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8. 양심을 저버리는 이유
<마가복음 6장 14-29절>
14.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침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15.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6.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17.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21.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침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침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 헤롯 안디바
성경을 보시면 헤롯이라는 이름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혼돈을 하기도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헤롯왕은 헤롯 대왕으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좀더 설명하자면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아기 예수를 죽일려고 했던 그 헤롯왕은 헤롯대왕인 것입니다. 이 헤롯 대왕은 그 후 얼마못가서 병들어 죽습니다. 그리고 나서 헤롯 대왕의 세명의 아들이 유대 나라를 나누어서 다스리게 됩니다. 그 세명의 아들 이름은 헤롯 아켈라오, 헤롯 안디바 그리고 헤롯 빌립 입니다. 헤롯 아켈라오는 헤롯대왕의 첫 번째 아들인데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리고 헤롯 안디바는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게 되고 헤롯 빌립은 이두매 지역을 맡아서 다스리게 됩니다. 헤롯 아켈라오와 헤롯 안디바는 같은 어머니에서 태어난 형제간이었고 헤롯 빌립은 어머니가 다른 이복 동생 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 세사람 모두 헤롯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도 헤롯이고 세 아들의 이름도 헤롯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성경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혼돈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인 헤롯왕은 헤롯 아그립바인데 헤롯대왕의 손자입니다. 헤롯 안디바의 조카가 되는데 성경은 모두 헤롯왕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헷갈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너무나 총명한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은 헤롯 안디바입니다.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사역을 하던 무대가 바로 갈릴리 지역인데 이 헤롯 안디바는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던 분봉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봉왕이란 한나라 전체가 아니라 일부를 맡아서 다스리는 왕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왕은 왕이지만 그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왕보다는 권위가 낮은 왕을 분봉왕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갈릴리 지역을 맡아서 다스리게 된 이 헤롯 안디바는 자기 아버지를 닮아서 우유부단 하면서도 매우 잔인한 왕 이었습니다. 좀전에 잠시 언급했지만 이 헤롯 안디바에게는 헤롯 빌립이라는 이복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 빌립의 아내가 헤로디아 이었는데 아마 굉장한 미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헤로디아는 살로메라고 하는 딸이 있었는데 이 헤롯 안디바는 자기의 아내와 이혼을 하고 이미 딸이 있었던 헤로디아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헤로디아는 헤롯 빌립의 조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헤롯 안디바의 조카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헤로디아는 삼촌인 빌립과 결혼을 해서 딸 살로메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후 이혼을 하고 또 다른 삼촌인 안디바와 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복잡한 관계가 있는 헤로디아와 살고 있는 헤롯 안디바를 침례 요한이 책망합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본부인을 쫓아내고 자기 이복 동생 빌립의 아내이자 조카가 되는 헤로디아와 결혼을 한 부도덕한 죄를 저질렀다고 책망한 것입니다. 그러자 당연히 헤로디아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요한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본문 17절과 18절입니다. 17.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그런데 사실 헤롯 안디바는 요한에게 책망을 받았지만 이 요한에 대해서 어느정도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부도덕한 죄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는 최소한의 양심이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20절입니다. 20.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요한에게 책망을 받았을때 헤롯 안디바는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마땅하게 들었던 것입니다. 왜요? 요한이라는 선지자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의롭고 거룩한 요한이라면 과거에 내가 행한 일에 대해서 입바른 소리를 할수 있을 것이다’ 라고 헤롯 안디바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도둑이나 강도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옳지 않은줄 알고 있는 것처럼 헤롯 안디바도 자기가 한 일이 도덕적이지 못한 행위인 것은 알고 있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헤롯 안디바는 침례 요한을 감옥에 보냅니다. 그리고 침례 요한의 목을 쳐서 죽이는 결정을 합니다. 헤롯 안디바는 침례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르고 의로운 사람을 죽인다면 그일을 한 자신은 더 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행동을 했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자기 양심이 찔려서 괴로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양심을 누르고 눈을 감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양심이 찔리면 처음에는 괴로워하고 갈등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두가지 선택 중 하나를 결정하게 됩니다. 하나는 회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합리화 시켜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양심을 누르고 눈을 감는 것입니다. 헤롯 안디바는 요한에 의해서 자기 양심이 계속 찔림을 받게되자 마침내 양심을 저버리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행동을 한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 헤롯 안디바가 이렇게 결정하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양심에 찔리는 사건을 만나게 되었을 때 이 헤롯 안디바처럼 양심을 닫아버리고 잘못된 길을 가는 일이 없게 되시길 소망합니다.
