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야성과 영성

Author
kgmcc
Date
2020-07-11 20:29
Views
82
본문 : 예레미야 1장 8-10절

날짜 : 2020년 7월 12일



 

<예레미야 18-10절>

8.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그랜드캐넌과 함께 전세계에서 여행 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코스입니다. 그런데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가게 되면 ‘야생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십시요’ 라고 적혀있는 팻말을 곳곳에서 볼수 있습니다. 왜 이런 팻말들을 세워놓았습니까?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그 사람이 다칠까봐 그렇습니까?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야생동물들이 자연환경에 맞추어 살아갈수 있는 그 야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이런 팻말을 세워놓았던 것입니다. 조금은 유머스럽게 적어놓은 팻말이 인터넷에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마십시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당신의 셀폰을 원할것입니다’

야생동물들이 배가 고플때 빨리 오라고 당신에게 전화 연락을 할수도 있다는 의미이죠. 관광객들이 먹이를 자꾸 주게 되면 야생동물들이 야성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의지하고 살아가게 될것입니다. 2년전에 우리나라 EBS 다큐멘터리 ‘이것이 야생이다 시리즈’ 에서 하늘을 나는 독수리에 관한 내용을 방영한 한적이 있습니다. 경남 고성에 살고 있는 어떤 한사람이 오랜 세월동안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 일을 약 20년 동안 해왔었는데, 그러다보니까 이제는 몽골에 있는 수백 마리의 독수리들이 약 3000킬로미터(1900마일) 를 날아서 대한민국 경남 고성에까지 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독수리가 모여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일본에서 사진작가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 모습도 담겨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연예인 인  김국진씨가 MC로 나왔는데 몽골이라는 그 먼곳에서부터 독수리들이 날아오는 이유를 물어보니까 그사람이 간단히 이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밥을 주니까요“ 저는 이 방송을 보면서 20년 동안 독수리에게 먹이를 준 그사람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 독수리들이 가지고 있는 야성을 잃어버리게 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새를 연구하는 전문가에 의하면 먹이를 맛본 경험이 있는 새들은 숲속을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구하지 않고, 사람들 손에 들고 있는 먹이를 찾아다니게 된답니다. 대개 독수리는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높은산 바위틈에 둥지를 틀고 한쌍씩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고기를 던져주다 보니까 독수리들이 높은 산에서 둥지를 틀고 살지않고 산 아래에 내려와 30마리에서 50마리씩 집단적으로 떼를 지어 살아간답니다. 그런데 독수리들이 무리를 지어서 살아가다보면 질병에 걸리기 쉽고 한번 질병이 생기게 되면 집단으로 죽는 경우가 많아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절벽에 둥지를 틀고 높은 하늘을 날면서 먹이를 찾아 살아가야하는 독수리들이 사람들이 던져주는 고기 덩어리를 먹기 위해 더 이상 높은 하늘을 날지 않습니다. 독수리가 꿩이나 닭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갈매기들에게도 일어납니다. 하늘을 날면서 바닷 물속에 뛰어들어 먹이를 찾아야 하는 갈매기들이 사람들이 주는 새우깡을 받아먹기 위해 사람들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갈매기들이 비둘기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 때문에 짐승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야성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야성이 사라져버린 동물들은 자연환경에서 홀로서기를 할수 없다고 하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눈이나 비가 와서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게 되면 야생동물들은 그 기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갑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동물들의 세계에 야성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스스로 먹이를 구하고 자신을 보호할수 있겠습니까? 생태계의 보존과 질서를 위해서라도 야성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생 동물이 야성을 잃어버리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물에게 야성이 필요하듯이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일종의 야성이 필요합니다. 이 야성은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성이라 할수 있습니다. 동물에게 반드시 야성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반드시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영성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수있습니다. 영성이 있어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영성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생활이 점점 윤택해지고 경제적인 여건이 나아지게 되면서부터 세상이 주는 달콤한 매력 때문에 영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거대한 골리앗이 세상의 명예라고 하는 갑옷을 입고, 세상의 지식이라고 하는 투구를 쓰고 그리고 세상의 물질이라는 방패를 들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골리앗이 하나님의 사람과 교회를 비판해도 물맷돌을 들고 골리앗을 향하여 돌진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어떤 비리 사건이 터졌다고 하면 빠짐없이 기독교인들이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온갖 종류의 직분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줄줄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이어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실 때 예레미야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지난주에 살펴보았지만 6절 말씀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6.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예레미야는 ‘나는 나이도 어리고 말도 잘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을 감당할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슬퍼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예레미야와 같은 모습을 보일때가 있습니다. ‘제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합니다’ 이런식으로 말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수 없는 핑계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평상시에 ‘나는 초라하고 별 볼일 없게 된 집안의 후손이다’ 라고 하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예레미야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 인해 열등감에 싸여 살아가는 무기력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난주에 살펴보았지만 7절 말씀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7.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아이라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라 그리고 내가 명령하는 대로 너는 말하라’  간단히 말하면  딴소리 하지말고 가라면 가고 말하라면 말해라.’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실 때 예레미야가 온실속의 화초로 곱게 성장하기를 원하시지 않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예레미야가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당당하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영성을 가진 선지자로 살아가길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야생동물이 반드시 야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기독교인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영성을 지니며 살아갈 때 일어나는 현상을 본문을 통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웁기는 영성을 지닌 기독교인으로 생활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성을 지닌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때 일어나는 현상은

