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5. 능력의 비결

Author
kgmcc
Date
2021-07-14 11:00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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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가복음 1장 29-3절

날짜 : 2021년 7월 14일

 

<마가복음 1장 29-39절>

29.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31.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32.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35.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오늘 본문은 29절에서 이렇게 시작 합니다. 29.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회당에서 나와’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예배를 마치시고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 베드로의 집에 가신 것입니다. 여기서 시몬과 안드레가 형제인 것처럼 야고보와 요한도 형제간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 사이 이었고, 그리고 같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본문에 나오는 시기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을 하시는 초창기 시절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성지 순례를 가시게 되면 가버나움 회당과 베드로의 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회당과 베드로의 집은 약 20-30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2-3분이면 도착할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공생애 초창기에는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배를 마치고 종종 베드로의 집에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이날 회당에서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니까 베드로 장모가 열병으로 아파 누워계시는 것입니다. 본문 30절입니다. 30.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여기서 우리는 종종 불필요한 논쟁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두가지 논쟁인데 그 한가지는 ‘베드로는 자기 장모님이 아프신 것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베드로가 알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 반대로 베드로가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목사님도 계십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모두가 다 합리적으로 설명을 하시고 그래서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장모님이 아프신 것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이슈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일어난 현장에 예수님이 오셨다라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예수님에게 요청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불필요한 논쟁꺼리는 베드로 장모의 병이 어떤 병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홧병이었을 것이다 말씀하시는 분이 계심니다. 베드로가 집안 장남으로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데 어부라는 직업을 내던져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베드로 장모가 홧병이 나서 드러 누웠을 것이다 라고 설명하십니다.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너무 비약된 상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아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라는 것에 있습니다. 자, 예수님께서는 이 베드로의 집에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십니다. 본문 31절입니다. “31.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열병이 떠나고” 이렇게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귀신이 쫓겨나고 문제 해결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삶의 터전에서 언제나 예수님과 더불어 신앙생활을 해나가실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받은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치유함을 받은 베드로 장모를 보면서 배울수 있습니다. 31절후반부입니다. “31.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8장 15절을 보시겠습니다. “15.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을 종합해보면 베드로의 장모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병이 나은 베드로 장모는 일어나 예수님을 위하여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여기서 ‘수종들더라’ 라는 단어를 원어로 보게 되면 미완료 과거형으로 사용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이날로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섬겨왔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은혜를 받고 있다라고 하는 증거는 이렇게 섬김과 헌신으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이후에 베드로의 장모는 한평생 주님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누가복음 23장을 보시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등에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실때 예수님의 뒤를 따르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실때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뿐아니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무덤속에 들어가실때도 그 여인들은 그뒤를 따라갔습니다. 누가복음 23장 55절입니다.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이 여인들은 평상시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다가 마지막 그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부터 무덤에 들어갈때까지 하루종일 따라간 것입니다. 이 여인들이 누구입니까? 갈릴리에서 온 여자들입니다. 시몬 베드로 장모도 갈릴리 지역에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갈릴리 여인들중에 시몬 베드로의 장모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요. 주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경험한 사람은 한 평생 주님을 섬기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군인들이 막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십자가가 서있는 갈보리 산에 올라갔습니다. 무덤문이 막고 있어도 그들은 무덤까지 따라갔습니다. 왜요? 이 여인들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섬기고 봉사하는 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비록 저와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현장이 미약하고 열악하다 할지라도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크고 놀라우신 사랑을 기억하면서 묵묵히 섬기는 일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복된 사람은 바로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문제속에 있어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바라옵기는 한평생 주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날 예수님의 하루는 정말 바쁜 일정속에서 지내온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날은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서 예배를 인도하십니다. 본문 앞에 나오는 1장 21절 입니다. “21.