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알곡의 삶(2) 예수님을 모셔라

Author
kgmcc
Date
2020-09-20 12:44
Views
648
본문 : 누가복음 5장 1-8절

날짜 : 2020년 9월 20일



 

<누가복음 51-8>

 

1.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 소설가로 유명한 헤밍웨이가 쓴 작품 중에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 작품을 보면 작은 배를 타고 매일같이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노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어찌된일인지 84일 동안이나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는 날이 계속 됩니다. 그러다가 85일째 되는날 이 노인이 바다에서 커다란 물고기를 잡습니다. 그런데 그 물고기가 너무 크고 힘이 세서 하루종일 노인이 탄 배가 물고기에게 끌려다닙니다. 3일째가 되자 비로소 힘이 빠진 그 물고기를 노인이 힘을 다해 당겨서 배 옆에 매 달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노인이 잡은 그 물고기를 노리는 상어떼를 만나게 됩니다. 노인은 긴 장대 끝에다가 칼을 매워 가지고 고기에게 달려드는 상어떼를 열심히 쫓아냅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서 물고기를 건져보니까 오직 물고기 뼈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헤밍웨이가 쓴 이 ‘노인과 바다’ 는 헛된 목표를 향하여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허무한 인생살이를 보여줍니다.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열심히 직장과 사업터에서 생존 경쟁을 치루지만 그 결과는 물고기 뼈만 남는 것과 같은 허무한 인생이다’ 라는 것을 헤밍웨이는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세상이라고 하는 바다에서 날마다 열심히 고기잡이를 하며 살고 있지만 소설에 나오는 노인처럼 물고기 뼈만 남아있는 것과 같은 결과를 경험 할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나온일을 되돌아볼 때 웬지 모르게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시몬 베드로가 바로 이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전날 밤에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열심히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했습니다. 5절입니다.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우리가 밤이 새도록 수고 했습니다. 하지만 잡은 것이 없습니다‘ 앞이 캄캄하고 흔들리는 배안에서 쉬지않고 열심히 일을 했지만 결과는 하나도 없었던 베드로 였습니다. 하지만 이 베드로가 그 다음날에는 평상시보다 훨씬 더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드리게 됩니다. 6절입니다.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그물이 찢어지는 지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많은 고기를 잡을수 있었습니까? 그렇게 하니 입니다. ’그렇게 하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아무런 수확이 없었던 밤을 보내고 난 이후에 베드로가 했던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도 지금까지는 많은 수확이 없었다 할지라도 앞으로는 베드로처럼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게 하니 자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1. 포기하지 않고 준비함.

2절 말씀입니다.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이와 똑같은 사건이 마태복음 4장 21절에도 나오는데 거기를 보면 야고보가 요한이 그 옆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 그물을 씻거나 그물을 깁는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물을 왜 씻습니까? 그물 사이 사이에 끼어있는 바다 잡초나 찌꺼기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물을 사용한후에 그물을 씻어주지 않으면 그물에 끼여 있는 찌꺼기로 인해 그물이 찢어지고 부식 되는 결과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나 마태복음 4장을 보시면 베드로는 동료들과 함께 그물을 씻고 그물을 수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다음에 그물을 또 사용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그물을 씻고 수선해서 그다음 고기잡이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전날밤에 많은 노력은 했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다음 고기잡이를 준비하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실패를 했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의 성공과 내일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과거에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오늘과 내일도 실패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사용하시기에 제일 힘든 사람은 바로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내 주변사람들이 나를 포기하고 내 가족이 나를 포기한다 할지라도 내가 내 자신을 포기 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대부분의 경우 실패한 사람들을 들어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했지만 포기 하지 않는 사람들을 주님은 사용하십니다. 그럼으로 인생에 있어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적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라 할수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리더십 강사가 한 말입니다만 자기가 한국 기업 CEO들이나 기업간부들이 모이는 리더십 세미나에 가면 첫날 첫 시간에 제일 먼저 이 말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일을 하시는 동안 모든 것을 다해보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할수 있는 일이 100가지라고 한다면 99가지는 다 해보셔야 합니다. 하지만 이 한가지만은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바로 포기하는 일입니다. 포기를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왜냐하면 실패를 해도 성공할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은 포기하지 않을 때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다른 것은 다 해도 포기는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요. 지금까지 저와 여러분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가게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다고 할지라도 지금 우리가 계속 해야 할 일은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는 일입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저와 여러분이 던진 그물에 그 무엇인가 잡히게 될것입니다. 베드로는 전날밤에 아무런 수확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그다음에 베드로는 어떻게 합니까?

