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나는 엘 샤다이

Author
kgmcc
Date
2020-07-18 18:23
Views
76
본문 : 창 16장 15-16, 17장 1절

날짜 : 2020년 7월 19일


 

<1615-16, 171>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한국의 베스트 셀러 시인이자 목회자이기도 한 용해원 목사님은 ’인생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기다림이 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요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 할수 있습니다. 오늘 실패를 했다 할지라도 내일의 성공과 내일의 행복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기다림이 있기에 우리 인생은 행복 할수 있고, 기다림이 있기에 우리 인생은 아름다울수 있고, 기다림이 있기에 우리 인생은 여유가 있습니다. 오늘이 힘들어도 우리가 인생을 포기 하지 않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그 기다림에 지쳐버릴때가 있습니다. 기다림에 지쳐서 좌절하고 인생의 꿈을 접어 버릴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다림에 지친 인생을 살아갑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율법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금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왕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손으로 제사를 집례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기다림에 성공하는 사람은 인생에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말에 ’작심삼일‘ 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결심했던 일을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미가 급한 편이라서 ’빨리 빨리‘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곳 미국사람들이나 스페니시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바로 ’빨리 빨리‘ 입니다. 미국사람들이 커피 자판기를 사용할때는 커피물이 다 내려온 사인불이 꺼지는 것을 보고 난후 컵을 만집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컵에 손을 쥐고 커피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엔 커피물이 아직 내려오고 있는데도 거피 잔을 빼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때 저도 그런적이 있었는데, 아직 내려오고 있는 뜨거운 커피물이 제손등에 떨어져 커피잔을 떨어뜨릴뻔 한적이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보면 대부분 자기 혀로 어유롭게 핥아먹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사람들은 그냥 베어 먹습니다. 인상을 쓰면서 아이스크림을 왕창 먹다가 머리에 두통이 와서 괴로워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다림에는 약한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힘든 것 중의 하나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다리는 것도 힘들지만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막연히 기다리는 것은 더욱 더 힘듭니다. 이 기다림은 세상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약속하셨던 그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해주셨지만 그일이 성취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왕이 될 것을 약속받는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는 15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지만 강산이 한번 반이나 변하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어릴 때 요셉이 꿈을꾼지 17년후에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모세는 인생 40살에 이스라엘 지도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 모세가 이스라엘 지도자가 된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더 지난 그의 나이 80세 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읽다가, 말씀을 듣다가 그리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꿈과 소망을 붙잡고 신앙생활을 해나갑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하고 말씀을 보고 찬양을 해도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답답하고,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다가 보면 신앙의 해이가 찾아옵니다. “하나님, 정말 약속해주신 것입니까?“ 라고 의심하다가 나중에는 내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도 이러한 기다림에 지쳐서 넘어진 한 사람을 보여줍니다. 누구입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라고 하는 땅에서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우상을 섬기는 집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그런데 ‘떠나라’ 라고 말씀하실 때 그냥 떠나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도 함께 주십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창 12장 2절입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라함은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땅에 들어옵니다. 거리상으론 대략 1000마일입니다. 이곳 샬롯에서 워싱턴 D.C 까지가 약 400마일이니까 그 거리보다도 2배 반이나 더 되는 거리를 아브라함이 여행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힘들게 오랜 시간을 걸려 약속을 해주신 가나안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브라함은 나이가 든 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내 사라가 임신할 수 있는 나이도 지났습니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져갈 때 아내 사라가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여보 내가 데리고 있는 여종 하갈을 통해서 자식을 가지십시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 같아요’. 그때 아브라함은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바로 이스마엘 입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몇 살입니까? 창세기 16장 16절입니다.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아브라함 나이 팔십육세에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떠났을때가 몇 살인가요? 75세입니다. 86세 빼기 75세 는 얼마입니까? 이게 잘 계산이 안되나요? 11년이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11년 후에 사라가 아닌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도 기다림에 지쳐서 넘어진 것입니다. 기다림에 지쳐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아내의 뜻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아브라함이 여종인 하갈을 통해 자식을 낳은 이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드디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본문 7장 1절입니다.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99세 빼기 86이면 얼마인가요? 저는 쉬운 질문만 합니다. 13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고 난 이후에 13년 동안 침묵하신 것입니다. 이 침묵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상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마음이 상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13년동안 침묵 하십니다. 이 13년 동안의 하나님의 침묵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침묵이 주는 교훈

