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죽은 사자와 꿀

Author
kgmcc
Date
2021-06-02 10:40
Views
13
본문 : 사사기 14장 8-9절

날짜 : 2021년 6월 2일

 

<사사시 14장 8-9절>

8.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9.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가운데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중의 한명이 바로 삼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임신하지 못하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삼손을 잉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아이를 낳게 되면 구별된 나실인으로 키워라 고 하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이세상에 태어날때부터 구별된 나실인으로 선택을 받았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우상이 만연했던 그당시에 삼손은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영적인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삼손처럼 특별한 축복 가운데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은 성경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삼손은 젊은 사자의 위험에서부터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 사사기 14장 6절입니다. ‘6.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했는데 그러자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삼손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삼손은 그 젊은 사자의 입을 찢어 죽였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힘이 세다 할지라도 사자의 입을 찢을수는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총이나 칼같은 무기로 사자를 죽인 일은 있지만 맨손으로 사자를 찢어죽인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삼손은 정말 측량할수 없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삼손이 작은 유혹앞에 넘어집니다. 본문 8절입니다. ‘8.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얼마후에’ 여기서 얼마후에는 삼손이 사자를 찢어죽이고 난 이후를 의미합니다. 얼마후에 삼손은 딤나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다시 딤나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시면 ‘가다가 돌이켜’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삼손이 딤나 여인을 맞이하러 가다가 갑자기 그 사자를 만났던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이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자가 죽어있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어떤 잊을수 없는 특별한 큰 일을 경험하게 되면 그 현장을 다시 찾아갈려고 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범죄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 범죄의 현장을 다시 찾아갔다가 경찰에 검거된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삼손도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전에 죽인 그 사자가 어떻게 되었을까? 그누군가가 그 사자의 껍질을 벗겨가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그 사자가 그대로 그 자리에서 썩어가고 있을까? 이렇게 궁금함이 생겨서 삼손은 원래 가야 하는 그길에서 돌이켜 자기가 사자를 찢어죽인 그 현장으로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은 사자의 몸안에 벌떼와 꿀이 있었습니다. ‘사자의 몸에 벌떼와 꿀이 있는지라’ 죽은 사자의 몸안에 있는 꿀을 보는 순간에 삼손은 자기 손으로 그 꿀을 떠서 먹었습니다, 9절 상반부입니다. ‘9.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 막대기같은 어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손으로 떠서 걸어가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나실인입니다. 나실인은 죽은 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규례가 있습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까지도 죽은 시체는 가까이 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는 내 부모와 내 가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앞에서 구별된 사람 나실인은 그 시체를 가까이 하면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나실인에게 죽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도록 명령했던 것입니까? 죽음은 죄의 결과로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별된 사람 나실인은 그만큼 죄를 멀리하고 죄를 피하며 구별되게 살아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나실인은 시체를 멀리 할 것을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실인 신분인 삼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손으로 그 꿀을 떠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만 먹은 것이 아니라 그 꿀을 부모에게도 가져다 주었습니다. 9절 하반부입니다. ‘9.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지난번에 사자를 죽였을때에도 삼손이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삼손은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삼손의 부모는 그 꿀이 어디서 난 것이나 라고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얘 삼손아 이 꿀이 어디서 났니. 누가 주더냐? 딤나 여인집에서 이꿀을 주더냐?’ 삼손이 어떻게 대답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죽은 사자의 몸에서 꿀을 떠왔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고 가져온 꿀이기 때문에 사실을 말하지 않고 그냥 적당히 둘러서 말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시체를 가까이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삼손이 자기가 찢어죽인 그 사자가 있는 현장을 갔을때 죽은 사자의 몸안에 꿀이 없었다면 삼손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당연히 이렇게 반응을 했겠죠? 나는 나실인이니까 죽은 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되지 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냥 그 자리를 빨리 떠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죽은 사자의 몸안에 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그꿀의 유혹 때문에 말씀을 어기고 그 손으로 죽은 사자의 몸을 만지면서 꿀을 떠서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삼손이 꿀이라고 하는 달콤한 유혹앞에서 넘어진 것입니다. 삼손은 사자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보호하심을 입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함으로 그 젊은 사자를 찢어죽일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목숨을 건진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있습니까? 그런데 목숨을 건짐받은 삼손이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 꿀이라고 하는 작은 유혹앞에 넘어진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바로 그 현장에서 말입니다. 다른곳에서 넘어진 것도 아닙니다, 흉년이 들어서 참고 참다가 도저히 배고픔을 못견더서 넘어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의 상징이었던 그 죽은 사자를 보면서도 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시게 되면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작은 유혹앞에서 많이 넘어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40년의 광야생활 끝에 마침내 가나안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난공불락이라고 하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다. 어떻게요? 자신들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은혜로 말미암아 무너뜨렸습니다.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일은 여리고 성을 도는 것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루에 성을 한바퀴 돌고 마지막날 일곱 번째 날에는 일곱 번 돌았던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합 열세바퀴를 돌고 난 다음에 믿음의 함성을 지를때에 그때 하나님의 은혜로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사중에 아간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 성안에 있는 전리품의 유혹에 넘어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전리품을 취하지 못하도록 했습니까? 전쟁에서의 승리가 너희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되었음을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해서 전리품을 사람들로 하여금 취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만일 여리고 성 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하였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이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사람도 죽지 않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 가지지 말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아간은 여리고 성안에 있는 귀중품을 가져갔던 것입니다.

