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34. 원하시는 열매들

Author
kgmcc
Date
2022-02-02 03:46
Views
132
본문 : 마가복음 11장 11-25절

날짜 : 2022년 2월 2일

 

 

<마가복음 1111-25>

11.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12.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20.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지난주에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장면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날을 우리는 종려주일 팜 선데이라고 부릅니다. 왜 종려주일입니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주님을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 믿고 환영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저녁에 다시 성 밖에 있는 베다니 나사로 집에 가서 주무십니다. 그장면이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11절입니다. 11.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그리고 이튿날 아침, 월요일 아침이죠. 고난주간 월요일 아침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데 예수님께서 시장함을 느끼신 것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2.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그래서 예수님께서 먹을 만한 것이 없을까 하고 주변을 살펴보니까 마침 무화과 나무가 눈앞에 보이는 것입니다. 저희집에 무화과 나무가 있어서 해마다 무화과 나무를 먹어보아서 그맛이 어떤지 잘알고 있습니다. 맛이 달삭한데 몇 개를 먹으면 그래도 어느정도 시장끼는 해소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시장끼 해소를 위해 무화과 나무 가까이에 갔습니다. 그런데 무화과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왜요? 무화과 나무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13절입니다. 13.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아직 무화과 나무 열매를 맺을때가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시고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아서야 할텐데 그냥 그 나무를 저주하신 것입니다. 14절입니다. 14.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는 소리를 제자들이 듣었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깜작 놀랐겠죠. 그동안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은 병들고 죽어가는 인생을 회복시키시고 살리시는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멀쩡하게 살아있는 나무를 저주하시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놀랐을 것입니다. 이전에 예수님께서 한번도 행하시지 않으셨던 충격적인 모습이어서 제자들은 그 모습을 마음에 담아두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에 그 길을 지나가면서 제자들은 어제 저주를 받았던 나무가 궁금해서 살펴본 것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그 나무가 뿌리채 말라있었던 것입니다. 20절 21절입니다. 20.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자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평상시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죽이시기보다는 생명을 살리시는 일을 해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멀쩡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해서 죽인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저주를 하셨습니까? 배가 고픈데 먹을 열매가 없어서 화가나서 그랬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기적을 행하신 적은 없습니다. 광야에서 40일간 금식을 하시고 난후에 마귀가 땅에 놓여 있는 돌을 가지고 떡이 되게 하라고 유혹했을 때도 그 시험을 물리치셨던 예수님 이십니다. 배가 고프시면 얼마든지 돌로 떡이 되는 기적을 행하시고 먹으실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단한번도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모습은 자신이 배가 고픈데 먹을 열매가 없자 화가나서 저주의 기적을 행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자 저주를 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굉장히 이상한 행동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곧 십자가를 져야 하시기에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그랬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 열매를 맺을 때를 잘 모르고 실수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열매를 맺을때가 되었는지 아직 안되었는지는 일반사람들도 그정도는 다 알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이 사건은 순간적으로 화가나서 감정으로 처리한 헤프닝은 아니라 무엇인가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아무 죄가 없는 무화과 나무를 희생양 삼아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인가 가르치려고 하는 교훈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열매입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 나무는 잎사귀만 무성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는 그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적인 행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들이 가진 잎사귀만 무성한 종교적인 행위에 대해 제자들에게 교훈 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적인 행위만 화려했지 실제로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열매는 무엇인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주님이 원하신 열매는

첫째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15.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고 난 이후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십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 비둘기와 양을 파는 사람들의 의자와 상을 들어서 엎어버리십니다. 그러니까 성전을 정화하신 것입니다. 비둘기, 양, 염소, 돈 같은 것은 다 예배 드릴때 바치는 제물입니다. 예배드릴 때 필요한 성물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그것들을 엎어 버려셨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타락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가 너무 세속화되었고 모든 게 장삿속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당시 그들의 성전은 화려했고 거창했습니다. 성전 예배드릴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거창하게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람들과 제물은 차고도 넘쳤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 무성한 잎사귀였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소하시고 난후 너희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17절 후반부입니다. 17.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예배는 이러한 재물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것이지 재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은 재물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아시는 주님이 예배를 드릴때 예물을 바치도록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입니다. 21.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래서 주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보물이 하늘에 있으니까 우리의 마음도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20절입니다. 20.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보물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이나 비둘기, 염소는 잘 바쳤지만 자기들의 삶이나 마음은 바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다 잎사귀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잎사귀가 아니라 열매인데, 열매는 없었다는 겁니다. 죽은 짐승을 바치는 것은 죽은 제사입니다. 살아있는 내 몸과 마음을 바쳐야 그게 산제사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입니다. 1.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래요, 예배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예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내 마음을 드리는 결단의 시간입니다. 주님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을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바라옵기는 잎사귀가 아니라 마음을 드리는 진정한 예배를 드릴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진정한 예배의 열매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

두번째는 믿음입니다.

