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41. 내게 좋은일을 하였느니라
<막 14장 1-11절>
1.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0.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기 이틀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1절 전반부 보시겠습니다. 1.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그리고 그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이 유월절과 무교절 전에는 예수님을 죽이지 않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왜요? 1절 후반부와 2절입니다. 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그런데 결과를 보면 그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세운 계획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명절 날에 죽으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은 사람의 뜻과 계획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날에 죽으신 것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430년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그당시 애굽의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내보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열가지 재앙을 애굽나라에 내리십니다. 강물이 피로 바뀌고 온 나라에 개구리가 뛰고 이가 나오고 파리가 온 하늘을 뒤덮고 피부병이 생기고 우박이 내리고 메뚜기가 곡식을 다뜯어 먹고 대낮에 캄캄한 어둠이 임해도 애굽의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열 번째 내린 재앙으로인해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게 되자 그제서야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유의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들도 그날밤에 다 죽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하심에 순종을 해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발랐기 때문에 장자들이 죽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그 집을 그냥 지나쳤던 것입니다. 죽음의 재앙이 건너 뛰었다고 해서 이날을 유월절(Pass Over)이라고 합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유월절에 양을 잡아 그 피를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르지 않았다면 그집에는 죽음의 재앙이 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양의 피를 바른 그집은 죽음의 천사가 그집을 그냥 지나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입니다. 우리가 새해 설날에 떡국을 먹습니다. 왜 새해 첫날에 떡국을 먹습니까?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오래오래 살아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떡국을 짜르기 전에 떡가래는 길지 않습니까? 떡가래처럼 오래 오래 장수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올 한해 동안에도 병에 걸려 죽지 말고 오래 살자는 의미가 있고 또하나의 의미는 떡이 흰 것처럼 악한 마음이 아니라 거룩하고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떡국을 먹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이 유월절 명절에 양을 잡아 먹습니다. 양을 잡을 때 나오는 피는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릅니다. 그리고 양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습니다. 그리고 누룩이 없는 떡과 쓴 나물을 함께 먹습니다. 누룩이 없는 떡 그러니까 파우다를 넣지 않은 떡이니까 얼마나 딱딱하겠습니까? 그리고 쓴 나물을 같이 먹으니까 먹는 것이 쉽지않고 힘이 들 것입니다. 쓴나물과 누룩이 없는 딱딱하고 맛이 없는 떡을 먹는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나라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힘들었고 고생했던 고난을 기억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도 유태인들은 유월절을 지키면서 죽음의 재앙이 그들을 넘어간 날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이 유월절 양이 되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한 1장 29절입니다.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유월절 양의 죽음을 통해 그당시 노예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바로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 인간은 사탄의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 믿는 성도는 이땅에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음으로서 심판을 받지 않게 되었고 사망에서 생명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인구수는 약 3만명 정도로 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이 되면 이스라엘 전역과 해외에서 사는 많은 유대인들이 몰려와 약 2백만에서 3백만 정도의 사람들이 예루살렘 지역에 머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평상시보다 두배나 세배가 많아도 분주하고 바쁜데 열배나 스물배도 아닌 백배 가까운 사람들이 몰렸으니까 그 도시의 분위기가 얼마나 어수선하고 바쁘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그당시 주목을 받고 있던 예수님을 잡아 버리면 큰 데모가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한 나머지 그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명절이 끝나 사람들이 다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난이후에 행동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자 이렇게 예수님을 죽일려고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이때에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3절 전반부입니다. 3.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시몬이 누구입니까? 나병환자입니다. 그 당시 나병은 오늘날 에이즈에 해당되는 병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 시몬은 나병환자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난후 낫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이 나병에서 낫게 해주신 예수님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래서 그 은혜에 감사하는 잔치를 벌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과 같은 사건이 요한복음 12장에도 나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그 잔치에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가 등장합니다.