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31. 제자로서 지녀야 할 자세

Author
kgmcc
Date
2022-01-12 04:16
Views
130
본문 : 마가복음 10장 32-45절

날짜 : 2022년 1월 13일

 

<마가복음 1032-45>

32.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침()례를 받으려니와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을 하시는 동안에 하신 말씀을 분석해보면 역설적인 방법을 많이 사용하시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역설적인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두가지 내용을 얘기해서 하나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방법이라 할수 입니다.

예를 들면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할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은 구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도 역설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가르쳐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려고 하는 사람을 죽게 될 것이고 죽음을 각오한 사람은 살게 될 것 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천국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땅에서 좀더 살아가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구차하게 살아가다보면 영생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앞을 보시면 이런 말씀도 나옵니다.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되고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신앙생활을 시작한 순서나 직분에 관계없이 착하고 충성되게 일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더 많은 보상과 상급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로 역설인 방법을 통해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본문 43절과 44절입니다. 43.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크고자 하는 자‘ 와 ’섬기는 자’ 이렇게 서로 대조가 되는 두 단어가 나오고 또 44절을 보시면 ‘으뜸’ 과 ‘종‘ 이렇게 대조되는 단어를 사용하여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고로 높아질려면 먼저 최고로 낮아져야 하고 섬김을 받을려면 먼저 섬겨야 한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자주 역설적인 방법을 통해서 깊이가 있는 진리를 가르쳤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역설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믿고 구원받는 십자가 사건 자체가 역설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십자가 사건이 주는 역설을 깨닫지 못하면 성경 전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고린도 전서 1장 18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세상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받게 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능력인 것입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영생을 누릴수 없는 사실에 대해서 슬프하고 근심하며 예수님곁을 떠나간 부자 청년과 같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바로 십자가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으로는 할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수 있다’ 사람으로선 도저히 구원을 얻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그일을 믿는 사람들마다 선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주님의 제자가 된 자들에게 주님은 제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본문을 살펴보면서 믿는 성도로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제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

첫째는 세상적인 영광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35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와 요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 두 제자의 요청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6절입니다. 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두명의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37절입니다. 37.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주의 영광이라고 하는 단어를 제자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그 영광 이라는 단어가 성경적인 의미로 사용된 단어가 아니라 세속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훗날에 온 세상을 다스리시게 되시면 그때 우리 두 사람중에 한사람은 주님의 우편에, 또 한 사람은 좌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이런 세속적인 차원에서 ‘주의 영광’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머지 다른 제자들이 그말을 듣고 분노합니다. 41절입니다. 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왜 나머지 제자들이 화를 낸 것입니까? 왜냐하면 가장 높아보이는 그자리를 둘이서만 차지할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자리를 너희들끼리 가질려고 해? 우리가 바보인줄 아냐’ 이런 의미로 나머지 제자들이 분노한 것입니다.

본문과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20장에도 나오는데 마태복음을 보시면 두 제자가 직접 예수님에게 와서 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엄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요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20장 20, 21절입니다. 20.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자기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님들의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중에서 어느 내용이 맞는 것입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했나요? 아니면 어머니가 두아들을 데려와서 말했습니까?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이 기록된 시기를 살펴보면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고 마태 복음이 나중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기록된 것은 먼저 기록된 것을 참고로 해서 그 자료를 보충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가 이 장면을 기록하면서 어머니를 강조한 것은 아마도 이런 의도가 있었을 것 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서 이런 세속적인 요청을 한 배경속에는 어머니가 그 자녀에게 끼친 영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이날 직접 나서진 않았다 할지라도 평상시에 자기 두 아들을 예수님의 양쪽에 세우기 위해 영향을 많이 끼쳐왔다는 것을 제자 마태는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참 중요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얼마나 신앙적으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세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부모의 영향이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을 여기서 얻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가 부자가 되고 출세하게 해준다는 사실 때문이라면 우리는 세속적인 영광을 얻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참 신앙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일을 내가 믿을때에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셨다고 하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세상적인 욕망 때문에 내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주신 주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길을 갈수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제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

두번째는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42절입니다. 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리고 그 뒤를 보시면 ‘그 고관들이’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집권자들’이나 ‘고관들’은 세상적인 지도자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세상적인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리더십의 특성을 보여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는데 하나는 ‘주관하고’ 이고, 또 다른 하나는 ‘권세를 부린다’ 입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이 사용하는 리더십은 다른 사람들을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들이 가지는 리더십은 이러한 세상적인 리더십과는 오히려 정반대 입니다. 역설적인 방법입니다. 본문 43, 44절입니다.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크고 으뜸이 되기 위해서는 섬기고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남을 철저하게 섬기며 살아가야 할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제자로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남을 섬기며 살아갈 마음의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지금 내게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할 마음의 자세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세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너희들이 나를 따르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섬기는 마음자세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를려고 한다면 섬기며 살아야지 자기 만족과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나를 따르는 것은 참다운 제자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길은 섬기며 희생하며 살았던 십자가의 길이었기에 주님의 제자된 저와 여러분도 희생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

