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22. 구원과 회복의 원리

Author
kgmcc
Date
2021-11-10 02:29
Views
14
본문 : 마가복음 7장 24-30절

날짜 : 2021년 11월 10일

 

<마가복음 7장 24-30절>

24.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인 2009년도에 도요타 자동차 회사가 굉장한 위기를 겪게 된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고 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자동차 액셀레이다 페달에 문제가 있어서 시중에 나온 차를 대량으로 recall 했던 것입니다. 운전중에 액셀레이다를 밟았다가 놓으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데 종종 그 페달이 늦게 돌아오거나 아니면 그냥 붙어있는 바람에 차 사고가 나기도 했던 것입니다. 자동차 리콜제도라는 것은 결함이 있는 차를 고쳐주거나 아니면 돈으로 되돌려 주는 제도입니다. 그당시 도요타 회사가 리콜한 차량수는 약 천 만대(ten million) 이었습니다. 2008년 한해 동안 전세계에 팔았던 도요타 자동차 햇수가 800만대 이었는데 그보다도 더 많은 차량을 리콜 했던 것입니다. 그당시 결함이 있는 차는 대부분 리콜 해서 무상으로 고쳐주었지만 문제는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도요타 회사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전적으로 고객들의 입장에 맞추어서 회사를 운영해나가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도요타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낸다고 하는 일본의 자존심이었고 일본의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것도 조그마한 결함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바로 직결이 되는 가속페달 즉 액셀레이다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치명적인 결함 때문에 그당시 일본 사람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이런 치명적인 결함이 생겼던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지나친 원가 절감 정책 때문이었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인 1964년도에 도요타 회사에 한 젊은 청년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이 청년이 일하게 된 부서는 여러 하청 업자들로부터 부품을 받아 그 부품들을 정리해서 필요한 곳에 보내는 일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몇 년동안 그 부서에서 일을 하면서 도요타 차에 들어가는 수십 만개가 되는 부품의 목록을 작성하고 그 부품의 단가를 적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단가를 낮출수가 있고 부품의 숫자를 줄일수 있는가 하는 일을 연구했습니다. 이 청년의 작업으로 인해 도요타 회사는 막대한 경비절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 사람은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2005년도에 도요타 회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이사람이 바로 와타나베 가쓰아키 입니다. 그런데 도요타 회사가 창립된이후 계속 추구해왔던 목표는 차의 안정성과 품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객이 시간이 지나면서 원가를 낮추면서도 품질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방향이 바꾸어 졌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점점 더 지날수록 원가 품질을 유지하는 쪽보다는 원가 절감하는 정책이 더 우선적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싼값으로 부품을 구입하고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 계속 몇 개의 독립된 라인을 하나로 합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 졌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토요타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토요타 차가 품질보다는 원가 절약을 하는 것에 치중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 운전석 옆에는 두 개의 커피컵 을 넣고 홀드할수 있는 두개의 구멍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스크린에 나오는 이 부품이 있어야 컵 구멍에 들어간 컵을 홀드할 수가 있습니다. 이 부품은 그냥 끼웠다 뺐다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품이 없어지게 되면 커피 컵 두 개의 구멍안에 넣은 거피 컵은 흔들리기 때문에 단 한개도 사용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 컵 홀드 하나가 두개를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개의 컵 홀드가 고장이 나도 다른 한 개를 사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매사에 이렇게 먼저 원가를 절감하는 방식으로 회사 운영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러한 도요타 회사의 정책은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져 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도에 유럽에 있는 어느 한 사람이 자기가 밟은 액셀레이다가 잘 나오지 않는다 라고 하는 신고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 도요타 차의 액셀레이다에 대한 문제가 여기저기에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2009년 8월달에 생겼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어느 가족 4명이 휴가를 가기 위해서 도요타 렉서스 차를 렌트해서 고속도로에서 달리다가 운전자가 밟은 액셀레이타가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바람에 사고가 났던 것입니다. 밟은 액셀레이다가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바람에 차는 점점 더 스피드를 내면서 달렸고 브레이크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날 당시 차의 속도는 120마일이었는데 네명 모두가 다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세상에 더욱 크게 이슈가 된 것은 운전하던 사람이 사고가 나기 7초전에 911에 전화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사람이 지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서지를 않고 속도가 더욱더 빨라지고 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120마일로 달리고 있는데 차를 도저히 멈출수가 없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half 마일이면 이 고속도로가 끝나고 인터섹션이 나올텐데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 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가 부딪치고 비명소리와 함께 통화가 끝나게 된 것입니다. 저도 그당시에 녹화된 그 음성을 인터넷을 통해 들었습니다. 아마 제기억에는 그 운전자는 순경이었고 휴가를 얻어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던 중에 사고를 당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요타 회사는 액셀레이다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대량으로 차를 리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이후 이 도요타 회사는 무너져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지금까지 정말 낮은 자세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도요타 회사의 서비스는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오래된 사건을 지금 이야기 하는가 하면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 도요타 회사가 겪었던 모습과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요타 차가 일본나라의 자부심이었듯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자부심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이세상의 그 어느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는 최고의 품질과 최고의 가치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능력이 있으신 분이신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위대한 브랜드 상품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조금씩 조금씩 불량 부품이 우리 인생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우리가 변화되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고 계시는 가치를 우리가 소홀히 여기면서 일어나게 되는 변화입니다. 세상이 추구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받아 들일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변화 입니다.더 싸고 더 쉽게 그리고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우리는 머리를 짜내면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해도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해도 내 인생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고 나름대로 잘 굴러가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뻑뻑 거리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무리가 없이 부드럽게 지나갔는데 웬지 부드럽지 않고 빡빡한 것이 느껴집니다. 한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꺼집어 내야만 나올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심각한 현상들이 이전보다 더 빈번하게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거기에다 자녀의 문제까지 겹쳐 집니다. 그런데 내 건강이나 가족들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웃 사람들 간의 문제가 일어나게 되고 내 신앙생활의 문제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12년 전 도요타 회사가 형편없이 무너졌던 것과 같은 일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날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형편없이 무너지게 된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하면 옛날처럼 다시 회복될 수 있는가 하는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평상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하는 한 여인의 간청을 한마디로 거절하십니다. 거절하신 것 뿐만 아니라 그 여인에게 개 라고하는 치욕적인 단어까지 사용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평상시에 보이시는 행동이 전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동안 너무 스트레스가 쌓여서 이 여인에게 매몰차게 대했던 것입니까? 그런데 결론을 보시면 이 여인의 딸은 귀신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29절 후반부와 30절입니다. 29.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귀신이 나갔더라’ 그러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이 행하시는 구원과 회복의 원리를 배울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주님이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원리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구원과 회복의 원리는