1. 두려움을 극복함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8절입니다. ‘8.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레미야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워 하니까 두려워 하지말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예레미야가 앞으로 감당해나가야 할 사역이 힘들고 어렵겠구나‘ 는 사실을 알수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게 되면 예레미야 뿐만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두려워하지 말라 라는 말씀을 들었던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창15장 1절입니다. 1. ...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46장 3절입니다. 3.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여호수아를 부르실 때도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1장 9절입니다. 9.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사사 기드온도 ’두려워하지 말라’ 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엘리야도. 에스겔도, 다니엘도, 마리아도, 사도바울도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실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까? 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씀을 하십니까? 그것은 두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디모데 후서 1장 7절입니다. '7.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두려움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려움속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영적인 전쟁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3백 용사를 고르실 때 가장 먼저 두려움속에 있는 사람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신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전쟁을 해보았자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려워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싶어서 가지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요즈음 발생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걱정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로서리에 가서 샤핑을 해도, 개스 스테이션에서 개스를 넣어도, 심지어는 지나가는 사람이 ‘How are you?” 라고 인사를 해도 코로나에 걸릴까봐 걱정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 해결책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임마누엘의 믿음’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신 후에 곧 이어서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하는 횟수가 365번 나온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일년이 365일입니다. 매일 매일 두려워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잘 아십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하신 말씀, 그 전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시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니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두려움을 이겨낼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 28장 20절입니다. 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언제까지 입니까? ’세상 끝날까지’ 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땅을 떠날때까지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산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 내곁에 있는 내 남편도, 내 아내도, 내 자식들과 친구들도 언제까지 나와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하십니다. 저와 여러분 곁에 그 아무도 없다 할지라도 내가 믿을 때 내 속에 들어오신 성령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온 천지를 창조하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굽은 것을 바르게 하시고, 닫힌 문을 열게 하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그럼으로 나에게 두려움이 올때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라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의지가 약하고, 내가 마음이 약하고, 내가 너무나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라고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물론 남보다 더 겁을 내고 두려워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소위 타고난 ’겁쟁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에 대해서 우리는 내 성품을 탓하기보다는 성경적인 눈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두려움 그자체를 죄로 여깁니다. 왜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죄’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고 하는 말씀을 내가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두려워 하고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럼으로 두려워하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영성을 지닌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때 일어나는 현상은

