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28.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Author
kgmcc
Date
2021-12-22 02:55
Views
137
본문 : 마가복음9장 38-50절

날짜 : 2021년 12월 22일

 

<마가복음 938-50>

38.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2.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43.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없음)

45.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없음)

47.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을 세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막 9:38-40절에 있는 내용입니다. 38절을 보시면 제자 요한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38.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은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냥 두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한자다'

그리고 두 번째 내용은 막 9:41-48절에 있습니다.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행동의 심각성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말씀하시는 내용이 많이 과격합니다. ‘작은 자들중에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고, 손이나 발이 죄를 범하면 지옥에 들어간다’ 라는 식의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심판하신다면 세상에서 구원받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주 엄격하시고 무서우신 분으로 생각되어 지기도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내용은 막 9장 49-50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소금이니 소금의 맛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50절입니다. 50.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마 5장 13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패되어지고 변질되기 쉬운 이 세상에서 소금의 맛을 내며 살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세 가지의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면 첫째는 예수님을 따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작은 자 들중 하나를 실족하게 할 경우에 받게 되는 심판에 대한 이야기이고 마지막 세번째는 믿는 성도들은 소금처럼 신앙의 맛을 유지하고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내용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들간의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첫번째 이야기는 교회 밖의 사람들과의 관계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작은 자들과의 관계 즉, 사회에서 약자들과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이야기는 제자들끼리의 관계라 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데 만나게 되는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예수님께서 공통적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 사람들간의 관계

그런데 사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의 기본 원리는 경쟁에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을 통해서 위, 아래의 서열이 생깁니다. 경쟁에 의해서 부자와 가난한자가 생기고 경쟁에 의해서 승자와 패자가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를 살아가는 동안 경쟁자들과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볼때 제자 요한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어떤 사람을 비난한 행동을 우리는 쉽게 이해 할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믿는 크리스챤으로서 세상 사람들과 계속 갈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카톨릭이나 모슬렘 그리고 불교와 같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도 갈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게 보기는 하지만 우리와 같이 신앙생활을 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그리고 종교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크리스챤으로서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는 않는 것이죠.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작은 자’ 들과 온전하게 관계를 하며 살아가는것도 쉽지 않습니다. 42절 전반부를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2.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작은 자들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손과 발을 찍어버리고, 눈을 빼버려라’ 는 식으로 아주 과격한 내용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여기에서 작은자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지나 장애인들 그리고 노인이나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이 작은자들중 하나’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작은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홈 레스나 장애인들 그리고 노인들이나 어린아이들입니다. 한번 예를 들어보십시다. 하루는 어느 한 홈 레스가 저에게 와서 이렇게 요청을 했다고 하십시다. ‘목사님 저는 예수를 믿는 크리스챤입니다. 일주일 중에 하루만이라도 이 교회에서 잠을 잘수 있게 해주시겠습니까?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홈 레스는 작은자 들중의 하나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직접 말했으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를 믿는 이 작은자들 중 하나‘ 에도 속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사람의 요청을 거절하게 되면 저는 예수를 믿는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의하면 작은 자들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느니 차라리 돌을 목에다 매고 바다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와 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말씀하신 본문의 내용을 곧이 곧대로 따른다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이야기는 제자들 사이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50절 후반부입니다. 50.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서로 화목하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은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 라는 주제를 놓고 논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다툼을 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너희속에 소금을 두고’ 라는 말은 ‘함께 식사를 한다’ 는 것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당시에는 식탁 한 가운데 소금을 두고 모든 사람들이 같이 사용하면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누가 크냐 말다툼을 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소금을 한가운데 두고 서로 화목하게 식사를 하면서 지내라 라고 주님은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안에서 믿는 성도들끼리 누가 크냐 싸우지 말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는 뜻으로 우리는 적용시켜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세가지 이야기에 대해서 무조건 원만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야 한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이면 우리는 잘못 이해하고 있는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수님께서도 모든 사람들과 평화롭고 화목하게 지내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십자가 처형을 준비하고 계획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의미합니다. 얼마나 예수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길래 그사람들이 그당시 가장 잔인하다고 하는 십자가 처형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들과 무조건 좋은 관계를 맺고 화평하게 지내라 라고 하신 뜻으로만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 소금 맛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중에서 가장 핵심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소금의 맛‘ 이라고 단어입니다. 50절 다시 보시겠습니다. 50.소금은 좋은 것이 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의 맛은 어떻습니까? 네, 아시다시피 짭니다. 그게 본질입니다. 그런데 겉모양은 소금인데 그 맛이 달거나 시다고 한다면 그건 소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라면 제자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이면 크리스챤의 맛이 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입니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소금이다. 그러니까 소금의 맛을 내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중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시간에는 간단하게 소금이 가진 특징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소금의 특징

