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1. 좋은 땅은
<마가복음 4장 1-9절>
1.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2.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3.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비유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 라고 말하기도 하고 ‘네 가지 종류 밭의 비유’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비유의 말씀을 하시고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본문 마지막 9절입니다. “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 표현은 듣는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가 주는 교훈은 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의 말씀인 이 씨 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내용을 보시면 핵심이 되는 세 가지 단어가 나옵니다. 그 첫째는 씨 이고 둘째는 밭이며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결실, 열매입니다. 씨와 밭과 열매 이 세가지 단어가 이 비유에서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먼저 씨에 대해 생각 해보겠습니다. 자, 이 씨는 똑같은 씨입니다. 여러 가지 종류의 밭에 떨어진 씨는 다 똑같은 종류의 씨입니다. 물론 좋은 씨 일것입니다. 농부가 나쁜 씨를 뿌리겠습니까? 똑 같은 종류의 좋은 씨가 여러 가지 종류의 밭에 떨어졌습니다. 어떤 밭에서는 30배 60배 100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좋은 씨가 떨어졌는데 어떤 밭에서는 전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그것은 밭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서로 다른 네 가지 종류의 밭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첫째는 무엇입니까? 길 가와 같은 밭 그리고 둘째는 돌 밭, 세 번째는 가시 떨기밭, 네 번 째는 좋은 밭입니다. 길가, 돌밭, 가시 떨기밭, 그리고 좋은 밭 이렇게 네가지 종류의 밭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이 네가지 종류의 밭은 우리 인간의 마음 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이 네가지 종류의 마음 밭 중에 하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씨는 말씀을 상징하고 있다고 예수님이 설명하십니다. 14절입니다. 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그러니까 말씀이 이 네가지 종류의 마음 밭에 뿌려지는 것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임을 알수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나는 과연 어떤 마음 밭에 해당하는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 길가와 같은 밭
4절입니다. 4.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길 가에 떨어지매’ 길가와 같은 마음 밭, 이런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명목상 이름만 기독교인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도 교회에는 다니고 있거나, 예전에 다녔던 적은 있습니다.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말씀을 상징하는 씨가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출석하기 때문에 말씀을 들을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일단 교회에 다니고 말씀을 들을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형제, 자매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성도라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이름만 교인 입니다. 실제로 말씀을 들을려고 하는 열정이 없고, 말씀에 대한 사모함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길가라는 것은 밭과 밭 사이에 난 길을 의미 하고 있습니다. 그 길에는 농부들이 다니고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다니고 그리고 지나가는 여행객들도 다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기 때문에 그 길은 아주 반질 반질 해졌고 아주 굳은 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땅에 씨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씨가 떨어지자 마자 어떤 사건이 일어납니까? 새가 그 씨를 쪼아 먹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 현상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해석하십니다. 15절입니다. '15.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예수님이 하신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는 순간 즉시로 뭐가 찾아왔습니까? 사탄 마귀가 와서 그 말씀을 빼앗아 간 것입니다. 새가 무엇으로 해석 되었습니까? 사탄입니다. 새가 그 씨를 쪼아 먹듯이 내 마음에 말씀이 떨어지고 말씀이 내 마음속에 들어가기 전에 사탄 마귀가 그 말씀을 낚아 채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에 의해서 말씀을 빼앗기고 있는 사람, 그래서 말씀을 정말 자기의 것으로 삼지 못하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4장 4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4.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성경은 바로 이 세상 신인 사탄 마귀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파고 들어오지 못하고, 그래서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곧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말씀을 듣고 있지만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전혀 들어오지 못하고 그래서 여전히 내가 이기적이고 딱딱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곧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이라 할수 있습니다.
2. 돌밭
본문 5절 6절입니다.
5.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길가와 같은 밭은 명목상의 기독교인, 이름뿐인 기독교인 이라고 한다면 이 돌 밭은 피상적인 기독교인 즉 깊이가 없는 기독교인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 돌밭 같은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해석하십니다. 16절 17절입니다.
