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36.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Author
kgmcc
Date
2022-02-16 03:07
Views
158
본문 : 마가복음 12장 13-17절

날짜 : 2022년 2월 16일

 

<마가복음 1213-17>

13.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 예수님을 넘어뜨리려는 음모

마가복음 11장부터는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공생애 활동을 하시는 동안 행하셨던 마지막 한주간의 일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예수님께서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혹은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를 말씀하신 내용을 가지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그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유대 백성들에게 경고하시고 책망하십니다. 포도원 주인이 아름답게 포도원을 만들어서 농부들에게 맡기고 다른 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에서 나오는 소출 중에 얼마를 받을려고 종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포도원 주인이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포도원 주인은 너희들이 아니라 나다‘ 라고 하는 사실을 인식시켜주기 위한 것 이었습니다. 그만큼 아주 작은 액수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은 맡겨진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청지기 정신, 관리자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얻을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도 화요일날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화요일날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시는 내용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전날 월요일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에 오셔서 성전마당에서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돈을 바꾸어 주는 자들의 의자와 상을 엎어버리면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런 일이 그당시 종교지도자들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라는 젊은 사람이 감히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바칠 제물을 다 엎어버리고 난장판을 만들었다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 전달되어 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식을 듣게 된 종교지도자들은 두가지 이유 때문에 굉장히 분노했을 것입니다. 하나는 겉으로 나타나는 명목상의 이유 때문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드러나지 않는 실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감히 하나님께 드릴 제사를 방해를 해? 그렇다면 그냥 두면 안되지“ 그래서 그들이 겉으로는 하나님께 드릴 제사를 방해했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제 속마음은 수익이 없어지게 된 것에 더욱 분노를 한 것입니다. 그당시 성전마당에서 장사를 하도록 허락하는 대신에 그 장사꾼들로부터 받게 되는 수익이 많았는데 그수익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 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4절입니다.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했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장사꾼들로부터 받게 되는 수익이 없어지게 된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에게 어떤 트집을 잡아 그를 감옥에 넣든지 아니면 죽이든지 하기 위해서 위해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보냅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입니다.

자,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들이 트집을 잡기 위해 예수님에게 가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13절입니다. 13.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사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 이 두 그룹은 물과 기름처럼 전혀 맞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반 로마주의자들이지만 헤롯당원들은 친 로마주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롯당은 로마에게 세금을 바치는 일을 찬성하고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세금을 바치는 일을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한쪽은 반 로마주의 자이었고 다른 한쪽은 친 로마주의자 이니까 이 두 집단이 그동안 해왔던 일은 물과 기름처럼 매사에 어울리지 않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 달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다른 이 두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예수님에게 와서 아주 정중하게 그당시에 가장 민감한 세금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14절, 15절 전반부입니다. 14.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

