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52.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Author
kgmcc
Date
2022-06-08 02:32
Views
18
본문 : 마가복음 16장 1-14절

날짜 : 2022년 6월 8일

 

<마가복음 161-14>

1.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9.[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은 처음엔 그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당연하죠. 다시 살아나게 될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어느정도이지요. 예수님은 완전하게 그리고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셨는데 그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그누구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안식후 첫날 3명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으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1절, 2절입니다. 1.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그당시에는 죽은 사람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몸에 향기가 나는 향품을 발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으로 가고 있는 이 여인들에게 걱정꺼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3절입니다. 3.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문에서 돌을 굴려주리요’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를려고 하면 먼저 무덤 입구를 막아놓았던 큰 돌을 굴려야 합니다. 그런데 여인들의 힘으로 그 크고 무거운 돌을 옮기기에는 너무 힘드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은 걱정을 하면서 예수님 무덤으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이 여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을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서서 고통가운데 계시다가 마지막으로 운명하시는 것을 가까운 거리에서 자기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로마군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분리되어 나오는 것까지 보았습니다. 마지막엔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속에 들어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참하고 처참하게 완전히 죽으신 것을 가까이에서 확실하게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서 본 것은 무엇입니까?

4절과 5절입니다. 4.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벌써 돌이 굴러져 있는데’ 무덤을 막고 있는 심히 큰 돌이 누군가에 의해서 옮겨지고 무덤 문이 열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흰옷을 입은 청년이 예수님의 무덤 오른쪽에 앉아 있는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흰옷을 입은 청년은 천사를 의미합니다. 천사는 종종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알든 모르던 종종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들을 만나게 될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듣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사람 모양을 한 그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에게 인정받게 되는 일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떠한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흰옷입은 그 천사가 이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6절입니다. 6.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천사가 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천사로부터 듣게 된 이 여인들이 믿었습니까? 본문 8절입니다. 8.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하더라’ 이여인들은 너무 무서워서 도망가버렸습니다. ‘귀신이다“ 생각하고는 놀라서 도망 간 것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정신이 없어 아무말도 못했지만 나중에 정신을 차린 막달라 마리아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요한복음에는 이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라고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 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절 3절입니다. 2.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가 달려가서’ 여기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는 요한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이 들어가신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확인 했습니다. 예수님의 빈무덤을 보면서 그들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구나‘ 라고 믿었나요? 아니죠. 요한 복음 20장 9절입니다. 9.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채 베드로와 요한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당시에 막달라 마리아도 같이 따라왔는데 이 막달라 마리아는 계속 빈무덤에 남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부활의 소식을 직접 전해줍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라고 비로소 부활의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요한 복음 20장 18절입니다. 18.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오늘 본문은 이러한 과정들이 빠져있습니다만 4복음서에 나오는 내용을 연결해서 정리 해보면 중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 라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립니다. 그래서 두제자가 예수님의 무덤에 가서 빈무덤인 것을 확인합니다. 이후에 베드로와 요한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계속 남아서 울고 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11절입니다. 9.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내가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직접 눈으로 보고 대화도 나누었다’ 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부활의 내용은 우리 인간들이 믿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시기까지 부활하신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신 것은 열한 번 정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우리 인간들이 왜 믿기 어려운 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말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과 11절입니다. 10.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후에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막달라 마리아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왜요? 사람의 말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믿는 성도들은 말씀을 들을 때 이 내용이 사람의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분별해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하면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임으로서 이상한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 우리는 겸손하게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전하는 부활 소식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전에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부활은 갑자기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고전 15장 3,4절입니다. 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이런 예수님을 막달라 마리아가 전한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직접보고 겪었지만 그 사건은 성경에서 예언되어진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성경에 기록되어진 내용을 전했는데 사람들은 그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않았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사도바울이 하는 말을 사람이 하는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믿음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살전 2장 13절입니다. 13. ...너희가(데살로니가 교회 성도)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통해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내용이 성경에 나온 메시지 내용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열린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그 사람이 그말씀대로 살아가느냐 살아가지 않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그사람이 전하는 메시지는 받아들여도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이 하는 메세지는 들어라.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하는 행동은 본받지 말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좋지 않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가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받아들일수 있어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자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제자들은 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대한 편견이 있었을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면 그래도 베드로와 같은 제자에게 맨처음 나타나시고 말씀해주시는 것이지 저런 귀신 들렸던 여자에게 맨먼저 나타내 보이시고 부활소식을 전하게 하시겠는가? 라고 하는 이런 인간적인 편견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메시지 전하는 사람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던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아멘하고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역사를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왜 믿기 어려운가?


