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9. 너희가 하라
<마가복음 6장 34-44절>
34.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다 배불리 먹고
43.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을 하시던 동안에 예수님 곁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왜요? 그 이유를 오늘 본문이 시작하는 34절에서 알수 있습니다. 34.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큰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대할때마다 목자 없는 양 같이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양에게는 반드시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목자가 있어야 양이 제대로 먹을수 있고 제대로 쉴수 있습니다. 양에게 목자가 없다면 양은 살아갈수 없습니다. 목자 없는 양은 마치 부모가 없는 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대할때마다 목자 없는 양을 대하는 것처럼 안타깝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러자 날이 갈수록 예수님 주변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역시 예수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고 그리고 영혼에 병든 심령들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설교를 하시다 보니 많은 시간이 흘러 갔습니다. 해가 저물어가고 저녁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5, 36절입니다. 35.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제 날이 저물어가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 각자 저녁식사를 해결할수 있도록 해산 하게 하십시다”. 대략 이런식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7절입니다. 37.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제자들이 처한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저기 빈들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빈들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44절입니다. 44.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남자만 오천 명이었으니까 여자 와 아이를 합치면 2 만명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1, 2 백명도 아닌 그 많은 숫자를 제자들이 어떻게 다 먹입니까? 그래서 37절 후반부를 보시면 제자들이 이렇게 반문 합니다. 37.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요한복음 6장을 보시면 이 말을 제자 빌립이 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7절입니다.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이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그러니까 지금 빈 들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다 먹일려면 최소한 이백데나니온의 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에게 먹을 것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라 멀씀하시고 제자들은 군중들속에 들어가서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들을 각각 50명씩, 100명씩으로 나누어 앉게 하신 후에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감사 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그것을 나누게 하십니다. 그랬더니 모두가 다 배불리 먹고도 열 두 바구니에 가득차게 남았던 것입니다. 42절 43절입니다. 42.다 배불리 먹고 43.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장점만 5천명이상 배불리 먹이고도 열 두바구니에 가득차게 된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실 기적은 우리 인간의 눈에 보기에 기적이지만 하나님에게는 당연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바닷물위를 걷는 것은 기적이요, 믿을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바닷물 위를 걸으시는 일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위를 걷지 못한다 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인 것이죠. 그럼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할때 완전한 신이요 완전한 인간이신 분으로 생각을 해야지 너무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기적의 현상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인 입장이 아닌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는 이러한 기적은 너무 너무 쉽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는 자기 능력을 자랑하시기 위해서 기적을 일으키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오병이어 기적이 주는 교훈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볼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중심으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오병이어 기적이 주는 교훈을 명심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기적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37절입니다.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이 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을 살펴보면 제자들이 먼저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35절과 36절입니다. 35.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 해결책은 본인들이 스스로 알아서 찾아 먹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각자가 알아서 저녁 식사 해결을 하게 하자는 것이죠. 사실 이것은 굉장히 합리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변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을때가 있습니다. ‘야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누가 잠재워주고 밥먹여준다더냐? 네가 알아서 움직이고 일해야지“ 이런 말들을 주변에서 들을때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그렇게 말할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인간 사회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라 할수 있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고급 식당에 가서 비싼 스테이크나 바베규를 사서 먹을수도 있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집에서 요리해 먹으면 됩니다. 그것도 안되는 사람은 얻어먹든지 굶어야지요. 그러니까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도 다른 사람들이 먹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 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일일이 신경 쓸수는 없으니까 각자 해결하도록 하자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물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시고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제자들이 대답한 것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를 알수있습니다. 37절 후반부입니다. 37.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저 많은 사람들을 먹일려면 이백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당시 노동자 하루 일당이 1 데나니온 이니까 200일 동안 일하고 한푼도 쓰지 않아야 모을수 있는 액수입니다. 여기 미국 노동자 하루 일당이 100불이라고 한다면 100불 곱하기 200이니까 2만불 정도가 됩니다. 큰 돈 입니다. 아마 모여있는 군중들의 숫자를 대략 2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한 사람당 식사비 일불씩으로 잡고 간단히 계산한 것 같습니다. 아주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계산 했습니다. 제자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 해결 방식은 먹고 사는 문제가 생길때는 첫째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돈으로 해결해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2 만불이라는 돈이 우리에게 는 없으니까 미안하지만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나가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해결 방식입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사회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해결해 나갈수 있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계속해서 굶거나 얻어먹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능력의 차이 때문에 누구는 잘 먹고, 누구는 굶거나 얻어 먹어야 합니다. 그 능력은 곧 돈이 있느냐 돈이 없느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돈이 있는 사람은 잘 먹고 잘 살고 돈이 없는 사람은 죽어가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돈 때문에 사람이 울고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보면 바로 제자들과 같은 사고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생긴다고 할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들이 먹고 사는 문제까지는 책임질수 없으니 너희들 각자 알아서 능력껏 해결해라‘ 는 사고방식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한계성으로 인해 부득불 나타나게 되는 인생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지신 해결 방식은 어떻습니까? 34절입니다. 34.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날 빈 들판에 모인 사람들은 주님이 보시기엔 모두가 다 하나 같이 목자 없는 양떼들처럼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이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하고 보호가 필요한 양들이었습니다. 