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1. 전통이냐 계명이냐
<마가복음 7장 1-13절>
1.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 7장입니다. 본문 앞에 있는 6장을 보시면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의 사건이 나옵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에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타고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제자들이 탈진하고 지친 새벽 4시경에 예수님께서는 바닷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안에 들어오시고 난 이후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제자들과 함께 게네사렛 지방에 도착하셔서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병자들을 고쳐 주십니다. 원래는 벳새다 지역을 향하여 가고 있었는데 항해 하던 도중에 역풍을 만나서 게네사렛 지역에 도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또 다른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게네사렛 지역의 사람들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치유함을 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가복음 6장 56절입니다. 56.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이렇게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시간이 지날수록 유대 땅 전체로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 소문을 듣고 이곳 갈릴리 지역으로 찾아옵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지역까지의 거리는 대략 140 킬로미터 정도가 되는데 마일로 계산하면 약 86마일 정도가 됩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가 160km 정도이니까 서울에서 대전보다는 조금 더 짧은 거리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아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사역하시고 계신 지역으로 가까이 올수록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점점 더 많이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에 대한 소문이 진짜구나” 라고 하는 확신을 가졌을 것 입니다. 그러한 확신이 생길수록 호기심과 함께 예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만나고자 했던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 만남의 장면을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2절입니다. 2.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보았더라’. 무엇을 보았습니까? 제자들중 몇사람이 씻지 않은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요?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입니다. 1절입니다. 1.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서 이곳 갈릴리 지역에 왜 왔습니까? 좀전에 잠시 설명해드렸지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서 왔습니다. 진상 조사를 해가지고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상 조사단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본 것은 제자들중에 몇 사람이 씻지 않는 손으로 떡을 먹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로 조금전에 6장 마지막 절인 56절에서 살펴보았지만 예수님께서 손을 대는 자는 모두가 다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당시에 예수님 주변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치시고 계시는 중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때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한 설교를 하셨을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그런데 예루 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런 모든 장면들은 다 무시해버리고 제자들중에 몇사람이 그것도 다가 아니라 몇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떡 먹는 것만을 보았던 것입니다. 자 예수님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에게 설교를 하신후에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그리고 병자들이 낫게 되는 기적이 일어날때마다 모여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두손을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권능의 역사가 일어나는 뜨거운 현장 한가운데 그들은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제자들중 몇사람이 떡을 먹었습니다. 배는 고프지만 예수님은 바쁘시고 하니까 다같이 시간을 내어서 식사를 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가급적 표시나지 않게 재빠르게 먹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순간을 포착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떡 먹는 장면만 본 것이 아니라 손을 씻고 먹는지 씻지 않고 먹는지를 포착한 것입니다. 정말 굉장히 예리한 사람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예수가 이단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기 위해서 예리하고 눈이 아주 날카로운 사람들을 보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일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3절 입니다. 3.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그당시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씻어야만 했습니다. 그일은 옛날부터 내려온 장로들의 전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 전통을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그당시 유대인들이 손을 씻는 것은 단순히 깨끗하거나 더럽다고 하는 위생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냐 부정하냐 라고 하는 신앙의 차원이었습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를 구분 짓을 만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결하게 하는 이 행위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유대 나라 전통과 관습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손을 씻고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규정은 레위기에 나오는데, 거기를 보면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어야 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이었던 것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이 무엇입니까? 장로들의 전통이란 조상 때부터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이나 가르침을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해 고대 랍비들이 만들어 지켜온 규칙이 바로 장로들의 전통입니다. 이 장로들의 전통을 보면 ‘하라’ 라고 하는 조항은 248개가 있고 ‘하지말라’ 라고 하는 조항은 365개 항으로 되어있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온 이 장로들의 전통이 얼마나 철저하게 지켜왔는지 좋은 일화가 있습니다. AD 132년에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당시 정신적인 지도자는 아키바 라는 랍비이었는데 그 독립운동이 실패 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키바 랍비는 로마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키바 랍비에게 목만 축일수 있는 아주 작은 양의 물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키바 랍비는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손을 씻었다고 합니다. 이 랍비가 그렇게 한 것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이었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까지도 각오하는 그당시 유대인들이 가진 신앙관을 엿볼수 있습니다. 