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38.모든 계명중에 첫째

Author
kgmcc
Date
2022-03-02 02:54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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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가복음 12장 28-34절

날짜 : 2022년 3월 2일

 

<마가복음 1228-34>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 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이전에 몇 번 말씀을 드렸지만 마가복음 12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화요일에 예수님께서 그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12장 1절 이하를 보시면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 악한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책망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포도원은 주인이 농부들에게 맡긴 것이지 농부들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온갖 나쁜짓을 하다가 결국 심판을 받게 된다는 식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이후에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로마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 것이 옳은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를 물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이사것은 가이사에게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로마 가이사도 하나님께서 허용하셔서 가지게 된 권력이니까 세금을 내어야 하지만 우상숭배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물러가고 난 이후에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옵니다. 그리고선 모세가 만든 수혼제도를 가지고 예수님과 논쟁을 벌리죠. 수혼 제도란 형이 결혼해서 자녀를 가지지 못하고 죽게 되면 동생이 형의 아내를 취해서 형의 가문을 이어주는 그당시에 있었던 특별한 제도입니다. 모세가 수혼제도를 만든 것은 집안 가문과 여인을 보호할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모세가 부활을 믿었다면 나중에 부활해서 누구의 남편이 될지 혼란스러운 이러한 수혼제도를 만들었겠느냐고 주장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부활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 ‘모세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산 자의 하나님’ 이시라는 의미로 말씀하셨다고 해석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지금도 살아서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것이죠. 그 사실을 모세가 믿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죽음은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까요. 우리는 영원히 살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지내게 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트집 잡기 위해 왔다가 아무런 흠집을 찾아내지 하지 못하고 물러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서기관이 예수님에게 와서 질문을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28절입니다.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 서기관은 예수님에게 그냥 질문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같은 장면이 나오는 마태복음 22장을 보시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5절과 36절입니다. 35.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그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시험하여 묻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사와 서기관은 같은 사람입니다. 서기관이 하는 일은 주로 성경을 베끼는 사람들입니다. 헬라어나 히브리어는 점 하나만 잘못 찍어도 의미가 달라져버립니다. 우리나라 글에도 이러한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라는 내용이 사실인데 선 하나를 잘못사용해서 자신을 의미하는 ‘내가‘ 가 상대방을 의미하는 ’네가‘ 가 되어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잘못으로 탓하는 의미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 할수 있겠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나를 가르키는 ’내가‘ 는 내가로 그리고 상대방을 가르키는 ’네가’ 는 ‘니가’ 로 표현해서 구별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 혼돈을 피할려고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점하나 선 하나를 잘못 찍으면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되다 보니까 공부를 많이 한 학자나 똑똑한 사람들이 서기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을 베끼는 일을 하다보니 성경내용을 잘 알게 되었고 그래서 율법을 해석하는 일도 했습니다. 성경을 기록하는 면을 강조하게 되면 서기관으로 불렀고, 율법을 해석하는 일을 강조하게 되면 율법사라고도 불렀던 것입니다. 또한 서기관이나 율법사는 종교적으로 대부분 바리새인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들은 모두 같은 신앙 계열의 사람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각각 일하는 분야를 강조하다보니까 부르는 명칭이 달라진 것이지 다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하면 쉽게 기억할 것 같습니다.

이 서기관 중 한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 내용이 무엇입니까?

28절 후반부입니다. 28.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그당시에 무엇이 가장 큰 계명이냐라고 하는 논쟁은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항상 있어왔던 논쟁꺼리 이였습니다.

