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35.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예수

Author
kgmcc
Date
2022-02-09 03:28
Views
48
본문 : 마가복음 12장 1-12절

날짜 : 2022년 2월 9일

 

<마가복음 121-12>

1.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9.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0.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마가복음 11장 부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부활하신 마지막 한주간 동안에 일어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마지막 한주간에 일어난 예수님의 행적을 잠시 살펴보면 종려주일에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십니다. 이날을 팜 선데이, 종려주일이라고 우리는 부르죠. 그다음날 월요일에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예루살렘 성전에 다시 들어가셔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시는 사역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기록된 내용이 바로 화요일 날 일어난 장면입니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예수님의 행적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아마 이날은 예수님께서 휴식을 취하신 것으로 신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요일에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금요일에 붙잡히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그리고 토요일은 무덤에 머물러 계셨다가 주일에 부활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이땅에 계셨던 예수님의 마지막 한주간의 행적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 중 화요일에 일어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과 함께 논쟁을 하고 계시는 한 장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그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우리는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라고 부르기도 하고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비유의 내용을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세가지 주제로 나누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번째 주제는 하나님 두번째 주제는 인간 그리고 셋번째는 예수님 이렇게 주제를 세부분으로 나누어서 이 비유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비유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마가복음 12장 1절입니다. 1.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한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여기 한사람이 등장합니다. 포도원을 만든 이 한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한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타리로 두르고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농부들에게 그 아름다운 포도원을 세로 주고 먼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이 비유속에 나오는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이십니까?

첫째로, 아주 관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주 마음이 넓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알수 있나요? 주인은 포도원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먼저 블루 프린트를 만들고 그 설계도에 따라 정성을 다해서 포도원을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포도원을 거의 선물로 주었습니다. 물론 여기 세로 주고 떠났다고 했습니다만 2절입니다. 2.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여기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냈는데 여기서 얼마라는 단어는 지극히 작은 얼마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포도원 주인이 돈이 필요해서 받는 것 이라기 보다는 ‘이 포도원의 소유는 너희들의 것이 아니고 나다‘ 라고 하는 소유권이 누구인가를 확인시켜 주기 위한 의미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농부들이 포도원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살아가도 좋지만 그 포도원은 자신들의 소유가 아니라 맡겨진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지극히 작은 얼마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포도원은 거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래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냥 몇 개의 과일 나무만 주셔도 우리는 그 나무에서 나오는 과일을 맛있게[ 먹으면서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백 수천가지 종류의 과일 나무를 주셨습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그리고 그냥 편평한 평지만 주셔도 우리는 얼마든지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지뿐만 아니라 산과 바다와 골짜기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산으로 여름에는 바다로 가면서 보다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가을에 산에 가면 아름다운 단풍을 볼수 있습니다. 그냥 한가지 빨강색으로만 물들어가는 단풍나무를 주셔도 우리는 야 산이 참 아름답다 라고 감탄하면서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런데 빨강색 뿐만 아니라 노랑색, 분홍색, 보라색 이런 저런 색깔의 단풍들이 물들어가는 나무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은 인색하고 째째한 하나님이 아니라 아주 마음이 넓고 관대하신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가 다 공짜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야고보서 1장 17절입니다.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온갖 좋은 것은 다 위로부터 하나님으로 부터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 신선한 공기, 하늘, 산, 바다 이 모든 것은 다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때 인간은 몇째 날 지어졌습니까? 마지막날 제 6일 여섯째 날에 지어졌습니다. 만약 사람이 둘째 날이나, 셋째, 네번째 날쯤 지어졌다면 살아가기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살아갈수 있다 할지라도 아주 불편한 생활 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다른 만물들을 다 지어 놓으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지어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눈을 뜨고 기지개를 펴고 에덴의 동산에서 일어났을 때 모든 것은 완벽하게 준비 되어 있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Gift로,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래요, 이렇게 아름다운 포도원을 만들고 그것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은 관대하시고 마음이 넓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둘째는 인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절입니다. 2.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타국으로 떠났던 이 포도원 주인은 때가되자 농부들에게 아주 작은 액수 얼마를 받기 위해서 종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단지 포도원 주인이 누구인가 를 확인하게 해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액수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원을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3절입니다. 3.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주인이 보낸 종을 때려서 보냈습니다. 이 행동에 대해 주인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4절입니다. 4.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주인이 화를 낸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낸 종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했습니다. 폭행 하는 정도가 점점 심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5절입니다. 5.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또 다른 종을 보내니’ 또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보시면 “ ...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그러니까 보낸 종들이 맞고 죽임을 당해도 주인은 계속해서 종을 보냅니다. 그래서 ”그 포도원의 주인은 너희들이 아니라 나이다. 내가 주인이다” 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오래 참는 인내심을 가진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인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주어진 이 선물들을 사용해서 주인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서 자신의 뜻을 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그 메시지 앞에 귀를 막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다른 종을 보내십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내하시고 오래참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과 같은 인간의 마음을 가지셨다면 어림도 없습니다. 끝장을 봐도 벌써 끝장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도저히 흉내조차도 낼수 없을 만큼 인내하시는 분이십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랫동안 인내하십니다만 하나님의 인내는 무한한 것은 아닙니다. 6절 이하를 보시면 마지막에는 자기의 아들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 아들까지 죽여 버리자 농부들을 심판하시는 주인의 모습이 9절에 나옵니다. 9절입니다. 9.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칼을 드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많은 선물을 주시고, 그리고 그 선물을 통해서 복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관대하시고 마음이 넓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불순종하고 반역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관대하신 하나님,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그러나 마침내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비유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사람

