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43.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Author
kgmcc
Date
2022-04-06 02:46
Views
34
본문 : 마가복음 14장 26-31절

날짜 : 2022년 4월 6일

 

<마가복음 1426-31>

26.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27.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을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난주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게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는 동안 일어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시는 중에 ‘너희들중의 한사람이 나를 팔리라’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가룟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께서는 붙잡히시고 고문을 받으신 후에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시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은 사실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유월절 만찬이 끝나고 난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이죠. 본문 26절입니다. 26.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이렇게 감람산으로 가시는 도중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27절 전반부입니다. 27.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조금전에 유월절 만찬을 할때는 “너희들중에 한명이 나를 팔리라‘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너희들 모두가 다 나를 버리리라‘ 라고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일이 일어났던 것을 지금 우리들은 잘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 아직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데려온 무리들에 의해 붙잡히시게 됩니다. 그리고 고문을 받으신 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활동을 하시는 동안 이러한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여러번 말씀을 해오셨습니다. 심지어는 조금전 유월절 만찬을 하시는 도중에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면서 ‘이 떡은 너희를 위한 내몸이다 그리고 이 포도주는 너희를 위해 흘릴 내 피다‘ 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직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게 되면 제자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에게 자신을 버릴 것을 미리 말씀 해 주심으로써 나중에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다시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는 여기서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는 일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예언 하게 하신 일입니다. 27절 전체를 보시겠습니다. 27.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기록된바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있다는 의미이죠.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은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시기 약 500년 전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스가랴 선지자는 500년 후에 일어나게 될 일을 예언한 것이죠.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는 장면을 예언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제자들이 뿔뿔이 도망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간다 할지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29절입니다. 29.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닭이 두 번 울기전에 세 번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물러서지 않고 절대로 그런일이 없을 것이라고 맹세를 하고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본문 31절입니다. 31.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와 다른 모든 제자들은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예수님이 잡히실 때 주님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그날밤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을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고 또 여러 가지 기적을 경험했던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배반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가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바로 대부분 우리 인간의 실제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인간이기 때문에 종종 예수님을 배반하고, 친구들이나 이웃사람들을 배신하는 행동을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동물 들중에 인간만이 배반을 할줄아는 동물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요즘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인기 프로그램인 ‘런닝맨’을 보면 배신의 아이콘으로 대표적인 두사람이 나왔습니다. 구태여 이야기 하자면 이광수와 지석진입니다. 같이 힘을 합해서 상대팀을 이기자 라고 약속을 하지만 나중에가면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 배신을 잘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배신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모두가 다 배신의 DNA가 있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우리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돈 때문에 친구나 가족을 배반하고 살인하는 내용이 담긴 뉴스는 볼수 있습니다. 사기를 치고 속이는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만 하루에도 수십건씩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가 배신의 행위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또한 나자신을 믿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우리의 의지는 연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고 아픔과 고통을 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이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을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절입니다. 28.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후에 먼저 갈릴리로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후에 제자보다도 먼저 갈릴리로 가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난 다음날인 안식일후 첫날 이른 새벽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빈무덤에서 흰옷을 입은 천사들을 만나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마태복음 28장 6절입니다.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리고 천사는 여인들에게 중요한 소식을 전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신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빨리 갈릴리로 가서 주님을 만나라고 전해라‘ 라고 천사가 말합니다.

그래서 이 천사가 하는 말을 듣고 여인들이 놀라운 이 소식을 전할려고 달려가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인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역시 같은 내용을 전하십니다. 10절입니다 “10.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 전인데도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내가 살아난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그래서 마태복음 28장 16절을 보시면 가롯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신 갈릴리지역에 갑니다. 마태복음 28장 16절입니다. “16.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마침내 제자들은 갈릴리지역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은 갈릴리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당시 종교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으로 가라”, 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라!” 라고 말씀을 하십니까?

