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6. 세종류의 사람들이 가진 믿음
<마가복음 9장 14-29절>
14.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지난주에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들을 데리시고 높은산에 올라가셨던 예수님께서 기도 하시는 동안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셨던 ‘변화산의 변모 사건’ 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영광 가운데 계실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너무 흥분하고 감격해서 “예수님 제가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세분을 모시고 살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정신없이 말한 베드로가 한 말을 무시하고 그 산을 떠나 아래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그 산에서 내려오신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예수님과 세명의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보니 산 아래 있었던 나머지 9명의 제자들이 서기관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고 주변의 무리들은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14절입니다. 14.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서기관들이 그들과 (제자들이죠)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서기관들과 제자들이 서로 다투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다투고 있는 것입니까? 그뒤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그 내막을 알수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자들에게 와서 귀신 들린 자기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의 요청을 받은 아홉 명의 제자들은 합심해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자기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귀신이 떠나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그이전에 귀신을 쫓아낸 적이 있었습니다. 언제입니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마을로 보내실 때 그때 제자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낸적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 12, 13절입니다. 12.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그때는 많은 귀신들이 쫓겨나갔는데 이번에는 귀신이 쫓겨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서기관들이 기회는 이때다 싶은 마음으로 제자들을 비난하고 조롱했던 것입니다.
서기관들이 빈정대고 조롱하는 말을 듣게 되자 제자들이 그냥 가만있지 못하고 몇마디 대꾸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자들과 서기관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은 구경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세명의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러자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에게로 모여듭니다. 그리고 그 무리들 중의 한명이 그동안 일어났던 일을 예수님에게 알립니다.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아들을 데려왔는데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게 되자 이렇게 서기관들과 지금 논쟁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9절입니다. 19.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그리고 그 귀신 들린 아이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십니다. 그후에 예수님께서는 그 장소를 떠나 어느 집에 들어가게 되셨는데 그제서야 제자들은 자신들이 귀신을 왜 쫓아내지 못했는지를 예수님께 묻습니다. 28절입니다.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29절입니다. 29.이르시되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자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두가지라 할수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이고 두번째는 기도입니다. 19절을 보시면 예수님이 ‘믿음이 없는 세대여’ 라고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시고 29절에서는 ‘기도외에 다른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수 없느니라’ 기도의 능력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믿음과 기도의 중요성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믿음과 기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 믿음
오늘 본문을 보시면 세가지 종류의 사람들과 그들이 가진 믿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첫째는 서기관들과 무리들이 가진 믿음입니다.
서기관은 그당시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니까 당연히 믿음이 좋아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엔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19절입니다. 19.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같은 내용인 누가복음 9장 41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41.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패역이라는 말은 "순종하지 않고 거슬린다" 라는 뜻입니다. 표준 새번역 성경을 보시면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믿음이 없으니까 순종을 하지 않고 비뚤어지게 행동을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을 비롯한 주변의 무리들을 향하여 믿음이 없고 패역한 자들이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눈에는 서기관들의 어떤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까? 14절 후반부 다시 보시겠습니다. 14.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서기관들은 제자들과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왜요?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의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자 그 제자들을 비난하고 조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간에 논쟁을 벌이게 되었고 무리들은 서기관들이 하는 말에 동조하면서 구경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가진 신앙의 특징은 남의 잘못이나 허물을 보면 그냥 있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지적하고 비판해야 했습니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가만히 보고 있다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자 제자들을 비난하고 정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잘못된 점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나서서 고쳐주고 올바르게 인도해주어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이 바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남이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할 때 그부분을 지적 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부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이 있든지, 없든지 관계없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세상에서 영적인 리더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세상사람들을 보면 정말 비참한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아이는 어릴때부터 귀신이 들려서 말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간질로 고생하고, 불과 물에 자주 던지움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이 아이의 모습은 이 세상사람들이 영적으로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가 하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겉으로 보면 다들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때 우리 믿는 성도들은 그들을 올바로 인도할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 귀신들린 아이처럼 문제가 해결되어지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그럴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경우가 될 때 반드시 교회서 직분을 받은 성도들이 나서서 한마디씩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뭔가 해볼려고 열심을 낼 때는 가만히 있다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일이 꼬여지게 되면 그때 나서서 한마디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교회 지도자라면 따지기에 앞서서 먼저 문제 해결을 위해서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 오래 다닌 직분자들 일수록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처럼 문제를 지적하고 트집 잡는 행위를 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그일에 동조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가진 특징은 상대방의 약점을 발견했을 때 지적하고 비웃고 공격을 합니다. 왜요? 그들은 틀렸고 자기는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 외에는 세상에 온전한 존재는 없습니다. 사람이 하는 생각과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가 다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하는 일은 다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생각하고 남의 약점과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정죄하는 그 행위는 믿음이 없는 자요 패역한 자들이라고 주님을 보십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의 특성은 서기관처럼 남의 실패를 볼 때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지적하는 서기관들이나 그것을 동조하는 무리들인 것을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을수 있습니다.
