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33. 예수께서 타시니

Author
kgmcc
Date
2022-01-26 03:00
Views
61
본문 : 마가복음 11장 1-11절

날짜 : 2022년 1월 26일

 

<마가복음 111-10>

1.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일이 일어난 마지막 한주간의 시작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날을 우리는 종려주일 팜 선데이라고 부릅니다. 종려주일부터 고난주간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주간에 일어난 일을 잠시 살펴보면 주일에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종려주일 팜 선데이라고 부르죠. 그리고 월요일은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시고,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십니다. 다음주에 우리가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화요일은 예수님께서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시면서 그들을 정죄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왕국에대한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수요일은 말씀이나 행하심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 이날은 휴식을 취하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목요일은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셨고 성찬식과 세족식을 행하신후에 이를 기념하라 말씀하십니다.

금요일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무덤에 장사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무덤에 머물러 계셨고 그리고 주일에 부활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마지막 한주간의 행적입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하는 마가복음 11장에서 부터는 예루살렘 성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날 예수님께서는 두명의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 3절입니다. 2.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이 장면에서 우리는 신성을 지니고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도 아셨고 그 나귀 새끼 주인도 누구인지 이미 아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지 전능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다나엘이 친구 빌립의 전도에 의해서 예수님앞에 처음으로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 47절입니다.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라고 물으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48절입니다. 4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이렇게 나다나엘을 아시고 나귀 새끼와 나귀 새끼 주인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아십니다. 시편 139편 2-3절 입니다. 2.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내생각과 내 모든 행위를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문제는 주님은 나를 잘 아시는데 우리는 나자신을 잘 모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주님앞에 나귀와 같은 미약한 존재들이 바로 나라고 하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나귀는 일종의 말의 종류입니다. 그런데 말 중에서도 군대용 말이나 경주 말과 같이 크고 좋은 말들에 비해서 나귀는 아주 작고 미약한 말입니다.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나를 사용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기 약 510년 전에 활동을 한 스가랴 선지자가 만왕의 왕으로 메시야가 예루살렘에 오실 때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예언 했습니다. 스가랴 9장 9절입니다. 9.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 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하늘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바로 겸손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몇 주동안 저희들이 살펴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로 살아가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섬김을 받기 원하면 섬겨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라고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 말씀 하십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입니다. 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섬기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는데 그 마지막은 십자가의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자는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죄를 짓고 그 죄값으로 인해서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할수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 죄가 없으신 아들을 보내시고 대신 죄값을 치루시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섬기고 섬기시다가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고 섬기신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진 것입니다. 태초부터 높은 하나님 보좌 곁에서 계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셔서 낮아지시지 않으셨다면 우리 인간의 구원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겸손의 모본을 보여주시기 위해 작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십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왕의 신분에 맞게 예루살렘에 입성 하실려면 크고 멋진 백마나 군마를 타고 입성하셔야 하는데 신분에 맞지 않게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나귀새끼처럼 미약한 존재임을 알았던 사람들 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사용하실려고 할 때 예레미야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레미야 1장 6-7절입니다.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나는 아이라’ 아이는 자기가 스스로 일을 해서 살아갈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남의 도움이 필요한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입니다. 나귀 새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나귀가 유명해진 것은 주님에게 쓰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우리 인간은 모두가 다 나귀 새끼와 같은 미약한 존재들입니다. 다만 주님에게 쓰임만 받는 나귀새끼가 있고 쓰임을 받지 못하는 나귀새끼가 있을 뿐입니다. 주님의 쓰임을 받는다면 잘난 것이 없고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귀한 존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부터 쓰임을 받고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된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는 배운 것이 없는 천한 어부였습니다. 성격도 다혈질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베드로보다 더 잘나고 더 배운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주님에게 쓰임 받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위대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 이 예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렘성에 들어오셨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한 이유는

첫째로, 성경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입니다.

스가랴 9장 9절입니다.

