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25. 특별체험이 필요한 이유

Author
kgmcc
Date
2021-12-01 04:01
Views
34
본문 : 마가복음 9장 1-13절

날짜 : 2021년 12월 1일

 

<마가복음 9장 1-13>

1.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2.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에서 일어난 사건은 높은 산위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그 용모가 변화되는 ‘변화산 변모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4복음서에 전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는 뜻입니다. 산의 이름이 변화산이기 때문에 변화산 변모사건으로 불리는 것이아니라 그 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되셨기 때문에 ‘변화산 변모 사건’ 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게 변하시고 동시에 옷도 하얗게 빛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가운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제자들이 목격을 합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산에서 아주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2절입니다. “2.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엿새후에’ 지난주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두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고 또 다른 하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두 번째 질문에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죠.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베드로가 이런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한 이후에 엿새가 지났다는 것입니다. 엿새가 지난후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갑니다.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성경학자들은 이 산을 갈릴리 바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다볼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볼산의 의미는 높은 산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 볼수 있을 만큼 높은산이라고 해서 다볼산으로 불려졌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기억하시기가 쉽겠습니다. 지금은 이 다볼산에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하신 것을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1924년도에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세운 교회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세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본 아주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제자들이 경험을 했던 이런 특별한 변화산의 체험이 왜 필요했을까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제자들에게 왜 이런 ‘변화 산의 특별한 체험’이 필요했습니까?

1.믿는 성도들의 소망을 위해서 입니다

2절 후반부와 3절 말씀입니다.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셔서 사시는 동안에 어느정도는 자신의 신적인 영광을 제한하신채로 생활을 해오셨습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예수님이 자신의 본래 영광을 그대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에 광채가 났습니다. 옷뿐만 아니라 그 얼굴에도 광채가 났습니다. 같은 내용이 기록된 마태복음 17장 2절 입니다. 2.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이 난 그 영광스런 상태 속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대화를 하시는 모습을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얼굴은 그사람의 자체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학교 졸업식 사진 앨범을 보면 이름이 있고 그위에 그 사람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사람의 이름이 있는데 발바닥이나 손바닥을 찍어놓은 앨범 사진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전부 나올수 있도록 위치조정을 하고 난이후에 사진을 찍습니다. 발바닥이나 손바닥을 모아놓고 단체사진을 찍는 경우는 없습니다, 자기 얼굴이 안나왔는데 손바닥이 잘 나왔다고 사진을 그사람에게 주는 사진사는 없습니다. 얼굴이 잘나와 있으면 다리나 손부분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얼굴은 그사람 자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원래 영광스런 모습은 바로 해같이 빛나는 얼굴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훗날에 저와 여러분의 영혼이 이 육신을 떠나 천국을 가게 될 때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게 될때 가장 빛나는 곳을 향해 가시면 됩니다. 가장 빛나신 곳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도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면 얼굴에 광채가 나게 되어있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출 34장 28절과 29절 입니다. “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29.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40일 동안 하나님과 함께 지냈던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얼굴을 빛이 나게 해주는 최고급 화장품은 아모레 화장품이나 에스티 라라 화장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주님앞에 가게 될 때의 모습을 고린도 후서 3장 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 3장 18절 말씀입니다.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해같이 빛나는 얼굴로 변한다는 의미)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것은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이 지키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신학적인 용어로 영화의 교리(Doctrine of glorification)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해같이 빛난 얼굴로 변화가 되어 저 천국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질이 다른 모습으로 저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지금 우리의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반점이 생긴다 할지라도 그날에는 해같이 빛나는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믿는 성도들 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날 제자들에게 변화산에서 변모하시는 모습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왜 이런 ‘변화 산의 체험’이 필요했습니까?

2.주님께 더욱 더 순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7절입니다. “7.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왜 이런 소리가 났습니까? 베드로가 이상한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5절입니다. 5.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주여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또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짓겠습니다“ 해와 같이 빛나게 변하신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를 하시는 장면을 본 베드로가 너무 흥분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때 구름속에서 나오는 이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라는 의미이죠.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은혜를 받게 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주고 있는 교훈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변화 산에 올라가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화를 보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구약의 위대한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까지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너무너무 좋아서 죽을뻔 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 예배에서나 부흥 집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았다면 ‘야 너무너무 좋았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입니까? 은혜를 받고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면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것이 은혜를 받고 특별 체험을 할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진짜로 특별한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간증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받은 특별한 경험보다는 경험을 받고 난 이후에 나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건에 대해서 베드로는 먼훗날에 이렇게 간증 합니다. 성경적인 간증이 어떤 것인가 베드로의 간증에서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이 변화산 사건이 있은지 약 30년이 지난후에 베드로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베드로 후서 1장 16절에서 19절입니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이제 순교를 앞둔 베드로는 약 30년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본문의 사건을 간증합니다. 그런데 간증을 하면서 내가 주님의 변화된 모습이나 하늘에서 난 소리를 들었던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다시 보시면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말씀을 의미) 이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 어두운데를 비추는 등불이 되게하고 샛별이 되게 하라. 그래서 그 말씀이 너희들의 앞길을 인도할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라’ 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베드로가 얼마나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까? 하지만 베드로는 그 놀라운 경험담을 자랑하면서 신앙생활하기 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생활에 더욱 힘썼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면 결론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길로 나타나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내게 베풀어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말미암아 더욱더 주님의 말씀을 따라갈수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자들에게 왜 이런 ‘변화 산의 체험’이 필요했습니까?

