳐들어옵니다. 그것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이 겁을 먹고 그 블레셋 사람들의 요구대로 삼손을 결박하고 삼손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내어줍니다. 이제는 삼손이 결박당한채 블레셋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위기를 만나게 된 것 입니다. 그런데 그때도 여호와의 영이 임합니다. 사사기 15장 14절 후반부입니다. ‘14.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여호와의 영이 임하니까 삼손이 결박한 밧줄이 불에 탄 삼처럼 끊어져서 풀어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귀턱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천명이나 쳐죽입니다. 15절입니다.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삼손이 이렇게 결박을 당하고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은 순전히 개인의 정욕과 감정과 그리고 복수심으로 인해서 당하였던 위기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16장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베풀어 지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삼손이 가사의 기생집에 들어갑니다. 들어가서는 안되는 집에 들어가 잠자리를 하게 됩니다. 그때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죽이기 위해서 그 기생의 집을 둘러싸고 매복을 합니다. 삼손이 나오면 잡아 죽일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삼손이 어떤 모습으로 이 블레셋 사람들눈에 나타납니까? 성 문짝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가지고 그것을 모두 어께에 매고 가볍게 산책을 하듯이 헤브론산 앞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엄청난 삼손의 힘을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도리어 겁을 먹고 공격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은혜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삼손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까? 삼손은 믿지 않는 여인과 결혼을 했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즐기다가도 수가 틀리면 자기 감정대로 해버리는 삶을 살아가는데 말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즐기고 살아가라고 이런 힘과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까?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기분 내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런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까?

첫째는 다시한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방여인과 결혼을 하고, 마시지 말라는 포도주를 마시고 기생의 집에 들어가 잠자리를 같이 하였지만 하나님은 삼손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다시한번 사명을 위해 살아갈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하면서 속였습니다. 이런 일을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 믿음으로 행할수 기회를 주시고 결국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십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처럼 많이 실수하고 넘어진 사람을 성경에서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야곱이 그렇게 실패를 하고 넘어졌지만 하나님은 야곱이 마침내 이스라엘이 되도록 하십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한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런 베드로를 포기 하지 않으시고 찾아가 만나십니다. 그래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실수를 하고 넘어질지라도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삼손이 계속해서 실수를 하고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자주 넘어지고 실패를 했습니까?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도 헤아릴수 없을만큼 실수를 하고 넘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라고 하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인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탄은 우리가 실패를 하고 넘어질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끝장이야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 하나님은 너에게 관심이 없어’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향하여 ‘너는 끝장이야’ 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시한번 기회를 줄테니까 일어나라. 그래서 다시한번 시작을 해보아라’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요.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까?

둘째로 사람은 실패하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끊임없이 실패를 하고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삼손을 통해서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는일을 계속하십니다. 삼손이 당하는 어려움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정욕과 감정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삼손의 실수와 넘어짐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자기 백성들을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여 내는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사람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우리도 삼손처럼 계속적으로 넘어지고 실패를 할 수 있습니다. 내 실수와 내 감정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좌절감과 낙심을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한번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볼수만 있다면 우리에게는 다시 한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실패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가질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빈드시 명심해야 만 할 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렇게 실패하고 넘어지는 인생이 계속되어 질수록 내자신에게만 손해라는 것입니다. 삼손은 마지막 순간까지 실패를 했습니다. 두눈이 뽑히고 머리가 짤린채로 결박당해 블레셋 사람들의 노리개가 되었습니다. 삼손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다곤 신전 두기둥을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수많은 블레셋사람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합니다. 끝까지 다시한번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누가 손해입니까? 나 자신만 손해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젊었을때는 그래도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은 이미 카운터 다운을 생각해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집안 이곳 저곳에 있는 오래된 짐들도 이제 하나 둘씩 정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돌아서야 할 때 돌아서고 정리해야 할 때 정리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다시한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로 다시한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열두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다시한번 기회를 주시는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실패 하지 않고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실패를 하고 넘어졌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넘어짐과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한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어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은혜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돌아설 것은 돌아서고 하나님이 나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시고 다시한번 은혜를 주신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삼손처럼 다시한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다시한번 기회를 주시고 그리고 실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면서 돌아서길 돌아서고 정리할 것은 정리함으로 하나님의 뜻안에서 내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