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예수님이 회당에서 설교를 하십니다. 그런데 설교하시는 도중에 귀신들린 사람이 큰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그사람에게서 나오게 하십니다. 25절과 26절입니다. “25.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시고 다시 설교를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회당예배가 끝나자 회당 가까이에 살고있었던 시몬 베드로의 집에 제자들과 같이 가십니다. 29절입니다. “29.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그런데 아시다 시피 시몬 베드로의 집에 또 하나의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건입니까? 시몬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아파 누워있었던 것 입니다. 그래서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도움을 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장모의 병을 낫게 하십니다. 30절과 31절입니다.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이 베드로 장모의 손을 잡고 일으키시니 그 여인의 병이 낫게 됩니다. 그리고 병이 나은 베드로 장모가 차려주는 음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점심 식사를 하셨을 것입니다. 식사후에 예수님께서는 주변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해가 저물었습니다. 자, 그런데 해가 지면서 예수님의 사역이 끝난 것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된것입니다, 32, 33절입니다. “32.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저물어 해질때에’ 저물어 해질때에 모든 병자과 귀신들린 자들을 사람들이 데려왔습니다. 왜 대낮에 오지 않고 저물어 해질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안식일이 이때 끝났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하루 시작은 해뜨는 아침부터가 아니라 해지는 저녁부터입니다. 유대인들은 해가지면 그때부터 하루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이 끝나고 안식후 첫날이 시작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은 안식일날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의사에게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안식일이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병든자와 귀신들린자를 예수님에게 데려왔던 것이죠. 그전날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은 두가지이었습니다. 회당에서 귀신을 내쫓는 일과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낫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행하신 이 사역으로 인해서 가버나움 동네에서는 벌써 소문이 짝 퍼진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끝나자 마자 이 시몬베드로의 집으로 몰려온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34절입니다. “34.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십니다. 이때가 언제입니까? 저물어 해질 때 부터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많은 사람을 고치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으니까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갔을 것입니다. 자연히 깊은 한밤중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침부터 얼마나 바쁜 하루 이었습니까? 얼마나 피곤한 하루이었겠습니까? 그렇게 바빴던 하루가 지나가고 그 다음날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만약에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처럼 이렇게 바쁜 하루를 보냈다고 가정해보십시다. 그리고 그다음날은 특별한 스케쥴도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병고치고 귀신을 쫓아본 경험이 없어서 잘모르겠습니까? 그냥 이렇게 쉽게 생각을 해볼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바쁜 일을 다 마치고 집에 들어가니 밤 열두시가 훨씬 넘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아무 스케쥴이 없는 쉬는 날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침 늦게 까지 누워있다가 일어나야 하겠다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고기낚시나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때보다 더 일찍 일어날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특별한 사람은 말고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잠이나 좀더 자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것 입니다. 그런데 바쁜 하루를 보내신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까? 본문 35절입니다. “35.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그전날 그렇게도 바쁘게 하루를 보내신 예수님께서는 다음날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서너시간 밖에 주무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도가 도대체 무엇 이길래 그 전날 그렇게 바쁜 하루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이른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도는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만 했던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도는 안식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도는 귀찮고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쉬시고, 기도하시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기도하시면서 지나간 하루의 스트레스를 극복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도는 아버지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일에 시달려 육신이 힘들면 힘들수록 아버지와 교제를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육신이 피곤한 것 하고 영혼이 지쳐있는 것하고는 다른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은 새 힘과 새 소망을 얻게 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세상일 때문에 해야 할 일이 잘 안되고 육신이 피곤하고 지칠 때 마다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 하는 이 기도를 우선으로 여기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기도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야 정기적인 기도생활이 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미리 계획하고 정해 놓지 않으면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쉽사리 포기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기도할 시간과 그리고 기도할 장소를 미리 계획해놓으신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다시한번 3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이른 새벽에 예수님이 어디로 가십니까?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떠자마자 ‘아 피곤하다 좀더 누워있어야지’ 라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일어나서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이것은 기도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입니다. 미리 계획을 세워놓지 않았다면 이날 새벽에 일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할려고 계획했던 그시간은 장사꾼들이 일어나기 전의 이른 새벽입니다. 그시간은 밤새도록 술마시고 노래 부르고 놀았던 술꾼들도 이젠 지쳐서 골아 떨어진 새벽입니다. 