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마가복음47.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Author
kgmcc
Date
2022-05-04 02:39
Views
246
본문 : 마가복음 15장 16-23절

날짜 : 2022년 5월 4일

 

<마가복음 1516-23>

16.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마가복음 15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붙잡혀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 대표적인 두사람이 나옵니다. 한사람은 지난주에 살펴본 빌라도 총독 이고 또 다른 한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구레네 시몬입니다.

이 두사람들 사이에는 같은 공통점이 있기도 하고 그리고 다른 차이도 있습니다. 공통된 점 중의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바로 눈앞에 두고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한사람은 구원을 받았고 또 다른 한사람은 구원이 아닌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가 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있는 기회를 만났는데 그 축복은 한사람만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빌라도 총독은 자기앞에 끌려온 예수님을 만나 적지 않은 질문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후에 빌라도는 이 예수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길 원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군중들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빌라도는 자기가 총독 자리에서 쫓겨 날수도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뜻과 반대가 되는 선택을 했습니다. 자기가 선택하지 않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과 관련한 것에 대해선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물을 가져와서 손을 씻었습니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나는 관여하지 않겠다. 너희들이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서 오는 결과도 너희들이 다 책임져라“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신앙고백 합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빌라도가 예수님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빌라도는 최종 결정권자이었습니다. 최종 결정권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책임은 빌라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빌라도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눈앞에 두고 예수님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구원대신에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빌라도와 대조되는 인물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 이 사람은 구레네 시몬입니다. 본문 21절입니다. 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구레네 사람 시몬은 구레네 마을에 사는 시몬이라는 뜻인데 구레네 라는 지역은 지금 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인 트라폴리 지방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으로부터는 굉장히 먼 곳에서 온 사람입니다. 이사람은 아프리카 지역에 살고 있었지만 유대인이었습니다. 어떻게 알수 있는 가 하면 시몬이라는 이름이 유대인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아프리카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몬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구레네에서 먼거리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러니까 성실하고 신앙심이 깊은 유대인이었다고 우리는 쉽게 추측할수 있습니다. 이 구레네 시몬은 우연히 이 지역을 지나가다가 세 명의 죄수가 자기들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당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는 죄수는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까지 가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항하여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전날 밤새도록 기도하신 후에 붙잡히셨습니다. 그리고 밤새 심문을 받으시고 그다음날에는 새벽부터 빌라도에게 헤롯 안디바에게 다시 빌라도에게 이렇게 이리 저리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셨기 때문에 육신은 매우 지쳐있는 상태이었습니다. 그당시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무게는 대략 50kg정도이었고 파운드로 환산하면 약 110파운드 정도 됩니다. 이곳 시중에서 파는 쌀 한포대가 40파운드이니까 쌀 3포대를 합친 무게입니다.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이미 지치고 탈진해버린 예수님께서 지고 가시기에는 몹시 힘들었을 것입니다. 골고다 언덕길을 향해 가시다가 몇 번 넘어지셨는데 그때마다 로마군인들이 휘두르는 채찍을 맞으면서 겨우 일어나 걸어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로마 군인들이 채찍으로 아무리 때려도 예수님께서는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지쳤습니다. 이순간의 장면을 구레네 시몬이 구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구레네 시몬은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조국인 유대나라에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시몬은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인가 구경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무슨일이 있는가? 하고 궁금증을 가지고 가까이 가서 구경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로마 군인들중에 한사람이 자기를 부르는 것입니다. ‘야 너 이리와봐’ 손에 채찍을 들고 그리고 옆구리엔 칼을 차고 있는 로마군인이 자기를 보고 ‘야 너 이리 와바‘ 라고 하는데 가야지 ’못 가겠다’ 라고 버티겠습니까?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엉거주춤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그 로마군인이 “야, 네가 이 예수가 진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올라가.” 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지고 가야지 안 갈수 없잖아요? 채찍을 맞고 난후에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 보다는 그냥 “예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순순히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더 낫지요. 이 시몬은 구경 한번 했다가 죄수가 사형장에 가면서 지고 가는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 21절 전반부입니다. 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이렇게 로마 군인들이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던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의 입장에서 볼 때 참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맑은 대낮에 날벼락을 맞은 것입니다. 재수가 없어도 진짜 너무 없었던 것이죠. 아마 구레네 시몬이 아프리카에서 살았기 때문에 얼굴이 유난히 검게 탄 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로마군인이 보기에 ‘얼굴이 검은 저 친구는 종일 것 같다’ 라고 생각을 하고는 불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라고 명령했을수도 있습니다. 어짾튼 이 구레네 시몬은 구경하다가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이 시몬을 유월절 명절날 예루 살렘 성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그 먼거리를 왔는데 사형수가 지고 가는 그 무거운 십자가를 대신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안지고가면 로마군인들이 휘두르는 채찍에 맞을 것 같아서 할수 없이 십자가를 지고 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자기가 원하지 않은 십자가를 지고 갔는데 나중에 이 구레네 시몬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에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입니다.