그리고 갈릴리로 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말씀하셨고 천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또 부활하신 직후에도 친히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갈릴리로 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면 왜 빨리 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까지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시고 그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처음으로 만나 주신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먼저 갈릴리로 가시고 제자들을 거기서 만나는 이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 처음 받은 마음가짐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나 이곳 미국에서나 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고향에 가게 되면 어릴적의 동네 친구들이나 동네 어른들을 만나게 됩니다. 고향 사람들을 만나고 고향 마을 경치를 보게 되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옛날의 추억들이 생각이 납니다. 어릴 때 개울가에서 물장구치고 놀았던 일이 생각이 나고 딱지치기나 팽이치기를 하며 놀았던 일들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저는 이곳 미국에 와서 가장 오래 정착했던 지역이 메릴렌드 주에 있는 후레드릭 카운티입니다. 거기서 제 자녀가 성장했고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아직 그곳에 제 누님이 있기 때문에 한번씩 후레드릭 마을에 갈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역에 가면 옛날에 살았던 아파트 와 타운 하우 스가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이웃사람들이 생각이 납니다. 후레드릭 교회와 교회 성도님들이 생각나고 그지역에 있는 그로서리 가게들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감회가 새로워 짐을 느끼게 됩니다.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갈릴리 지역에서 만나게 되었을때 옛날에 주님과 함께 지냈던 3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갈릴리지역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고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주로 이 갈릴리지역에서 3년동안 말씀을 들었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갈릴리는 제자들에게 있어 신앙의 출발지이었고 부르심을 받았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주님이 붙잡히시던 날 주님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을 발휘하셔서 붙잡을려고 하는 그 무리들을 혼내줄수 있기를 바랬는데 그날 그냥 힘없이 붙잡히셨습니다. 그리고 고문을 받으신 후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들은 자기가 가진 모든 꿈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들의 꿈과 소망도 같이 죽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먼저 갈릴리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해보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떠났던 제자들에게, 모든 꿈과 소망을 잃어버린 제자들에게 주님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 보자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실패와 좌절은 잊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그곳으로 부르시고 사명을 주었던 그 자리에서 그들을 만나 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실패할수 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낙심해서 사명을 잃어버리고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예배를 드리면서 힘들게 신앙생활을 할때가 있습니다. 이런 나를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먼저 갈릴리로 가십니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만나주십니다. 이것은 “내가 너를 처음 만났던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가서 시작해보자”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서 제자들처럼 실패를 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첫사랑을 경험한 그 자리를 기억하면서 다시 시작하시길 원하십니다. 첫사랑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힘을 얻어 새롭게 다시 출발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된 그 장소 그 사건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그때 그 장소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다시한번 힘을 얻을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실패하고 힘들 때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사랑을 경험했던 그 갈릴리로 돌아가 새롭게 힘을 얻을수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2. 갈릴리는 일상적인 삶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명절때가 되면 한번씩 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갈릴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해왔던 곳입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사명자의 생활을 해왔던 곳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먹고 자고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 속에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에서 주일 예배나 부흥 집회를 할때만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부활절 이나 추수감사주일 같은 특별한 절기때에만 만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그렇다면 부활의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고 거기서 제자들을 만날려고 했을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의 주님께서는 갈릴리에 먼저가서 계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매일 만나기를 원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늘 우리와 함께 동행 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후에 갈릴리보다는 예루살렘에 먼저 가시는게 순서가 아닌가 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있는 수많은 군중들앞에서 ‘내가 삼일만에 이렇게 다시 살아났다’ 라고 증거하시는게 더 나으실텐데 라는 생각을 우리는 해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예루살렘에 먼저 가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원수를 갚기 위해 대제사장과 빌라도에게 가지도 않으십니다. 가장 먼저 갈릴리로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빨리 오라고 말씀하시고 거기서 제자들을 만나십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의 고향 마을입니다. 그들이 일상생활을 해왔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가운데 주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일상적인 삶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참다운 신앙생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은 어떤 이론이나 지식으로 인해 증명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인간이 연구하고 분석해서 이해 되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일상생활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알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을때 우리는 일상생활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부활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경험하게 되어 질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집을 나설 때에도 함께 집을 나서십니다. 차를 운전할때도 함께 동행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내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할때도 함께 하십니다. 죽음과 어둠의 권세를 깨트린 부활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 부활의 주님의 능력을 우리가 경험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높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후반부입니다. “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세상에 이 보다 더 귀하고 복된 말씀은 없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신다. 이 약속만큼 우리에게 힘이되고 축복이 되는 말씀은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죽음의 권세마저도 깨트린 부활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내앞에 어떠한 장애물이 있다할지라도 어떠한 큰 산과 넓은 바다가 가로막고 있다할지라도 담대할 수가 있습니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사역을 할 때 힘들고 어려울때마다 자기 자신을 지탱해준 말씀이 바로 이 약속의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리빙스턴이 사자의 공격을 받아서 죽게 되었을때도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을 가슴에 품어서 그 위기에서 벗어날수가 있었다고 고백 한적이 있습니다. 그래요.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에 먼저가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상처받고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를 만나시길 원하십니다. 첫사랑을 회복하고 기쁨과 감격의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길 원하십니다.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면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동안에 ‘내가 나와 함께 함께 있으리라’ 주님이 약속하신 이 말씀을 믿으면서 어떠한 어려움이나 고통속에서라도 승리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