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24. 사탄이란 말을 들은 이유

Author
kgmcc
Date
2021-11-24 02:15
Views
9
본문 : 마가복음 8장 27-38절

날짜 : 2021년 11월 24일

 

<마가복음 827-38>

27.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침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 마을을 다니시는 중에 갑자기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이죠. 27절입니다. 27.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리고 이 질문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질문을 하십니다. 29절 전반부입니다. 29.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렇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가지 질문을 하시는 장면이 본문에 나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고 또 다른 하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지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럼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심오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뇌와 수행속에 인생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믿고 확신하며 살아갈 때 인생의 장애물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갈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이 하신 이 두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 사람들이 주님을 보는 시각

자 그렇다면 그당시 예수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28절입니다. 28.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침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그당시 예수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침례 요한 이나 엘리야 혹은 선지자 중의 한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한은 그당시 가장 위대한 설교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요한의 설교를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 주변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 요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회개를 하면서 요단 강가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침례 요한이 죽은 이후에 등장하신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 중에는 이전에 위대한 설교자이었던 침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 라고 생각 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능력의 선지자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엘리야가 한번 기도하니까 3년 6개월동안 닫혀있던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열려진 하늘 사이로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불이 내려 오기도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기도하시니까 닫혔던 소경의 눈이 열리고 듣지 못하던 귀머거리의 귀가 듣기 시작 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능력을 본 사람들 중에는 능력의 엘리야가 다시 살아났다라고 생각 했던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선지자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당시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침례요한 이나 엘리야 혹은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나 엘리야나 선지자는 모두 메시아를 준비하던 사람들이지 메시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당시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나 메시아 라고는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와 같은 인물로 보고 있지 구세주나 메시아라고는 보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 제자들이 주님을 보는 시각

이어서 예수님께서 두 번째 질문을 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에 제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29절 후반부입니다. 29.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같은 내용이 있는 마태복음 16장을 보시겠습니다. ‘16.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에서는 보다 더 구체적으로 대답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주변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아는 것 보다는 제자들이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올바로 증거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잘못 알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제자만큼은 예수님을 올바로 알고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생활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올바르게 증거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시고 역사하신 일에 대한 경험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주님이 이렇게 하셨다 라고 하는 간증꺼리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어지는 것이지 이론이나 지식을 통해 알게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경험을 통해 아는 것과 지식을 통해 아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두 남녀가 결혼을 하기전과 결혼한 이후라 할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기 전에 데이트를 하면서 서로를 알고 있는 것과 결혼한 이후 같이 살면서 서로 알고 있는 것은 그 깊이나 차원에서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결혼하기전에 자기 아내가 천사와 같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보니까 천사와는 다르구나 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자기 남편이 든든한 기둥과 같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까 벌레 한 마리 잡지 못하는 겁쟁이 구라 라고 하는 사실을 아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누구로부터 정보를 듣고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관계를 하면서 얻어지게 되는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동안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풍랑이 일어나고 있는 갈릴리 바다 위를 걷게 되는 경험도 했고 그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사건도 경험했습니다.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경험도 했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질문 하실때 제자들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오병이어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할때 그 능력을 경험했던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내가 갈릴리 풍랑을 잠잠하게 하고 내가 바다 물위를 걸어 다닐 때 그 현장을 지켜보았던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내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치고 그리고 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리는 것을 본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에 제자들 중에 베드로가 제일 먼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여기서 ‘그리스도‘ 라는 단어는 ’메시아’ 와 같은 뜻입니다. ‘그리스도‘ 나 ‘메시아‘ 의 원래 의미는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 라는 뜻이 있습니다. 구약을 보시면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세 종류의 직책을 가진 사람입니다. 첫째는 선지자 이고 둘째는 제사장이며 마지막으로 왕 입니다. 그당시 이 세 직분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에서 선지자가 되십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지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 속죄의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에서는 제사장이 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왕이 되십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 시니이다“ 라고 한 이 고백은 바로 ”주님은 기름부으심을 받은 선지자 이시요 제사장이시며 왕 이십니다” 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베드로가 한 이 대답은 예수님과 관계하지 않고,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나올수 없는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제자란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과 관계를 하면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경험한 사람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제자들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예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행하시는 일을 경험하게 되는 일이 내게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을 올바르게 알고 올바르게 증거하며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증거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0절과 31절입니다. 30.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비로소‘ 라는 이 단어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이전에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비로소 제자들에게 알게 하신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내가 버림을 받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버린 바 되어‘ 둘째는 그래서 ’내가 죽임을 당해야 한다’ 것이죠 ‘죽임을 당하고’ 마지막 세번째는 ’내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 는 것입니다.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그런데 왜 이런 말씀들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시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말은 좀 전에 살펴보았지만 예수님은 선지자이시오 제사장이시오, 왕이십니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만 제사장이 하는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앞에 나아가 백성들이 지은 죄를 속죄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사장은 속죄제물을 죽여서 하나님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준비한 제물은 바로 ‘자신의 몸’ 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이끄시고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앞에 나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속죄제물이 되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제사장이 되시면서도 왕이 되십니다. 그리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를 통치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만일 예수님이 살아계시지 않으신다고 한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려도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예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서 죽임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신후에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비밀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을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항의했습니다. 왜요?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3절입니다. 33.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 무엇이 사람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의 반대가 사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지게 될 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일은 그 반대로 이땅에서 이 세상 나라에서 이루어지게 될 일이죠. 보다 구체적으로 오늘 본문에서 사람의 일이란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 정부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일입니다. 로마를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이 세계 최 강대국가가 되게 하는 것이 사람의 일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예수님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니까 예수님을 붙잡고 따졌던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뒤로 물러가라’ 라고 말하시면서 꾸짖으십니다.