2.하나님의 말씀이 내입에 머뭄

9절입니다. 9.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하나님께서 ‘내가 내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의 입에 대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손을 예레미야 입에 대셨을 까요?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예레미야와 함께 하신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경험 시켜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부모가 어린 자녀들에게 약속을 할 때 확신을 주기 위해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으로 찍는 것과 같은 원리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친밀감과 신뢰감을 강하게 심어주시기 위해 손을 입술에 대신 것으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보다 본질적인 것인데 정결하게 하시기 위함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의 입술에 손을 대신 것은 예레미야가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의 입술을 정화시켰습니다. 이사야도 선지자로서 부름을 받을 때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이사야 6장 7절입니다. 7.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주의 사자가 제단의 숯불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어서 정결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을려면 우리 입술이 정결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피를 의지하여 정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말이 네입에 두었다‘ 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너는 내말만 전하라는 뜻입니다. 너의 생각과 너의 말을 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는 내말을 전하는 선지자이니까 내말만을 전해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싫어해도 그 말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이해되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전하라 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자기 나라 사람들로부터 매국노라고 하는 비난을 받고,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이렇게 외친것입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벨론에 멸망하게 될 것이다!‘

사실 자기 나라가 망한다는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 입술에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기에 예레미야는 눈물과 통곡속에서도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해나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성이 있는 기독교인은 바로 하나남의 말씀을 입에 담아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세상 지식과 세상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말하며 살아갑니다. 바라옵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입에 두게 되는 영성을 가진 성도로 살아갈수 있길 축원합니다.

 

영성을 지닌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때 일어나는 현상은

3. 사명을 감당해나감

예레미야가 앞으로 감당해야할 사역의 내용이 10절에 있습니다. 10절입니다.

10.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관한 계획을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본문은 구원보다는 심판이 더 강조되어있습니다.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이 표현들은 심판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그리고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는 구원과 회복에 관련된 표현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겠다는 것입니까? 앞문장을 보시면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입니다.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을 심판하시기도 하며 구원하시기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작고 가난한 동네에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던 예레미야를 선택하시고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들을 심판하고 구원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레미야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입술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의 입술에 대신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의 입에 담기게 된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예레미야가 어떻게 그렇게 그 큰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요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의 약점과 우리의 부족함을 다 잘 아십니다. 우리 교회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다 아십니다. 우리 가정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잘 아시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나로 하여금 느끼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입에 붙어있어 내게서 떠나지 않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영성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갈수 있습니까? 그렇게 될수 있는 길은 한가지 뿐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입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내가 믿는다면 그 증거로 내 입술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라고 하는 임마누엘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내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면 내게 임마누엘 신앙이 있는가 우리는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럼으로 이젠 우리가 그 말씀을 내 입에 두게 하는 일을 믿음으로 꾸준하게 해나가야 합니다. 부족한 제 경우를 예를 들어보면,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가지는 예배와 기도 시간후에 그 달 교회 달력에 새겨진 성경구절을 암송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달수가 많아지게 되면 암송 할 구절이 점점 많아지게 됩니다. 10월 달이되면 암송할 구절이 10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올해부터 시작했는데 앞으로 해가 바뀌게 되어도 계속해서 지난해에 암송해온 구절까지 기도시간 이후에 암송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입에 두게 하는 제게 가장 적합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여러 성도님들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에 두게 하는 방법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방법이 좋다 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에 담아두며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만이 두려움의 환경을 극복하는 영성을 지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것만이 영성을 지닌 사명자로서 살아갈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영성은 야생동물들이 지닌 야성과 비슷합니다. 어떤 환경속에 있다 할지라도 극복하고 살아간다는 면에서는 야성과 영성이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척박하고 메마른 환경속에서 신앙생활을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순교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이곳 미국에서는 아직은 예수를 믿고 예수를 찬양한다고 해서 잡아 감옥에 가두거나 매로 때리고 죽이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핍박이나 죽음으로 우리의 영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속에서 증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자기 입에 두고 세상을 살아가는 영성을 가진 사람을 찾습니다. 화가 루벤스가 그린 그림중에 사자굴속의 다니엘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속에 나오는 사자들을 보면 모두가 다 얌전하게 가만히 누워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사자들이 배가 불러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배가 고픈 사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 다니엘을 사자들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니엘처럼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입술에 두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영성이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지금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기존의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일상생활이 두려움의 환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마치 주변에 울부짖는 사자들에 둘려싸여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성이 있는 성도들은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두려움을 극복할수 있습니다. 영성이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입에 담아두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영성이 있는 신앙인은 내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바라옵기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입술에 있다’. 이 두가지를 확신하고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야성과 영성을 지닌 기독교인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실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