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50. 십자가 주변의 여인들

Author
kgmcc
Date
2022-05-25 02:35
Views
22
본문 : 마가복음 15장 40-41, 47절

날짜 : 2022년 5월 25일


 

<마가복음 1540-41, 47)

40.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47.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십자가 현장을 끝까지 지켜보았던 여인들이 나옵니다. 평상시에는 이 여인들이 잘 드러나지 않게 예수님을 섬기고 따랐지만 이날은 이른 아침부터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속에 들어갈때까지 지켜보았던 것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본문 40절입니다.

40.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막달라 마리아와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입니다. 이 세 사람에 대해서 그다음절을 보시면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41절 전반부입니다. 41.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막달라 마리아와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는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때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들인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을 보시면 같은 장면이 나오는데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7장 56절입니다. 56.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여기서도 세명의 여인이 나오는데 두 명의 마리아의 이름까지는 같습니다. 그런데 살로메 대신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의 이름이 바로 살로메인 것을 우리는 쉽게 알수 있습니다.

이사람들은 모두 여자들입니다. 아마 천국에 가면 남자들보다 여인들이 더 많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인천국일 것입니다. 물론 천국에서는 이세상에처럼 남자와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천사처럼 되기 때문에 지금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이날 십자가 현장을 끝까지 지켜본 이 여인들은 끝까지 남아서 예수님이 무덤속에 들어가는 장소까지 알아두었습니다. 47절입니다. 47.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그리고 안식후 첫날 금요일 낮에 운명하시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토요일 안식일이 지나고 다음날 주일 아침이죠. 삼일만에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을 찾아갑니다. 마가복음 16장 1, 2절입니다. 1.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막달라 마리아 와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 이여인들은 예수님의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았고 그리고 무덤에 들어간지 삼일만인 안식후 첫날에 가장 먼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이 여인들은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렇게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헌신하는 것입니까?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 인해 일곱 귀신으로부터 놓임을 받게 된 여인입니다. 누가복음 8장 2절입니다. 2.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일곱 귀신이 나간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예수님께서 3년간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 동안 많은 시간을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셨습니다. 그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 일곱 귀신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일곱귀신이 들렸다는 의미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온갖 사악한 영들에 사로잡혀서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귀신에서부터 해방이 된후 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을 합니다. 누가복음 8장 3절 후반부입니다. 3.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처럼 병고침을 받은 몇몇 여자들과 함께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그 제자를 섬겨왔습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앞에 옥합을 깨트린 여인 마리아로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다른 여인입니다. 귀한 옥합을 예수님앞에 깨트린 마리아는 나사로와 마르다의 여동생 마리아입니다. 살고 있는 마을이 베다니 동네이기 때문에 베다니 마리아라고도 불립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막달라라고 하는 마을에 살았던 여인입니다. 막달라 마을은 갈릴리바다 서쪽편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고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쪽지역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서로간의 거리는 걸어서 3일정도 걸리는 위치에 떨어져 있는데 같은 여인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막달라에서 베다니로 이사를 했을것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이 베다니 살고 있는 옥합을 깨트린 여인 마리아가 같은 인물임을 보여주는 구절은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는 막달라 마리아는 옥합을 깨트린 마르다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사람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본문 40절에 두 번째로 기록된 여인은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성경은 작은 야고보의 아버지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 이름을 알패오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절입니다. 3.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그러니까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중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제자가 둘이 있는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라고 불렀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작은 야고보 인지 아니면 키가 작아서 작은 야고보라고 불리웠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더 적어서 작은 야고보라고 불린 것 같습니다. 아니면 나이와 키가 모두 적어서 그렇게 불리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짾튼 이 야고보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는 이 마리아의 남편이 알패오인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알패오의 아내 마리아는 자기 아들인 야고보가 예수님의 제자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헌신하고 따랐을 것이다라고 추측해볼수 있습니다.

 

살로메

세 번째로 기록된 여인은 살로메입니다. 살로메의 남편이름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7장 56절입니다. 56.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살로메도 있더라’ 그러니까 살로메의 남편이 세베대인 것이죠. 그렇다면 세베대의 아들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마태복음 12장을 보시면 제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10장 2절입니다. 2.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그러니까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에 야고보가 두명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키가 더 작은지 아니면 나이가 적은지 모르겠지만 작은 야고보라고 불리워졌습니다.

자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 끝까지 머물러 있었던 이 여인들은 모두가 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었고 다른 두 여인은 자기 자녀들이 예수님을 섬기고 따랐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며 헌신했던 여인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따라다니고 섬겼다라고 기록할때 이 의미는 ‘예수님의 제자’ 라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제자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들 말고도 여러 여인들이 더 있었다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41절 후반부입니다. 41.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또 이외에 ...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예수님 당시 여인들은 온전히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도 ‘여인들의 뜰’이라고 불리는 성전의 중간 마당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의 숫자를 셀 때도 제외 되었습니다. 법정에서 증인의 자격으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치에 있었던 여인들이 끝까지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힘들어하시고 고통스러워 하실 때 예수님 곁을 끝까지 지킨 사람은 열두제자가 아니라 평상시에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대접받지도 못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누가 예수님의 참 제자인지, 누가 참된 성도인지를 알게 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믿는 성도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직분이나 명예입니다. 그래서 평신도 보다는 집사를 그리고 집사보다는 권사와 장로에 대한 직분을 가질려고 합니다. 그래서 장로가 되지 못하면 그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교인들을 붙잡기 위해서 집사를 주고 장로라는 직분을 주는 교회도 우리 주변에 쉽게 볼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직분을 가진 사람들을 사람들이 더 인정하고 대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직분과 위치와 참된 제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말씀합니다. 물론 성경은 직분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장로, 권사 집사와 같은 직분이 아무 가치가 없고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생각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직분이 너무나 귀하고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 귀한 직분과 신분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비록 직분이 없고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을 따르며 섬기는 사람이 참된 제자인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의 진짜 가치는 이렇게 빛이 많은 밝은 대낮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진짜 가치는 다른 보석들이 자신이 가진 빛을 나타내지 못할만큼 어두운 환경에 있을 때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른 보석들은 빛을 내지 못해도 진짜 다이아몬드는 아름다운 빛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석중에 최고의 보석이라는 이름이 주어진 것입니다.

