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40. 세상 끝날의 징조와 비밀

Author
kgmcc
Date
2022-03-16 03:53
Views
41
본문 : 마가복음 13장 1-13절

날짜 : 2022년 3월 16일

 

 

<마가 복음 13장 1-13절>

1.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3.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4.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7.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10.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오늘 본문 13장은 세상 종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가 13절까지 봉독했지만 사실 13장 전체가 종말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가복음 13장 전체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요즘에 와서 세상 종말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별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로 이제 곧 3차 세계대전이 오게 되면 세상은 끝이 나게 될것이다라고 하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현재입니다. 오래전에 우리나라에서 다미 선교회가 예수님께서 1992년 10월 28일에 재림하신다라고 예언 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땐 저는 미국에 있었지만 이곳 미국에서도 다미선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는 교회가 생길만큼 그당시에 굉장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이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이후로부터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종말에 대한 메시지를 거의 들을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 다시 세상 종말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다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세상 종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때 보다도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시작과 끝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끝은 영광 중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천군천사들과 함께 이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날이 될 것 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6절과 17절 입니다.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만약에 주님 오시는 그날 우리가 이땅에 있다면 우리는 이 육신이 아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으로 순식간에 변하게 되면서 공중에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데살로니가 전서에 나오는 장면이 예수님께서 다시오시는 날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세상에 종말이 온다고 하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종말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마음의 자세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과는 많이 다를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세상 종말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종말 신앙을 대할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단어는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징조(sign)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밀(secret) 입니다. 징조와 비밀(sign & secret), 이것은 참 중요하니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징조를 보면서 세상 종말이 가까워지는 상태를 알수있습니다. 하지만 그날에 대한 비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야 합니다. 그날에 대한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 자기 마음대로 말씀을 떼어내고 붙이면서 그 비밀을 알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비밀은 말 그대로 비밀입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시지도 않는 비밀을 알려고 하는 시도를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이단이 생겨났습니다.

오늘 본문 4절 후반부를 보시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4 ...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절입니다. “7.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먼저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들리게 된다고 대답하십니다. 전쟁소식을 듣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징조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이 징조들은 역사 이래로 언제나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하지만 이 징조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 올수록 빈도가 잦아지고 그 스케일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가장큰 환난이 다가 오는 것입니다. 19절입니다. 19.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러면서 계속해서 24절에서 26절 까지 보시면 환난의 강도가 심해지면서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24.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이것이 마지막날 예수님께서 오실때 일어날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일어나는 세가지 징조가 있습니다.

 

첫째는 종교적인 미혹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5절과 6절입니다. “5.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 하라.’ 여기서 사람의 미혹은 종교적인 미혹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유혹과 거짓 종교의 유혹은 어느 시대에서나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마지막때가 가까이 올수록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인 미혹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세상이 어수선해지면서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볼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발표한 기독교 잡지에 의하면 한국에서 이단에 빠져있는 사람은 약 20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금 개신교인들의 숫자는 약 860만명으로 추산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 약 200만명이 이단에 빠져있다면 약 4분지 일 정도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명의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중에 두명은 이단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단이 소수가 아닌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이곳 미국과 전세계적으로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더 많은 숫자가 거짓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미혹 당하는 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왜 미혹당합니까? 기적과 이적을 행하니까 사람들이 미혹 당하게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22절입니다. 22.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그러니까 기적과 병 고치는 신유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믿고 있는 신앙이 참된 신앙인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기적과 신유가 아닌 말씀에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다음 세가지 테스트를 해보면 거짓 신앙, 이단적 신앙을 분별해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관으로 테스트 해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구세주임을 시인하는가에 있습니다. 많은 이단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십자가의 완전성을 부인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구제수가 되심을 부인합니다.

둘째는 성경관으로 테스트 해볼수 있습니다.

성경의 완전성을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인 것을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단들은 성경 외에 자기네들의 성경을 갖고 있습니다. 몰몬교는 성경이외에 몰몬경이 따로 있고 통일교도 성경이외에 원리 강론이 따로 있습니다. 성경은 기독교인들을 미혹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뿐입니다.

셋째는 교회관으로 테스트 해볼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예수님이 교회 머리가 되시는 것을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은 다른 교회들에 대해서 배타적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고 우리는 교회는 그분의 몸이라면 상식적으로 어떻게 배타적일수 있겠습니까? 올바른 교회관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상식도 안맞는 이런 종교적인 미혹에 넘어가는 것입니까? 이단을 연구하고 있는 분으로 부터 들은 내용입니다마는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자신은 특별히 선택을 받고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소위 14만 4천명 이라는 숫자가 상징적인 숫자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선택된 숫자인 것을 믿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만이 그 숫자 안에 들어갈수 있는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다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립이 되고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도 자기들끼리는 특별한 느낌을 가지고 담대하게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만을 그리고 말씀만을 그리고 교회를 중시하며 살아갈 때 이단의 미혹에서 이겨낼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일어날 세가지 징조 중

두번째는 사회적인 혼란이 증가가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7.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인 혼란 중에서도 특별히 난리 즉 전쟁이 증가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지나간 5천년동안에 약 14600번 가량의 전쟁이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일년동안에 평균 2.6회 정도의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전쟁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그 규모도 점점 더 커져가고 있습니다. 사실 1900년대에 구 소련이 공산주의를 포기했을 때 만해도 이제 이지구상에는 전쟁은 사라지고 평화가 지속될 것이라고 많은 사회학자들이 주장했습니다. 저도 그때는 이제 전쟁에 대한 걱정은 안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그 이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집트의 무바라크나 리비아의 독재 카다피가 사라지고 이라크의 사단 후세인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더 좋은 사회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김정은이 죽고 러시아 푸틴이 죽는다 할지라도 세상은 더 혼란스러워지지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담 후세인이나 오사마 빈라덴이나 그리고 북한 김정은이나 러시아 푸틴이 있거나 없거나 아무 상관없이 난리와 난리는 더욱더 증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전쟁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증가되어질 것이고 그 규모도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날에 대한 세가지 징조중

세번째는 자연적인 재앙의 증가입니다.

