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4. 그일을 선택하신 이유

Author
kgmcc
Date
2021-07-07 10:49
Views
287
본문 : 마가복음 1장 16-28절

날짜 : 2021년 7월 7일

 

<마가복음  1장 16-28절>

16.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21.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인생은 선택입니다. 선택을 잘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선택을 잘못해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선택을 해야 하는 종류도 참 많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실 것인가 아니면 차를 마실 것인가 라고 하는 가벼운 선택으로부터 시작해서, 이 사람과 결혼할 것인가 아니면 저 사람과 결혼을 할것인가, 이사업을 할까 아니면 저 사업을 할까, 라고 하는 무거운 선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되면 늘 긴장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선택한 결과를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으로 아마존에서 어떤 물건을 구입할려고 하면, 내가 살려고 하는 품목 가운데서 너무 많은 제품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품을 사야 내게 적합한 것인지 알기가 힘들어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제품들은 구입해서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송하면 되지만 결혼을 할 배우자 선택의 문제나 직장과 사업의 문제는 되돌리기가 힘든 일이기 때문에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더 오래 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고 그리고 선택을 한 그 결과에 내가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으로 선택을 해야 한다면 가장 복된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선택하시고 행하신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선택하시고 행하셨다면 그일이 가장 가치가 있고 가장 복된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이 선택하시고 행하신 일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예수님이 선택하시고 행하신 일을 저와 여러분도 선택하며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일,

첫째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14절입니다.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언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십니까? ‘요한이 잡힌후’ 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한 사람입니다. 요한의 사역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저분은 우리 인간이 진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신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저분은 우리의 구원자요 우리의 메시야가 되신다. 저분이 우리의 복음이 되신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았던 요한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요한이 잡혔다는 말은 요한의 사역이 다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무대에서 퇴장을 하고 예수님이 등장하게 되었음을 본문 14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요한의 뒤를 이어서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풀면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요단강을 떠나 갈릴리로 오십니다. 그것은 바로 더 가치가 있고 더 중요한 일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침례 요한이 했던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의 사람은 보다 가치가 있고 중요한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생 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5절입니다.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더 좋아했습니다. 고난을 받는길이 더 좋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일을 선택 하다보니 부득불 고난을 받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계속해서 히브리서 11장 26절입니다.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고난 받기로 선택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함이었다고 성경은 말씀 합니다. 왕궁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는 힘들고 고생이 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모세는 믿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갈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보시는 것입니다. “얘야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고 있구나” 그래요. 우리는 교회와 성도를 위해서 내가 봉사를 하고 희생 하는 길을 선택하였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예수님을 위한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한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은 보다 더 나은 선택입니다. 지혜롭고 성숙한 신앙인이 가져야 할 선택 입니다. 바라옵기는 남은 평생 예수님을 위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하시며 사셨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중에 가장 좋은 선택은 바로 복음에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한자어 대로 풀이하면 복 복자 소리음자입니다. 복된 소리가 바로 복음입니다. 헬라어로는 ‘유앙겔리온’ 이라 하는데,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란 뜻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좋은 소식은 한마디로 예수님에 대한 소식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의 소식보다 더 아름답고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렇게 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하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른 복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다른 복음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1장 6절입니다. 6.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여기서 다른 복음은 무엇입니까? 앞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신 이(예수님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그 무엇이’ 다른 복음 인 것입니다. 그당시 갈라디아 교회안에서는 예수님도 필요하지만 율법도 같이 행하여야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하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책망합니다. 갈 3장 2절입니다. 2.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 입니다. 선한 행위를 해서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성령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보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나와 동행하신 성령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보증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바로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함으로서 구원을 얻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하는 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죄성을 가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선은 하나님 보시기에 다 악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화장실을 청소하고 난후 그 걸레를 가지고 음식을 담는 접시를 닦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화장실 걸레로 닦은 접시에 밥이나 반찬을 담으면 그 밥이나 반찬을 기분 좋게 먹을수 있겠습니까? 기분좋게 먹을수 없습니다. 접시 청소를 했는데 왜 더러워서 못먹겠다고 합니까? 화장실 걸레로 접시를 닦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행하는 선은 하나님보시기에 더러운 걸레로 열심히 닦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위해 바울은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로마서 1장 1절입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이 평생 가졌던 마음은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 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집사로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권사로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목사로 부르시고 나를 성도로 부르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이다. 이런 사명의식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가장 가치있는 선택을 한 행동입니다, 그러믕로 바라옵기는 복음을 위한 선택의 길을 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선택하신 일은 일꾼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16.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안드레 형제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계속해서 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9.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그리고 그물을 깁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다음 단계로 같이 복음 사역을 할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몇가지 부르심의 원리를 볼수 있습니다.