본문 22-23절입니다. ‘22.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이런 저런 산을 만나게 됩니다. 산을 만나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만나게 되는 이러한 산은 나의 힘이나 나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수 없습니다, 돌맹이나 바위도 아닌데 산을 어떻게 들어서 옮길수가 있겠습니까? 산을 옮기거나 없애는 일은 우리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 합니다. 주님만이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이러한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이러한 직분들은 사실 믿음의 열매가 아니라 잎사귀 일뿐입니다. 주님께서는 목사가 되었다고 장로가 되었다고 기뻐하시고 받으시는 것 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이 있는가를 보시고 기뻐하시고 받으시는 것입니다.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열매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보게 된 것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2년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이 고침을 받게 된 것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산을 만나게 되거든 주님은 모든 것을 하실수 있으신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야고보서 1장 6, 7절입니다. 6.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우리 앞에 산이나 바다를 만나게 되면 오직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능력을 구하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산이 옮겨지고 바다가 갈라지는 응답을 받을수 있다고 하는 확신있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

마지막 세번째는 기도의 열매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자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보고 저주를 하시니까 무화과 나무가 뿌리채로 말랐습니다. 그 무화과 나무를 손으로 가르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런 교훈을 주시십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줄로 믿으라’ ‘지금 너희들이 눈으로 보는것처럼 내가 저주의 말을 하고 나니까 이 나무가 그대로 말라버리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기도를 하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라’ 이렇게 실물 교육을 하신 것입니다.

그당시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이 하는 기도는 남에게 보이려는 기도였습니다. 외식하는 기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길거리나 시장 입구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헝클리고 슬픈 모습을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들을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내면서 긴 시간을 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엔 그들은 잎사귀만 무성했던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을 보면 자화 자찬입니다. 자기 자신들은 의롭지만 다른 사람들은 의롭지 못해서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데 그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게 해주심에 감사하는 기도의 내용이었습니다. 기도 내용은 자기 자랑과 의롭다고 하는 내용뿐이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1, 12절입니다.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이 바리새인이 하는 기도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자랑이요, 자기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나는 <기도의 사람>, <기도하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고자 하는 행동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기도의 1차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구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자신은 이미 의롭고 자신은 이미 온전하다고 하는 자랑꺼리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 그당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던 세리들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누가복음 18장 13절입니다.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리들은 자기 가슴을 치면서 자기는 죄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다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지 않았지만 세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기도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내용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세리의 기도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내용이 나타나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보다 세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성전에서 집으로 갔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 14절입니다.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부족하고 우리의 모습이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참다운 기도입니다.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기도를 통한 참된 열매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기도하면서 간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을줄로 믿으라’ 기도의 응답이 지금 내 눈에 보이고 내손에 들어온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받은 것으로 믿으라는 겁니다. 이것이 주님이 가르쳐주신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능력입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3년 반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던 땅에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아직 아무런 응답도 없었지만 이 엘리야는 이미 비가 내리는 폭우의 소리를 듣고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있는 엘리야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비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기도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우리도 기도는 하지만 이 기도가 이루어질 줄 확신하는 것 보다는 의심할때가 더 많았습니다. 반신반의하거나 만의 하나 응답되면 다행이라 생각하고 기도할때가 있습니다, 응답이 안 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기도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멀쩡히 살아있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기도의 능력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봐라. 내가 저주의 기도를 하니까 이렇게 무화과 나무가 말라버리지 않았느냐. 무엇이든지 말하고 믿으면 그대로 된다. 기도를 하고 믿으라” 이렇게 실물교육을 시키신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런 저런 장애물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생활을 해나가십시다.

 

이제 간단히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 나무 열매를 찾으십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열매를 찾기를 원하십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열매, 믿음의 열매, 그리고 기도의 열매를 찾으시기에 목말라 하십니다. 이러한 열매를 보시면서 주님은 배불러 하시고 만족해 하십니다. 그당시 예루살렘 성은 외면상 보기에는 거룩하고 화려하고 풍성했습니다. 사람들과 제물은 차고도 넘쳤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엔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이었고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없었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진정한 예배, 주님이 역사하시는 믿음 그리고 부족할 때 간구하고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지리라고 하는 확신있는 기도 생활을 해나가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보시기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실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