그다음은 이비유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 인간은 매우 이기적인 존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선물로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맡은 자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청지기나 관리자입니다. 이 말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주인은 누구입니까?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을 맡겨주셨고,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맡겨 주시고, 재능도 맡겨 주시고 돈도 맡겨 주시고 시간도 맡겨 주신 것입니다. 가정도 교회도 맡겨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맡은 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 관리자가 탈선하고 반역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언제 탈선하고 반역합니까? 맡겨진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할 때부터 입니다. 아니면 내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지만 이제부터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행동을 할때부터 탈선은 시작 됩니다. 7절입니다. 7.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자 죽이자 그러면 유산이 누구의 것이 된다고요? 우리 것이 되리라’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것이 우리의 것이 된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하는 행동을 하면서부터 우리 인간의 탈선과 반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의 목숨 누구의 것입니까? 내 남편, 내 아내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의 자녀? 우리의 것인가요? 내가 타고 있는 차, 내가 살고 있는 집, 내가 가진 돈, 내 것 인가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이 지구를 떠나거라’ 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내 것이라고 생각한 이 모든 것을 그냥 두고 이 지구를 떠나야 합니다. 내 것이라면 내가 가지고 가야지요. 내 것이 아니니까 그냥 두고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씻고 정성스럽게 가꾸고 다듬어온 이 육신마저도 땅에 묻어두고 가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은 맡겨진 것이지 내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종 이런 저런 방법을 사용하셔서 우리 자신이 주인이 아니심을 알게 하십니다. 질병이나 사고를 통해서 사업실패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모든 것이 내것이 아니었구나 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도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내손에 주어진 것은 모두 내것이다 라고 하는 이기심을 버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탈선과 반역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 보낸 종을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3절입니다. 3.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심히 때리고 거저 보냈습니다. 또 4 절엔 어떻게 했습니까? 4.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종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습니다.

5절입니다. 5.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이젠 본격적으로 악당의 본색을 감추지않고 드러냅니다. 보내는 종들마다 때리고 죽여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기 위해 이런 저런 선지자들을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핍박하거나 죽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 도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핍박을 당하거나 순교를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지금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 됩니다. 우리가 가진 이기심이나 탐욕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메시지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 자신의 것으로 끊임 없이 주장하며 살아갈려고 하는 이기적인 존재가 바로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당시 종교지도자들이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경고하셨지만 사실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을 비롯한 이기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 비유에서 나타나고 있는 아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6절입니다. 6.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예수님은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종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섬기는 종의 역할을 하시면서 사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본질은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십니다. 오늘날 이슬람교는 예수님을 그냥 또 다른 한명의 선지자로만 보고 있습니다. 종으로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이땅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시게 될 것을 이 비유에서 예언되어있습니다. 7, 8절입니다. 7.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지금 이 이야기를 누가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지금 이 이야기를 하시고 계신 시점은 언제입니까? 십자가를 지시는 마지막 한주간 중 화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금요일날 잡혀서 십자가에 달리셨으니까 십자가의 죽음을 며칠 앞에 둔 싯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져 버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이제 며칠후에 자기 자신이 포도원 바깥에 있는 골고다의 언덕에 사람들이 자신을 버리고 던질 그 장면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사실 앞으로 받게 될 고통과 고난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모르고 있다가 고난을 받는 것 이 낫지 받을 고난을 미리 알고 있으면 그 시간은 견디기가 더 힘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당하시게 될 고난을 미리 아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침뱉음을 당하시고 사람들에게 모욕과 조롱을 당하실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향해 걸어가시다가 힘에 겨워서 쓰러지게 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휘두르는 채찍을 맞으시면서 다시 일어나 걸으시다가 또 쓰러지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세 개의 못이 손목과 발목에 박혀지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이 씌워진 채 십자가에 매달리게 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발가벗기신 채 주변 사람들의 조롱과 빈정 거림속에서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을 당하시게 될 분이 바로 비유속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죽음을 극복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실 것이 예언 되고 있습니다. 10절 11절입니다. 10.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자 여기서 이 돌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마치 건축자들이 건물을 짓다가 “야, 이 돌맹이는 아무 쓸데가 없구나” 라고 말하면서 내던져버린 돌과 같이 취급을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아무 필요가 없는 돌맹이라고 생각하고 건축자들이 내던져버렸는데 그 돌맹이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것입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은 건물을 세울 때 가장 먼져 놓여지는 돌입니다. 건물을 지탱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돌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돌들은 모두 그 돌 다음에 놓여 집니다. 그럼으로 모퉁이의 머릿돌이 없어지면 그 건물은 어떤 충격을 받으면 쉽게 무너져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건축자들에게 버림받은 돌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반드시 필요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을 보시면 오순절날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4장 11, 12절입니다.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는 ‘건축자들이 돌을 버린것처럼 바로 너희들이 예수님을 버렸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는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내 죄와 허물로 인하여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을 받고 예수님이 왕이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땅을 살아가는 동안 목숨을 바쳐 지켜나가야 할 진리는 바로 예수님만이 구원자가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모든 것은 양보할수 있어도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신다고 하는 진리만큼은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이세상 살아가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일이 생길때마다 내가 지은 죄를 대신하여 버림을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내 던져진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십시다. 이 믿음 때문에 믿음의 나라인 천국에서 사랑의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것을 소망하십시다. 그래서 지금은 눈물이고 아픔이라 할지라도 내 죄를 위해 세상에서 버림을 받으셨던 예수님을 평생동안 내 구세주 내 구원자이심을 믿으시면서 소망을 가지시고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