 

예수닝믜 부르심의 원리

첫번째는 영혼 구원을 위하여 제자들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17.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몬과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어부이었습니다. 어부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고기를 낚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부의 직업은 변하지 않게 하시고 대신 그 내용물만 바뀌게 하셨습니다. 그 바뀐 내용물이 무엇입니까? 고기에서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고기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고기를 낚거나 사람의 영혼을 낚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부의 출신이었던 그들은 무엇보다도 인내하는 일에는 오랫동안 훈련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경우는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지만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지 않았습니까? 어부 출신인 그들은 끈기와 인내에 대한 훈련은 잘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필요한 성품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심에는 언제나 영혼 구원하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함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의 원리

두번째는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그당시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었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꿰매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놀고 잠자고 있을 때 예수님이 그사람을 제자로 부르신 적은 없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호렙산에서 양떼를 먹이고 있을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소를 몰고 밭을 갈고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마태를 보십시오. 세관에 앉아서 일하고 있을때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이전의 사울도 예수를 믿는 자를 잡아 가두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을 때 다메섹 도상에서 부르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다 자기에게 주어진 생활영역에서 열심히 살아가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복음 사역을 할수 있는 자는 무엇보다도 우선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의 원리

세 번째는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즉시 반응 한 사람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18절입니다. 18.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곧 그물을 버려두고 그리고 계속해서 20절을 보시겠습니다. 20.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곧 부르시니’ ‘곧‘ 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실 때 제자들은 곧 반응을 했습니다. “예수님 하루나 이틀, 시간을 주십시오. 한번 생각해보고 대답 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시간을 두고 생각을 했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 분이라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겠다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마음은 굳건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산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제자로 부르지도 않으십니다. 계산적인 사람들은 순종하고 헌신해야 할 순간에 자신의 유익을 따지느라 결정 내리기를 주저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손익 계산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물을 버리고 배를 포기했습니다.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마태와 같은 제자는 직장을 버리고 따라나섰습니다. 왜요?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는 일입니다.

영혼구원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그 영혼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이 복음입니다. 이일을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저와 여러분이 남은 평생 선택하며 살아가야 할 일은 바로 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래서 나와 당신의 죄를 다 갚으셨습니다. 믿으시면 당신의 영혼은 구원을 받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기위해서 우리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라옵기는 복음이 되시는 예수님만을 전하며 그리고 예수님만을 따르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이 선택하신일은 귀신을 쫓아내시는 일입니다.

안식일 날 예수님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귀신들린 자가 소동을 피우는 일이 생기자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본문 23절에서 26절입니다.

23.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여기 이사건에서 우리는 귀신에 대한 몇가지 내용을 알수 있는데 첫째, 귀신이 회당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당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 해당됩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교회 안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냉장고 안에서도 음식이 부패하듯이 교회에 다니고, 심지어 거룩한 직분을 가진 성도들에게도 내면에는 심각한 영적인 문제 안고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거나 교회에 다니면 저절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의롭게 된 것처럼 착각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완전한 의인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건강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치유를 받아야 할 사람들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교회안에서 직분을 가진 성도들 중에서도 명예욕과 권력욕, 탐심과 음욕 같은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기독교 심리학자가 주장하였는데 성경에서 보여주는 귀신 들린 사람은 좁은 의미에서는 악령의 지배나 정신 분열을 겪는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는 건강하지 못한 마음 곧 정신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을 의미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탐심과 명예욕과 음욕을 극복하는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이 사건에서 알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귀신은 밀접한 상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귀신이 예수님께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기 위해서 왔나이까” 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2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멸망시키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귀신은 동화책 이나 신화에 나오는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실제로 역사하는 영적인 존재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 24절 후반부입니다. 24.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그리고 이날 이후에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 내실때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4장 41절입니다. 41.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눅 4:41).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귀신이 귀신같이 알고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을 알아야 할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저 놀라기만 하였습니다. 본문 마지막 27절과 28절입니다.

27.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있는 새 교훈이로다‘

그당시 회당에 출석했던 유대 사람들은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을 보고 놀라기는 했지만 그것이 다 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소문을 내는 일에서 그쳤습니다.

다음주에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예수님은 이날 회당예배를 마치고 시몬 베드로의 집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베드로 장모의 질병을 고치십니다.

우리는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온전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과는 달리 시몬 베드로의 장모와 같은 육신적인 질병이나 귀신들린 사람과 같은 심각한 마음의 병을 지니고 살아갈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질병과 귀신들림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고침을 받게 된 그들은 그이후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럼으로 ‘귀신들린 것‘ 이나 ’육체적인 질병으로 고통 받는 것‘ 은 비극이고 불행한 일이지만 예수님은 그일을 통해 오히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이요 축복이라 할수 있습니다.

교회는 온전하고 완전한 의인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건강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치유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런 저런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는 일이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 바라옵기는 내가 육신의 질병이 있던 없던, 내가 마음의 병이 있던 없던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평강의 축복을 누리며 신앙생활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