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29. 어린아이아 같아야

Author
kgmcc
Date
2021-12-29 01:44
Views
127
본문 : 마가복음 10장 1-16절

날짜 : 2021년 12월 28일

 

<마가복음 101-16>

1.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2.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5.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11.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13.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두 가지 내용으로 나뉘어집니다. 첫째 부분은 1절에서 12절까지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이혼에 대한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13절에서 16절까지 내용인데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안으시고 난후에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첫 번째 나오는 내용이 부부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나오는 내용은 바로 자녀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와 두 번째 내용에 나오는 공통된 점이 있다면 바로 가정생활의 중요성에 관한 교훈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 첫 번째 이야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질문을 한 목적은 바로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2절 전반부입니다. 2.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내놓은 질문 내용은 무엇입니까? 2절 후반부에 있습니다. 2.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한 내용은 이혼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혼에 관한 내용을 가지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을 할려고 했던 것입니까?

구약 성경을 보면 모세 시대때 이혼을 허용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신명기 24장 1절입니다. 1.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그에게(아내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아내를 집에서 내보내도 된다’ 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중에는 보수계통인 샴마이 학파와 진보계통인 힐랄 학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수인 샴마이(Shammai) 학파는 아내의 수치스러운 일이란 간음을 했을 경우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간음을 하지 않는한 이혼을 하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진보인 힐렐(Hillel) 학파는 아내의 수치스러운 일이란 아내에게 발견되어지는 모든 약점이나 부족함이 이에 해당한다고 확대 해석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내가 밥을 태워도 이혼 사유가 되고, 늦잠을 자거나 잠잘 때 코를 골아도 다 이혼 사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힐랄 학파에서는 아주 쉽게 이혼이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샴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 이 두 학파는 이런 상반된 견해 차이로 인해 그당시 이혼 문제에 대해서 아주 격렬하게 논쟁을 해왔습니다. 그당시에 이 이혼문제가 사회의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도구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내의 수치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샴마이 학파나 힐렐 학파의 미움을 받게 될 것을 바리새인들은 계산을 하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한 것이다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샴마이 학파나 힐렐 학파 그 어느쪽도 아닌 가정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본래 계획을 근거로 해서 대답하십니다. 본문 6-9절입니다. 6.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결혼의 본래 목적이 무엇입니까? 7, 8절에 있습니다.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그 둘이 한몸이 될지니라’ ‘둘이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결혼의 본래 목적입니다. 결혼의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결혼은 어떻습니까?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합니다. 아니면 이 땅에서 좀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결혼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결혼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남이 하니까 자기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한 것들이 결혼을 하는 한가지 이유가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둘이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 결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둘이 하나 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가 된다. 두사람이 한몸이 된다. 이것은 결혼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하지 않고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불법 인 것입니다. 결혼을 통해서만 한몸이 될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부모와 자녀 사이가 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한몸이 될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자녀는 결혼하기 위해선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이사실은 부모와 자녀는 떠나고 갈라질수 있지만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기 때문에 떠나고 갈라질수 가 없다는 의미가 있는 것 입니다. 이렇게 결혼의 신성함에 대해 먼저 말씀하신후에 예수님께서는 그당시 샴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들이 각각 주장하는 그 이혼의 조건이 곧 이혼의 조건이 될수 없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9절을 다시보시면 9.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을 종합해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따라 남자와 여자는 결혼생활을 통해 하나가 되어지는 거룩하고 신성한 목적이 있다. 이러한 결혼 관계는 그 어떤 사람도 깨뜨릴 수는 없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고 하나가 되게 하신 결혼을 사람이 나눌 수가 없는 것이다.’ 자,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바리새인들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같은 내용이 있는 마태복음 19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혼은 안된다고 말하시지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율법을 만든 모세는 왜 이혼을 허락하였습니까?” 라는 반문한 것이죠.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9장 8절입니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문 5절입니다. 5.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에 그당시에 모세는 아내 버리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이혼 증서를 써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준 것은 이혼을 해도 좋다는 의미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당시 약자인 여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준 것을 허락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혼을 하게 된것은 남편이 아내를 버릴려고 하는 완악한 마음에 의해서 이혼이 이루어 진것이지 여자 자신이 이혼을 주도한 것이 아님을 이혼 증서로 증명해준 것입니다. 그래서 이혼의 동기가 남편에게 있다는 것을 이혼증서로 증명함으로 여자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게 할려는 의도에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본래 의도를 그후에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마음대로 해석하고 적용해왔던 것을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이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는 완악함 때문에 이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몸이 되게 하기 위해서 결혼을 허용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나의 행복을 위하여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해줄만한 좋은 조건들을 가진 배우자를 찾습니다. 좋은 조건을 가진 배우자를 찾는 것은 절대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나를 행복하게 해줄수 있는 여러가지 좋은 조건을 가진 배우자를 찾아 결혼을 해야지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그 조건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뀜에 따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조건들은 변하게 됩니다. 그럼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했던 조건들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할수 없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이혼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돈이 없어지고 건강이 약해질 때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조건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이혼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행복한 결혼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두사람이 합쳐질 때 두사람이 하나가 되고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행복하고 복된 가정생활을 해나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 두 번째 이야기

예수님께서 결혼을 신성시하는 이유는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결혼에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부인 우리 믿는 성도들과 혼인잔치를 계획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신랑되신 예수님이 이땅에 다시 오실 때 우리 믿는 성도들은 저 천국에서 혼인잔치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난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과 영원히 살아가게 될것입니다.