헤롯 안디바가 자기 양심을 버린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
첫째는 욕심 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어떤 욕심입니까? 성적인 욕심, 성욕입니다. 물론 인간에게 성욕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다고 하는 인간의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종류의 욕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욕심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의욕도 일종의 욕심입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의욕도 없다 라고 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요. 성욕, 물욕, 명예욕, 이런 욕심들이 동기가 되어 인생을 살아가는데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맛있게 먹고 싶은 욕심이 있으면 남보다 요리를 더 잘할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맛있게 먹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맛있는 음식을 해서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물질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아 부자가 되기도 합니다. 욕망(desire)이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욕심을 잘못 관리하게 되면 그때부터 그 욕심이 죄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욕심이 잉태하면 죄가 되고 죄가 자라서 사망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헤롯 안디바는 성에 대한 욕심을 잘못 관리해온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 헤롯 안디바는 에돔 족속의 출신입니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에서가 누구입니까? 야곱의 형이 에서입니다.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이 바로 헤롯 왕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헤롯 안디바는 온전한 유대인은 아니지만 반쪽 유대인이라 할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해선 어릴 때 교육을 받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헤롯 안디바는 아라비아의 왕 아레타 의 딸과 결혼을 해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 헤롯 안디바가 자기 이복동생 빌립을 만나기 위해 로마를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이 헤롯 안디바가 이복 동생 빌립의 아내이었던 헤로디아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동안 동생 몰래 둘이 사랑을 나누다가 비밀 약속을 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배우자들하고 서로 각자 이혼을 하고 같이 살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자, 이때 이 헤롯 안디바는 두가지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했는데 하나는 어릴때부터 배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지금 아내와 계속 해서 같이 살것인가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욕이 이끌어가는 대로 부인을 버리고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헤로디아와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 안디바는 정욕에 이끌려 아내를 버리고 헤로디아와 같이 사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이 헤로디아도 마찬가지로 남편인 빌립보다는 더 야심이 있고 더욱 장래가 밝아 보이는 헤롯 안디바를 택한 것입니다. 성적인 욕심을 잘못 관리함으로 이 헤롯 안디바는 부인과 이혼을 하고 자기 동생 아내와 결혼을 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허영심 때문입니다.
허영심이란 자기 분수를 알지 못하는 자기 과시의 일종에서 나오는 마음 이라 할수 있습니다. 허영이라는 단어를 영어성경에서 보시면 vain glory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vain은 비어있다는 의미이고 glory는 영광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어있는 영광이라는 뜻이 됩니다. 자기를 나타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욕구. 이것이 바로 허영심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 허영심이 헤롯 안디바에게는 이렇게 나타납니다. 처음에 요한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을 때 이 헤롯 안디바는 괴로워하면서도 그 책망을 달갑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내 헤로디아가 침례 요한을 너무 미워하고 저주했기 때문에 요한을 감옥에 넣었습니다. 17절입니다. 17.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이 여자를 위하여...’ 헤로디아를 위하여 헤롯 안디바는 자기 양심이 자기에게 말하고 있는 것 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감옥에 넣은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본문 23절을 보시면 잔치를 벌리고 있는 중에 헤로디아의 딸 살로매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너무 기분이 좋아진 헤롯 안디바는 이런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23절입니다. 23.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사실 이 헤롯 안디바는 유대 나라중에 갈릴리 지역 한 부분만을 맡고 있는 분봉왕입니다. 나라의 절반을 줄 권한이 있는 사람도 아닌 사람이 마치 큰 권세가 있는 것처럼 말을 한 것입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한 말입니다, 이것은 허영심입니다. 술잔치를 벌리고 있는 중에 술에 취해 기분이 좋으니까 이런 헛소리를 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허영심을 가지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입니다. 3. ...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말고... 이 말씀은 자기 분수대로 생각하고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라 라는 의미입니다. 자기 분수를 알지 못하는 허영심을 경고하는 말씀이라 할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체하면서 살아갈 때 그 사람의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헤롯 안디바는 허영에 사로잡혀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사람을 의식하였기 때문입니다.