이렇게 그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옛날부터 내려온 장로들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과 같거나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더 큰 권위를 부여해 왔던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로 말하면 자기가 속한 교단의 전통이나 헌법 그리고 어떤 유명한 신학자의 성경해석 같은 경우에 적용시켜 볼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장로교에서는 캘빈의 신학이나 사도신경을 성경의 권위 못지않게 내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침례교에서는 침례만을 주장해서 세례 받은 성도들의 구원에 대해서 의심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수 있습니다. 순복음 교회 계통에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방언을 하지 못하면 거듭난 성도로서 의심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공동체나 조직을 보면 나름대로의 전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통이 주는 좋은 점이 있지만 그 전통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이렇게 해왔으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분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전통이 사람의 계명이라고 한다면 말씀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전통이 형식이라면 말씀은 내용입니다. 전통이 비 본질이라면 말씀은 본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7, 8절입니다. 7.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장로들의 전통’ 은 말 그대로 전통입니다. 전통이라는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에 맞게 얼마든지 더해지거나 빠질수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 찬양할 때 피아노가 없으면 기타로 찬양 인도할수 있습니다. 기타가 없으면 드럼이나 손바닥을 쳐서 찬양을 할수 있는 것입니다. 악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도움이 되는 도구인 것으로 인식하고 사용하면 그것으로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하지만 전통의 눈으로 보면 피아노는 되고 기타나 드럼으로 찬양 인도하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여겨질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젊은 청년의 시절에 교회에서 기타를 칠때마다 교회 어르신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습니다. 전통은 절대적인 것이 될수 없습니다. 전통이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기준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만들어놓고 지켜나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들의 전통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아놓고 하나님앞에 부정한 행위를 했다고 예수님에게 따졌던 것입니다.
전통이 주는 좋은 기능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전통이 주는 역기능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시간에는 전통이 주는 역기능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전통은 우리 내면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4절입니다. 4.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사실 구약 성경 레위기를 보면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어야 한다는 율법은 제사장과 제사장의 식구들에게만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제물로 바쳐진 음식을 제사장 식구들이 먹을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성전에 바쳐진 제물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제물이기 때문에 그 제물이 더럽혀져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제물을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제사장과 제사장의 식구들은 손을 씻어 자신을 깨끗하게 한 후에 제물로 바쳐진 음식을 먹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제사장과 제사장의 식구들에게 주어진 율법이 모든 유대인들에게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바쳐진 제물은 성전과 아무 관계가 없는 모든 음식에 까지 확대되어졌습니다. 물론 이렇게 한 의도는 좋은 것이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생활해 나가고자 하는 것은 선한일 입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기전에 손을 씻는일은 위생상으로도 더 안전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관에서 우리는 그 어떤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5절 입니다
5.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지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적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있는 현장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자들 중 몇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일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따졌습니다. 그런데 그 따지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어찌 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합니까? 그래서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습니까?’ 입니다. 그들은 ‘장로들의 전통’ 을 기준으로 삼고 따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계명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장로들의 전통’ 을 기준으로 삼고 따졌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다 부정하다 고 결정짓는 기준이 될수 는 없는 것입니다. 구약 레위기를 보면 정결함과 부정함에 대한 기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준들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지켜야만 정결함을 유지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로들의 전통은 다릅니다. 그 내용을 지키면서 살아가면 물론 좋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음식을 먹기전에 손을 씻으면 위생상으로 정결해서 모두에게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지키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과 부정함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정결함이나 부정함의 기준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전통이요 관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당시 유대 사람들은 전통의 내용에 집착하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은 점점 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간 것입니다. 전통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 상태가 어떤가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지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6절입니다. 6.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전통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 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의 성결함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 관리는 전통을 지킨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단이나 예배 프로그램으로 정결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 기도하는 순서에 맞추어 회개한다고 해서 우리 마음이 정결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 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예배를 다 받으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전통 중심의 신앙생활이 주는 역기능은 우리 내면의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 늘 경각심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나가야 합니다.
