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7. 만남과 그이후
<마가복음 2장 13-17절>
13.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지난주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시는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시기 전에 그 중풍병자가 지은 죄를 사해주시는 말씀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난후 중풍병자의 육신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눈에 보이는 육신의 병을 낫게 하는 권세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죄사함의 권세도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난후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로 가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뒤따라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13.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여기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이전에 바닷가에 가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6절 이하를 보시면 예수님이 바닷가에서 시몬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 삼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1장 16절 한 구절만 보시겠습니다. 16.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이날 갈릴리 해변에서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다시 갈릴리 바닷가에 가십니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말씀을 전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가버나움 마을로 돌아오십니다. 그런데 가버나움 마을로 돌아오시는 길에 세관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 세리 레위를 보십니다. 그리고는 그 세리 레위에게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4절입니다. 14.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님과 세리 레위의 만남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있을 때 우리가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과정이 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세리 레위가 어떤 과정을 통하여 예수님과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우리도 예수님과 이러한 만남이 있었는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1.예수님은 세리 레위를 보십니다.14절입니다, 14.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지금 예수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지금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 중에서 세리 레위를 보신 것입니다. 여기서 ‘보시고’ 라고 하는 단어는 예수님이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시다가 어쩌다 레위와 한 번 눈이 마주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레위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은 이미 예전부터 아시고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기다리고 계셨다가 마침내 때가되어서 바라보는 시선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본다면 어떤 정치인이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연설을 할때 그냥 아무 생각없이 관중들을 향하여 던지는 시선이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꼭 만나 이야기를 해야 할 어느 한사람을 발견하고는 눈을 마주치는 것과 같은 시선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를 보실 때 나를 미리 아시고 나를 만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 전반부입니다. 29.하나님이 미리 아신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미리 아신자들을 ... 미리 정하시고 우리를 바라 보시는 것 입니다.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주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 같지만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우리를 보시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께서 관심있게 보시는 이 레위는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은 알패오 의 아들 레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마태’ 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9장 9절입니다. 9.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라 하는 사람이’ 그러니까 이 마태의 원래 이름은 ‘레위’ 인데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을 가진 마태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졌습니다. 여기서 레위는 열두지파중 레위 지파 출신임을 이름을 통해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레위는 훗날에 마태복음을 기록하였는데 그 마태복음에서 레위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마태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을 보면 마태라는 이름을 더 좋아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알패오인데, 그 의미는 ‘지도자’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알패오는 많은 학문과 율법을 배운 사람으로서 그당시 지도자들 중의 한사람 이었을 것으로 신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레위 마태가 성령의 감동으로 쓴 마태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도 구약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가장 많이 인용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마태가 그만큼 구약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레위 마태는 신앙심이 깊은 경건한 유대 가정에서 성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경건한 유대 가정에서 태어나고 교육을 받은 레위 마태가 왜 세리가 되었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이렇게 레위 출신인 마태가 세리가 된 것은 오늘날 목회자나 장로의 자녀가 돈벌기 위해 술집이나 도박사업을 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라 할수 있습니다.
그당시에 세리는 두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가바이‘ 라고 해서 세금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모케소‘ 라고 해서 세관에 앉아 관리 하는자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레위는 세관에 앉아서 관리하는 ’모케소‘ 세리 이었던 것입니다. 세관에 앉아있다고 하는 것은 레위가 세리들 중에서도 높은 신분에서 일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세관에 앉아서 일을 할려면 적어도 서너가지 언어는 구사할줄 알아야 했습니다. 그당시 사람들이 일상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아람어와 히브리어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고 그리고 헬라어와 로마사람들이 사용하던 라틴어까지 구사할줄 알아야 세관에 앉아서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당시 세리는 로마 정부로부터 고용된 관리 이였기 때문에 유대인의 눈에는 로마 제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매국노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세리들은 로마정부가 요구한 세금 할당량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해서 자신의 주머니를 채웠습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은 자신에게 침례를 받으러 나온 세리들에게 회개하고 앞으로는 정한 세 외에는 더 거두지 말라고 다짐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누가복음 3장 12절 13절입니다. 12.세리들도 침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부과 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침례 요한이 세리들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은 로마 정부로부터 할당받은 양보다 더많은 세금을 거두는 일이 많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죠. 그래서 그당시 세리들은 유대 사회에서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당시 유대 사회로부터 세리들이 받았던 대우를 몇가지 살펴본다면 1. 세리들은 법정에 증인으로 설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세리가 하는 말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2. 회당 출입이 금지 당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3. 사람을 속이면 죄가 되지만 세리를 속이는 것은 죄가 안되었습니다. 4. 세리와 함께 식사하는 것도 죄악으로 간주했습니다. 5. 그당시 세리에게는 자신의 딸을 주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그당시 유대 사람들이 세리를 얼마나 멸시하고 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 무엇합니까? 이렇게 사람취급받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경건하고 신앙심이 깊은 유대 지도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레위가 어떤 이유로 해서 세리가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수 있는 사실은 본문에 나오는 레위가 지금 자신의 직업에 대해 갈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네 명의 사람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와 중풍병자가 병고침을 받게 되는 사건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병을 고치기 전에 이 중풍병자에게 가장 먼저 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2장 5절입니다. 5. ...작은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이 중풍병자의 병을 예수님이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이 이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시고 그외 수많은 병자들을 고쳤다고 하는 소식이 같은 가버나움에 살고 있던 레위 마태의 귀에 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레위가 관심을 가지게 된 내용은 예수님이 수많은 병자들의 병을 고쳤다는 것 보다는 바로 죄사함의 권세가 예수님에게 있다고 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주신 그 예수님께서는 내가 지은 죄도 용서해주실수 있으실까? 라고 하는 것이 바로 레위가 가진 관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지금 이 내 죄를 용서함 받을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레위이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뿐이었습니다. 세리 레위는 이러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냥 세관에 앉아서 계속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레위가 가진 이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아시고 바라보신것입니다. 세관에 앉아서 먹고 살 걱정은 없는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죄 사함을 받고 살아가고자 하는 레위의 마음을 아시고 바라보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세관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이런 저런 죄로 인해 근심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내가 너를 잘알고 있다‘ 라고 하는 예수님의 눈과 마주친 레위는 자신의 마음이 완전히 열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눈과 마주치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열려지게 됩니다. 중풍병자를 보십시오. 지붕위에서 침상의 네 모퉁이의 줄에 매달려 내려오던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단번에 마음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생기를 얻고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세리장 삭개오를 보십시오. 돌 무화과 나무 위에 앉은 자신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삭개오의 마음은 한순간에 열렸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눈과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마음이 열리고 그분의 뒤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성경을 읽으실때나 기도와 찬양을 하실 때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을 만날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께서는 레위를 부르십니다