9.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성경은 예언의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스스로 역사를 계획하시고 운영하시는 주권자이심을 증명하시기 위해서 미리 예언하신 다음에 그 일을 역사의 현장에서 그대로 성취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이 예언하시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세상 만물을 주장하시고 운영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경에 예언하신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당시 이스라엘 백, 성들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자기의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깔아 놓으면서 환영했던 것입니다. 본문 8, 9, 10절입니다. 8.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는 ‘지금 구원하소서’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 구원자 메시야의 자격으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진심으로 환영한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환영한 것은 아닙니다.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 그리고 서기관 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일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은 있었지만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너무나도 초라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왕의 모습을 전혀 느껴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하기보다는 미워하고 한걸을 더 나아가 죽일려고까지 했습니다. 본문 바로앞에 나오는 기적이 마가복음에서 보여주는 마지지막 기적이었는데 그것을 바로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보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 맹인 바디매오가 보게 된 이유에 대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0장 52절입니다. 52.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럼으로 우리는 성경의 내용을 지식으로 아는 것 보다는 그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저와 여러분의 주변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알수 있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시면 마지막날에 하나님께서 많은 무리들을 왼쪽과 오른편으로 갈라놓으시는 장면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때 주님이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받을 자들이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비된 상급을 누리며 살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한 것이 곧 자기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입니다.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리고 왼편에 있는 무리들에게는 마귀와 사탄을 위해 준비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왼편에 있던 자들이 항의를 하니까 그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45절, 46절입니다. 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이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그러니까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오른편과 왼편으로 갈리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작은자가 누구인가? 이렇게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해야 할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성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인데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영한 것은 세상적인 왕으로서 환영했습니다. 그러니까 온전히 아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지닌 지성의 한계입니다. 우리 인간의 지식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한 이유는

둘째로 매어있는 것을 풀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2절 후반부입니다. 2.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예수님께서 사용하기 전에 이 나귀 새끼는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나귀 새끼는 누가 풀어주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매어 있는 인생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다는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다. 누가 복음 13장을 보시면 18년 동안 귀신에게 매여서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었던 여인을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설교를 하시다가 그 여인을 보고 귀신에게서 매인 것을 풀어 자유하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회당장이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는 일을 했다고 화를 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3장 15, 16절입니다. 15.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님께서는 매여 있는 인생을 풀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무엇인가에 매여 있습니다. 가정에 매여 있고, 직장에 매여 있고, 세상에 매여 있습니다. 그리고 죄와 유혹에서 매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하루 하루 이런 저런 환경에 매여 염려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매여있는 것에서 부터 자유함을 얻기 위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자유하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36.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나를 매어놓고 있는 환경에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서 자유함을 얻을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한 이유는

셋째로 겸손하신 왕이심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스가랴 9장 9절 후반부입니다.

9....그는 ...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그는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신 것 자체가 낮아지신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신학자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사람이 개가 되는 것 보다 더 낮아지신 것이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크고 아름다운 말이나 금 마차를 타지 않으시고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하신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요. 높은 왕의 신분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교만하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할 때에 교만해집니다. 많이 배웠다고 해서 반드시 교만하여지는 것도 아닙니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할 때에 교만하여 집니다. 돈 많은 부자라고 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가난하다고 해서 다 겸손한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부족하면 돈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모두 교만하게 되어집니다.

성 어거스틴이 이런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제일 먼저 정복당해 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만이다. 교만에게 제일먼저 정복당했다. 그래서 교만은 원죄이다.” 무슨말인가 하면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바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교만의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먹지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은 불순종은 바로 하나님과 같아질려고 하는 교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인간을 제일 미워하십니다. 교만하면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겸손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을 배우게 하기 위해 종종 하나님은 실패와 고난을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패하고 고난을 경험하지 않고서도 겸손하게 살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 겸손하여 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예수님의 겸손에 있습니다. 그럼으로 마귀와 싸워 이기는 길은 바로 겸손에 있습니다. 믿는 성도가 겸손해버리면 마귀는 자기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바닥에 있는 사람은 떨어질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겸손 했기때문에 끝까지 넘어지지 아니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요.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도 겸손한 사람입니다. 천국은 겸손한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높은자리에 있든지 많은 돈을 가진 부자가 되든지 예수님처럼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간단히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된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사역을 행하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저와 여러분도 늘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나가는 것에 원칙으로 삼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매어있었던 나귀를 풀어서 그 나귀를 사용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무엇인가에 매여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을 자유하게 하신후에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백마나 금 마차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수 있었지만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셨습니다. 사탄 마귀는 겸손한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어떻게 할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내가 부자이든지 아니면 빈자이든지 유식한 사람이든지 아니면 무식한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예수님처럼 겸손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