전통 중심 신앙생활이 주는 역기능은
2.전통이 말씀의 권위를 대신할 위험이 있습니다.
교회 역사가 오랜 된 교회일수록 그들 교회만의 정해져 있는 예배순서가 있습니다. 예배 순서에 대해 전통이 있는 것은 좋습니다. 사실 그 전통이 생기기 전까지 이렇게 또는 저렇게 예배 순서를 채택해서 시행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가장 좋고 적합하다고 여긴 예배순서를 정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착된 예배 순서가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 교회의 전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예배순서가 절대적이 되어서 그 누구가 와도 그 예배 순서만은 바꿀수가 없다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가까이에 위치한 북 버지니아 주에 가면 두 번째로 오래된 한인 장로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 찬송가 3절을 부르고 4절을 부를때는 잠시 피아노 반주를 합니다. 그래서 처음 그 교회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은 예외없이 3절하고 곧바로 4절을 부르다가 본의가 아니게 독창을 하게 되어 무안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 교회 예배 찬양 시간에 적용할려면 한달은 걸려야 4절을 부를 때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찬양하는 방법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교회의 전통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찬양을 하는지는 잘모르겠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찬양하는 방법을 바꾸라 해도 바꾸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성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그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배는 순서도 중요하지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예배 드리는 심령의 마음을 받으시는 것이지 예배 순서가 잘 짜여 있는가, 아니면 잘못 짜여있나 를 보시고 예배를 받으시거나 받지 않으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다른 교회들처럼 설교를 하고난 이후에 광고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특별한 일이 있어서 말씀을 선포하기 전에 교회 광고를 미리 했습니다. 이렇게 예배 순서는 상황에 따라 바뀌어질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전통은 포장지이고 하나님의 계명은 선물이라 할수 있습니다. 포장지가 아무리 멋지고 아름답다 할지라도 그안에 있는 선물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에 선물이 깨어진 그릇이라고 한다면 포장지가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포장지와 선물은 그 가치와 중요성에 있어서 비교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할 만큼 권위가 주어진다면 그 전통은 매우 위험한 것임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우리 인간의 권위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신앙생활이 주는 역기능은
3.하나님의 계명을 아예 무시 해버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11절에서 13절입니다. 11.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예수님 당시에 ‘고르반’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고르반 제도는 원래 좋은 의미에서 출발했습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바쳐진 예물‘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예물을 바친 사람들에게는 교회에서 그사람들이 바친 예물을 되돌려 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부모님에게 드려서 부모님을 도와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면서 자식된 도리를 하지 않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는 교회에 가서는 도와달라고 하고 자기가 드린 그 예물을 가져 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명목을 내세워 부모에게 할 도리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별히 자기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자식들인 경우는 이런 제도를 악용하여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고르반이라고 하는 전통과 제도가 ’부모를 공경하라‘ 라고 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해버렸던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전통이 주는 역기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은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는 율법이나 전통의 핵심중의 핵심이 되십니다. 왜 율법과 전통을 지켜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예수님이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완성이요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이 자기들 눈앞에 계시는 데도 그들은 비본질적이고 지엽적인 것을 가지고 흥분하였던 것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을 가지고 따졌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야 할 일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 프로그램이나 예배 순서는 하나님앞에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관계를 가질수가 있다면 그것이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앞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늘나라와 영생과 진리와 생명을 얻을수 있는 최고로 좋은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겨우 손 씻는 문제만을 따졌습니다. 사람은 보고 싶어하는 것 만을 보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은 듣고 싶어하는 것만을 듣게 되어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제자들 중에 몇사람이 손을 씻지 않은 것을 본 것은 그것을 보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이런 마음자세로 주변사람들을 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예수님을 놓치게 됩니다. 바라옵기는 우리는 율법의 완성이시오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님만을 보길 원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십시다. 예수님의 말씀만을 듣기 원하면서 신앙생활 해나가십시다. 그래서 비본질적인 전통이나 형식에서 자유함을 얻어 주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해나가실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