1. 하나님과의 교제는 단절될수 있다

본문 17장 1절 전반부입니다.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아브라함이 99세때 즉 하나님은 13년 동안 침묵 하십니다. 13년만에 아브라함앞에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대화는 계속되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는 단절되었습니다. 대화와 교제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모임에 갔는데 그 사람도 그모임에 참석한 것입니다. 그리고 공고롭게도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인사를 할수 밖에 없게 된것이죠. ”안녕하십니까? 그동안 잘지냈습니까?‘ 이렇게 형식적인 몇마디 대화를 하곤 그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자, 저는 그사람과 대화는 나누었지만 교제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대화와 교제는 다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오늘날에도 하나님과 믿는 성도사이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심령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믿는 성도와 하나님과는 단절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성령 하나님과의 교제는 단절될수 있습니다. 교제가 단절되었다는 말은 침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 임재의 현장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천사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목회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그리고 또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내 심령속에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교제가 중단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고난 이후 13년이라는 하나님의 침묵과도 같습니다. 그럼으로 나에게도 이런 하나님의 침묵하심이 있는지 진지하게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주는 교훈

2. 침묵의 기간만큼 괴롭고 답답함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답답하고 괴로운일이 어디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다고 할지라도 내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답답하고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한집에 같이 살면서 1년, 2년, 3년..., 10년동안 별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 살아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게 부부로 사는 것입니까? 차라리 한집에 같이 살고 있지 않는다고 하면 덜 괴로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을 때 성령님이 내 심령에 오십니다. 내 심령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데 대화가 없다면 나의 영혼은 얼마나 답답하고 괴롭겠습니까? 이러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내 영혼이 평안하고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내가 정말 구원받은자로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믿는 성도가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괴롭고 가장 답답한 때가 언제입니까?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때가 아닙니다.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할때도 아닙니다, 물질적인 어려움에 있을때도 아닙니다. 물론 그런일들도 힘들고 괴롭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극복 해나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을때는 지금 언급한 이 모든 것과는 다릅니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처럼 느껴지고, 말씀을 들어도 마음에 와 닿지 않을때 이때처럼 믿는 성도들에게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은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 풍랑이 있고 우리 인생의 밤이 깊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자는 이겨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자는 감당해나갈수 있습니다. 현재 코로나 19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육신적으로 힘들지만 특히 친지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은 정신적으로도 더욱 힘든 과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성령하나님과 대화를 통해 교제를 하는 성도는 소망을 가지고 이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나갈수 있는 것입니다.

‘네 약함을 자랑하라’ 라는 책을 쓴 저자 이효진 씨는 3살 때 끓고 있던 주전자를 엎어 얼굴과 손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이 괴물 같다고 놀려가지고 늘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리고 다녔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수술을 받고 정상인의 얼굴을 가질 수 있다는 엄마의 말에 소망을 가지고 그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 내었습니다.

하지만 얼굴 피부가 너무 상해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듣게 된 이후 절망과 좌절속에 급기야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갑니다. ”효진아, 네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는다“ 라고 애원하는 엄마의 말에 더 이상 자살 시도를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폭식을 하는 폭식중독, 일만하는 일중독 드라마만 보는 드라마 중독에 빠져 지냅니다. 그러던 중에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이후 이효진 자매는 살 의욕을 잃어버리고 마지 못해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어느날 기독교 집회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 집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서 예전에 그만두었던 신앙생활을 다시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예배시간에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효진아,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아라.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너는 나의 나라의 홍보대사 미스 헤븐(Miss heaven)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살아라‘ 그래서 그날 이후로 그 마음의 상처가 치료함을 받고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해서 주님이 주신 아이디어를 가지고 세계 최고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중의 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이효진 자매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비록 이 땅에서의 미인의 기준에는 들지 못하지만 미스코리아보다 더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홍보대사인 미스 헤븐 의 자격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결혼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직원 30명이 넘는 인테리어 기업의 CEO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효진 자매님을 ‘미스 헤븐’ 에서 이젠 ‘미세스 헤븐’ 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을 보시면 죄수인 바울을 포함해 276명의 사람들이 배를 타고 로마로 가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항해하던 중에 유라굴로 라고 하는 강풍을 만나 몇날 며칠을 고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속에서 구원의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그때 죄수의 신분이었던 바울이 담대하게 외칩니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우리들 중에 아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배만 손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죄수의 신분인 바울이 당당하게 외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바람과 파도 소리만 들었지만 하나님의 사람 바울은 그 풍랑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울이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7장 24절입니다.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내가 비록 얼굴이 추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내가 죄수의 신분에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코로나 19으로 인해 내 주변환경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 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바울처럼, 이효진 자매처럼 저와 여러분도 내가 처한 환경이 초라해보여도 당당하게 생활해나갈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환경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나를 답답하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성령하나님은 인격적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고 소원하면 내곁에 오십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기만하면 어려운 순간을 극복할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무슨일이 생길때마다 그리고 어떤 일을 결정할때마다 성령하나님과 대화와 교제를 통해 선한 결과를 이루어 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침묵이 주는 교훈