43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땅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자유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40년의 광야 생활을 한 끝에 마침내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당시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들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33장 29절 전반부입니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시기에 태어난 사람보다는 행복한 사람이잖아요? 40년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은 사람들보다는 행복한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모세가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했던 가나안땅이었지만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나안땅에 들어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녀의 신분으로 남의 집에서 온갖일을 하고 그 집안 한구석에 있는 조그만 방에서 살아가는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내 집을 가지게 되어도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인데 자기 나라를 세우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큰 축복으로 인해 가나안땅에 들어갔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여리고성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무너진 것을 기억나게 하기 위해서 그성안에 있는 모든 사람과 재물들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의미로 모두 없애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간이 재물의 유혹에 넘어져서 그 성안에 있는 물건중의 일부를 자기가 가졌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그이후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혹에 넘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약속의 땅에 살고 있던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나안땅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섬기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로 말미암아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작고 달콤한 유혹에 넘어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천사도 흠모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양자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안에 있는 생명을 가지게 됨으로서 우리는 이땅과 저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면서 살아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타는 지옥이 아닌 영적인 가나안땅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심령에 거주하심으로 우리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이 은혜 보다 더 큰 은혜가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큰 축복을 받은 우리들이 작은 유혹앞에 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비하면 그유혹은 작은 것입니다. 달콤하고 매력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볼때는 유혹이 크고 강하고 달콤하고 매력적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너무 작은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비교하면 우리에게 밀려오는 수많은 유혹들은 작은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물질이라고 하는 그 유혹, 명예라고 하는 그 유혹, 정욕이라고 하는 그 유혹 이런 저런 유혹에서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작은 유혹앞에서 넘어지고 있는 지 모릅니다. 마귀는 오늘도 핍박과 유혹이라고 하는 두가지 종류를 가지고 우리를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핍박과 유혹중에서 어떤 것이 더 이겨내기가 어렵겠습니까? 그것은 유혹이라 할수 있습니다. 성경이나 기독교 역사를 보게 되면 고난가운데 핍박을 받은 성도들은 물론 넘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그 고난가운데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후에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순교를 한 사람의 숫자가 약 7천만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핍박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순교를 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유혹앞에서 넘어지고 있습니다. 구태여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를 살펴볼필요도 없이 오늘날 현재 유혹에 넘어지고 있는 사람들만 해도 7천만명은 넘을 것입니다. 믿는 성도가 아니라 불신자이라 할지라도 힘들고 어려운 시기는 대부분 잘 견디고 극복해나갑니다. 하지만 부과 권력을 쥐고 난이후에 만나게 되는 이런 저런 유혹에는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핍박보다는 유혹을 이겨내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가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오랜 세월동안 사울왕에 의해서 핍박을 받고 쫓기는 생활을 했을때는 넘어지지 않고 믿음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런데 한가하게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을 하는 여인을 보고는 유혹에 넘어진 것입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중에 버가모 교회가 있습니다. 이 버가모 교회는 순교의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감으로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요한 계시록 2장 13절 하반부입니다. ‘13.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핍박중에서도 순교를 하면서까지 교회를 지켰습니다. 그 순교자의 믿음을 이어받아 교회를 지켜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속의 유혹앞에 넘어진 것입니다.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며 살아갔던 것에 대해 주님의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2장 14, 15절입니다. 14.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니골라당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면 육신은 아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영혼이 깨끗하게 되었으니까 육신은 멋대로 살아된다는 것이 니골라당의 가르침입니다. 오늘날 구원파의 가르침과 비슷합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세상과 타협을 해서 적당히 살아도 죄가 되지 않는 다고 하니 이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우리가 사실 죄 때문에 투쟁을 하느라 얼마나 갈등과 고통속에 있습니까? 그런데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깨끗하게 되었으니까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얼마나 달콤하겠습니까? 만일에 이것이 진리라고 한다면 저는 이쪽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 이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좋아할 것입니다. 이래도 천국가고 저래도 천국간다면 우리가 왜 이 죄 때문에 고심을 하고 갈등을 하며 살아갑니까? 이육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다가 천국가는 것이 훨씬 더 낫지요. 이보다 더 매력적인 내용이 어디있습니까? 특히 이 니골라는 초대교회 일곱집사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가르침에 미혹되어 진리를 벗어난 신앙행위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버가모 성도들은 이러한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발람은 물질의 유혹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이런 물질의 유혹앞에 넘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달콤한 니골라 당의 유혹과 발람의 유혹에서 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작은 유혹앞에서 넘어지는 것입니까?