어떤 바리새인들은 예배(제사)를 명하는 계명이 가장 크고 으뜸이 되는 계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몸에 달고 다니라고 명하는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결케 하라고 명하는 계명이라고 주장했고 또 어떤 사람은 큰 명절을 지키라고 명하는 계명이 제일 크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무슨 계명이 가장 크다‘ 라고 대답을 하시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자기들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그냥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시험 한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계명의 내용이 아니라 계명을 잘 지킬수 있는 근본 원리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30절입니다.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어떤 계명이든지 잘 지켜나갈수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우리가 먼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깨닫게 되고 난 이후에 하게 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중에 가장 큰 사랑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신약에 와서 이 사랑은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세상에 보내주신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니까 오늘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그 좋은 본보기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는 그날 저녁에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9-10절입니다.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었죠.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해 나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 같이’ 그러니까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실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계신다고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기 위해선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신 계명을 지켜 나갈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계명을 지켜나갈수 있는 길은 바로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할 때 우리가 지켜나갈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아시다시피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을 받고 생명의 길로 가게하기 위해, 그래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라고 모세를 통해서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계명은 우리 인간에게 짐이 되고 부담이 되어질 것입니다.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신약에 와서 아들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는데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입니다.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구절에 나온 ’말씀‘ 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셔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던 그 말씀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입니다.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러니까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에게 십자가의 죽음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구약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약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구약을 참조해서 읽으면서 서로 보충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계셨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께서 나를 끝까지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입니다.

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성찬식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그 발로 배반하고 도망을 갔지만 예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면서도 그 발을 미리 씻어주신 것입니다. 이미 용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제자들 속에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못하느냐의 하는 차이로 인해서 구원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의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어느 계명이 더 크고 어느 계명이 덜 중요한가에 따지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있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을 알고 계신 예수님이셨기에 그 계명에 순종하여 제자인 저와 여러분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주님의 그 사랑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신앙생활 해나갈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랑에 감사해서 우리는 계명을 지켜나갈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다.

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1절입니다.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사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적으로 연결이 되는 부분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사람이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사람도 자연히 사랑하며 살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만을 사랑해 사람은 필요없어‘ 이럴게 말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에 아들을 보내주신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십자가의 죽음으로서 사랑을 확정시켜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와 나의 이웃을 위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는데 그 계명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과 35절입니다.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때의 상황은 몇 시간후면 예수님께서는 붙잡혀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순간에 예수님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입니다.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기쁨이 너희안에 있어‘ 사람을 위해 죽으러 가는 것이 너무 기쁘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도 이런 기쁨이 있기를 원한다 말씀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럼으로 예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그 사랑이 내 마음속에 가득하게 있다면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세상의 마지막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기쁨이 충만하셨던 그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주님의 계명을 지켜나갈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은 그냥 하는척 하는 사랑이 아니라 우리 인격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하시고 또 네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한마디로 말하면 전인격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이 문장을 가지고 많은 목회자들이 자세하게 해석을 하시지만 사실 그 단어 하나하나를 알지 못해도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 아닙니까?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가장 큰 계명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듣었던 이 서기관은 크게 감명을 받아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32절과 33절입니다. 32.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이 서기관이 한 말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약간 다릅니다. 33절 앞부분을 보시면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에서 서기관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를 ‘지혜를 다하고’ 로 바꾸어 말했습니다. 이것은 서기관이 그만큼 지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았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종종 계시는데 이 서기관은 지혜를 목숨이나 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고 가치있게 여기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서기관의 대답을 듣고 난이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있습니다. 34절입니다. 34.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멀지 않다는 말씀은 아주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거의 들어갈뻔 했다 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갑돌이가 한달전에 변호사 시험을 쳤는데 거의 합격할뻔했다 라고 한다면 합격했다는 의미입니까? 불합격했다는 의미입니까? 변호사 시험에 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은 자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먼 자 이거나 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 서기관은 형식적인 제사나 예배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을 깨닫았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나 형식을 보시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깨닫았습니다. 하지만 그 깨닫음으로 인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은 아닙니다. 이 서기관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믿고 받아들였는지는 우리가 알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들을 말씀을 통해 듣습니다.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확신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는 것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것은 두 개의 계명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을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증명해 보이라‘ 고 말씀합니다. 요한 일서 4장 20절입니다.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그럼으로 믿는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다. 그래서 그 계명을 따라 너희를 사랑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나도 역시 사랑하기 때문에 힘을 다해 그분의 계명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는 이웃 사랑을 행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가장 잘 요약해주는 성경구절을 말씀드리고 마치고자 합니다. 요한 일서 4장 9-11절입니다.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사랑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그래서 그 사랑을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증거하면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