3. 내인생은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침묵하신 이 13년 동안에 아브라함의 행적이 한줄도 기록 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6장 16절 다음에는 곧바로 17장 1절입니다. 이 기간동안 하나님의 침묵이 있었고 이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물론 하갈의 몸에서 낳은 이스마엘이 성장하는 모습을 흐뭇해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씩은 하갈과 사라 두사람의 경쟁 관계속에서 아브라함은 갈등할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어떤날은 행복했고 또 어떤날은 괴로운날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이 행복했거나 슬펐거나 기분이 좋았거나 기분이 나빴거나 관계없이 이런 삶은 모두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하고 낙천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인생을 열심히 살고 행복하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안에 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삶만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 있어서 이 13년이라는 세월은 너무나 괴롭고 답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긴 침묵의 시간을 끝내시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1절 전반부 말씀 다시 보시겠습니다.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구십구 세 이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동안 가졌던 모든 꿈과 소망이 다 사라져 버렸을때입니다. 자녀를 낳기엔 그들의 몸이 너무 늙어버린 그때입니다. 아니 너무 늦어버린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그때에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모든 것이 끝났고 모든 것 이 절망이라고 생각한 그 시간에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왜요? 사람의 끝이 바로 하나님의 시작이심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그래요 성경을 보시면 사람이 할수 없다고 생각할 그때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다 끝났다고 두손들고 항복을 할 때 하나님은 시작하십니다. 마가복음 6장을 보시면 오병이어 사건이후에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고 있고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 가서 따로 기도를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나서 밤새도록 고생합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입니다.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보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밤새도록 풍랑으로 인해서 고생하고 죽을 지경이 된 것을 보시고 계셨습니다. 밤 사경이면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입니다. 제 이민초기에 7-11 컨비니언 스토어에서 캐시어로 밤시간에 일한적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가장 피곤한 시간은 자정이 지난 1, 2시가 아니라, 이제 막 이른 아침이 되기 직전인 4-5시 사이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생하다가 이제 더 이상 힘도 없고 지쳐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한 시간이 바로 밤 사경입니다. 사실 제자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을 예수님이 보시고 계셨으면 이제 막 제자들이 고생하기 시작할 때 찾아와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왜 주님은 인간의 마지막 순간에 역사하십니까? 우리 인간들이 할수 없다고 두손, 두발 다 들 때 찾아오십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누구 때문에가 아니라 그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아는 사람은 오래 끌 필요가 없습니다. 빨리 항복하고 빨리 두손을 드는 것이 최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앞에 항복을 할 때 비로소 간섭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나는 소망이 없고 끝이다‘ 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나는 너무 늦었어. 이젠 재기 하긴 힘들어‘ 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까?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불행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좋은 일입니다. 하루 속히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 살길입니다. 그리고 두손 들고 항복하고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일을 하십니다. 13년 동안 침묵을 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절 후반부입니다. 1.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전능한 하나님‘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 입니다. 이 ’(하나님)‘ 과 ’샤다이(힘과 능력)‘ 라는 단어가 여기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힘과 능력 자체이신 전능자 이십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지금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그동안 지내온 상황을 볼 때 칭찬입니까? 책망입니까? 책망입니다. 무엇에 대한 책망입니까? 완전하지 못함에 대한 책망입니다. 완전하지 못함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의 불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의 불신앙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조급한 나머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인간의 방법으로 이스마엘을 낳은 사건’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브라함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엘 샤다이 전능자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전능한 하나님이다. 그런데 왜 너는 나를 신뢰하지 못하느냐? 내가 너를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할려고 너를 불렀다, 그리고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면서 까지 너에게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는 왜 나를 신뢰하지 못하느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네가 할아버지가 되었고 아내 사라가 할머니가 되었다 할지라도 나는 네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킬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 엘샤다이’ 이다. 나는 이세상을 만들고 이 우주 천지를 만든 하나님이다. 죽은자도 살리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그런데 너는 왜 나를 신뢰하지 못하느냐? 이제 너는 내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여기서 완전은 인격의 완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에 있어서 완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종종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할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세상과 타협을 하고,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고 살아갑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내 힘과 내 능력, 내 지혜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힘과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아닙니다.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에 당면한 문제가 아무리 크고 많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엘샤다이 한분이면 충분히 이겨낼수 있습니다. 그 분앞에서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분 앞에서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분이 말씀하니까 바람과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그분이 말씀하니까 죽은자가 살아났습니다. 이후로 아브라함은 이 엘샤다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기다림에 지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만을 믿고 살아가십시다. 우리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임을 믿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항복하고 주님께 맡기십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 의 하나님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