8절입니다. ”8.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물론 이 지진과 기근은 어느시대에나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지진과 기근의 횟수와 규모가 증가되어진다는 것이죠. 18세기에 지진은 전 세계를 통해서 640회 일어났습니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2119번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2만번 이상 일어났습니다. 무려 열배이상 뛰었습니다. 지진의 횟수가 증가하기도 하지만 이 지진의 규모도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오래전 일본 지진의 영향으로 일어난 쓰나미때 20만채가 넘는 가옥들이 휩쓸려 사라졌습니다. 그때 파손된 빌딩 자재와 자동차 와 여러 가지가 거대한 쓰레기 섬이 되어서 태평양을 항해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지구의 온난화와 오염에 의해서 지구가 몸부림치는 것을 우리는 피부에 느끼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재앙의 정도가 그 어느때보다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기아와 기근의 문제 역시 매우 심각해져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 세상이 풍요로와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굶주려 죽어가는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UN 통계에 의하면 2000년 도에는 전세계 인구중에서 약 8억 2천만명정도가 심각한 영양실조를 앓고 있는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인 2005년도에는 3천만명 정도가 더 늘어난 약 8억 5천만명이 심각한 영양실조를 걸려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3년후인 2008년도에는 7천 5백만명 정도가 더 늘어난 약 9억 2천 5백만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해 일년후인 2009년도에는 약 1억이 더 늘어난 10억 2천 3백만으로 발표했습니다. 일년만에 기아 인구수가 일억이 더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10년 전에는 일분마다 굶어서 죽어가는 숫자가 일분에 34명이었는데 지금은 일분에 60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일초에 1명씩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10년사이에 거의 두배나 굶어 죽어가는 숫자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전세계 인구의 1/3정도인 약 22억명 정도가 자기 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허기진 배를 잡고 잠자리에 눕고 있다고 보고하고 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욱더 증가되어 간다는 것에 있습니다. 지진은 더욱더 활발하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굶어 죽어가는 숫자는 더 증가될 것입니다. 그래요. 바람이 불고 번개가 일어나고 천둥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큰 비가 오게 될 것이라고 하는 예상을 쉽게 할 수가 잇습니다. 그리고 그 큰비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세상이 마지막을 향해서 나타나는 징조들이 심하게 보이기 시작을 한다면 우리는 이 마지막날을 위해서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성경적인 종말신앙은 이러한 징조와 함께 비밀이란 단어를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비밀은 시간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 날은 비밀이다 는 것입니다. 32절입니다. “32.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는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자신도 이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을 모르시기로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 아들아 때가 되었구나. 이제 내려가라” 하면 오시기로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그날과 그 때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왜 모르게 오십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이 깨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3절부터 마지막 37절까지입니다. 33.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비유 한가 지를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를 보시면 주인은 종들에게 일을 맡기면서 자기가 돌아올 날을 정해 놓지 않습니다. 왜요? 지혜로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종들이 가지는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 내가 돌아오겠다고 하면 하인들은 평상시에는 게으름 피우면서 막 살아가다가 주인이 오기로 한 그날이 가까이 오게되면 한꺼번에 다 정리를 해놓고 주인을 기다리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은 자신이 언제 돌아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비밀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종들은 언제나 긴장 하면서 주인이 언제든지 오시더라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게으름 피우는 하인도 있겠지만 지혜로운 하인이라고 한다면 주인이 오실날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우리 인간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다시 오실 그 날을 비밀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일 오실수도 있습니다. 아니 오늘밤에도 오실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성도답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진 성도가 가지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마태복음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열처녀의 비유 한가지를 더 말씀하십니다. 열처녀가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다섯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로 나뉘어진 것입니다. 갈라지는 그 기준점이 무엇입니까? 지혜로운 다섯처녀는 평상시에 기름을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한밤중에 오시는 신랑을 맞이 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기름은 평상시에 준비해야지 갑자기 준비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평상시에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신랑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름을 사러갔다가 혼인잔치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기름은 평상시에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 종말이 다가 온다고 해서 내 아내 내 남편 다 내팽겨치고 기도원이나 이상한 곳에 가서 몸부림 치고 울고 불고 하는 것은 지혜로운 다섯처녀가 할 행동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지금부터 몇시간후에 주님이 오신다 할지라도 내가 지금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면 공부를 하는 사람입니다. 가정주부라면 장보고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식사를 할 시간이라면 식사를 하고 쉬는 시간이라면 쉴수가 있는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언제 오시느냐가 아닙니다. 언제 오시더라도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제 생전에 예수님의 재림을 만나게 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내 살아 생전에 오시게 될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면 저는 지혜로운 하인이 가져야 하는 마음자세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생전에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신앙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마음자세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 당신 자신이 오시는 그날을 비밀로 하신 것이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라옵기는 이 마지막날을 생각하면서 지혜로운 하인처럼 깨어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갈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