1.내 육신보다 더 가치있게 여기는 그 무엇이 내게 있어야 합니다.

25절입니다. “25.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어린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인생이 불행한 사람은 못살고 못 배우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아닙니다. 돈 많고 많이 배우고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중에도 불행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진실 이라는 여배우가 못생기고 돈이 없어서 자살한 것이 아닙니다. 성공하지 못해서 자살 한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내 이 육신보다 그리고 내 돈 보다 내 건강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 내게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그것이 내 행복을 좌우합니다.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자신의 미모나 육신을 넘어서는 더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면서 목마른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세리장 삭개오에게는 돈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 이 사람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내 이 육신과 내가 가진 물질보다 더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가진 이 육신 이 물질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 있는 사람들은 인생을 그냥 살지 않습니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사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내 이 육신 내 돈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그 무엇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하다가 대부분 중간에 그만두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것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내 이 육신보다 내 돈보다 나에게 더 소중한 것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내 이 육신이 편하고 내게 물질과 건강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에게 있어서 불행이 있다면 물질보다도 자기 육신보다도 더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그리고 그 어린 딸은 이 여인에게 있어서 돈보다도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딸에게 더러운 귀신이 들렸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자기의 생명을 바꾸어서라도 살리겠다라고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사실 부모라고 한다면 자기 자녀를 다 귀하게 여깁니다. 자기 자식 귀하게 여기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하면 모두가 다 자기 자식을 귀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자기 자녀를 자기 육신과 자기의 모든 물질과 바꿀만큼 더 귀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부모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에게는 귀신 들린 그 딸이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존재이었습니다. 자신의 자존심과 자신이 가진 물질보다도 훨씬 더 소중했고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딸이 구원을 받아야 이 여인의 인생도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하는 사실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 이 육신보다 내 이 물질보다 더 귀하고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 내게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구원과 회복의 원리는