참된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와 또 다른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를 비롯한 그 외에 이름을 알수 없는 여인들이 이 죽음의 십자가 현장에서 참된 제자 인것을 오늘 본문은 보여줍니다. 그당시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발견하면 잡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들은 끝까지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던 이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이 여인이 가진 마음을 저와 여러분이 가짐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환경속에서라도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마가복음을 보면 처음에는 여인들이 멀리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다. 본문 40절 앞부분입니다. 40.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 그러다가 이 여인들이 예수님께서 운명 하실때가 가까워지게 되자 그 십자가 가까이 다가간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25절입니다. 25.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곁으로 가까이 가서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순간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에 나온 세명의 여인이외에 요한복음서에는 예수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나오고 있음을 알수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살로메 라는 이름대신에 예수님 육신의 어머니의 이모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살로메는 예수님의 육신의 이모입니다. 그리고 이 살로메의 아들은 야고보와 요한이니까 예수님과 야고보와 요한은 육신적으로는 서로 친척관계에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는 알패오의 아내 마리아입니다. 그러니까 글로바와 알패오는 똑같은 사람인데 아람어 이름인 ‘하르피‘에서 변형이 되어 글로바라고 부르기도 했고 알패오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당시에는 이렇게 한사람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 졌던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글로바의 아내 즉 알패오의 아내는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됩니다. 그리고 좀전에도 살펴보았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4명의 여인들이 로마 군인들의 창과 칼에 찔러 죽을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눌수 있을만큼 십자가 가까이에 간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로마군인들이 창과 칼로 위협한다고 해도 예수님을 버릴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들이 십자가 가까이에 간 것은 십자가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사랑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십자가 가까이에 간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다보니까 십자가를 따라가게 된 것 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반대로 십자가 때문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 갔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들은 십자가 때문에 예수님에게 더 가까이 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 얼마나 괴로우실까? 이렇게 가슴이 조이고 가슴이 매여져서 멀리서 그냥 지켜 볼수만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가서 예수님이 받고 계시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면서 아픔을 같이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더 가까이 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는 참된 제자와 거짓된 제자를 나누게 합니다.

물론 제자들도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한 것은 세속적인 동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왕이 되실줄 알았는데 붙잡히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 힘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시게 되자 이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를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사랑한 동기는 자기들의 야망을 이루어줄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되자 예수님을 따르고 섬길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중에서도 제자들처럼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신앙 생활해나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다시말하면 내가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그 무엇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섬긴다면 언젠가 우리는 예수님을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그 무엇을 예수님을 통해 기대할 수가 없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버리게 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십자가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16장 24절입니다. 24.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것을 보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참 제자들에게는 반드시 자기 십자가가 있음을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자기 십자가가 없다면 참 제자가 아닙니다. 분명히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배우자 일수도 있고 자녀일수도 있고 부모님일수도 있고 교회나 직장일수도 있습니다. 참 제자라면 자기 십자가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 참 제자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수 있는 사람이 참 제자입니다. 그렇게 할수 있는 일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일 때 가능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돈을 보고 결혼 한 사람은 그 배우자의 돈이 떨어지고 사업이 망하게 되면 배우자를 버리게 될 것입니다. 신분이나 어떤 조건을 보고 결혼 한 사람은 그 조건이 사라져 버리게 될 때 배우자 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된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신 후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좋아했던 이유는 떡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입니다. 내 소원이나 내 욕망을 충족시켜주시는 분으로 믿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의 떡이다’ 라고 말씀하시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 어떤 소원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 기대가 사라지게 될 때 예수님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이 여인들이 끝까지 십자가 가까이 머물수 있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가장 먼저 사랑할 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두려움을 극복할수 있었기에

온전한 사랑을 가진 사람은 두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요한 1서 4장 18절입니다. 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제자들은 도망을 갔지만 이 여인들은 끝까지 십자가 현장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무덤에 계실때도 이 여인들은 안식후 첫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첫 번째 목격자가 된 것입니다. 이 여인들이 어찌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사람들이라면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스캇 팩이라는 사람이 이런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현상은 뇌가 가진 질병이다’ 그러니까 두려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사람은 심각한 질병을 가진 정신병자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여인들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그 현장에 갔었고 또 그 두려운 일을 행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여인들 마음속에 온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어머니는 어떠한 두려움이라도 극복하고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 인것입니다. 이여인들은 온전히 예수님만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위험과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장소에 가서 그일을 행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십시다. 아니 예수님을 사랑하되 온전히 사랑하십시다.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시다. 이렇게 예수님만을 가장 먼저 사랑할 때 저와 여러분앞에 십자가가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라갈수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는 일이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하며 신앙생활 해나갈수가 있습니다.

이런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부활의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5, 6절입니다.

5.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래요 예수님을 가장 먼저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주님의 뒤를 따라갑니다. 어떠한 두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그 두려움을 극복하며 그 일을 해나갈수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참된 제자입니다. 그리고 참된 제자에게 주님은 우리 인생에게 가장 복된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며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지금은 아픔이고, 지금은 눈물이고, 지금은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있다 할지라도 주님만을 온전히 사랑하며 신앙생활해나가십시다. 그래서 주님이 베푸시는 부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어떠한 환경속에서라도 일어나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담대히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