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37. 산 자의 하나님

Author
kgmcc
Date
2022-02-23 02:53
Views
68
본문 : 마가복음 12장 18-27절

날짜 : 2022년 2월 23일

 

<마가복음 1218-27>

18.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19.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0.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21.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22.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23.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4.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25.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26.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27.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질문을 하면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18절입니다. 18.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이 사두개인들이 누구인가 하면 제사장 출신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정부와 협조를 해서 사회적인 부와 특권을 누리며 살았던 사람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숫자적으로 많지는 않았지만, 그당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제사장 출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활을 부정했습니다. 지금 이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다음 세상에 대한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해볼수 있겠습니다. 부활신앙이라든지, 천국 소망이라든지, 영생이라는 개념이 이 사두개인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하게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의 내용을 보시면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예수님에게 트집을 잡기 위해 세금문제를 꺼집어 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난주 수요일에 우리가 살펴보았죠. 마가복음 12장 13절입니다. 13.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중에서 사람을 보내며 로마정부에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헤롯당원과 세금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바리새인들이 같이 예수님에게 와서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대답을 하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는 로마권력층과 손잡고 살아가는 로마 정부 앞잡이다’ 라는 소문을 낼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유대인들을 예수를 비난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세금을 바쳐서는 안된다고 대답을 하면 헤롯당원들이 로마정부에 알려서 국가 반역죄로 잡아가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우리말 성경을 보면 접속사가 없지만 원어를 보게 되면 ‘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 있어야 더 정확한 번역이 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잘 아시겠지만 ‘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있으면 앞에 나오는 내용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그럼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이말씀은 뒤에 나오는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는 내용을 더 강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국가에 세금 내는 일을 하고 우리가 교회에서 헌금을 내고 우리가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를 하고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에서 일을 해나가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 모든일은 해도 좋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그것은 각자가 판단해서 할 수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세금을 내는 것이면 세금을 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공부하고 일해야 하는 것이면 공부를 하고 일을 해야 합니다. 자 그런데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이사를 섬겨왔습니다. 데나리온 동전에 로마 황제 가이사의 얼굴과 문장을 새겨 넣은 것은 그냥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를 신으로 섬기게 하기 위해서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우상숭배도 하고 그리고 하나님도 섬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가이사는 신이다‘ 라는 말이 그당시 인사였습니다. 세금을 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것입니다, 모든일을 할 수가 있지만 모든 것은 주인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아무런 트집을 잡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온 것입니다. 왜요? 바리새인들이나 헤롯당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트집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 수혼 제도

예수님 앞에 온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옛날 모세시대 때부터 있어온 수혼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합니다. 수혼 제도란 결혼을 한 형이 자식이 없이 죽게 되면 동생이 형수를 통하여 형의 자녀를 이어주는 법입니다. 그리고 형수를 통해 낳은 자녀는 동생의 자녀가 아니라 형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형의 가문을 이어가게 했던 모세 시대때부터 있어온 특별한 제도이었습니다. 물론 이 제도에 동생이 반드시 순종해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동생이 형수와 결혼생활을 계속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이런 수혼 제도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20절에서 23절입니다. 20.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21.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22.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23.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어느 한 가문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제일 큰 형이 결혼하여 자식이 없이 죽었습니다. 이후에 둘째가 모세가 세운 법을 따라 형수를 취했는데 그 동생도 죽었습니다. 셋째동생이 그 형수를 취했는데 그 세째도 죽고 이렇게 해서 일곱 형제가 차례로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부활하게 되면 누가 이 여인의 남편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한 것이죠.

사실 이러한 일이 생긴다는 것은 현실적으론 불가능합니다. 사두개인들은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와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24절입니다. 24.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두개인들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두가지 때문인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첫째는 성경을 알지 못하고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성경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올바로 알게 된다면 부활신앙을 가지고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24절에 나온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능력이 있는 부활의 신앙을 가질려면

첫째로 성경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이 성경을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잘 알고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수혼문제를 꺼집어낸것은 그들이 절대적으로 따르고 섬기는 모세의 가르침을 적용시킨 것입니다.

19절입니다. 19.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모세가 우리에게 써주기를...’ 모세의 가르침을 가지고 질문을 하는 사두개인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모세의 가르침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일곱 형제가 수혼제도를 지키기 위해서 한 여인을 취하였는데 나중에 부활하게 되면 이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까? 라고 질문 한 것입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합니까?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자기가 믿고 주장하는 내용을 관철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즉 부활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신앙의 선배인 모세도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 수혼 제도를 만들었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부활을 믿었다면 부활후에 이런 혼란한 문제가 생기는 수혼제도를 만들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문맥을 기준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을 기준으로 해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에 일어난 오해입니다.