자 이 베드로는 좀 전에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라는 위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곧 이어서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내뒤로 물러가라’ 라고 하는 아주 혹독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구세주요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나갑니다. 하지만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인간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갈때가 많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그런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따졌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죽으시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면 이 나라가 어떻게 로마정부로 부터 해방이 될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왕이되셔서 이 나라를 로마정부로부터 구원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의 영광을 다시한번 누릴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죽으시면 안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예수님께 따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사탄이 주는 생각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탄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갈 때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우리 인간 중심이 되어 살아가게 만듭니다. 하늘나라가 아니라 세상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합니다. 물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나가면 궁극적으로 우리자신이 가장 유익하게 하고,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 이루어질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인간의 소망과 바램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안에 있을때 이루어질 때 의미가 있고 가치가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자신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가진 그 소원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간이 지은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제자가 되는 길은 인간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4절입니다. 34.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의미는 내 생각이 있고 내 소망하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것을 의미 합니다. 내 생각과 내 소원이 다르다 할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순종해서 따라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뜻과 자신의 바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할수만 있다면 이 죽음의 잔을 내게서 그냥 지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소원과 바램을 버리시고는 “내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합니다. 하지만 내 소원과 내 바램이 있지만 그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 하는 삶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 생각과 내 바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우리에게 고통과 손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만물을 움직이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지극히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아갈 때 이 길은 가장 선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축복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때 지금 당장은 고통스러울수가 있고 손해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면 결국에는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의 삶을 가장 유익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손해가 되는 일을 절대로 시키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믿음을 가지고 멀리 내다보시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35절입니다. 35.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후에 부활하시고 영광을 얻으신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볼때는 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고 절대로 손해보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왜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38절입니다. 38.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끄러워 하시게 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지옥의 캄캄한곳으로 떨어져 고통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주님이 하신 말씀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 본문의 내용을 깊이 묵상해보면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은 했지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살았던 삶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도 지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던 그 삶을 의미합니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마지막날에 주님께서 나를 보시면서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것에 있습니다. 이세상에서 아무리 잘먹고 잘살고 높은 자리에 있었다 할지라도 마지막날 주님이 나를 부끄러워하신다면 그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 인생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살아간 인생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십시다. 내자신이 원하고 내자신이 바라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큰 틀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마지막날 주님이 나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인정하여 주시는 성공적이고 축복된 인생의 길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