2.자존심과 인격에 상처를 주는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 귀신 들린 자기 어린딸을 고쳐달라고 간구 할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7절입니다. 27.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방인들을 향해 성경은 개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표현은 성경적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듣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마음에 굉장히 상처받고 자존심이 상하게 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에 이 여인은 이렇게 반응 했습니다. 28절입니다. 28.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여인이 한 말에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첫째로, 이 여인은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그사람 처럼 성숙한 신앙인은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넘어지는 대부분의 원인은 자존심 때문입니다. 자존심에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데…” “나를 이젠 무시하는 구나.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 “나를 어떻게 보았길래 이렇게 찬밥 대접이야...” 이렇게 자존심을 내세우는 생각을 하게 되면 결국은 넘어지게 됩니다. 올바른 판단을 할수 없게 되고 편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이 여인은 예수님이 하신 말에 상처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상처를 받습니까. 상처를 하도 받아서 성도들이 상처투성이가 아니라 피투성이입니다. 여러분, 상처는 안 받으면 그만입니다. 상처 주는 말을 해도 안받으면 됩니다. 사람들이 왜 상처를 받는가 하면 내 인격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상하면 그만 이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옳고 이치에 맞는 말이지만 편견을 갖고 듣게 됩니다. 이 수로보니게 여인도 지금 충분히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왜요? 귀신들려 고생하고 있는 딸을 고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존심이나 내 인격보다는 문제 해결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주님은 우리에게 내 자존심과 내 인격이 공격 받는 시험을 허용하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내 자존심과 내 육신의 장애물을 넘어설때만 역사하시는 그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으로 내 주변에서 내 자존심과 내 약점을 들추어낼려고 하는 일이 생길때면 주님이 준비해놓으신 큰 은혜가 있겠구나 라는 믿음을 가지고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구원과 회복의 원리는

3.구원의 길은 주님밖에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8절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28.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주여 옳소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개 라고 하는 소리를 듣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 이 여인이 이렇게 고백할 수가 있었던 것은 예수님 외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면 하나님의 일을 나름대로 잘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의사가 되면 병을 고칠수가 있고 상담자가 되면 심리적인 치료를 할 수가 있습니다. 변호사가 되면 경제적으로나 신분적으로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을 법정에서 해결해줄 수가 있습니다.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면 그사람의 생각을 바꾸어서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게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은 주님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옳소이다’ 라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러한 고백은 예수님이 아니면 더 이상 구원의 길이 없다고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아마 구원의 길이 다른곳 에도 있다고 이 여인이 생각 했다면 “뭐 이런 상식에 벗어난 사람이 다 있어” 한마디 던지고 예수님 곁을 떠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 외에는 자신을 구원해 주실 분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어떠한 말씀도 받아들일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절입니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자신의 생명보다더 더 귀한 어린딸이 나음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린딸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 여인도 더불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힙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우리는 테이블위에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밥상위에 있는 음식을 먹을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이었지만 불량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주님앞에 나갈때는 우리는 불량품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앞에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자세입니다. 때때로 주님께서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 내 자존심을 건드리게 하십니다. 또 말로 나에게 상처를 주게도 하십니다. 그래서 나를 좌절하게 만들어 차라리 그만 돌아서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일로 인해서 나의 자존심이 상하고 그래서 나의 고통과 아픔이 갑절로 생긴다 할지라도 이 한가지만은 꼭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만이 나를 구원하실수 가 있다 라고 하는 믿음입니다. 그래요. 예수님만이 나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회복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라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때 예수님께서는 테이블위에 있는 떡을 떼어서 나에게 주십니다. “이것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그리고는 포도주를 가지시고 나에게 주십니다.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바치는 내 피이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살과 피를 마실때 우리는 구원과 회복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예수님 께서도온갖 멸시와 부끄러움을 다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이전에 예수님은 제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위로가 필요했고, 도움이 가장 필요했을 때 제자들은 배신을 하고 다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다 받으시고는 십자가위에 매달리셨을때는 하나님 아버지조차도 그 아들에게서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얼마나 외로우셨겠습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겠습니까?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셨을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버림을 받았고 외로우셨고 자존심이 상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상처받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너무나 잘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 복음 16장 33절입니다. 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사실 예수님은 외로우셨지만 포기 하신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육신과 마음은 고통스러우셨지만 포기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자존심이 상하셨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요? 구원은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구원과 회복을 위해서는 어떠한 부끄러움과 자존심도 이겨내어야 한다는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어 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구원과 회복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고통이 없는 구원은 이세상에 없습니다. 아픔이 없는 회복은 없습니다. 내 자존심에 받은 상처로 인하여 아픔은 있다 할지라도 넘어지지 마십시다. 주님밖에 구원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 자신의 육신과 물질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존재가 딸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럼으로 이 육신과 이 물질보다도 훨씬 더 가치가 있고 귀한 이 영혼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주님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바라옵기는 ‘주님께서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시면 저에게는 큰 힘과 큰 소망이 됩니다’. 라고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심으로서 주님이 행하시는 크고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시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