세번째는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7절 다시 봅니다. 37.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38절입니다. 3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침(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너희들이 나의 우편에, 그리고 나의 좌편 자리를 차지하게 해 달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까 너희들은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의미입니다. 자, 지금 예수님께서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본문이 시작하는 32절 전반부를 보시겠습니다. 32.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지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시면서 앞으로 지셔야 할 십자가를 생각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두 제자가 자기들을 오른편, 왼편 자리를 차지하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생각하고 계시는 것은 십자가인데 제자들은 자기를 오른편과 왼편에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 두제자의 요청을 들어주게 되면 어떤일이 벌어지게 됩니까? 두 강도 대신에 제자들이 각각 우편과 좌편에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제자들은 ’두 강도 대신에 우리들을 예수님 십자가 우편과 좌편에 매달리게 해주십시오’ 라는 뜻으로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38절입니다. 3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수 있느냐’ 예수님이 마셔야 할 잔은 무엇입니까? 고난의 잔. 십자가의 죽음의 잔입니다. 39절은 일종의 예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39.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침(세)례를 받으려니와 ‘그래 언젠가는 너희들도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속에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제자들도 걸어가게 될 것이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말해 제자라면 고난은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은 고난과 고통을 요청합니다. 섬겨야 하는 일은 우리의 수고와 우리의 땀을 요청합니다. 우리의 옷에 흙이 묻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남을 섬길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친교 시간후에 설거지를 한다고 하십시다. 내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어떻게 설거지를 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땀이 필요하고 수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섬기는 일은 이런 저런 모양의 고난을 만나게 된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침례를 받으려니와’ .

그러나 고난만 당하고 끝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니지요. 고난 후에 얻을 영광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40절입니다.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는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무슨 의미입니까? 너희들이 최선을 다해 섬겼다면, 그리고 고난까지 받았다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계심으로서 당연히 그일에 맞는 상급과 그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라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요. 신앙의 선배들이 고난중에서도 인내할수 있었던 것 중의 하나는 주님께서 준비해놓으신 그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입니다. 18.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 성경 말씀을 가장 좋아하셨던 목사님중의 한분이 주기철 목사님이십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생활을 할 때 하나님 한 분외에 우상에게는 절을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일본이 명령한 신사 참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오랜 감옥생활을 하시다가 마침내 순교를 하시게 된 목사님이십니다. 우리가 이런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신앙의 선배들 이야기를 듣게 되면 우리 자신이 가진 믿음의 연약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주기철 목사님의 막내 아들이신 주광조 장로님께서 2011년 하나님의 곁으로 가시기 전에 간증집회때 종종 이렇게 말하시곤 했습니다.

‘사실 제 아버지 주기철 목사님은 평상시에 그렇게 당당하고 담대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렇게 강인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평상시에 제 아버지는 마음이 약하셨고, 두려움이 많으신 분이었고, 그리고 정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담대하게 그 순교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내의 내조와 성도들의 기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도와 주신 것에 있습니다. 특별히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그 분은 그 길을 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라는 말을 평상시에 곁에서 지켜보았던 아들의 입장에서 감히 할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주님이 도와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힘과 그 능력으로 담대하게 순교라는 영광스런 그 마지막 그길을 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만나게 되는 고통과 고난이 너무나 힘들고 무거워서 내힘으로는 주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가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도와주시면 그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도와주시면 그어떤 고난과 어려움도 견딜 수가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속적인 영광을 구했던 야고보와 요한이 갔던 마지막 모습은 어떻습니까? 한 제자 야고보는 열 두 제자 가운데서 가장 먼저 순교자가 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명의 제자, 요한은 열두 제자 가운데서 제일 오래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제자 중 한명은 제일 먼저 죽었고 다른 한명은 제일 오래 살았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얼마나 빨리 죽었느냐 하는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그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신 상급과 보상을 우리가 받을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높은 것으로 따지면 이세상에서 예수님보다 높으신 분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에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계속 계시고 이 낮은 땅위에 내려 오시지 않으셨다면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지도 않으시고, 부활하시지도 않으셨다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은 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높이고 섬기는 이유는 그 분이 이 땅에 내려와 낮아지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너희들이 내 제자가 될려면 낮아지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너희들이 그길을 살아갈 때 내가 너희들을 내 제자로서 인정을 할 것이다. 너희들이 남을 섬기는 삶을 살아갈 때 훗날에 너희들이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갔습니다. 열두 제자들 중에 가장 먼저 죽었던 야고보도 가장 오래 살았던 요한도 모두 고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 두사람이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의 좌, 우편에 앉았는지에 대해선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두 제자는 주님이 주시는 상급과 보상의 영광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낮아질 때 주님이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예수님처럼 저와 여러분도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중에서라도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섬기는 마음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해나가십시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갔을 때 주님이 높여주시는 진정한 축복을 누릴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