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는 신앙의 길
<사사기 14장 14-17절>
14.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15.일곱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려 달라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빼앗고자 하여 우리를 청한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아니하냐 하니
16.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이르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알려 주지 아니하도다 하는지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알려 주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알게 하리요 하였으나
17.칠 일 동안 그들이 잔치할 때 그의 아내가 그 앞에서 울며 그에게 강요함으로 일곱째 날에는 그가 그의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알려 주매 그의 아내가 그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더라
<사사기 16장 15-16절>
15.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오늘로서 사사기 14장을 중심으로 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마치고자 합니다. 다음주 수요일 부터는 마가복음의 내용을 가지고 성경공부를 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여호와의 영의 임재로 인해서 맨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일수 있었고 그리고 나귀 턱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들 천명을 죽이는 은혜를 누릴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납고 강력한 상대와 싸워 이긴 삼손이었지만 가냘프기가 짝이 없는 여인들이 속삭이는 달콤한 유혹은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삼손처럼 우리 주변을 보게 되면 많은 돈과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들을 쉽게 볼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삼손이 딤나의 여인과 들릴라 여인으로부터 집요한 유혹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전에 살펴보았지만 삼손이 딤나 여인과 결혼을 할 때 그 결혼식에 참석한 블레셋 사람들에게 난데없이 수수께기를 내었습니다. 그 수수께기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4절입니다. ‘14.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이 수수께기의 답은 삼손이 말해주지 않는 이상은 그 누구도 알수 없습니다. 왜요? 자기 혼자 경험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강한자는 사자이고 단 것은 꿀입니다. 수수께기 문제도 문제같지도 않고 유치한 느낌이 듭니다만 삼손이 이 수수께기 문제를 낸 것은 자기가 맨손으로 사자를 죽였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속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맨손으로 사자를 죽인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은근히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수께기만 낸 것이 아니라 내기를 걸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무슨 내기를 걸었습니까? 겉옷 삼십벌과 베옷 삼십벌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 수수께기 문제를 맞출려고 머리를 싸매었지만 도저히 그답을 알아낼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딤나여인을 찾아와서 협박하기 시작합니다. 15절 상반부입니다. ‘15.일곱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려 달라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와 네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이것은 협박입니다. 그런데 그 앞을 보시면 ‘꾀어’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네 남편을 꾀어’ 이것은 남편을 속이거나 유혹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네 남편 삼손을 유혹해서 수수께기의 답을 알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살라 버리겠다 죽이겠다는 것이죠. 이 블레셋 사람들이 모습에서 사탄이 가진 특징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탄을 우는 사자로 비유하기도 하고 광명한 천사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처음에는 거의 광명한 천사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우는 사자로 변하는 것입니다. 결혼식에서는 친절한 이웃사람과 친구들의 모습으로 다가왔지만 결정적인 시점이 되자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렇게 사탄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장 포악하고 난폭한 방법으로 공격을 해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입니다. 이전에 26년 동안 무속인의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예수님을 믿고 정말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심선미 집사님이 계십니다. 그 심선미 집사님이 간증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귀신도 사탄도 함께 존재합니다. 사탄이 처음에 접근할때는 돌아가신 할머니나 친척 같이 조상의 모습을 가장해서 나타나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그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이후에 사탄은 사람을 공갈하고 위협해서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려고 합니다. 그들이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은 우리의 두려움, 근심, 걱정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반박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반박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럼으로 처음에 친절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담대하게 물리칠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간증하는 것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은 처음에 다가올때는 광명한 천사로 다가옵니다. 고린도 후서 11장 14절입니다. 14.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런데 사탄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때는 공갈과 협박을 사용합니다. 우는 사자로 돌변하는 것입니다. 이 블레셋 사람들은 잔치집에 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협박을 했습니다. 그들의 협박으로 인해 삼손의 아내가 본격적으로 집요하게 삼손을 유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6절 상반절입니다. ‘16.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이르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알려 주지 아니하도다 하는지라...’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내용은 삼손 앞에서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앞에서 울며 이르되...’ 