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3. 떡이 없음이 문제가 아니다
<마가복음 8장 14-21절>
14.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8장 1-10절 까지 내용을 보시면 마가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비슷한 칠병이어의 사건이 나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장정만 5천명이상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았던 사건이었다고 한다면 칠병이어의 기적은 떡 7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4천명 이상 배불리 먹고 일곱 바구니가 남았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칠병이어의 기적 사건 이 일어난 이후를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려고 하는 모습은 없습니다. 이런 몇가지 차이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개의 기적이 보여주고 있는 공통점은 바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사건은 바로 제자들이 이렇게 두 번 큰 기적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는 점입니다. 이 칠병이어의 기적 사건 이후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칠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현장에서 먹고 남았던 그 떡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리고 배를 탄 것을 제자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이죠. 14절입니다. 14.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배에 떡 한 개 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제자들은 열두명인데 떡이 한 개밖에 없으니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은 걱정하면서 서로 수군대기 시작합니다. 16절입니다. 16.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자, 지금 제자들은 조금전에 떡 7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남자만 4천명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일곱 바구니가 남는 칠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는 성도님이 계시더라고요. ‘목사님, 떡이 일곱바구니가 남았는데 그 일곱 바구니는 누가 가졌갔습니까?’ 성경공부를 하다보면 이렇게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하시는 분이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더군요. 그 일곱바구니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제자들에게는 떡이 한 개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칠병이어 기적 이전에 제자들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도 더 많은 떡을 남긴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도 떡이 없자 제자들은 걱정하면서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두가지 기적 이외에도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시고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그리고 바다의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고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지만 제자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대다수 유대인들도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11절입니다.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시고 계시는 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계속 요구합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달라. 그러면 너를 믿겠다’ 이런식으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아픈 사람들에게는 병을 고쳐주셨지만 이러한 기적들이 예수님께 대한 신앙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무슨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까? 우리 인간의 육신의 필요와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에 우리가 참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은 아니다 라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육신적인 욕구를 채워주게 되면, 다시 말해서 잘먹고 잘살게 해주면 신앙생활을 잘해나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외면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잘해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신앙생활을 해나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을때는 제자들과 주변의 사람들은 환호하면서 예수님을 높이고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그순간이 지나고 그다음날이 되자 그들은 또 다른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더 이상 기적을 행하지 않게 되자 그들은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떡이 생길때는 찾지만 떡이 없고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이 떠난 것입니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떡이지 예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떡이 없게 되자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절입니다. 17.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내가 두 번이나 기적을 행하여 너희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였다. 그런데 떡이 없다고 걱정을 하면서 서로 수군수군하느냐. 아직도 나를 신뢰하지 못하느냐 이 마음이 둔한자들아“ 이런 속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둔하자들아‘ 이 표현을 요즘 속된 말로 한다면 ”야 이 멍청이들아“ 라는 의미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자들은 기억력이 떨어지는 멍청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어떻게 알수있나요? 그 뒤를 보시면 예수님께서 질문을 하시는데 제자들은 제대로 대답을 합니다. 19절 20절입니다. 19.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오병이어의 기적때 몇바구니가 남았느냐?' '열두바구니입니다'. '그럼 칠병이어의 기적때는 몇바구니가 남았지?' '일곱 바구니요'. 이렇게 제자들이 제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칭찬을 하셔야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1절입니다. 21.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진짜 멍청이들이구나’ 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두가지 기적의 사건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을 안 것이 아니라 비본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본질적인지를 알수 있습니다. 15절입니다. 15.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예수님께서는 지금 떡 한 개밖에 없어서 걱정을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떡이 문제가 아니라 누룩이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누룩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바리새인들의 누룩‘ 이고, 또 다른 하나는 ’헤롯의 누룩‘ 입니다. 누룩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보시면 누룩은 선한 것과 악한 것 두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악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전 5장 8절입니다. 8.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이렇게 누룩은 종종 악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는 악한것 즉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다시말해서 예수 당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요 메시아라는 증거를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표적도 보여 주시지 않으십니다. 12절입니다. 12.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 주지 않으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미 많은 표적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이적과 말씀을 통해서 당신 자신이 하늘에서 이땅에 오신 구원자요 메시야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문제는 표적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경직되고 교만한 마음이 표적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바리새인들은 다윗 왕과 같은 영광스러운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낮아지시고 낮아지시다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아지셨는데, 바리새인들은 왕처럼 높아지는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은 추구하는 방향과 길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 자신들의 틀을 만들어 놓고 그 틀에 맞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의 누룩‘ 은 그들의 교만과 경직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보다도 성경을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올바르고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처럼 교만하고 경직한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바리새인들의 누룩‘ 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헤롯의 누룩>
그렇다면 ‘헤롯의 누룩’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같은 내용을 기록한 마태복음 16장 6절을 보시면 헤롯의 누룩 대신 ‘사두개인의 누룩’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다르게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 그 의미는 같습니다. 왜냐하면 헤롯이나 사두개인들은 모두가 지극히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당시 헤롯 왕의 가문은 로마 황제의 위임을 받아 유대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헤롯 대왕이 죽은후 세명의 아들인 헤롯 안디바, 헤롯 빌립, 헤롯 아켈라오 이렇게 세명이 그당시 유대나라를 나누어서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이 헤롯 왕들은 하나님의 뜻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권력과 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좋은 예가 헤롯 안디바가 자기 동생 헤롯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유혹해 이혼하게 하고 결혼했던 일입니다. 헤롯왕들은 너무나도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사독의 후예들로서 일종의 정치집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그당시 가장 높은 정치기관이라 할수 있는 산헤드린 공회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철저히 현실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세도, 천사도,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종교적인 아집과 교만에 빠진 사람들이라면 사두개인들이나 헤롯집단은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욕망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할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이나 헤롯이나 사두개인들이 가진 누룩에서 볼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불신앙 입니다. 물론 그들중 바리새인들은 믿음이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잘못된 신앙은 불신앙입니다. 그들에게 참된 신앙이 없었기에 주님 보시기에 악했던 것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주님이 보시기에 악한 누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불신앙이라고 하는 누룩’ 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떡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책망하신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이나 배불리 먹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그 떡과 물고기를 직접 나누어 주었고, 자기들도 먹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떡이 하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멍청한 놈들아” 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한국 식으로 말하자면 ’너희들 까마귀 고기 먹었냐? 조금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말이야“ 라고 책망하신 것이죠.