모세가 왜 이런 수혼 제도를 만들었습니까? 부활은 없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이 수혼제도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그 가문을 이어주기 위해서 입니다. 집안 가문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낳은 자녀들은 형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는 동생의 족보가 아니라 형의 족보에 올라갔습니다. 두 번째는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에 있었습니다. 모세시대 때 여성이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죽으면 당장 먹고 살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부가 된 여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이런 제도를 모세가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수혼 제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했을때와 가나안땅에 들어와 살았던 초창기와 사사시대에는 필요했을지 모르겠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은 죽었던 법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모세가 부활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 수혼 제도를 만들었다는 식으로 해석을 해왔습니다. 그러니까 사두개인들이 성경을 알고는 있지만 너무 잘못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모세가 부활 신앙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있었던 것임을 가르쳐주십니다. 26, 27절입니다. 26.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27.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지금 예수님께서는 출애굽기 3장 6절에 나오는 장면을 인용하셔서 사두개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시면 시내산에 있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 6절입니다. 6.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대답하시면서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니라’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해석을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이 성경을 읽지 않아서 성경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읽지만 자기 입장에 맞게 해석하고 생각을 하니까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그 문장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성경 문맥과 성경에 기록된 그 당시 환경을 살펴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잘못 해석되고 있는 성경구절이 있다면 바로 빌립보서 4장 13절입니다.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인용해서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일을 진행시키면 모든 것을 할수 있다는 메시지로 적용 하고 있습니다. 물론 포기 하지 않고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해나가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가능해질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성경구절은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 본문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이 성경구절은 단순하게 “하면 된다!” 라고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원하는 구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서입니다. 바울이 말년에 로마 감옥에 갇혀있을 때 빌립보 교회 교인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감옥에 있는 상황이니까 나쁜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추측할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라는 이 내용을 완전히 알기 위해서는 11절부터 읽어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과 12절입니다.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1절 후반부를 보시면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 라고 말하면서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라고 설명합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전도를 하면서 그리고 지금 감옥생활을 하면서 배가 부르고 배가 고프고 기쁘고 슬프고 어렵고 힘든일을 만날 때 나는 자족하는 방법을 배워왔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한 의미는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어떤 형편과 어떤 처지에서도 나는 자족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는 내용은 자기 확신이나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구절이 아니라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고난을 넉넉하게 이겨나갈수 있다고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온전히 알지 못하고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내자신의 입장에 맞추어서 해석을 할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언제나 내 입장과 내생각을 근거로 해서 해석하는 것 보다는 성경에 기록된 그 당시의 상황과 성경 문맥 전후를 살펴서 해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는 자신들의 생각을 주장하기 위해서 모세가 만든 수혼 제도를 도입하여 이상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도들이 성경을 안 읽어서 성경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성경 내용을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서 해석을 하기때문에 성경을 알지 못하고 오해를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견고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둘째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24절 후반부를 다시 보시겠습니다. 24.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루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고 모리아산에 올라가 이삭을 바칠려고 했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히브리서 11장 19절에서 이렇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19.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 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데려 가신다 해도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다시 살리시고 되 돌려주실수 있으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에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 제단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능력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산자의 하나님이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27절입니다. 27.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의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지금 이시간에도 살아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지내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산자의 하나님으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사들처럼 영원히 살아서 하나님을 경배 찬양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5절입니다.

25.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하늘의 천사들과 같이 영원히 살아간다는 것은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 나라에서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산 자되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그들은 죽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은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능력은 산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죽은후에 부활하게 되면 어떤 몸이 됩니까?

고린도 전서 15장 42-44절입니다. 42.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지금 우리가 가진 이몸은 어떤 몸입니까? 썩을 것으로 심고 썩을 몸이죠. 욕된 것으로 심고 욕된 것입니다. 약한 것으로 심고 약한 것이고 육의 몸으로 심고 육의 몸입니다. 그런데 부활체의 몸은요?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그날에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강한 몸으로 신령한 몸으로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광스러운 몸이고 무엇이 강한 몸이고 무엇이 신령한 몸입니까? 모릅니다. 성경은 그이상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그 누구도 모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알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범위에서만 말할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볼수가 있습니다. 모두가 다 성경 전후 맥락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주장하기 위해 짜깁기 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 15장 49절입니다. 49.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몸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이지만 산 자 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몸, 강한 몸, 신령한 몸 즉 다시 말해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으로 바뀌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입니까? 성경은 더 이상 말씀해주지 않아서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해주는 선에서 그쳐야 합니다. 다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처럼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자 가운데서도 살리십니다. 없는 가운데서도 있게 하시고 문을 열면 닫을자가 없고 문을 닫으시면 열자가 없게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자녀답게 충성되게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두개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의 믿음과 생각을 주장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속에 들어가서 그 말씀이 전달하고자 하는 본래적인 의미를 찾기에 힘쓰심으로서 온전하게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알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