14.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이 세리 레위는 지금까지 돈을 따라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공한 인생을 살았느냐 실패한 인생을 살았느냐 하는 기준은 가진 돈이 말해준다고 레위는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돈을 따라갔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일단 돈만 있으면 나머지 문제는 돈으로 다 해결될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돈은 제법 많이 벌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잘못 살아왔던 자신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신을 부르십니다. 왜 부르십니까? ‘나를 따르라’ 예수님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돈을 따라 가는 삶에서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 라고 하시는 분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면 따라가봐야 별 볼일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따르라 라고 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육신을 입고 오신 구원자가 되신다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따라가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천국에서 보상을 받고 영원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시니까 죄인을 부르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 라고 하면서 너무 쉽게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그냥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닌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세리를 제자 삼으시는 것은 그당시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레위의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었던 것입니다. 16절입니다. 16.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가진 이 마음이 사실 오늘날 평상시 우리가 가진 마음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만일 어느 목사님이 조직 폭력범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룸 싸롱에 가서 술자리에 앉아있게 되었다고 하십시다. 그러면 그 목사님을 비판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왜 하필 조직 폭력범이냐? 그리고 교회나 학교 같은데서 모임을 가져야지 ‘왜 룸 싸롱 술자리에 가느냐? 목사가 되어가지고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 전도 대상이 그렇게 조폭 밖에 없냐?’ 이렇게 우리들은 비판 할 것입니다. 그 목사님이 정말 순수하게 복음을 전할려는 마음이 있었다 할지라도 수많은 비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예를 드는 것은 전도를 위해서 룸 싸롱 술집에 가서 조폭을 만나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런일이 생기면 저를 비롯해서 모든 믿는 성도들이 비난 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난을 받으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절입니다. 17.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우리가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중요한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시 세리들은 자신들이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임을 알고 있는 죄인들 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임을 아는 죄인을 보시고 부르십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모르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 41절입니다.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모두가 다 우리의 죄를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언제 우리의 죄를 볼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우리가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임을 볼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예수님만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가장 큰 기쁨은 바로 죄인이 회개할 때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입니다. 7.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장 10절입니다. 1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지은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그어떠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보다 좀 더 깨끗한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는 모두가 다 더럽고 추악한 죄인들 입니다. 그럼으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깨끗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미련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간다면 내가 비록 죄 중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또 죄를 짓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로 인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죄중에서라도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축복을 누릴수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를 보시고 부르시는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세리 레위를 사용하십니다.14절 후반부입니다. 14.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나를 따르라’ 라고 하는 그 말씀 한 마디에 마태는 모든 것들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것은 어부 출신인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안드레와 요한이 그물과 배를 버린 것보다 더 힘든 결정 이었을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두고 간 그물과 배는 그들의 부모나 가족들이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이게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면 그들은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서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위는 그 직장을 한번 그만두게 되면 다시 복직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럼으로 그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더 힘든 결정이었다 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그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많은 친구들을 초청해서 자기집에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15절입니다. 15.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이 자리는 레위가 그동안 가졌던 자신의 직업을 청산하고 이제 예수님 제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것을 선포하는 자리이었습니다. 이날 세리 레위가 초정한 사람들은 대부분 세리들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그사람들도 자신들이 지내온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안 것입니다. 이 세리 레위는 예수님앞에 그들을 인도한 것입니다. 이날 그들중에는 예수님이 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앞으로 새롭게 살아가고자 결단을 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세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더이상 남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일을 하며 살아갈려고 결단을 한 세리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자 마자 그분의 삶을 따라가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좀전에 살펴보았지만 이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절입니다, 17.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그러니까 예수님은 영육간의 병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바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누가 사명자의 삶을 살아갈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같은 죄인의 손을 통하여 마태 복음서를 기록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살인자와 죄인의 괴수이었던 바울 이전의 사울의 손을 통하여 신약서신서의 절반이나 되는13권의 신약 서신서를 기록하게 하십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죄인임을 알고 있는 죄인들을 찾으시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마태와 사도 바울처럼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태나 사도 바울처럼 그분의 뒤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주변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리 레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후에 세리장 이었던 삭개오는 길가로 지나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 돌무화과 나무위로 올라갑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자기와 같은 세리 출신 이었던 레위 마태가 그 직업을 그만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이후 부터가 아니겠습니까? 이 세리장 삭개오는 오래전에 레위가 직장동료인 세리들을 자기집으로 초대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제 더 이상 돈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선포를 했다는 얘기도 자기 부하 직원들로부터 전해 듣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생활을 하기만 하면 예수님은 이런 저런 모양으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마태처럼 때로는 사도 바울처럼 사명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언제나 어디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주님의 뒤를 따라가심으로 말미암아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