1. 소금은 자신이 부패되거나 썩는 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희생되어집니다. 만약 소금이 썩는다면 그 소금은 이미 소금이 아닙니다. 이처럼 세상의 소금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속에 물들어 자신이 부패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유명한 철학자인 키에르 케고르가 이런 예화를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지중해 지역에 살고 있는 야생오리들이 여름이 되자 노르웨이로 가기 위해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생 오리들이 네덜란드의 상공을 지나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느 농가의 뜰에서 집오리들이 평화롭게 모이를 줍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야생 오리들중 어느 한마리가 비행하는 것을 멈추고는 평화롭게 보이는 집오리 떼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러자 그 집오리들이 이 야생오리를 환영하면서 아주 풍성하게 대접을 해 주었습니다. 며칠동안 대접을 아주 잘 받은 이 야생오리는 이제는 원래 갈려고 했던 목적지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날개를 펴고 날려고 했지만 그동안 너무 잘먹어가지고 몸에 살이 붙고 무거워져서 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할수없이 거기서 한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되자 이제는 노르웨이에서 지중해로 되돌아가기 위해 날아가는 야생오리 떼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들오리의 마음은 웬지 허전해지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다가오게 되자 노르웨이로 가기위해 날아가는 야생오리 떼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꾸 해를 거듭하게 이제 더 이상 아무 감정도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나자 이젠 완전히 집오리가 되어서 그들과 똑같이 진흙탕 속을 헤매면서 살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예화는 세상과는 구별되고 다르게 살아야 할 크리스챤의 삶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러 지내다가보니 그들과 똑같이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소금의 역할은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내는것에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소금이다. 그러니까 소금의 역할을 하며 살아야 한다’

2. 소금은 맛을 냅니다.

만약 소금이 맛을 내지 아니하면 소금으로서의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소금의 짠맛을 내려면 먼저 내 마음에 평강을 가져야합니다. 기쁨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잠시 지내지만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될 천국 백성이다 라고 하는 소망을 가지고 이땅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은 너무 쉽게 소금을 만들고 구할수도 있었지만 옛날에는 이 소금이 아주 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옛날에는 일꾼들에게 돈 대신 소금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소금이라는 ‘salt’ 말에서 일군들에게 주는 봉급이라고 하는 ‘salary’라는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맛을 내는 소금이라 할지라도 소금만 먹으라면 먹겠습니까? 소금이 가치가 있는 것은 소금이 다른 음식과 합해서 녹아지고 같이 어울러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같이 무조건 화목하고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만이 소금의 진정한 역할은 아닙니다.

아무 맛도 없는 물에 소금이 들어가면 짠맛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아무 의미가 없이 단조롭게 살아가는 인간사회에 소금이 들어가면 ‘영적인 갈증’ 이 생겨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소금을 얻는 방법은 평상시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과는 조금 다릅니다.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해 근처에 있는 바위 소금을 캐서 물로 짠맛을 받아내고 그 짠물을 증류시켜서 소금을 만듭니다. 그리고 짠맛이 빠진 소금 결정체 모양만 갖춘 바위 소금 덩이리는 밖에 버립니다. 그래서 맛이 없어진 그 소금은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고 하신 말씀은 다른 사람의 인생 속에 그 맛을 심어 주라는 뜻이 있습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 이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주된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소금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각종 음식물을 소금으로 절여놓아서 보관할 수가 없었다면 오늘날 이렇게 인류가 많이 살아서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소금은 단순히 맛을 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없는 인생 속에 예수님의 맛을 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은 곧 죽어 가는 인생에 생명을 넣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생명되신 예수님의 맛을 주변사람들에게 전하여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3. 소금은 썩음을 방지합니다.

소금이 썩음과 부패를 방지하지 못한다면 그 소금은 이미 맛을 잃은 소금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같이 관계하면서 화목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소금이 주변의 음식물과 어울리지 않고 소금으로만 혼자 있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어울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같이 무조건 화목하고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만이 소금의 진정한 역할은 아닙니다. 소금의 가장 강력한 기능 중의 하나는 잘아시겠지만 ‘부패를 방지하고 썩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금의 역할을 온전히 하며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믿는 성도들을 고난과 어려움으로 단련시키시고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본문 49절입니다. 49.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여기서 불로서 소금 치듯한다는 말은 will be salted 즉 소금에 절여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소금에 절여지는 것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릴 때 곡식물에 소금을 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위기 2장 13절입니다. 13.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때 언약의 소금을 치는 이유는 제물을 정결하게 하고 그리고 온전한 제물의 맛을 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온전한 재물로 사용되어지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온전히 사용하시기 위해서 불로서 소금치듯 절이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불같은 시련과 핍박이 있을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시련과 핍박을 통해 단련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가족들과 모든 재산과 자신의 건강을 잃어버리고 난 이후에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 23장 10절입니다.

10.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요셉을 보십시오. 종으로 팔린 요셉은 오랜 시간동안 연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시편 105편 17-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7.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그의 말씀이(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그래요. 우리는 주님을 잘 믿으면 복받아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때때로 제자들을 시련과 어려움을 허용하셔서 성숙시키시기도 하십니다. 배추가 소금에 푹 절어져서야 맛있는 김치가 되듯이, 온전하게 예수님의 맛을 지닌 성도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은 믿는 성도들을 연단시키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맡겨주신 사역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때에야 그 인생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온천하 제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소금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것처럼 믿는 성도들이 신앙의 맛을 잃어버리면 기독교인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어집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모두 짠맛을 유지하고 있는 영적 소금이다라고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매 순간 순간 소금이 가진 맛을 잃어버리지 않는 소금으로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