밤새도록 술마시고 소리지르던 사람도 없고, 반대로 새벽마다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장사꾼들도 아직은 없는 그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한적한 그 장소에서 기도하신 것은 예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평생 동안 새벽기도를 하셨다라고 확장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매일 새벽 기도를 하셨는지는 성경은 확실히 말씀하지 않아서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날 새벽기도를 하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새벽기도는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여기서 우리는 때때로 계획을 세워서 새벽기도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어떻게 기도하느냐 언제 기도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내용이 아닙니다. 새벽에 기도하느냐 대낮에 기도하느냐 밤중에 기도하느냐 합심 기도를 하느냐 묵상 기도하느냐 이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본질이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에게 맞는 기도의 시간, 그리고 나에게 허락된 기도의 장소를 계획하는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물론 계획한다고 해서 실천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계획마저 하지 않으면 내게 적합한 시간과 장소에서 기도할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기도 시간과 기도 할 장소를 계획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능력을 얻기 위해서 기도를 할 시간을 계획 한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기도의 시간을 계획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후에 보여주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배울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를 하게 되면 우선 순위를 정할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36절과 37절 입니다. “36.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해가 뜨고 아침이 되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기도하고 계신 그 장소에 찾아왔습니다. 그 장소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띠지않는 한적한 곳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을 알고 곧바로 찾아왔습니다. 제자들이 잘알고 있었던 장소이었던 것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는 시간이 날때마다 가셔서 기도하셨던 장소라고 하는 사실을 추측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왜 찾고 있는 것입니까? 그 전날 저녁에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물리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 지금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려고 난리가 났습니다. 자, 빨리 가십시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오 그래? 그러면 빨리 가야지 빨리 가자.“ 그랬나요? 38절입니다. ”38.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지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을 허락하신 것입니까? 거절하신 것입니까? 거절하신 것입니다. ”아니야, 오늘은 다른 계획이 있어. 오늘은 다른 마을에 가서 거기서 전도를 해야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지 않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보다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두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고든 맥도날드라고 하는 유명한 목회자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을 보면 두가지 종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알수가 있다. 하나는 충동적이거나 끌려다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소명에 의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래요. 별로 의미도 없는 일에 바쁘게 끌려서 충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보다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는 일을 계획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마음도 덩달아서 바쁘게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바쁘고 급하게 살아가는 것이 나쁜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바쁘고 급한 생활을 하다가 보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병을 고치는 것은 나쁜일이 아닙니다. 필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병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육신의 병을 고치신 것뿐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영혼이 이 육신을 벗어나게 될 때 그 영혼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지낼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육신의 병을 고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이 예수님에게는 더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의 나라에 살아가는 육신의 치유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살아가는 영혼의 구원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구원과 영혼의 구원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제한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일을 다 하고 살아 갈수는 없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내가 중요하다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가를 알수 있게 되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녀가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나면 아버지의 생각을 알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자주 대화를 하는 자녀가 그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이 뭐라고 할지라도 나는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같이 이땅에서도 이루어지리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축복인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난 이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행동을 하십니까? 39절입니다.

“39.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기도를 마치시고 난 이후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다니시면서 전도를 하시고 또 병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내 쫓으시는 사역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교제를 하는 것을 우선 순위를 두며 생활하셨기에 하나님의 뜻을 행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수 있었던 것 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기도한 후에 나타나게 되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를 통해서 힘과 능력을 받고 행동을 하게 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어지는 것 입니다. 그럼으로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전날 그렇게 바쁜 일정을 마치고 그 다음 이른 새벽에 기도로 시작하셨던 예수님이셨다면 저와 여러분도 기도로 하루 일정을 시작할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저런 피곤하고 힘든 생활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기도를 해나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