13.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로마서는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고 약 30년 지난 후에 기록된 서신입니다. 그러니까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던 이 사건이 있은 이후에 이 구레네 시몬에게 일어났던 변화를 그로부터 30년후에 쓰여진 로마 서신서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로 우리에게 알게 해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서에서는 알렉산드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아버지 이름을 먼저 밝히고 그다음 아들 이름을 밝혔습니다. 마가복음 1장 19절입니다. 19.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복음 21장 15절입니다. 21.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렇게 아버지 이름이 먼저 나오고 다음에 아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아들 알렉산드와 루포의 이름이 먼저나오고 그 아들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순서는 그당시 기록하는 정상적인 순서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당시 사람들은 아들을 더 잘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에서 우리는 그당시에 아들인 알렉산드와 루포가 구레네 시몬보다는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이종호 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광수 아버지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 이광수 아버지구나‘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언론사에서 이종호씨를 소개할 때 이종호씨 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고 런닝맨에 나오는 이광수 아버지 이종호씨입니다. 이렇게 소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이종호씨 보다는 아들인 이광수가 훨씬더 유명하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구레네 시몬 아들인 루포는 그당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라고 말하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이라고 하면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다는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이사건 이후에 많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자기의 아들인 루포는 그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인정하고 있는 신앙 지도자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도 열심히 신앙생활 한 것을 바울의 고백에서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루포의 아버지가 구레네 시몬이니까 루포의 어머니는 곧 구레네 시몬의 아내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 구레네 시몬의 아내는 바울처럼 전도하러 다니는 선교사들을 만나면 마치 어머니처럼 그 선교사들을 편안하게 대해주며 살았던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오면 재워주고 먹여주고 떠날때는 챙겨서 떠나 보내는 삶을 살면서 마치 어머니처럼 오고 가는 순례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선교하는 동안 이 루포와 루포의 어머니를 만나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열심히 선교사역을 할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구경하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진 이후로 30년의 세월이 흐른후에 이 구레네 가족은 정말 복 받는 그리스챤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축복받고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의 어머니는 곧 내어머니니라‘ 그러니가 사도바울과 루포는 형제간처럼 가깝고 친밀하게 지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구레네 시몬의 아들 루포도 사도바울 못지않게 열성적이고 충성스럽게 신앙생활을 해왔던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입니다. 1.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그당시 초대교회들은 모두 다 성령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성령 충만한 교회로 이름난 교회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서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했던 교회입니다. 그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와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사람들중에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시므온은 시몬과 같은 이름입니다. 히브리식 이름을 헬라어 식으로 기록하는데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영화 제목 John wick가 있습니다. 영어로는 존 윅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존 위크라고 쓰고 존 위크라고 발음합니다. wick에서 마지막 k가 크로 발음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시므온과 시몬은 같은 이름입니다.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에서 ‘니게르’라고 하는 말은 ‘니그로’ 라는 의미입니다. 다시말해 ‘얼굴이 검은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이 시몬은 아프리카에 살았기 때문에 뜨거운 태양에 의해 얼굴이 많이 타서 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별명이 ’니그로 시몬’ 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니게르 시므온‘ 과 ’니그로 시몬’ 그리고 ‘구레네 시몬‘ 다 같은 의미이고 같은 인물로 많은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구레네 시몬은 성령충만하기로 이름이 난 안디옥 교회의 교사의 신분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구레네 시몬은 자기의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십자가를 지고 간 이후로 성령 충만한 안디옥 초대 교회에 지도자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과 자기 아내도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시는 일꾼으로 선택받고 살아가고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억지로 지고 간 진 십자가도 이런 축복을 받는데 내 자신이 스스로 원해서 십자가를 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간다면 얼마나 더 큰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겠는가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사실 처음부터 기쁘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무겁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모두가 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성경을 보시면 처음에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갔지만 나중에 복받게 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인해서 요셉은 노예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애굽나라에 끌려가서 보디발 장군의 종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까지 들어 갔습니다. 