자, 구약성경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신부로 택하신 것을 여러군데서 말씀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신부인 이스라엘은 음행을 일삼아 왔습니다.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 신과 여러 이방인들의 신을 섬기고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이혼하는 듯한 아픔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리고 난후 하나님께서는 신랑 되신 예수님과 그분을 구세주로 믿는 성도들을 신부로 삼으시는 위대한 계획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 결혼을 선지자를 통하여 사람들에 전하시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신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도 그옛날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음행을 일삼고 살아갑니다. 신랑되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지 못하고 계속 한눈을 팔고 살아갑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세상이 주는 유혹에 정신이 팔려 음행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본문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있습니까? 모든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아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까?

 

♡ 회개

모든 교단을 초월해서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동의하는 두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 와 믿음‘ 입니다. 회개 하고 믿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갈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회개도 없고 믿음도 없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절대로 갈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회개 할수 있습니까?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어린아이가 쉽게 회개를 하겠습니까? 아니면 어른이 쉽게 회개를 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저한테 어떤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했고 어떤 어른도 저한테 거짓말을 했다고 하십시다. 그래서 제가 회초리를 들고 어린아이에게 “너, 나한테 거짓말을 했지. 잘못했다고 말해라. 만일 잘못했다고 내게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너 나한테 회초리로 많이 맞는다‘ 그러면 어린아이들은 열명 이면 열명 다 울면서 ’목사님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라고 할것입니다. 그런데 어른에게 제가 말하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당신 나한테 거짓말 했지요. 내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세요. 아니면 당신 나한테 회초리로 맞습니다‘ 그러면 아마 열명중에 여덟 아홉명은 제게 대 들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당신은 거짓말 안합니까? 이정도로 잘못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요.” 이렇게 오히려 화를 내고 떠나버릴 것입니다. 회개는 어른보다는 어린아이가 훨씬 더 쉽고 훨씬 더 잘합니다.

 

♡ 믿음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 일수록 훨씬 더 쉽게 회개하고 더 쉽게 믿습니다. 어른이 되면 회개하기도 힘들고 믿기도 힘이 듭니다. 오래전 한국에서 이런 설문조사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언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까?’ 이 질문에 9세 이전에 예수님을 믿었던 경우가 5.3 % 이었습니다. 그리고 10살부터 14살이 되는 시기에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경우는 12% 이었습니다. 15세부터 19세 사이에 예수님을 영접한 경우는 26%이었습니다. 그다음 20세부터 29세까지는 17%이었고 30세부터 39세까지는 두 번째로 많은 18.3%이었습니다. 이시기의 나이에 두 번째로 많은 것은 아마 남자들이 결혼 한후에 예수를 믿는 아내 때문에 아내손에 붙잡혀서 교회에 끌려 나오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40세 이상 되어서 세상을 떠날때까지 이 시기에 믿게 되는 사람들은 14.6% 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다시한번 정리해보면 오늘날 믿는 성도들중 약 절반정도는 19살이 되기 전에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9세가 되기 전까지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은 모두 합해 85.3%입니다. 그러니까 40세가 넘으면 믿기가 대단히 힘들고 어렵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와도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도 불분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통계 자료를 보면 젊은 시절에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나이가 많은 어른들도 믿을수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입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어른입니다. 딱딱하고 고집스러운 생각을 가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주님앞에 나아와 주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잘 믿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의심하게 되어집니다. 제 경우를 보면 이전에는 그냥 믿었던 것도 나이가 들어가게 되니까 이상하게 자꾸 의심하게 되어집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초코렛 하나만 주면 그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졸졸 따라다닙니다. 그러다가 납치 당하기도 하죠. 아버지와 딸아이가 길을 가다가 나비를 보았습니다. 딸아이가 말합니다. “아빠 나비다 나비” 그러자 아버지가 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저 나비가 어디로 날아가는지 너 아니? 저 나비는 말이야 지금 꿀을 찾아 날아가는거야“ 그러자 딸아이가 말합니다. ”아니야 아빠 저 나비는 지금 엄마 찾아 가는거야“ 이렇게 어린아이들은 늘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늘 부모님을 생각하고 의지하는 이 마음이 어린아이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15절을 다시 보시면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이아와 같이 받들지 않는다는 것’ 은 곧 믿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주셨다’ 라는 말씀을 듣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믿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는 사람은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실 어린아이들이 어른에 비해서 잘하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어른들이 구제를 더 많이 하고 착한일을 더 많이 합니다. 어른들이 아이보다도 책임감이나 이해심이 더 많습니다. 집안 일이나 정리하는 것도 어른들이 훨씬 더 잘합니다. 아이들은 문제만 만들고 잘못만 저지르지 잘하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어른에 비해서 더 잘하는 것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잘못을 했을 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른이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 용서해줄게” 라고 하는 말을 듣으면 그말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책임있고 우리가 선한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주님이 하신 말씀과 행동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 9절입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선하고 의로운 행위를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 내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때 구원을 선물로 받는구나‘ 이렇게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살아가는 동안 잘못한일이 있으면 어린아이처럼 용서를 구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깨끗함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입니다.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길은 잘못했을 때 회개하여 깨끗함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사람은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제 간단하게 본문을 정리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신랑이 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정숙하고 순결한 신부로서 이땅을 살아가야할 신부들 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유혹에 넘어지고 실패할수도 있습니다. 정숙하고 순결한 신부로 살아가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실수와 실패가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신랑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 것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에 대해서만은 끝까지 소망을 두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잘못을 하고 실패를 할때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잘못한 일에 대해 회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하심에 대한 말씀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이제 나이가 점점 더 많아지는 어른이라 할지라도 회개와 믿음에 대해서만은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신랑되신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거룩하고 정숙한 신부로서 주님을 만나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천국의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