“당신은 참되십니다. 당신은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십니다. 당신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습니다. 당신은 오직 진리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십니다.” 지금 그들은 예수님에게 와서 아주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지극히 칭찬하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자기 마음에 전혀 없는 립 서비스에 불과한것입니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엄청 높이고, 온갖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 속으로는 예수님을 트집 잡아 죽일 생각을 하고 있는 사악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상대방을 비행기 태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뜻을 이루게 되면 비행기가 어떻게 되든지 아무 관심이 없는 이기적이고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 비행기를 태우고 난후에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자기의 본심이 드러나는 질문을 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여기서 가이사는 이름이 아니라 황제라는 직분입니다. 그당시 로마 황제들은 이름과 함께 항상 가이사 라는 단어를 같이 사용하였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 또 가이사 디베료, 가이사 네로 이렇게 그당시 로마 황제 이름과 함께 가이사(시져) 라는 직분이 붙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이사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직분의 이름이라 할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이렇게 그들이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같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로마에 세금을 바치라고 말하면 바리새인들에게 트집이 잡힐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말하면 헤롯당원들에게 트집이 잡히게 될 상황입니다. 헤롯당원들이 로마 군인들에게 ‘예수님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했다’ 라고 알려서 로마정부에 대한 반역죄로 체포하게 일을 진행해나갈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께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말한다면 바리새인들이 앞장서서 ‘저 예수는 로마정부의 앞잡이다’ 라는 소문을 낼 것 입니다. 그래서 그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유대 군중들이 예수님에게 대해 실망을 하고 멀어져 나가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그동안 매사에 서로가 맞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제거하고 죽일려고 하는 일에서는 같은 마음이 되어 협력을 했습니다. 선하고 좋은일에 사람들이 마음을 합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악하고 나쁜일에 우리 인간들은 더 수월하게 하나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쁘고 악한 일인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악한일이라 할지라도 서로 협력해서 힘을 합치는 것입니다. 이런면에서 볼때 오늘날 미국의 정치인들이 사실이 아닌 명백한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올 연말에 있게 될 중간선거에서 당선을 위해 거짓을 주장하고 있는 정치인과 손을 잡고 행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역사는 계속 되풀이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 어쨌튼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15절 후반부입니다. 15.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동전 하나를 가져오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이 한 데나리온을 가져왔습니다. 16절입니다. 16.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황제는 티베리우스이었지만  그당시 세금에 바치는데 사용된 데나리온 동전에는 티베리우스의 아버지인 가이사 아우구스투스 의 얼굴과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전 앞면에는 ‘신 인 아우구스투스 가이사’ 라는 글이 있었고 뒷면에는 ‘최고의 대제사장’ 이라는 글이 새겨 있었습니다. 그당시 이러한 데나리온이 로마정부에 세금으로 내는데 사용되어졌습니다. 그들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절입니다. 17.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 데나리온 동전에는 황제의 얼굴 모습이 있기 때문에 황제의 것이라고 그들이 대답하자 너희들이 황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황제에게 주라고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세금을 내어라‘ 라는 말씀을 하신것도 아니고 ’세금을 내지 말아라‘ 라고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냥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라고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가지고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나누어서 말씀하셨다 라고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정부 정치인들이 행하는 권력이나 법에 대해서는 그들(가이사)에게 맡기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아닌 교회일이나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지나온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세상의 일과 하나님의 일 이렇게 구분 해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온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신 이 말씀은 이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영역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을 다스리고 하나님이 교회와 국가도 다스립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지난주에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저희들이 살펴보았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너희들이 아니라 나다’ 라고 하는 교훈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농부들이 계속해서 거부하니까 포도원 주인은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종을 보내어 ‘주인은 나다’ 라고 하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는데 아들까지 죽여 버리자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은 심판합니다. 오늘 본문도 이와 마찬가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럼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교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우리가 헌금을 바칠 때도 나의 것 중 일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 중의 일부를 드립니다 라는 의미가 바로 헌금을 드릴 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 입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나머지의 것도 하나님의 것이지만 저에게 맡겨준 것을 제가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사용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나눌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내 것과 하나님의 것을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종종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주일날 엄마가 아이에게 2 달라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시다. “얘야 1달러는 선데이스쿨 워십 할 때 헌금으로 사용해라. 또 다른 1달러는 예배후에 네가 먹고 싶은 것을 사먹도록 해라”. 그래서 이 아이가 2 달라를 손에 쥐고 교회 선데이 스쿨을 향해 걸어갑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그만 바람이 세게 불어서 가지고 있던 2 달러중에 1 달러 지폐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날아가버린 돈을 찾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 아이가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정말 죄송합니다. 