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9.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Author
kgmcc
Date
2021-08-11 02:07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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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가복음 3장 13-19절

날짜 : 2021년 8월11일

 

 

<마가복음 3장 13-19절>

13.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복음서를 보게 되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중에 두가지 부류로 나뉘어지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군중들입니다. 이 군중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기도 하고 예수님이 행하신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그리고 놀라기도 하고 감동도 받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이 해결되었다든지, 아니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판단이 서게 되면 언제든지 떠나갔습니다. 그들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군중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부류는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에게 어떠한 손해와 어려움이 온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에게 이해할수 없는 일이 생겨도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자들입니다. 오늘날에는 제자라는 단어 대신에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똑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군중들보다는 열두제자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사는 모든 인류의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열두명의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는 것보다는 수많은 무리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고 현명한 행동일수가 있는 것이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군중들보다는 제자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신 것입니다. 군중들보다는 제자들에게 더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우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우시기 전에 산에 올라가시는 장면으로 시작 하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13.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산에 오르사 마가복음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같은 사건이 기록된 누가복음 6장 12, 13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셔서 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그러니까 오늘 본문과 누가복음을 종합해서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고 난 이후에 제자들을 택하신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일을 앞두시고 늘 집중적으로 기도하시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유대 광야에서 40일 금식하면서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두시고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산에서 밤새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 선택하고 세우는 일이 그만큼 중요한 사역인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시는 제자들을 세우신 이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세우신 이유는

첫째로 예수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13.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그당시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자기가 원해서 제자가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셔서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입니다. 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그 선택의 기준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될수 있는 자격이 어떤지를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수 있는 사실은 예수님이 원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인해서 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 우리가 알수 있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제자를 선택하시는 기준은 세상적인 기준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세상의 기준은 많이 배우거나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선택해서 뽑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제자들을 보면 세상적으로 별 볼일없는 사람들 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선택하시는 기준은 세상적인 기준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적용시켜본다면 우리가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된 것은 주님이 원하셨기 때문인 것이고 또한 우리가 별 볼일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부족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일 주님이 특별하거나 비범한 사람들을 선택해서 비범한 일을 이루게 하시면 주변 사람들은 ‘그사람은 원래 재능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일을 해낼수가 있었던 거야‘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지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평범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위대한 일을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도 확인할수 있습니다.

16절 입니다. 16.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그러니까 베드로의 본명은 무엇입니까? 시몬입니다. 베드로는 본명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새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새로 지어주신 베드로의 뜻이 무엇입니까? 반석이죠. 그런데 이 반석은 시몬 에게는 전혀 어울리지않는 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몬은 원래 다혈질의 사람입니다. 감정적인 사람이라서 성격이 급하고 아침 저녁으로 잘 변합니다. 좀더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라서 늘 불안정한 느낌이 드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시몬에게 무게감이 있고 안정감이 있는 반석이라는 의미를 가진 베드로라는 이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변덕스러운 시몬을 베드로처럼 변화시켜서 사용하시겠다고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다혈질적 이고 아침저녁 감정에 따라 행동이 변하는 이 사람을 입이 아주 무겁고 행동이 묵직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누구가 보아도 주님이 하신일이다 라고 주변사람들이 인정할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다음 본문 17절에 나오는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17절입니다. 17.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야고보와 요한에게 주신 별명은 무엇입니까? ‘보아너게’ 입니다. ‘보아너게’ 의 뜻은 우레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레의 아들, 천둥의 아들이라는 의미이죠. 우레의 아들, 천둥의 아들 이 단어는 긍적으로 생각할수 있고 또 부정적으로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강력한 힘이라는 의미에서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천둥, 벼락은 아주 급하고 파괴적인 이미지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아주 급한 성격을 가진 제자인 것을 알수 있는 사건이 누가복음에 나옵니다. 누가 복음 9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라는 마을에 들어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때 사마리아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자기 마을에 머물지 말고 나가달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 중에 야고보와 요한이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을 하죠. 누가복음 9장 54절입니다. 54.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무슨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 하늘에서 벼락 불을 내려서 이 마을 사람들은 없애버리십시다.’ 이런식으로 말한 것이죠. 우리나라 말 중에서도 이와 비슷한 욕이 있죠. “이 벼락 맞아 죽을 놈아!” 이렇게 야고보와 요한은 아주 성질이 급한 제자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을 원하시고 제자를 삼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랬던 제자들이 더 이상 급하게 성질 부리지 않고 인내를 하고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은 제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게 하셔서 제자들이 행한 모든 일을 사랑으로서 마무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물을 깁고 수선할 때 부르셨던 요한을 사랑의 바늘과 실로 상처와 아픔을 수선하고 깁는 사랑의 사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원하시고 세우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은 주님이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모습 내 형편이 보잘 것 없고 초라하다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나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약점이 많지만 주님이 원하시고 주님이 사용하심으로 주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게 될줄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가롯 유다처럼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19절입니다. 19.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가롯유다도 다른 제자들처럼 역시 약점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에 비해서는 똑똑하였고 손익 계산이 빨랐지만 비판적이었고 욕심이 많은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제자들은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게 될 때 회개하며 돌아섰지만 이 가롯유다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감추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가룟유다의 실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 복음 13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가룟유다에게 ‘네가 할려고 하는 일을 속히 행하라’ 라고 말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가룟 유다 네가 나를 팔려고 하는 계획을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행하라’ 는 의미 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려고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8, 29절입니다. 28.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그 앉은자 중에 아는자가 없고’ 이렇게 가룟 유다는 물질에 욕심 많은 자신의 약점을 완벽하게 숨기면서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속이는것에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 것입니다. 결국 가룟유다는 자살함으로서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베드로나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의 약점을 그대로 인정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또 숨기면서 살았습니다. 사실 약점과 문제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가 다 약점과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약점과 부족함이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났을 때 회개하면서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신앙에 성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약점이나 부족함이 드러났을때 주님앞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회개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점과 우리의 부족함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두 번째로 예수님이 제자를 세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그들과 함께 있기 위해서 입니다.

