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45. 실패와 회복의 원리

Author
kgmcc
Date
2022-04-20 02:40
Views
47
본문 : 마가복음 14장 53-72절

날짜 : 2022년 4월 20일

 

<마가복음 1453-72>

53.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55.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7.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58.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60.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6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3.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66.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67.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69.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70.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71.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오늘 본문은 장면은 제자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이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을 하는 장면도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대 제사장의 집 뜰 마당이었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53절입니다. 53.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그리고 이 대제사장의 이름은 마태복음 26장 57절을 보시면 가야바인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마태 26장 57절입니다. “57.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자 이렇게 예수님이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있는 이날 밤에 베드로는 대제사장 가야바 집 뜰 안마당까지 몰래 들어갑니다. 54절입니다. 54.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대제사장 가야바집 뜰 안마당까지 몰래 들어가서 집 하인들이 불을 쬐고 있는곳에 앉아서 베드로는 모른체하고 같이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이 발각되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날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갔지만 예수님을 부인하게 된 사건은 베드로의 실패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실패가 실패로만 끝났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로는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로가 된 것은 베드로는 자신의 실패를 극복하고 남은 인생을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다가 순교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인인 베드로로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베드로가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두가지 와 회복할 수 있었던 배경 두가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가 실패하게 될 때 회복되어 베드로처럼 신앙의 길을 갈수 있길 축원합니다. 먼저 베드로의 실패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실패를 했던 이유는

첫째로 예수님을 멀찍하게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54절 전반부입니다. 54.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예수를 멀찍이 따라... 베드로는 멀찍하게 예수님을 따라 간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하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말한 이 신앙 고백을 듣으시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자기가 말한 이 신앙고백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순종하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베드로는 예수님을 조금씩 멀리 하며 지냈던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께서는 시간이 나실때마다 자기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그 길을 가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베드로는 점점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예수님으로부터 조금씩 마음이 멀어져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몇시간전에 같이 유월절 만찬을 하실때도 예수님께서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면서 ‘이 떡을 먹으라 이 포도주를 마셔라’ 이것은 너희를 위해 찢겨지고 흘릴 내 몸과 내 피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중에 한사람이 나를 팔리라‘ 라는 말씀도 하시고 그로 인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될 것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예언하신 말씀 그대로 붙잡히시고 힘없이 대제사장 가야바 집까지 끌려가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베드로는 지금 내가 예수님을 가까이 하게 되면 내게 굉장한 위험이 있게 된다고 하는 현실적인 계산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멀찍하게 예수님을 따랐던 것이고 그리고는 실패를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교회에서 이렇게 예배를 드릴때는 주님과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삶의 터전에서는 예수님을 멀찍하게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안 따라 갈수는 없고 너무 가까이 하게 되면 부담스럽고, 그래서 멀찍하게 떨어져서 따라 다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로인하여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에 실패하게 됩니다.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는 낫다‘ 영어에도 이와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Near neighbor is better than a distant cousin'

평상시에 가까이 살면서 매일 보게 되는 이웃이 거리가 멀리 떨어서 잘 보지 못하게 되는 사촌 친척들 보다는 훨씬 더 친하고 가깝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정이라고 하는 것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매일처럼 가깝게 지낼 때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갑자기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다가 보니 각각 방을 따로 사용하게 되고 그러다가 서로 헤어져 다른 집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처럼 나와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찍히 따라 다니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실패를 했던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예수님을 날마다 가까이 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가는데 실패 했던 이유

둘째로 세상의 무리들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54절 후반부 입니다. “54.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여기서 아랫사람들은 하인들과 하녀들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종들이 앉아있는 그 자리속에 들어가 함께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입니다. 시편1:1입니다.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누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는 전도를 위해서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사업이나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도 세상에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나의 신앙의 터전은 신앙의 공동체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지 말아야 하고, 사자는 정글을 떠나지 말아야 하고, 새는 하늘을 떠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믿는 성도는 신앙의 공동체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비록 내가 몸담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이 교회가 남들이 보기에 작고 초라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신앙의 공동체가 내 신앙의 원동력이 되고 생명의 공급처가 될수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자,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베드로와 주변사람들의 눈에 비치고 있는 예수님은 굉장히 초라하고 연약한 모습입니다. 64절 후반부와 65절입니다. 64. ...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침을 뱉으며 예수님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쳤습니다. 뿐만아니라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때렸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심문을 받고 부끄러움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아무 말하지 못하고 힘없이 가만히 있는 예수님을 보면서 저런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 인것이 부끄러운 마음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지금 저렇게 붙잡혀서 힘없이 가만히 있는 예수를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빠질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같이 모여 기도하면서 힘을 얻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들과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를 반대하는 무리들 한 가운데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베드로의 신앙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68절입니다. 68.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그리고 계속해서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또 부인하고 있는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69절과 70절 앞부분입니다. 69.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70.또 부인하더라... ‘또 부인하더라’ 두 번째 부인입니다. 71절에 세 번째 부인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71.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세 번째는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는 이렇게 자기 신앙생활에 실패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가 실패의 인생을 살아가게 그냥두시지 않으십니다. 한번 택한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때문에 베드로는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님이 바로 우리에게는 희망과 소망의 메시지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베드로가 실패에서 회복할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실패에서 회복할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예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본문 마지막 72절입니다. 72.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베드로가 울면서 통곡했던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야 너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넘어지고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소홀이 여길때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고 생각할 때 다시 회복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11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어떻게 한다고요? 주의 말씀을 내마음에 두었나이다. 그래요.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범죄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주님의 말씀이 나를 범죄에서 지키게 하고 또 실패한 나를 회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서 내가 회복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 말씀을 다시 소홀히 하게되면 또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베드로는 또 넘어졌습니다.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겠다이렇게 베드로는 말을 하고 몇 명의 제자들과 함께 그 옛날 어부생활로 다시 되돌아가버립니다. 요한 복음 21장을 보시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셔서 불을 피워놓으시고 제자들을 위하여 떡과 생선을 구워놓으신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고 이른 새벽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육지로 올라올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리로 와서 조반을 먹으라 그런데 이장면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고 성경은 요한복음 21장 14절에서 말씀을 합니다. 요한복음 21장 14절입니다.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계속 실패를 하고 있는 제자와 그 철이 없는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날 아침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불속에서 구운 떡과 물고기를 받아서 먹습니다. 그리고 난후에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회복하게 됩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요한복음 21장 15절입니다. 15.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 왜 이 질문을 베드로에게 하셨을 까요? 이 질문만이 베드로가 마음을 열고 대답을 할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질문만은 베드로가 그날밤 실패한 사건에 대해 상처를 받지 않고 대답할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이 상처를 받을까봐 배려해주시는 예수님의 깊은 마음씨를 알수가 있었습니다. 그날밤 실패했던 일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시지 않으시고 다만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만 물어주시는 예수님이 지니신 생각을 알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으로 인해 베드로는 회복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했을 때 나를 회복하게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심령에 채워지게 될 때 우리는 넘어졌을지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주님의 말씀이 없었더라면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올때마다 마음이 괴로워서 어쩔줄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로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릴때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래서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닭의 울음소리를 들을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떠한 환경속에 있다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일으켜 세우게 하십니다. 회복하게 하십니다. 믿으십니까?