하나님께 바칠 돈을 제가 잃어버렸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우리는 이 아이처럼 나의 것과 주님의 것을 나누어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둘로 나누어서 해석을 하는 것처럼 오늘날에도 믿는 성도들 중에서 나의 것 하나님의 것 이렇게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이사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라는 말씀을 하시기 전에 한 데나리온 동전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동전에 새겨진 얼굴과 글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보십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합니다. 앞에서 잠시 살펴보았지만 그당시 데나리온 동전에는 전임 황제이었던 아우구스투스 가이사 의 얼굴이 새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인 아우구스투스  가이사’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최고의 대제사장’ 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당시 로마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가이사는 신이다’ 라는 인사를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미국에서 아침에 사람을 만나면 ‘Good morning' 이라고 인사를 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첫인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당시 인사는 ‘가이사는 신이다’ 라는 말이 첫 인사이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크리스챤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참신인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신앙고백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참다운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옥과 순교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진정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한 데나니온 동전을 가져 오라 고 말씀하시고 그 동전에 새겨진 모습과 글을 물어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너희들이 가이사에 대해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는 사실을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세금 문제로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금문제가 아니라 우상의 문제로 주제를 바꾸십니다. 그래서 지금 너희들이 우상 숭배를 하고 있다고 경고하시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당시의 유대 나라 백성들은 하나님 이외에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타협을 했습니다. 그리고 헤롯당원은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행동을 지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동전을 가져 오라고 말씀하시고 그 동전을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 너희들이 섬기고 있는 대상은 가이사다. 너희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가이사를 우상숭배하고 있다‘ 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앞에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 뒤에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라는 내용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우리말 성경을 보면 접속사가 없지만 원어를 보게 되면 ‘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 있어야 더 정확한 번역이 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잘 아시겠지만 ‘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있으면 앞에 나오는 내용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 더 중요하지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모여서 스낵을 먹고 있는데 어느 한사람이 왔습니다. 그래서 과자를 좀 드세요 라고 하니까 그사람이 이런 접속사를 사용했다고 하십시다. ‘저는 과자를 좋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과자를...“ 그다음에는 무슨 말이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과자를 먹겠습니다’ 라는 말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자를 먹겠다 라고 하는 뒤에 나오는 말이 앞에 나오는 말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강조된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한번더 들어보면 ‘오늘은 사람들이 쉬는 공휴일 할리 데이입니다. 그러나 나는 일하러 가야 합니다’ ‘나는 쉬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나오면 앞에 말보다는 뒤에 말이 훨씬 더 중요하고 강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강조하시고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주제는 바로 앞에 있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 는 것을 예수님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국가에 세금을 내는 일을 하고 우리가 교회에서 헌금을 내고 우리가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를 하고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에서 일을 해나가지만..., 이 모든 일을 하지만..., 이 모든 영역은 하나님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그것은 각자가 판단해서 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니까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세금을 내는 것이면 세금을 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공부하고 일해야 하는 것이면 공부를 하고 일을 해야 합니다. 자 그런데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제 1계명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이사를 섬겨왔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도 하고 그리고 하나님도 섬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모든일을 할 수가 있지만 모든 것은 주인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화폐이자 하나님의 동전이라 할수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우리 인간을 자세히 보면 가이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인데 그중 일부를 드리고 우리는 나머지 맡겨진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성실하게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이라 할수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인간에게 ‘하나님의 것이 너희들의 것이다’ 라고 유혹을 합니다. ‘선악과를 먹어라. 왜 하나님이 선악과 먹지 말라고 한줄 알아? 네가 선악과를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먹지말라고 한것이야’ 이렇게 유혹을 했고 그리고 그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후손들은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에서 나타난 인간들처럼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반역을 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럼으로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 가져야 할 마음 자세입니다. 시편 24:1절입니다. 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이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 이라는 신앙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세금 문제가 아닙니다. 돈이 사람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주인이 될 수 없고 가이사와 같은 정치 권력자도 사람을 부리는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이십니다.

구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접할 때 주어집니다. 예수님이 내 죄값을 십자가에서 대신 치루어 주셨다는 사실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들의 생명을 바치게 해서 그 핏값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의 핏값으로 우리를 사셨으니까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으로 이땅을 살아가는 동안 바리새인이나 헤롯당원들처럼 이것은 내것, 저것은 하나님의 것 이렇게 나누어서 생각하고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모든 것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는 청지기로서 매니져로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