자기 능력으로 먹고 살아갈 능력이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 얼마나 적게 가졌냐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으십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삶의 문제는 돈과 능력으로 해결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는 가지고자 하는 소유와 능력의 차원이 아니라 나눔의 차원으로 해결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과 33절입니다.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할 때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돈을 가지고 능력을 가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을 때 그 외 모든 것이 더 하여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가 오천 명을 먹일 돈도 없고 능력도 없지만 함께 먹고 함께 살아갈수 있는 방법은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떠한 문제를 만나게 되면 그 문제의 대답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문제의 해답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두번째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38절입니다. 38.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너희들에게 지금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찾아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이 할수 있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우리에겐 돈 이백 데나니온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저 많은 사람들을 먹일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돈 이백 데나니온을 내놓으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너희들에게 저 사람들을 먹일만한 능력이 있다고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너희들이 할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한 것 뿐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문제 해결할 능력은 제자들에겐 없지만 시작은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무리들 속에 들어가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옵니다. 여기서 떡은 그냥 보리쌀 가루를 반죽해서 구은 조그마한 과자 같은 것이 다섯 개이고, 물고기는 고등어 만한 사이즈가 아니라 멸치보다 조금 더 큰 마른 물고기 일 것으로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시면 한 아이가 한끼를 먹을려고 준비해놓았던 음식을 제자들이 가져 온 것입니다. 사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아이가 먹을 한끼의 식사량만 가져왔다는 것은 참 부끄럽고 초라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주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가져온 지극히 적고 초라한 양식을 소중하게 받으십니다. 그리고는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그 음식을 축복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기적은 맨처음 나에게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에게 있는 것을 나누기 시작할 때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럴때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주님은 세 번째로 이 말씀을 하십니다.
3.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
41절입니다. 41.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제자들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저들을 먹일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에 따라 자신들이 할수 있었던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너무 초라해보였고 전혀 문제 해결책이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시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축복기도를 하십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은 우리가 서로 나눌려고 하는 마음을 보시고 시작하십니다. 기적은 주님이 마음만 먹으시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있어서 기적은 힘든 일이 아니라 너무 쉬운 일입니다. 주님에게는 홍해바다를 가르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주님에게는 여리고 성을 무너트리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을 우리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을 시작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때 주님이 우리가 함께 기적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무리들을 목자 없는 양떼들처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와 함께 예수님 당신 자신을 드리신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예수님 자신을 나누어 주시려는 것을 우리는 이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배우게 됩니다.
문제 해결은 내가 돈을 가지고 능력을 가지는 소유의식에서 해결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누는 것에서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진정한 나눔은 내가 가진 소유물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내 것으로 문제를 해결 할려고 하면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나눔의 정신은 내 소유나 물질을 주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나누는 것입니다. 내 관심과 내 시간 내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음식을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 주고 받게되면 그냥 음식을 나눌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식이 없는 가운데서 나누게 되면 음식이 아니라 서로의 관심과 서로의 마음이 나누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41절 후반부를 다시보시겠습니다. 41.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실때의 말씀과 같습니다. 마가복음 14장 22절입니다. 22.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떡을)가지사, 축복하시고, (떡을)떼어, 주셨다. 최후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이 장면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수많은 군중들에게 나눠 주시는 모습과 같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난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이 오병이어의 사건이후에 그다음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주님은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51절입니다. 51.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드림으로서 비록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뿐이었지만 남자 장정만 5천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가득히 남게 된 기적을 주님은 행하신 것입니다.
이 기적의 역사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면 어디에서나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마음을 열어 내게 있는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릴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것을 받으시고, 그것에 축복을 해 주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돌려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돌려주시는 것은 언제나 처음보다 풍요롭고 아름답습니다. 새로운 소망과 감사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세상에서 얻을수 없는 평강과 지혜를 주십니다. 주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는 세상에 나아가 나누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입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제자들이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떡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고, 그것을 주님께 갖다 드리고,
주님이 다시 주시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 세가지 말씀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너희에게 떡이 얼마나 있느냐“ ”너희들이 나누어 주어라“ 이것이 예수님이 해결하신 방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닌 능력과 소유로는 내 주변에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할수 없습니다. 너무나 부족하고 모자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님 앞에 내 놓는 것이 기적을 만드는 충분한 재료가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혼자 다 하실수 있으십니다만 제자들에게 협조를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헌신을 통해 이미 준비된 기적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다가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자기 문제는 자기가 스스로 해결해나가야지“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능력이 없지만 누군가가 내대신 해주겠지‘ 라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주님은 ”네가 할수 있는 작은 것에서 부터 시작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이 행하시는 크고 위대한 능력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어 받아먹고 마심으로, 이미 예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는 나누어 줄 것이 충분히 많이 있습니다. 주님이 베풀어주신 사랑과 주님이 주신 평강과 주님이 주신 지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우리는 나누어줄것이 많은 부유한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하는 믿음으로 행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경험하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