3.고난을 이길 힘을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8절입니다. “8.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제가 어릴 때는 자주 꿈을 꾸는 편이었습니다. 꿈을 자주 꾸다 보니까 지난번에 꾼 꿈의 내용이 계속 연결되어서 그다음에도 꿀때가 있었습니다. 예를들어 갑돌이라는 친구로부터 영화구경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야 좋겠다 라고 하는 말을 했던 꿈을 꾸었다면 그다음에 꿈속에서 갑돌이를 만나게 되면 제가 이렇게 묻습니다. ‘야 너 지난번에 영화관에 간다고 했는데 그 영화 어때? 재미가 있더냐?’ 이런식으로 연결이 되는 꿈을 꾸다보니 나중에는 갑돌이가 정말 극장에 갔는지 아니면 꿈이었는지 혼돈을 할 만큼 저는 어릴 때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그런데 꿈을 꾸는 것 중에 제일 아쉬운 꿈은 잔치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려고 하다가 잠에서 깨어난 경우입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제가 좋아하고 먹고 싶어하는 음식이 풍성하게 있었는데 그만 잠에서 깨어나보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죠. 그럴 때 얼마나 제 마음이 허전하고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또 어떨때는 어떤 할아버지가 제게 돈을 막 주는것입니다. 그래서 주시는대로 그 돈을 받아서 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주시는 돈이 너무 많아서 주머니에 다 넣지도 못하고 돈을 책 갈피안에도 제 이불속에도 집어넣었습니다. 정신없이 돈을 여기 저기에 집어넣다가 꿈에서 깨어 났습니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혹시나 하고 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기도 하고 책가방이나 이불속을 뒤져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때는 공허하고 허탈한 마음이 들더군요. 이와 비슷한 감정을 제자들이 가졌을 것입니다. 그 산에서 제자들은 정말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용모가 바뀌었고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 엘리야와 모세를 보았습니다. 그순간에 제자들은 정말 황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과 자기들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전과 똑같이 평범하고 초라한 모습입니다. 마치 제가 어릴 때 멋진 꿈을 꾸었다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느꼈던 것 처럼 제자들도 허전하고 허탈한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꿈을 꾸고 나면 허전한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좋은 느낌은 남아 있었습니다. 또다시 그 잔치집에 갈수 있을려나? 또다시 돈을 막 퍼다주시는 그 인심이 좋으신 할아버지를 만나게 될려나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때도 있었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하다 할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특별한 은혜와 체험을 하게 되면 그다음날부터는 나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게 될 것이다 라고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에서는 그 반대의 일이 더 많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특별한 은혜와 체험이 있게 된 이후에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현상을 역으로 생각을 해보면 내게 다가올 어려움을 이기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은혜를 주시고 먼저 귀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다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이 그 변화산을 내려가고 난 이후에 예수님 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엄청난 고난을 예고하십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고 난 후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7장 22절 23절입니다.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고 난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제 곧 왕이 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각자 높은 자리를 차지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던것은 예수님이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도망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특별한 변화 산의 체험을 허락하신 이유는 바로 그 변화 산에서 본 그 영광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다가오게 될 고난을 극복하라고 하신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변화 산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그 영광은 우리가 앞으로 누리게 될 영광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에 그런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면 오늘은 좀 힘들어도 오늘은 좀 아파도 견딜 만 하지 않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울때 승리할수 있는 방법이 바로 오늘 본문 8절 말씀입니다. ‘8.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 우리가 잘되든지 못되든지 기쁨속에 있든지 슬픔속에 있든지 결론은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 8장 18절입니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여기 대조적인 두 개의 단어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재와 장차> 그리고 <고난과 영광>입니다. 내가 현재의 고난에 주저앉지 말아야 할 이유는 바로 나에게 장차 예비 된 영광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영광을 바라보고 살아갈 때 우리는 지금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은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세상에 오래 살았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비실 비실 거리면서 오래 오래 살아가는 것 보다는 차라리 하루라도 일찍 고통과 아픔이 없는 천국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일수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아직 이땅에 남아있는 것은 주님이 주시기 원하시는 그 상급을 받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 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매달려야 할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는 도중에 쓰러지셨습니다. 그때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서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다가 넘어지셨다면 우리도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 구레네 시몬을 보내주신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곁에 나를 도울 구레네 시몬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십자가가 끝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그분의 마지막 계획이 아닌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승리에 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내가 해같이 빛나는 모습으로 이땅과 저 천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믿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의 고난과 고생은 우리의 마침표가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쉼표인 것을 믿으십시다. 도레미파 솔라시도 되풀이 되지만 한옥타브가 높아진 도레미 파솔라시도 임을 기억하십시다. 어둡고 침침한 고난의 구름위에 떠있는 밝고 빛난 태양을 소망하며 힘든 순간이 있다 할지라도 저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극복할 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