이 딤나 여인의 눈물앞에서, 사랑의 감정에 호소하는 그 여인의 유혹앞에 삼손은 무너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딤나의 여인앞에서만 집요한 유혹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들릴라 여인으로 부터도 집요한 유혹을 받았습니다. 삼손이 들릴라 여인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블레셋 지도자들이 들릴라라는 여인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제안을 합니다. 어떤 제안입니까? 우리가 각각 은 천백개를 줄때니까 삼손이 가지고 있는 힘의 근원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각각 은 천백개가 얼마냐 하면 만일 다섯명의 지도자들이 와서 제안을 했다고 한다면 오천 오백세겔입니다. 오천 오백 세겔이면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는 약 3억원 정도가 되고 달라로는 약 30만불 정도의 돈이 됩니다. 그러니까 30만불을 줄테니까 삼손이 가지고 있는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제안을 받은 들릴라 여인이 삼손을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사사기 16장 6절입니다. 6.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하건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하니‘ 그러자 삼손이 둘러댑니다. ’마르지 아니한 새활줄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힘이 약해져서 다른사람들과 같이 될 것이다. 그래서 새활줄 일곱으로 시도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또다시 들릴라가 유혹합니다. 16장 10절입니다. ‘10.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보라 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청하건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이제는 내게 말하라 하니’ 그러자 삼손이 이번에는 이렇게 둘러댑니다. 사용하지 아니한 새밧줄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다른사람들과 같이 될 것이다. 그래서 들릴라가 새밧줄로 삼손을 결박했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들어오는 순간에 실을 끊듯이 밧줄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들릴라 여인은 포기 하지 않고 또다시 유혹합니다. 16장 13절 상반부입니다. ‘13.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 때까지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내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하니...’ 그러자 삼손이 이번에는 이렇게 말을 하죠. 내 머리카락 일곱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서 짜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될 것이다. 들릴라가 그렇게 했는데도 삼손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이 여인이 포기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여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사기 16장 15절 16절을 보시겠습니다. ‘15.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날마다 그말로 그를 재촉하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입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게 거짓말을 한거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나를 이렇게 희롱할수 있는거야? 정말 그런거야?' 날마다 재촉하며 조르니까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한 삼손은 결국 들릴라에게 비밀을 말합니다. 자기의 힘의 원천은 머리에게 있는데 머리카락이 짤리면 힘을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될것이라고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삼손은 딤나여인과 그리고 .들릴라 여인의 집요한 유혹앞에 넘어졌습니다. 왜 넘어졌습니까? 여인의 눈물 때문입니까? 반은 맞지만 온전한 대답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 두 여인의 배후에 블레셋이 있었다는 사실을 삼손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딤나여인과 들릴라 여인의 눈물만 보았습니다. 날마다 자기앞에서 훌쩍거리면서 눈물을 흘리는 연약한 여인의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았지 그여인의 배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것입니다. 삼손은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지고 난 이후에서야 그 여인들의 배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을 유혹하는 여인의 배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배후에 많은 경우에 어둠의 영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경우에 유혹 자체나 눈에 보이는 유혹의 현상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현상만을 바라보지 아니하시고 그 현상의 배후를 보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이 내 뒤로 물러가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이제 곧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을때 베드로가 그길을 가서는 안된다고 말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3절입니다.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주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뒤로 물러가라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말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베드로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그 배후인 사탄의 실체를 보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대개의 경우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상만을 바라볼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외박하고 술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는 거나, 자녀들이 마약을 하거나 가출을 하는 것 그리고 교회 성도들이 교회와 성도를 비판하는 모습들을 볼때에 우리는 그 보이는 현상만을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전쟁을 할 때는 우리 앞에 펼쳐진 현상만을 바라보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현상의 배후 실체를 볼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입니다.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전쟁은 반드시 상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전쟁 상대는 혈과 육이 아닙니다. 다시말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전쟁상대는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입니다. 여러분 왜 이사실이 중요한지 아십니까? 우리가 이사실을 내가 알아야만이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위해 기도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그 사람이 미운 것이 아니라 불쌍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미워도 다시한번 내 남편 내 자녀 내 이웃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할수 있습니다. 