간단합니다. 그 이유는 꿀처럼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왜 그 은혜의 현장에서 넘어졌습니까? 바로 죽은 사자의 몸안에 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달콤한 유혹 때문에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넘어진 것입니다. 삼손이 계속적으로 넘어지고 계속적으로 여인들로부터 배신을 당하면서도 왜 계속해서 여인들을 찾는 것입니까? 딤나 여인에서 가사 기생 여인으로 그리고 또 들릴라 여인을 만나는 것입니까? 그때마다 배신과 상처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삼손은 여인의 품을 떠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여인의 품속이 그만큼 달콤했기 때문입니다. 왜 오늘날 사람들이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들끼리 만나고 불륜 관계를 맺습니까? 왜 오늘날 사람들이 도박을 하고 마약을 합니까? 왜 사람들이 돈과 시간을 허비하고 건강을 헤치면서까지 죄를 짓고 살아갑니까? 그이유는 간단합니다. 그죄가 가져다 주는 순간의 짜릿함 때문입니다. 죄에는 낙이 있습니다. 죄가 우리가운데 가져다 주는 낙이 있습니다. 순간의 짜릿함이 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 죄가 짜릿함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 그 누구가 돈과 시간을 드리고 에너지를 쏟아부으면서 까지 죄를 짓겠습니까?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는 고난을 받는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4-25절입니다. ‘24.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죄악에는 낙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의 짜릿함과 쾌감 때문에 보다 크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그 낙은 잠시입니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불가사리의 먹이는 주로 조개 종류입니다. 불가사리가 조개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팔로 입을 다물고 있는 조개를 살살 마사지 해준답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 조개가 입을 조금 벌립니다. 이번에는 조갯살을 부드럽게 마사지 해줍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 조개가 입을 벌릴 때 그 벌어진 조개 속으로 들어가서 조갯살을 먹는 것입니다. 죄앗에는 즐거움과 낙이 있습니다. 그 즐거움과 낙은 잠시 잠깐입니다. 하지만 그 죄악의 열매는 너무 쓰고 고통스럽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서 평생 쌓아놓았던 그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사람들을 쉽게 볼수 있습니다. 특별히 연예인들을 보면 잘나가던 연예인들이 마약 도박 여자와의 관계에 의해서 그동안 자신이 쌓아놓았던 그 많은 명성과 인기를 다 잃어버리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죄의 유혹은 달콤하지만 그 죄값은 멸망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오늘 만을 요구합니다. ’오늘 하루만 마셔봐. 오늘 하루만 피워봐, 오늘 하루만 하고 이젠 잊어버려‘ 사탄은 평생을 요구하지 않고 오늘 하루만 요구합니다. 그런데 오늘이 평생이 됩니다. 오늘이 오늘이 아니라 망할때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죄의 유혹이 우리에게 달콤함과 짜릿함을 가져다 주지만 우리의 인격을 파괴시키고 우리의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지도록 만듭니다. 그럼으로 세상의 유혹과 시험이 몰려올때면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죽었던 나, 방황했던 나, 절망하고, 낙심했던 나이었습니다. 이러한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만나주시고 구원해주시고 나의 눈물을 닦아주셨던 그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인생가운데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이 아무리 달콤하고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여도 하나님이 우리 인생가운데 베풀어주신 그 큰 은혜를 생각하면 아주 작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몇천번을 죽었다 다시 살아나 평생동안 일하면서 모아도 갚지 못할 만달란트의 빚을 하나님으로부터 탕감받은 사람들입니다. 바라옵기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신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저와 여러분에게 순간 순간 밀려오는 죄악의 유혹을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그 죄악이 아무리 달콤하고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크신 은혜에 비하며 너무나 작고 미약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세상의 유혹이 밀려올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