둘째로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가진 믿음입니다.
24절입니다. 24.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어떻게 보면 앞뒤 말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라고 말해놓고는 곧 이어서 ‘나의 믿음이 없는 것을 도와주시옵소서‘ 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믿음이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까?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주님이 주셔야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질려면 반드시 주님과 관계를 해나가야 얻을수 있습니다. 이성이나 지식으로 예수님이 구세주요 구원자이심을 깨달을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참 믿음은 관계를 통해서 예수님을 경험해 나가면서 알아야 합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서기관들을 비롯해서 주변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자신에게는 믿음이 없지만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중에도 두 종류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믿음이 없음을 아는 믿음이 없는 사람과 자신이 믿음이 있는줄 아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참 믿음을 가질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소망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줄 알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남을 비난하고 판단하며 살아가다가 결국은 믿음이 없는 상태로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직분자들이 믿음이 있는 줄 생각하면서 이사람 저사람 신앙행위를 비판하고 판단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참된 믿음을 가지게 되는 일은 주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왜요? 주님이 믿음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믿음의 완성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자, 귀신이 그 아이의 몸에서 떠나가게 되고 아이가 가진 병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일로 인해 그 아이의 아버지의 믿음은 생겨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믿음은 성장하여 갔을 것입니다. 이렇게 참 믿음은 반드시 예수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반드시 주님이 역사해주셔야만 생기게 됩니다. 그럼으로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오늘날 더 큰 문제입니다. 예수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이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성도들이 상처를 받고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의 현 모습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스탠리 목사님이 이렇게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이 오른손이 예수님이고 왼손이 성도라면 성도와 예수님은 이렇게 서로 손가락을 꽉 끼워서 관계를 맺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른손이, 즉 예수님이 올라가면 왼손은 즉 성도는 이 오른 손과 예수님과 서로 꽉끼어 있기 때문에 자연히 올라가게 되고 예수님이 내리시면 자연히 내려가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관계없이 이렇게 따로 떨어져서 자기가 올라가고 자기가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오른손은 가만히 있는데 왼손은 오른손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올리는 것과 내리는 것이나 예수님으로 인해 올라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이 모두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선 우리 믿는 성도들은 믿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 믿습니다 하지만 내믿음이 없는 것을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솔직하게 간구하면서 주님을 의지할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제자들이 가진 믿음입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28절입니다. 28.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29절입니다. 29.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그런데 제자들의 같은 질문에 마태복음 17장 20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로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알 만큼만 있어도 이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서기관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없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믿음이 작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작지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 가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정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귀신을 내쫓을려고 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서기관들이나 주변에 있는 무리들처럼 그냥 가만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이 잘못된 것을 비판하거나 비웃는 행동은 믿음이 하나 없어도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를 쓰고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입니다. 믿는 성도들이 주일날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는 것은 어느정도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 생활을 하는동안 문제가 생길 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라고 있는 결과가 생기지 않는 것은 바로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이 작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믿음이 작은 성도들 때문이 아니라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없는 자들 때문입니다. 그사람들이 믿음이 작은 자들을 정죄하고 비판하기 때문에 교회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을 믿느냐 하는 믿음의 대상에 있습니다. 