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이 세 사람은 어떤 사이입니까? 형제 자매들이죠. 그런데 이 세사람과 시몬이 어떤 관계에 있는 것입니까? 그들은 같은 베다니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받고 삶이 변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어떤 신학자들은 이런 흥미있는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아마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시몬은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의 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도 있겠지만 성경은 더 이상 말씀해주지 않아서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같은 베다니 마을에 살았고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 나병환자이었던 시몬과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는 서로 잘알고 있던 사이이었을 것입니다. 자, 어쨌든 잔치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데 갑자기 한 여인이 예수님 앞으로 다가옵니다. 3절입니다. 3.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런데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이 여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2장 3절입니다,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오늘 본문과 요한복음 12장을 종합해서 정리해보면 마리아가 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 그 옥합을 깨드려서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것입니다. 자 그런데 이 마리아의 행동에 흥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4절입니다. 4.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그리고 이 마리아가 사용한 향유의 값어치를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5절입니다. 5.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이 향유를 삼백 데니니온 이상에 팔아’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사용한 향유는 삼백데나니온 이상의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 데나니온은 그당시 노동자가 하루 일하고 받는 품삯입니다. 그러니까 삼백 데나리온이면 삼백일 동안 일해야 모을수 있는 돈입니다. 거의 일 년 동안 일하고 사용하지 않고 모아야 가질수 있는 액수입니다. 이곳 미국 노동자 하루 일당을 100불로 계산하면 곱하기 300하면 삼만불이 됩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비싸고 가치가 있는 향유인 것입니다. 그렇게 비싸고 가치가 있는 향유를 마리아는 한순간에 다 사용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낭비를 한다고 화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가 엄청난 낭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칭찬하십니다. 6절입니다. 6.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그가 내게 좋은일을 하였느니라’ 영어성경을 보시면 She has done a beautiful thing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일을 했다는 것이죠. 사람들이 보기엔 낭비한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아름다운 일이다라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낭비를 해도 아름다운 낭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신 이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마리아의 행동을 칭찬하신 이유
첫째는 아름다운 동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행동을 한 것은 한마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라고 명령해서가 아닌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 여인은 자발적으로 행동했던 것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계산을 초월합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아까운줄을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젊은 청춘 남녀들이 사랑하게 되면 낭비를 합니다. 시간을 낭비하고 돈을 낭비합니다. 내일 중요한 시험을 쳐야할 시간인데도 만나서 긴 시간을 보냅니다. 오랜 시간 같이 있어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돈이 없지만 있는 돈, 없는 돈 다끌어모아서 고급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돈이 남으면 영화관에 가서 같이 영화도 봅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몇날 며칠동안 혼자 라면만 먹으면서 견딥니다. 그러다가 돈이 생기면 또 만나서 있는 돈 그날 다 써버립니다. 왜 이렇게 낭비를 합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계산을 초월합니다. 사랑하면 상식을 초월합니다.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내리고 있는 평가는 맞는 말입니다. “야, 이게 얼마짜리 향유이냐 삼백 데나니온 짜리가 아니야. 삼 만불짜리 향유이다. 이 삼만불을 한순간에 이렇게 다써버리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려고 하느냐. 정 그렇게 사용하고 싶으면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용하지. 왜 이렇게 쓸데없이 낭비를 하느냐. 너 미쳤구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맞는 말일수 있습니다. 틀린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사랑하기 때문에 이 모든 계산과 상식을 넘어선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동기에서 하는 행동은 다 아름답게 보십니다. 그래서 칭찬하십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이 이런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느냐 그러면 네 마음대로 하라’ 사랑의 동기에서 하는 그 모든 것은 아름답고 좋은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때때로 사람들의 상식과 계산을 넘어서는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행동은 주님이 아름답게 보시고 칭찬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사랑의 동기를 보시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이유는 말씀에 대하여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평상시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었다가 깨닫은 것에 대해 이날 실천을 했습니다.