 

베드로가 실패에서 회복할수 있었던 것은

둘째로 주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조금전에 살펴본 본문 마지막 72절 내용을 누가복음 22장 61, 62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있습니다. 61.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게 추론할수 있습니다. 세 번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의 귀에 두 번의 닭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무언가 깨닫게 된 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보았는데 주님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나서 밖에나가서 심히 통곡을 합니다. 자, 베드로가 통곡을 한 이유는 자신을 보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졌을 때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잘되고 성공할때도 보시고 계시지만 실패하고 넘어졌을때도 우리를 보시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님을 보아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실패한 제자 베드로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은 어떤 시선이었겠습니까? 그것은 한없는 자비와 긍휼의 시선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연약함과 넘어짐을 다 이해하고 계시는 시선이었습니다. 자기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과 마주친 베드로는 마음에 찔림을 받고 밖에 나가서 통곡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기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멀리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자신을 향한 사랑의 시선을 거두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주님은 언제나 저와 여러분에게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시선을 보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시선을 경험할수 있습니다. 주님은 내 연약함을 아시고 내 한계를 잘아시고 나를 바라보십니다. 연약하여 넘어지는 나를 잘 아시고 바라보십니다. 사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신앙의 공동체를 떠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들어가서 모든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주님은 나에게서 사랑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계십니다. 내가 넘어졌을때에도 나의 연약함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사랑의 눈길은 멈추지 않으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주님의 시선을 내가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시선을 바라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믿는 성도들이 한번 넘어지면 회복을 잘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내가 넘어지고 실패했을 때 주님의 시선을 잘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시선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반드시 회복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을 보시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삭개오가 어디에 있을때 예수님을 보게 됩니까? 돌무화과 나무에 있을 때입니다. 누가복음 19장 5절입니다. 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 삭개오가 왜 돌무화과 나무위로 올라갔습니까? 예수님을 한번 볼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키가 작은 자기로선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도저히 볼수가 없었기 때문에 돌무화과 나무위로 올라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돌무화과 나무아래에서 멈추시고는 쳐다보신 것입니다.그러니까 삭개오도 예수님의 시선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삭개오가 잘한 것은 예수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선을 보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만일 삭개오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보았다면 너무너무 창피해서 예수님의 시선을 볼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예수님의 시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삭개오가 정말 잘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9장 5절 후반부입니다. ‘5.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야! 이 삭개오라는 의미는 ‘순결함‘ ‘의로움‘ 의 뜻이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리장이었던 삭개오에게 그누구도 삭개오라는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로마정부에 빌붙어서 국민들의 세금을 받아내서 일부는 로마정부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배를 채우는 사람에게 순결하다 깨끗하다라고 하는 의미가 있는 삭개오 이름을 불러줄수가 있겠습니까? 이름대신에 사람들은 아마 ’저놈‘ ’날강도 같은 놈‘ ’저 난쟁이‘ 이렇게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예수님의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내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래요. 만일 이 삭개오가 예수님의 시선을 바라보지 않고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바라보았다면 부끄러움과 수치감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베드로 처럼 이 삭개오처럼 주님의 시선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에 있습니다. 비록 저와 여러분이 넘어지고 쓰러져 있는 환경속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시선을 바라볼 때 회복은 시작이 되어집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이러한 언제나 주님의 시선을 바라볼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베드로처럼 실패를 할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가 있다 할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회복이 있게 됩니다. 믿는 성도에게 있어서 실패는 끝이 아닙니다. 회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회복 뒤에는 보다 성숙한 사명자로서의 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상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패와 회복 그리고 상급을 바라보며 사명자의 길이 있는 이 과정을 우리 믿는 성도들은 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연약한 사람인 것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시선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십시다. 그리고 그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수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주님을 바라보고 그때 그때 주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나와 내가정과 내 교회와 그리고 내 직장과 사업터전이 회복되어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