“16.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이 돌 밭은 흙이 돌 위에 있지만 깊이가 아주 얇습니다. 깊이가 없으니까 돌밭에는 뿌리가 내리지 못하고 그래서 햇빛이 나면 곧 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돌밭과 같은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다가 힘들고 어려우면 쉽게 포기해버립니다. 처음에는 어떤 신앙생활에 대한 반응이 있습니다. 16절 후반부를 다시 보시면 ‘말씀을 들을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러니까 사랑이나 위로에 관한 말씀을 들을 때 기쁨을 경험할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은 그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말씀을 목사님으로 부터듣게 될 때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멘 하고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혼자 다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출석과 봉사도 잘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집니다. 바람과 함께 나타났다가 바람과 함께 사라집니다. 'Gone With the Wind' 입니다. 사라진 이유를 나중에 알고 보면 아주 사소하고 유치한 동기가 참 많습니다. 한국에서 목회 하시는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입니다마는 하루는 자기 교회에 에어컨이 고장이 난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다음 주부터 안나오는 성도가 있다고 해요. 그래서 심방해서 교회에 나오시라고 권유를 했더니만 자기는 그렇게 뜨거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하더랍니다. 이 사람은 돌밭 같은 성도입니다. 흙이 있기는 하지만 돌위에 얇게 깔려 있어서 뿌리가 깊이 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라가다가도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면 말라 죽는 것입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고장이 나서 뜨거워지게 되면 신앙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지면 신앙을 쉽게 포기하는 성도가 바로 돌밭 같은 성도입니다. 옛날에 교회를 다녔던 성도들은 대부분 가족과 친척들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자마자 자기가 교회 예배당에 올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눈물부터 흘린 성도들을 쉽게 볼수 있었습니다. 어떤 학생은 자기집 제삿날이 되면 집에 들어 가지 않고 교회서 자고 다음날 집에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이 진짜냐 가짜냐 를 테스트 할수 있는 것은 시련이나 역경 밖에 없습니다. 가짜는 어려움이 오면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신앙은 역경 속에서도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역경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참 신앙인 입니다. Tea bag 안에 든 차는 뜨거운 물속에서 본래 차의 맛을 낼수 있습니다. 찻잔의 물이 뜨겁다고 차가 맛을 잃어버리는 것 아니라 진짜 맛을 낼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역경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돌밭 같은 마음은 힘들고 어려우면 포기를 하고 떠나버립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 군인들은 탈레반에게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그냥 항복했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지켜야 할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먼저 돈을 차에 실고 도망 가버렸습니다. 역경과 고난이 오면 누가 참된 군인인지, 누가 참된 지도자인지 알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 온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신앙을 지킬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가시떨기 밭
본문 7절입니다. “7.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이 길가가 이름뿐인 기독교인을 의미 한다면 돌밭은 뿌리가 깊지 못한 피상적인 기독교인입니다. 힘들면 바람처럼 사라지는 교인입니다. 그런데 가시떨기 밭은 세속적인 기독교인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18절과 19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가시떨기 밭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하십니다. “18.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말씀을 듣고 성장할려고 하는데 어떤 다른 기운이 들어와서 말씀을 막습니다. 그래서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기운이 무엇입니까? 가시 떨기의 기운입니다. 이 가시떨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그리고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이러한 것들이 바로 가시떨기의 기운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말씀에 대한 사모함보다 더 큰 것입니다. 이 사람은 말씀에 대한 열정은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사모함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물에 대한 욕심 즉 세상일에 대해서 관심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대해 사모함이 있었고 노력도 했지만 열매는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희집 뒷마당에 여러 가지 종류의 채소를 심어서 지금 잘 자라고 있습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오이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수확을 해서 치웠습니다. 그런데 오이가 한창 자랄 때 보면 오이 가까이에 있는 채소들은 잘 자라지 못합니다. 그 곁에 고추가 자라고 있는데 오이와 가까이 있는 고추는 오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고추들 보다 크기가 더 작고 성장 속도도 훨씬 더 느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오이의 기운이 가까이 있는 고추가 자라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세상이나 재물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 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세상일과 돈버는 일에 열심을 내지 말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세상사람 들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더 열심을 내어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우선인 것입니다. 세상이나 돈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얼마전에 007 첩보 스파이 영화 시리즈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던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 가 1억 6000만 달러(약 1800억원) 상당의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부자로 죽으면 실패한다’ 는 말이 있다면서 자기가 죽을 때 한푼도 두고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니얼 크레이크가 기독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유용하게 사용되기 위한 목적으로 돈을 벌수 있어야 합니다. 에콰도르 정글에 있는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간 짐엘리엇 선교사는 시카고의 명문 휘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종명한 사람입니다. 이 짐 엘리엇 선교사는 4명의 동료들과 함께 그당시 가장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고 접근하기 어려운 아우카 부족이 사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간 직후 그와 4명의 동료들은 원주민들의 창에 찔려 순교를 하게 됩니다. 이 짐 엘리웃 선교사가 쓴 자기 일기장을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차피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을 붙들려고 몸부림 치며 살아가는 사람은 너무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지만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붙들기 위해서 나의 삶을 버리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 중에서 우리가 영원히 붙잡을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그냥 놓고 떠나야 합니다. 이러한 세상 것에 대한 나의 관심이 너무나 커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내가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가시떨기 마음 밭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라옵기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가치있게 여기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좋은 땅
본문 8절입니다.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이 좋은땅에 대해서 20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해석하십니다.