기독교가 믿는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내 자신을 믿을 수가 있다면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한계를 알고 나의 부족함을 알고 나의 죄를 알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실제상으로는 나를 믿고 있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아마 제자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짝지어서 마을로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 귀신을 내쫓을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주어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았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들은 성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마침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모두 다 있었다면 베드로가 대표로 기도하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주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지금 없습니다. 야고보도 없고 요한도 없습니다. 자신들도 예전에 귀신을 내쫓은 경험도 있는데다가 요청도 들어왔으니까 이번기회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귀신을 내쫓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갈 지어다‘ 라고 외쳤을것입니다. 그런데 귀신이 안나가는 것입니다. 실패한 것입니다. 왜요?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고, 기도한다고 하지만 이 아홉명 제자의 마음 밑바탕에서는 우리도 뭔가를 할수 있다라고 하는 자기 과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이 믿는 성도들이 실패하는 순간 입니다. 신앙은 역설적입니다. 내가 약함을 느끼는 순간,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는 순간, 주님은 나를 강하게 만드십니다. 나의 무력함을 느끼고 나의 좌절을 느끼고, 그래서 하나님이 없이는 못 삽니다. 주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주님만을 의지 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작은 사람은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의지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자신의 능력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 기도
그러면 어떻게 하면 믿음이 성장할수 있습니까? 29절 다시 보시겠습니다. 29.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가수 없느니라’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나갈 때 작은 믿음이 성장하여 큰 믿음이 된다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길은 바로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가 문제를 해결합니다. 기도가 작은 믿음이 큰 믿음이 되게 합니다. 기도가 기적을 경험하게 합니다. 큰 믿음은 무엇입니까?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비율을 증가 시킬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에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반대로 기도를 안 할수록 자기 생각, 자기 경험 그리고 자기의 계획을 의지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입니다.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영어 성경을 보시면 anything과 everything이 대조 되어 나와 있습니다. anything 염려하지 말고 everything 기도와 간구를 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염려처럼 비생산적 인 것은 없습니다. 하루종일 염려해 보십시요. 그래도 문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바다속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염려를 중단하는 방법은 염려하지 말자 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요. 염려할 일이 생기셨습니까? 그때 이렇게 생각하십시다. ‘하나님이 나에게 기도할 제목을 주셨다’ 그럼으로 염려를 하는 시간에 기도를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겐 사실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이 겨자씨와 같은 믿음을 계속 유지해나가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 연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믿음의 기복이 있습니다. 오늘 믿음이 좋다고 해서 내일도 믿음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의 믿음을 내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늘의 능력을 공급받아야 우리는 온전한 믿음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중에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없습니다, 믿음이 없거나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뿐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믿음의 차이가 아니라 기도의 차이에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차이가 믿음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기도의 차이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신뢰하는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믿음이 작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남은 생애 주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다가 대부분 순교를 했습니다. 순교는 더 이상 온전히 신앙인다운 생활을 해나갈수 없을 때 행동하는 마지막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들은 작은 믿음이 있었지만 날마다 기도의 생활을 해나가면서 주님이 인정하는 제자로서 사명자로서 삶을 살아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해나가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문제의 극복을 위해 엎드려 기도하고 간구할 때 하늘문이 열릴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부어질 것입니다. 그럼으로 기도를 날마다 기도를 함으로 믿음을 성숙시켜나가야 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모든 일에 먼저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이 되심으로서 날마다 믿음이 성장하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