8절입니다. 8.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이틀후면 예수님께서는 붙잡히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의 죽음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을 하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자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예언 하십니다. "내가 죽는다,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게 될 것이다" “내가 죽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게서는 시간이 나실때마다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을 심각하게 듣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때 뿐이었고 그냥 한귀로 흘려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겼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마리아는 언제나 예수님 아래에서 말씀을 듣는 모습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9절 입니다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그의 말씀을 듣더니’ 그리고 요한복음 11장 32절입니다.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그 발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오라비 나사로가 죽고 난 이후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르다는 즉시로 뛰쳐나갑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집안에 계속 앉아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너를 부르신다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집안에서 나옵니다. 요한복음 11장 28, 29절입니다. 28.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마르다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전에 행동을 먼저 하지만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난후에 행동을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는 언제나 말씀을 듣는 모습으로 그리고 말씀을 듣고 난 이후에 행동을 하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가 옥합향유를 깨트린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평상시에 하시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게 된 것입니다. 존 칼빈은 ‘마리아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께서 그동안 말씀을 하신 것처럼 하늘나라로 돌아가실때가 가까운 것 같다는 깨닫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이 떠나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나의 마음을 표현해야 하겠다 라고 결단하고 실천한 것입니다. ‘사랑은 보여주기 전 까지는 사랑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해도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함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사랑은 실천에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정말 귀하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실제적으로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마리아는 평상시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베풀어주시는 그 사랑에 이 여인은 실천함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사람들과 주님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칭찬을 하신 것은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겼던 마리아는 내가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예수님을 기쁘게 할수 있을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가진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재주가 있어서 유쾌하고 재미있게 예수님을 기쁘게 할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에게는 옥합에 든 귀한 향유가 있었습니다. 이 옥합은 훗날에 마리아가 결혼하게 될 때 결혼준비를 위해서 준비해 둔 옥합이었을 것이라고 신학자들은 추측합니다. 그리고 이 마리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옥합을 들고 예수님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옥합을 깨었습니다. 사실 옥합을 깨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옥합을 위의 뚜껑만 살짝 열고 향유를 사용할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향유를 다 사용하지 않고 조금만 사용하고 남겨놓을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해도 예수님께서 가시는 마지막 길에 참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뚜껑을 열고 다 향유를 다 쏟아 붓는다면 훗날에 그 옥합을 다시 사용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는 옥합의 윗 부분을를 깨트려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옥합을 다시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드리기 위해서 옥합을 깨버린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오직 한 마음을 가지고 옥합을 깨트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8절입니다. 8.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힘을 다하여 ... 준비하였다‘ 힘을 다했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이 마리아는 오늘날 헌신자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봉사자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헌신자가 되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헌신자는 자신의 수고와 노고를 알아달라고 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이거 비싼 것입니다. 삼만불 짜리입니다. 제가 평생 모아서 가지게 된 귀한 향유입니다. 알고나 받으세요“ 마리아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이 향유가 아무리 비싸도 예수님께서 나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지금 이 내것이 비싸고 귀하다고 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아시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헌신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헌신이 정말 귀한 것임을 사람들에게 알게 해주십니다. 그 향유가 삼만불이나 되는 가치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가롯 유다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절에서 6절입니다. ”4.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그러니까 가롯유다가 한 이 말 때문에 그 향유의 가치를 우리는 알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헌신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롯유다와 같은 악인을 통해서도 헌신하는 사람의 그 귀한 헌신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칭찬하십니다. 예수님에게 하는 헌신은. 사치가 아닙니다. 낭비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손해도 아닙니다. 칭찬과 축복만이 있습니다.
이 마리아의 헌신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아름다운 냄새로 가득차게 했습니다. 마리아 자신뿐만 아니라 가롯유다와 같은 악인에게도 아름다운 냄새를 맡게 했습니다. 마음이 강퍅한 사람도,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도 믿음이 있는 사람도 믿음이 없는 사람도 모두가 다 헌신자의 헌신에 감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헌신자의 헌신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세상은 삼십 데나리온에 예수를 팔아먹는 가롯유다와 같은 사람들이 삼백 데나리온을 주님을 위해 바치는 헌신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정죄를 하는일이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롯유다의 말을 듣고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같이 거들었던 것 처럼 오늘날에도 이러한 일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고 눈에 보이는 그 앞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예수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지금은 이런일이 훨씬 더 자주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가롯유다와 같은 사람을 통해서라도 헌신자들의 귀한 가치를 만인들에게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곳 마다 이 마리아의 헌신도 말하여 이 헌신을 기념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9절입니다, 9.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역으로 생각을 해보면 진정한 헌신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간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 해나가십시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듣는일에 열심을 내십시다. 그리고 그 말씀을 깨닫게 될 때 마리아처럼 결단을 하고 실천하십시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