2. 예수님을 모심

3절입니다.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예수께서 한배에 오르시니 사실 베드로가 그물을 씻고 그리고 동료들이 그 옆에서 그물을 수선하고는 있지만 이날 그의 마음이 얼마나 다운 되어 있겠습니까? 그전날밤에 밤새도록 수고를 했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음을 위해 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기분이 많이 다운되어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실망과 허탈감속에 있었던 베드로가 희망의 마음으로 변하게 된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 본문 2절 전반부를 보시면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한 배는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의 배이고 또 다른 한배는 요한과 야고보 형제의 배입니다. 어떻게 알수있나요? 10절입니다.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그러니까 시몬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같은 동업자 인 것을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베드로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놀랐습니다. 왜 놀랐나요? 9절입니다.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놀란 것입니다. 그들은 그전날밤에 많은 수고를 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생겨났던 것입니까?

3절입니다. 3.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는 그 배는 시몬의 배라’ 그러니까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실수 있도록 자신의 배를 제공했던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기분이 좋은 상태가 아닙니다. 왜요? 그전날 밤에 자기가 종일토록 수고를 했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자신의 배를 사용하겠다고 요청하실 때 베드로는 거절할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때는 베드로가 아직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기가 아직 확실히 알지 못하는 이 예수님의 요청을 거절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베드로는 예수님이 자기 배를 사용할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자, 여기서부터 베드로의 인생에 기적이 시작됩니다. 사실 지금 베드로는 지난밤에 아무런 수확이 없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그물을 씻고 수선을 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집에가서 밥을 든든하게 먹고 충분한 수면을 취한후에 저녁에 다시 고기잡이 나갈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지금 그 모든 일을 잠시 미루고 예수님에게 자신의 배를 사용할수 있도록 마음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것입니다. 이때부터 베드로는 주님이 역사하시는 기적을 경험하는 축복을 누리게 된것입니다. 그래요. 우리도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정말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내가 기대했던 수확은 없을수도 있습니다.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인생의 추수때는 다가오지만 내놓을만한 수확물이 없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계획을 잘 짜고 마음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준비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모시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같이 동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 내 배를 사용하십시오” “ 예수님 내 재능, 내 육신, 내 물질을 사용하십시오” 이렇게 예수님에게 고백하는 마음이 코로나 19 이후에 일어날 뉴 노멀 시대를 준비 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자,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아무런 수확이 없었던 것은 지금 내가 주님께 마음을 열어 주님을 모시고 살아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 일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종종 어린 강아지가 잡히지도 않는 자기 꼬리를 물기 위해서 빙빙 도는 모습을 볼때가 있습니다. 강아지가 자기 꼬리를 물려고 계속 빙빙 도는 모습을 보면 그 강아지를 보는 우리가 다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예수님이 없이 무작정 바쁘게 살아가는 인생이 바로 강아지가 자기 꼬리를 잡는 행동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강아지가 아무리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자기에게 유익함은 전혀 없습니다. 강아지가 마침내 자기 꼬리를 물게 되었다 할지라도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자기 꼬리만 아플뿐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모신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간다면 자연히 꼬리는 우리를 따라오게 됩니다. 우리는 꼬리를 붙잡기 위해서 열심히 뛰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꼬리가 우리를 따라오게 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우선 순위가 올바로 정해지게 되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이제부터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배에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도록 하십시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고 주님이 역사하시는 축복을 누릴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게 하니 자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3.예수님의 말씀에 순종.