14절입니다. 14.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여기서 함께 있게 하신다는 의미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훈련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적인 차원에서의 제자 훈련은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관계를 통해서 주님을 알게 되고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 그당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을수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당시 제자들처럼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주님과 함께 할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기 원한다면 기도와 말씀을 통해 정기적으로 주님안에 거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기도와 말씀이 없이 주님과 함께 있을수는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는 ‘참포도나무 비유’처럼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듣고 볼 때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기도함으로 우리는 주님앞에 나아갑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과 기도에는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들을 보면 말씀은 읽는 것 같은데 기도는 전혀 하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또 어떤 성도들은 기도는 열심히 하시는데 성경은 잘 보지 않으신 분도 계십니다. 군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할때는 상대방의 얘길 들어야 되고 또 내 얘기도 할수 있어야 서로 오랫동안 함께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내 말만 하거나 상대방만 일방적으로 말을 하게 하면 더 이상 서로 같이 있기가 힘들어 지게 됩니다.

주님과 나 사이의 교제도 마찬 가지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내 말을 할수 있고 말씀을 통해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들을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말씀 없이 기도만 할려고 하면 그 기도는 주님과 관계없는 단지 내가 원하는 이기적인 기도가 되기 쉽습니다. 성경책을 덮어놓고 무조건 믿고 무조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책을 열어놓고 기도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과 함께 하는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예수님이 왜 제자를 세우십니까?

3.우리를 보내사 전도하고자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14절입니다. 14.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고 훈련을 하게 되면 자연히 주님에 대한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치신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 인간의 영혼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사랑하시고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을 십자가위에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라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이러한 일을 이야기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진 죄값은 사망인데 예수님께서 대신 죄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이야기 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왜 그리스도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지 시간이 날때마다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전도입니다. 이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주신 것입니다. 15절입니다. 15.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것은 곧 전도할수 있는 능력, 전도할수 있는 환경을 주시기 위함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담대하게 살아갈수 없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주어질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 전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남은 생애 성령님의 권능을 힘입어서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 템스 강변에서 한 거지노인이 낡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때 어느 한 사람이 이 거지 노인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지금 제게 돈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이올린을 좀 다룰줄 아는데 대신에 몇곡 연주해 드리면 안되겠습니까?’ 그래서 이 거지 노인이 낡은 바이올린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연주를 하자 놀랍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거지 노인의 모자에는 순식간에 적지 않은 돈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사람은 몇곡의 연주를 마치고 사람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사람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인 니콜로 파가니니 이었습니다. 연주회 때문에 영국 런던에 왔다가 잠시 산책하는 길에 예정에도 없었던 길거리 연주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낡은 바이올린 이지만 누구의 손에 연주되느냐에 따라서 그 소리를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낡은 악기와도 같습니다. 인생의 풍란으로 인해 저마다 상처가 있고 연약하고 부족함의 투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의 삶이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맡겨지게 될 때 우리 인생의 멜로디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될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야고보 와 요한이 그랬습니다. 부족하고 약점이 많은 제자들이었지만 주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인 에밀 리노프가 그린 그림중에 ‘돕는 손’ 이르는 작품이 있습니다.

넓은 바다에 조그마한 배한척이 있습니다. 두사람 밖에 탈수 없을 정도의 작은배 안에 늙은 어부가 앉아서 노를 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곁에 손녀처럼 보이는 어린 소녀가 같이 자기 손으로 노를 젓고 있습니다. 이 어린 소녀는 아주 진지하고 신중하게 노를 잡고 노를 젓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곁에서 그 어린 손녀를 흐뭇하게 보면서 노를 젓고 있는 그림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열심을 다해야만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어 나갈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돕는 손‘ 이 함께하는 어린 소녀와 같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린 소녀에게 할아버지의 ’돕는 손‘이 없다면 아무리 진지하고 열심히 노를 젓는다고 할지라도 작은 배는 방향을 잃어버리고 위험한 항해를 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제자 삼으신 것은 바로 우리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고 올바로 항해할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는 천국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 ’돕는 손’이 되시는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돕는 손이 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또한 주님을 알지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알게 하는 돕는 손이 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천국이라는 올바른 목적지로 항해할수 있도록 돕는 손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렁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원하시고 제자로 삼으신 것은 우리를 통하여서 일하고자 하시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의 손을 통해서 고통 받고 힘들게 살아가는 영혼들을 격려하고 위로하여 주시고자 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손이 주님의 손이 되게 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우리의 발이 주님의 발이 되게 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우리의 손이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되고 우리의 발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이 될때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 되어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열두제자를 부르셨습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주님은 우리를 제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군중들이 아니라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셔서 세우신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원하시는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제자들입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의 손과 발이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