요셉이 종이 된것도 요셉이 감옥에 가게 된 것도 자기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그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죄없는 요셉을 그냥 가만히 두십니까? 그래서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지내게 하십니까? 그 이유를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수있는 것은 요셉이 억지로 종이 되는 십자가와 감옥으로 가는 십자가를 지고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요셉을 영광의 삶으로 바꾸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 뿐 만 아니라 그당시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구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가 나중에는 영광의 면류관이 된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처음에 다윗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사울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그렇게 사울왕을 섬기고 충성을 다해 전쟁터에 가서 싸웠지만 사울왕은 시시탐탐 기회가 있을때마다 자기를 죽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다윗을 왕이 되게 하십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된후에는 자기 아들 압살놈 이 십자가였습니다. 이 압살놈은 왕이 되기 위해 자기 형을 죽입니다. 나중에는 자기도 죽일려고 군사를 데리고 반역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던져버리지 않고 잘 지고 갑니다. 그래서 마침내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살게 된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70.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었다. 왜냐하면 그 고난으로 인해서 내가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요 내가 원하지도 않는 억지로 진 십자가 때문에 힘들고 고통스러울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진 십자가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인내심과 충성과 믿음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훈련으로 인하여 나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성숙한 하나님의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도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야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특별히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다보면, 억지로 십자가를 질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나는 원하지 않은데.. 나는 싫은데...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수없이 억지로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들 때문에 오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자녀들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배우자 때문에, 억지로 십자가를 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진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면류관이 되는 것임을 우리는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러한 상황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이렇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구레네 시몬을 보여주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이후 이 구레네 시몬이 받는 축복을 보여주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내가 원하지도 않는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이 구레네 시몬을 생각하십시다. 왜 내가 억지로 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지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라고 한다면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라고 믿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마가복음 14장 36절입니다. 36.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십자가의 길이 좋아서 예수님께서 그길을 가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원도 아니었고 자신의 뜻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그길이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기에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기쁘고 평강의 마음으로 그길을 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의 길을 가심으로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예수님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지극히 높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8-11절입니다.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천국의 왕이 되게 하시고 믿는 우리는 그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불행이나 저주가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지고 가는 십자가는 지금은 고통이고 힘들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영광의 면류관으로 바뀌어질것입니다.

독일 출신인 유명한 영성학자인 토마스 아켐피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십자가를 피한다면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당신이 밖으로 도망쳐도 거기 십자가가 있고, 안으로 숨어도 거기 십자가를 볼 것이다. 위로 올라가도 십자가가 기다리고, 밑으로 파고들어도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 그래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동안에 십자가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축복을 약속해주는 상징임을 믿어야 합니다. 구레네 시몬을 보십시다. 구레네 시몬은 로마 군인이 명령해서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결국에는 축복의 가정을 이루며 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알고난 이후 이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가 아닌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신앙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축복의 가정을 이루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