오래전에 인터넷 유투브에서 재미있는 동영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약 두 살정도 된 아기가 엉거주춤 서있는데 엄마가 벽뒤에 숨어있습니다. 그런데 아기 눈에 자기 엄마가 안보이니까 아기가 울먹울먹 거리면서 울려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벽뒤에 있다가 얼굴을 내미니까 아기가 웃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다시 얼굴을 벽뒤로 숨깁니다. 그래서 엄마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 아기가 다시 울먹울먹하면서 울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얼굴이 보이니까 웃고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 울려고 하는 그런 동영상입니다. 아마 예수님의 눈에는 제자들이 이 한 두살난 아이처럼 보였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떡이 있으니까 좋아하고 환호하다가 떡이 한 개밖에 없으니까 걱정하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 제자들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이 없음을 책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떡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문제 해결자가 되십니다. 모든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없다면 가진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없어도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 삶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떡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 버린것이 아닙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에 있었던 것입니다.
떡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 육신의 배를 채우는 양식입니다. 조금 더 범위를 넓혀서 적용시켜본다면 이 떡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삶의 방식과 원리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렵고 힘든일을 만날때마다 이렇게 말을 할때가 있습니다. ‘다 내가 떡을 가져오지 않아서 그래.....’. 다른말로 적용시켜본다면 “다 내가 배우지 못해서 그래, 내가 그때 그당시에 준비를 하지 못해서 그래, 내가 돈을 모아놓지 못해서 그래. 내가 참지 못해서 그래”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푸념 할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면에서 볼 때 사실이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말과 믿음의 생각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못하고 우리가 준비하지 못하고 설사 부족함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걱정할 것 없다라고 하는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떡을 가져오지 않고 준비를 하지 못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에 있습니다.
광야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가루 반죽 조금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출애굽기 12장 33, 34절 입니다. 33.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34.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그당시 애굽사람들은 자신들의 장자가 죽는 사건이 생기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빨리 내보내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발효되지 않은 가루 반죽을 담은 그릇을 가지고 급히 나오게 된 것입니다. 계속해서 뒤에 나오는 12장 39절을 보시면, 39.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 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라’ 아무런 양식을 준비하지 못하고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발효되지 않은 가로 반죽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떡 반죽이 며칠이나 갔겠습니까? 음식이 금방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4십년을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셨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 13-15절입니다. 13.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14.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그러니까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믿음은 이것입니다. ‘내게 떡은 없지만 하나님이 날마다 먹여주신다’ 이 믿음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사람들을 보시면 자기 인생의 배낭에 떡은 없어도 믿음만은 반드시 넣어 다녔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번제로 드릴 양을 가지고 가지 않고 모리아 산을 올라갔습니다. 그때 아들 이삭이 묻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드릴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때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야’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고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양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또 다른 이삭을 준비하고 계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부활을 통해서 아니면 그 어떤 방법으로든지 아들이삭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를 보십시오 극심한 흉년시기에 사렙다의 과부 집으로 보내심을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자기도 사렙다 과부에게도 아무런 음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자기 자신과 과부의 가족이 먹을 음식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 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엘리야의 믿음대로 흉년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과부의 집 가루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게 하셨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블레셋의 장군인 골리앗에게로 나아갈 때 어떤 창이나 칼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골리앗을 쓰러지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진 문제점의 본질은 떡이 아닙니다. 떡이 부족한 것도 아니요 떡을 가져 오지 않았던 실수도 아닙니다. 주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떡이 없다고 걱정합니다. 풍랑이 일어나면 풍랑이 일어난다고 걱정을 하겠죠. 떡이 없고 풍랑이 일어날 때 저와 여러분 곁에 계신 주님께 간구하고 문제 해결을 받아야 하겠다는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배낭에 먹을것이 많다 할지라도, 남이 부러워할 만한 것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지혜롭지 못한 멍청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 떡이 한 개밖에 없다 할지라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해결하실 것이다라고 하는 믿음이 있다면 많은 것을 가진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배낭에 내게 필요한 것들이 부족하고 없다 할지라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주님만이 우리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신다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