5절입니다.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런데 베드로가 이 고백을 하기전에 굉장한 갈등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지금 베드로에게 주어진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시면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신후 이니까 아마도 어느정도 아침시간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아침해도 어느듯 높이 떠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라고 말씀합니다. 일반적인 상식에 따르면 해가 뜬후에 깊은물에 가서 그물을 던지면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갈릴리 바닷가에서 오랫동안 어부생활을 해온 베드로의 마음에는 당연히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고기를 잡는데 전문가인 베드로가 아마추어로 보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 합니다. 어떻게 보면 전날밤의 실패가 이 베드로의 마음을 겸손하게 만들게 했을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베드로가 전날 밤에 물고기를 풍족하게 잡았다면 예수님이 하시는 이 말씀에 베드로는 순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요? 이미 물고기는 베드로에게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자기에게는 물고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집에가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지난밤에 잡은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주님은 우리에게 가난한 마음과 실패를 통해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축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옛날에 우리나라가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을 때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하지만 이제 배가 부르고 등이 따스해지게 되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가장 축복된 사람은 내 배가 부르고 내 등이 따스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사실 내가 던진 그물에 무엇이든지 많이 올라오게 되면 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은 일반 상식적인 선에서 벗어날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생각과 다를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낮에 바다 깊은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는 일은 베드로 자신이 원하는 일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상식에 맞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날밤에 많은 수고를 했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비참한 실패를 했기 때문에 베드로는 순종하게 됩니다. 자기가 원했던 행동은 아니었지만 순종한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고 보니까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6절입니다.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계속해서 본문 7절을 보시면 잡힌 고기가 너무 많아 다른 배에 있는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두 배 모두 다 고기로 가득차게 된 것입니다.

자, 여기서 그물은 우리 인간의 장비로 얻을수가 있는 최대한의 수확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 장면은 주님이 축복하시고 주님이 기적을 베푸시면 우리 인간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물이 찢어지는 모습은 우리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는 축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며 살아갈 때 나의 생각을 넘어서는 주님의 큰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왔지만 아무런 소득이나 결과물이 없다 할지라도 지금 해야 할일은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의 역사는 내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인생의 배에 예수님을 모실 때 새로운 역사가 시작 됩니다. 예수님 없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것은 곧 강아지가 열심히 자기 꼬리를 잡을려고 하는 것과 같이 아무 부질없는 일입니다.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던 주님을 우리 인생의 배에 모시게 되면 우리는 꼬리를 따라가는 인생이 아니라 꼬리가 나를 따라오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바람과 풍랑에 의해서 이리 저리 흔들리던 배가 잠잠해지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인생에 많은 고기가 잡혔기 때문에 우리가 형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내인생의 배에 모셨기 때문에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문제와 내가 처한 환경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내 인생의 배에 들어오셔서 키를 잡으시고 운행을 하신다면 지금은 태풍이어도 지금은 풍랑이어도 우리는 형통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은 베드로처럼 내인생의 배에 많은 물고기가 잡히게 되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내 인생의 배에 고기가 많이 잡혔다고 해서 그것이 축복이라면. 만일 그전날밤에 베드로가 고기를 많이 잡았다면 베드로는 이날아침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베드로의 진정한 축복은 자기의 배에 물고기가 가득차게 되었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초정한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기의 배에 초청한 것이 참된 축복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니까 그물이 찢어질정도의 물고기를 잡게 된 기적을 경험한것입니다. 베드로의 진짜 축복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베드로에게 임한 참된 축복입니다. 8절입니다. 8.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베드로는 바다 깊은곳까지 다 아시고, 다 보시는 저분이 내 마음속의 깊은 곳을 다 아시고 보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깨닫게 된 그 사실이 바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이 아닙니까? 누가복음 5장 32절입니다. ‘32.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죄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실수 있는 존재를 만나는 것에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날마다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그 죄를 용서받고 자유롭게 살아갈수 있는 길은 단 한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그다음날 아침부터 에수님을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게서는 ’너희들이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가 부른 까닭이다(요6:26)‘ 라고 말씀하신후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47절, 48절입니다.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떡을 먹어야 내가 살아갈수 있습니다. 떡이 내안에 들어와야 내가 살수 있게 되듯이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야 우리는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어제처럼 우리에게 떡은 주지 않고 오늘은 이상한 말씀만 하시네. 자기가 생명의 떡이니 자기를 먹으라고...? 우리가 식인종인가? 사람을 먹게...‘ 그러면서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축복은 아닙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축복이 아닙니다. 물론 배고픈 것보다는 배부른 것이 좋은 일입니다. 없는 것 보다는 많이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참된 축복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내안에 모시는 일이 참된 축복입니다.

자, 알곡과 쭉정이의 차이는 단하나입니다. 껍질안에 알맹이가 있으면 알곡이고 알맹이가 없으면 쭉정이입니다. 로마서 8장 9절입니다. ‘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이 내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그럼으로 알곡인 성도는 주님을 내 심령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순간순간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죄와 허물을 가지고 살아가는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죄를 깨닫게 됩니다.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에겐 예수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참된 축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어려울때나 형통할때와 관계없이 매 순간순간마다 예수님을 내인생의 배안에 모시며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베드로처럼 내가 던진 그물이 찢어지는 축복을 경험할 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