26절입니다. 26.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물론 사람이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수는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사람을 의식하며 살아가지 않을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만 의식하며 살아간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을 의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양심과 진리를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데 사람만 의식하고 살아가게 되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헤롯 안디바는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체면을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 할까만을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침례 요한의 목을 치면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내가 보기에 저 침례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살아가는 의롭고 올바른 선지자인데 내가 이사람을 죽이면 절대 안되지. 비록 내가 살로매의 어떠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침례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 달라는 요구는 들어줄수 있는 것이 아니지. 왜냐하면 선지자인 침례요한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내 권한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실 영역이기 때문이지‘ 이렇게 생각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하지 않고 주변 사람만을 의식하고 자기 체면만을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라는 것보다는 여기 있는 이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을 할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헤로다아의 딸 살로매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침례 요한의 목을 치게 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사람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들의 판단이 서로 다를때는 우리는 과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나의 양심과 내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내용이 다를 때 우리는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내 양심에 따라서 선택해 나가야 합니다. 다수가 진리는 아닙니다. 다수가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넓은 길로 가지말고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넓은 길은 편한 길이지만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이고 좁은 길은 험하고 고통스럽지만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헤롯 안디바는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했습니다. 내가 약속한 말을 취소하면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의 체면만을 생각한 것입니다. 체면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을 자기가 죽이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인 것이지요. 그 일은 자기가 죽은 이후에 하나님앞에 갔을 때 엄한 심판을 받게 되는 가장 두렵고 큰 문제인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평가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생각하며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요셉이나 다니엘이나 다니엘의 세명의 친구들은 하나님이 나를 보신다는 신앙으로 살았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용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라고 하는 하나님앞에서라는 신앙관을 가지고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양심을 저버린 결과
헤롯 안디바가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양심을 저버린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평생 죄의식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16절입니다. 16.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내가 목벤 요한이 살아났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친다고 하는 소문이 퍼져서 마침내 이 헤롯 안디바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그때 헤롯이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목벤 요한이 살아났구나!” 이 고백에서 우리는 침례 요한을 죽인 그 죄책감이 헤롯 안디바의 마음 깊숙히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헤롯의 육신은 궁전 속에 살았지만 그 양심은 죄책감의 감옥 속에 갇혀 괴롭게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헤롯 안디바에게 자기 양심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침례 요한이 자신을 책망할 때 회개 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롯 안디바는 양심에 찔러 번뇌하고 괴로워 하기는 했지만 회개 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십자가형을 앞둔 예수님을 만날 때 입니다. 누가복음 23장 8, 9절입니다. 8.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9.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헤롯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에 대한 소문을 계속 들어 왔습니다. 처음에는 침례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가지기도 했던 헤롯 안디바 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자기앞에 끌려온 예수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약 두 시간 동안 계속해서 질문을 했지만 예수님은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시고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침묵하시고 계신 그 두시간 동안 헤롯 안디바는 자기 양심의 소리를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말보다는 침묵이 내 양심을 찌르는 더 강한 소리가 될수 있습니다. 헤롯이 예수님의 침묵앞에 섰을 때 그때 헤롯에게 있어서 회개할수 있었던 두번째 기회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침례 요한의 불같은 책망으로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수님의 침묵으로 헤롯 안디바의 양심을 두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회개할수 있었던 기회를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회개 하기는커녕 정 반대의 행동을 합니다. 누가복음 23장 12절입니다. 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이날 예수님 앞에서 양심의 찔림을 받은 헤롯과 빌라도는 서로 친구가 되어 양심을 저버린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때로 양심이 우리를 향해서 책망 할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내 속에 양심을 주신 양심의 주인이 되신 그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라는 생각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나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회개할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 용서해주십시오”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 입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주님앞에서 용서를 구한다면 주님은 용서를 하십니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의 양심은 회복되고 다시 살아날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회개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헤롯 안디바의 불행은 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쳐버린 것에 있습니다. 양심에 찔림을 받았지만 욕심 때문에, 허영심 때문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눈 때문에 자기 양심을 죽이고 그대신 의로운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양심을 저버리고 양심을 타락시켰습니다. 바라옵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보신다 라고 하는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회개할 기회가 왔을 때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라고 회개하심으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양심을 가지고 생명과 진리의 길을 걸어가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