내 영적인 전쟁의 상대가 누구인줄 알아야 전쟁에 승리할수 잇습니다. 우리는 이 두여인의 집요한 유혹을 보면서 사탄의 성품이 어떤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사탄은 굉장히 집요한 존재로 나옵니다. 욥기 1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7.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사탄은 게으르지 않고 졸지도 않고 피곤해 하지도 않습니다. 이땅의 교회와 가정과 믿는 성도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사탄은 이땅을 여기저기 두루 돌아 바쁘게 다니고 있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 주인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는데 어떻게 받았나요? 그냥 한두번 집적거린 것입니까? 창세기 39장 10절입니다.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매일 매일 요셉 주인의 아내가 요셉과 동침하자고 유혹을 했던 것입니다. 날마다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삼손과 요셉을 무너뜨리려는 것처럼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세상의 유혹도 끈질긴 것입니다. 그럼으로 내가 한번의 유혹을 이겨내었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한번 영적인 승리에서 내가 승리를 했다고 해서 자만 해서는 안됩니다. 왜요? 마귀가 우리를 포기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를 했을지라도 마귀는 포기한적이 없습니다. 사탄은 열심을 품고 가정과 교회와 성도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집요하게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의 그 열심 때문에 두려워 할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열심은 사탄의 열심을 능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는 사탄보다 더 열심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열심을 내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시면 여호와의 열심이 일을 이루시리라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몇 구절만 찾아보겠습니다. 이사야 37장 32절 하반부입니다. ’32.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는 남 유다가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망하지 않고 보호를 받게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9장 31절 하반부입니다. ’31.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앗수르의 공격에서부터 구원을 받게 된 것은 여호와의 열심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9장 7절 하반부입니다. ’7.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 바로 앞절을 보게 되면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실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구원자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는 것은 바로 여호와의 열심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민족의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는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열심히 인해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살았던 아브라함이었지만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잔꾀를 부리고 간사하던 야곱이 이스라엘 열두지파 의 조상이 된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열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여 내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와 환경은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우리를 포기 하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이 믿게 된줄 믿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1-32절입니다.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탄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밀까부르듯 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스크린에서 보시는 것처럼 저렇게 껍질이 섞여있는 밀에서 순수한 밀을 분리하는 일이 바로 밀까부르듯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저렇게 껍질과 알맹이를 골라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과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탄이 이렇게 고도의 집중력과 정성을 가지고 우리를 넘어뜨리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부수기 위해서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왜 유혹과 고난이 없겠습니까? 유혹과 고난이 있는 것을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사탄의 열심보다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더 크시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포기 해버리셨다면 우리는 이미 믿음이 없는 자녀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를 포기 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열심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를 하십니다. 그럼으로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상황과 현상에 너무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이 견디어낼수 있게 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마침내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포기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은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입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로마서 8장 38절이니다. ’38. 그러나 이 모든 일에(여기서 이모든일은 가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위험과 칼을 의미합니다. 이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래요 이 고백은 아무나 드릴수 있는 고백이 아닙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을 아는 자만이 드릴수 있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를 넘어뜨릴려는 사탄의 유혹과 공격은 집요합니다. 대단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지키시고 붙드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사탄의 열심보다는 훨씬 더 크시고 강하시기에 우리가 이렇게 넉넉하게 이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사탄의 유혹과 공격이 심하다 할지라도 나를 포기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붙잡으시고 오늘도 내일도 믿음의 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