  1.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14.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열한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책망하십니다. 왜 그들이 믿지 못한 것입니까? 믿음이 없고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믿음이 없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그사람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마음이 완악하다는 것은 내가 내 뜻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내 마음 깊숙히 깔려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내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아예 내가 믿을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너무 잘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런 완악한 마음을 책망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고난후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것이라고 여러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열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70명의 제자들중 두명으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었는데도 이 열한명의 제자들은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2.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이 장면은 누가복음 24장에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후에 예수님의 70명의 제자중 두 제자가 절망한 채로 자기들의 고향인 엠마오 마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과 동행 하십니다. 누가복음 24장 15절과 16절입니다. 15.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님의 두 제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되자 자신들이 가졌던 꿈과 소망도 같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낙심한채 고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오시고 동행하십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요? 예수님께서 다른 모양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눈이 가리어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눈이 가리어졌다는 것은 붕대나 수건으로 눈을 가리었다는 것이 아니라 영안이 닫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안이 열리게 되면 다른 모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볼수 있게 됩니다. 영안이 어두워지게 되면 아무리 많이 배우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리를 알지 못하고 영적인 세계를 볼수 없게 됩니다. 구약의 발람 선지자가 영안이 어두워지니까 하나님의 사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귀는 영안이 열리니까 길 앞을 가로 막고 있던 하나님의 사자를 볼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영안이 어두운 발람이 영안이 열린 나귀보고 빨리 앞으로 가라고 꾸짖고 있는 모습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리고 엘리사 종 게하시는 자기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람의 군대만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영안이 열린 엘리사는 아람의 군대만을 보지 않고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은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영안이 열려야 영적인 세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영안이 어두워지는 것입니까? 믿음이 없고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믿음이 없는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예수님께서 꾸짖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엠마오 마을로 돌아가는 두 제자들도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난후에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은 열한제자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처음엔 모두가 다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신후에야 그때 비로소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믿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고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내 자신의 뜻대로 살고 싶어하는 완악한 마음이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신화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일어난 명백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는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진짜가 아닌 가짜인데 믿는 것은 미신입니다. 그리고 사실인데 사실로 믿지 않는 것은 불신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내용이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이기 때문에 감정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사실이 먼저 있고 그리고 사실이기에 믿음이 있고 믿기 때문에 감정이 생긴다. 사실과 믿음 그리고 감정 이것은 순서가 바뀌면 절대로 안된다”.

그래요 우리 믿는 성도들은 종종 감정을 앞세워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고 목소리를 높일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을 내세워서 생기게 되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감정을 앞세운다고 없는 것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가짜가 진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이기 때문에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신앙의 순서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인간이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그것이 사실이 아니다 라고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하지 못하는것과 사실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물위를 걸으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바다 물위를 걸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를 할수 없다는 것이지 바다 물위를 걸은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이기에 성경에 기록된 것이고 사실이기에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이런 고전적인 예화가 있습니다.

앞이 안보이는 눈이 먼 아이가 연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이 눈먼 아이가 날리고 있는 연은 하늘 높이 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아이 옆을 지나가고 있던 어느 한사람이 보니까 연을 날리고 있는 아이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 아이 가까이에 가서 이렇게 물어 봅니다. “얘야, 너는 지금 연이 어디에 있는지 볼수가 있니?”

그때 이 소년이 대답을 합니다. “아뇨, 저는 연을 보지 못해요”

“아니 그러면 너는 너의 연이 하늘 높이 날고 있는지 어떻게 알수가 있니?”

“아저씨, 저는 연을 볼수는 없지만 지금 제가 잡고 있는 이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것을 느낄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보지 못해도 제 연이 하늘 높이 잘 날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믿고 있지요”

그래요.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나사로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경험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에게는 신앙의 줄이 있습니다. 이 신앙의 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신앙의 줄을 잡고 당겼다가 밀었다가 하면 이 신앙의 줄이 팽팽해지게 됨을 느낄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승리하시고 부활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보고 들을때마다 저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께서는 이 신앙의 줄을 팽팽하게 당겨주실 것입니다. 내눈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믿을수 있습니다.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부활의 신앙을 가질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지 않고 열려있으면 예수님께서 어떠한 다른 모양으로 오시더라도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심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신앙생활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