"20.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말씀을 듣고 받아" 말씀을 듣고 받았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같은 내용이 기록된 누가 복음 8장 15절을 보시면 우리는 더 쉽게 이해할수 있습니다. "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누가복음 8장에서는 “말씀을 듣고 지키어“ 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왜 듣습니까? 그냥 듣기 위해서 듣습니까? '지키어' 이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들은 이 말씀을 내가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참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가 있어야 지킬수 있게 됩니다. 인내가 있어야만 결실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저희 집 뒷 마당에 지금 고추가 자라고 있습니다만 하루아침에 고추가 나온것이 아닙니다. 제가 하는 일은 아니고 제 아내가 하는 작업이지만 곁에서 몇 년동안 제가 살펴본 것을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이른 봄철에 씨를 이틀 동안 물에 담가 놓습니다. 그리고 난후 그 씨를 작은 발아 용 흙을 담은 컵 용기에 넣어 한달 반 정도 키웁니다. 그리고 새싹이 나서 잎사귀가 세 개나 네 개 정도 나면 보다 더 큰 컵 사이즈로 옯기고 또 한달을 키웁니다. 그리고 이제 제법 따쓰한 늦 봄이 되면 한달 정도를 낮에는 바깥에 그리고 밤에는 안에 다시 두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밖에 두어도 되는 따뜻한 날씨가 되면 2주 동안은 바깥에 그냥 두고 키웁니다. 그리고 난후 그 고추를 밭에 다가 옮겨 심습니다. 이렇게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수고하는 가운데 기다리고 인내해야 합니다. 열매를 맺는 일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도 인내가 필요하지만 그 곡식에게는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때로는 비바람이 몰아쳐도 견디고 인내해야 합니다.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쬘 때 뿌리가 깊지 못한 식물은 말라버립니다. 반대로 강한 비 바람이 불면 날라가 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인내해 나갈 때 뿌리는 깊어지고 마침내 어떤 환경속에서라도 많은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30배 60배 100배 많은 결실을 맺게 되는 좋은 땅은 한마디로 인내 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좋은 땅은요? 가격이 비싼땅 도 아니고 경치가 좋은 땅도 아닙니다. 많은 결실을 맺게하는 땅이 좋은 땅입니다. 그런데 좋은 땅이라고 하는 증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인내에 있습니다. 누가 복음 8장 15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여기에 보면 좋은 땅은 곧 착하고 좋은 마음 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착하고 좋은 마음이 무엇입니까? 인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예수님은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라고 보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환경이나 상황속에서도 인내하는 사람을 주님은 많은 결실을 맺게 되는 좋은 땅으로 보고 계십니다. 그럼으로 좋은 땅은 한마디로 인내를 잘하는 성도라 할수 있습니다.
벤자민 워필드 박사는 34년 동안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가르치신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 교수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스물 다섯 살 때 애니라고 하는 여인과 결혼해서 독일로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등산을 갔다가 심한 폭풍우를 만나고 아내 애니가 번개를 맞아 몸을 온전하게 움직이기 힘든 장애자가 되었습니다. 신혼여행 도중에 이런 일을 당했으니 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하지만 이 벤자민 워필드 박사는 자기 아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9년 동안 아내를 정성껏 간호를 하며 지냈습니다. 결혼 생활 내내 학교일 외에는 부인 곁을 떠난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벤자민 워필드 박사에게 대하여 존경의 말을 할 때 마다 이 워필드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우리 인간에게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인내하시며 우리 인간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인내하심에 비하면 저는 아내가 나를 사랑하고 나또한 아내를 사랑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힘들다고 내가 사랑하는 아내곁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장거리 마라톤 경기와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열정도 있고 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열정이 식어지고 힘도 빠지게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포기하고 그냥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아마 예수님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잔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하게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질 그 마지막 순간을 바라보시고 인내로 고통의 순간을 극복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을 하실 때 그 순간은 수많은 결실이 맺혀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닫혔던 하늘이 열리게 되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죄인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회개할 때 의인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옥으로 가던 영혼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망의 길로 가던 영혼들이 십자가의 사랑을 믿음으로 생명의 길로 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포기를 하고 싶은 순간에도 인내를 가지고 십자가 길을 계속 갈수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면 우리 같은 인간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 힘으로 좋은 밭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밭이 어떻게 스스로 좋은 밭이 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길가와 같고 돌밭과 같고 가시떨기 밭과 같은 우리 마음 밭을 일구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성령의 갈고리로 밭을 뒤엎고 갈아엎어야 풍성한 결실을 맺을수 있는 좋은 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좋은 밭이 되기 위해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진 성도가 되기 위해선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럼으로 때로는 어려운 환경과 시련속에 있을지라도 나를 좋은 밭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허용하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인내하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인내하심으로서 말미암아 결국에 이땅에서와 저 하늘나라에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진 좋은 밭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