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알곡의 삶(4) 성령의 이끌리심

Author
kgmcc
Date
2020-10-03 20:27
Views
40
본문 : 마가복음 1장 11-13절

날짜 : 2020년 10월 4일



 

<마가복음 111-13>

11.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면서 하늘에서부터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기뻐하는 자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아들이심을 친히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한 상태에서 그러니까 성령충만 받은 상태에서 광야에 가시게 됩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40일을 금식 하신후에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을 보시게 되면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이 나오는 데 예수님이 사탄으로부터 세가지 유혹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탄이 유혹하는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첫째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로 떡 덩어리가 되게 하라’ 하는 것이고 둘째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하나님이 보호해주실 것이다’ 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유혹은 ‘네가 나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세상 만국을 너에게 주겠다’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들을 물리치십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이 세가지 유혹의 내용을 살펴보지는 않고 마가복음에 나오는 이 구절만 가지고 말씀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우리가 믿는 성도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성령과 동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성령과 동행하기 위해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받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성도로서 가장 올바른 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인정을하고 동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다 동의를 하지만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는지? 성령충만으로 살아가면 어떤일이 일어나는지? 성령충만인지 자기충만이지 아니면 마귀 충만인지 혼동스러울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세가지 질문을 가지고 성령의 이끌림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성령의 이끄심에 대해 정리된 생각을 가지고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 번째 질문

예수님은 왜 시험을 받게 되었는가?

오늘 본문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볼 내용은 예수님께서는 왜 시험을 받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온 내용대로 대답을 하면 성령 때문입니다.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시험을 받게 된 동기는 사탄 때문이 아니라 성령 때문입니다. 12절입니다. 12.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몰아내신지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4장 1절입니다.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성령에게 이끌리어’ 누가복음 4장 1절입니다. 1.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성령에게 이끌리어’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이렇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가복음에서는 ‘몰아내신지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예수님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자연스럽게 성령이 원하시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게 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몰아내셨다’ 라는 의미는 모든 환경과 조건이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사도바울에게도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시면 사도바울이 2차전도 여행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처음에 사도바울은 아시아지역에 복음을 전할려고 했습니다. 다시말해 에베소 도시로 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막으십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입니다. 6.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그래서 계속 서쪽으로 가면서 갈라디아 영역에 속하는 브루기아를 지나 무시아 땅에 이르게 됩니다. 무시아 지역에서 북쪽에 위치한 큰 도시인 비두니아로 갈려고 했었는데 성령님이 그 길도 허락하지 않으시고 막으십니다. 사도행전 16장 7절입니다. 7.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예수의 영 즉 성령이 허락하지 않으시는 바람에 사도바울은 비두니아 지역으로 가지 못하고 계속 서쪽으로 전진하게 됩니다. 그래서 드로아 지역에 이르게 되는데 밤에 마케도냐 사람이 손짓하면서 이리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 라고 하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세웠던 계획을 버리고 유럽으로 가게 됩니다.

이렇게 믿는 성도들의 마음에 성령이 충동하시는 일은 오늘날에도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이나 사도바울처럼 내 마음은 아니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결정을 내릴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성령님의 뜻을 따라 행동했다고 하지만 사실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 때문인지 아니면 내자신의 욕심에서 나온 결정인지 확실하게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하는것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인지 내 뜻인지 알수가 있겠습니까?

미국의 대표적인 강해 설교자이신 존 맥아더 목사님이 이렇게 말한적이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알수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이 뜻인지 아닌지를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복음 4장 1절입니다.

“1.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 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눅 4:1)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의 충만함을 입습니다. 그리고 광야에 가서 40일동안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으십니다. 성령 충만을 받았으니까 당연히 성령의 인도하심에따라 광야에 가신 것이고 성령님의 뜻을 따라 사십일동안 금식을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종종 성령충만을 술에 취한것과 비교합니다. 예전에 제가 성경공부시간에 술 취함과 성령충만함을 비교하면서 비슷한점과 차이점에 대해 말한적이 있습니다. 술에 취하거나 성령충만해지면 남을 의식하지 않고 담대해지고 좋던 나쁘던 역사가 일어나고 그리고 냄새가 나는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둘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한적이 있는데 누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님, 둘사이에는 돈의 차이가 있습니다. 술에 취할려면 돈이 들어가지면 성령충만에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공부하는 사람들 모두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술 충만과 성령충만의 변화는 비슷한면이 있지만 술충만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성령충만은 긍정적이고 성장하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냄새도 술 충만한 사람에게는 술냄새가 나지만 성령충만한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향기가 납니다. 충만이라는 단어의 개념은 ‘무엇에 의해서 지배를 당하는 상태’ 를 의미 합니다. 그래서 술 취한 사람이 술에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것처럼 성령충만 한 사람은 성령에 의해 내 마음이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려고 할 때 지금 내가 성령으로 충만한지 아니면 내 계획과 내 욕심으로 충만한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종종 성령 충만을 생각할때 성령 충만하게 되면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나는 아무생각이 없고 무아지경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성령 충만은 유기적인 영감으로 나타납니다. ‘유기적인 영감’이라는 단어가 신학적인 용어라서 일반 성도들이 이해하기가 어려울수도 있겠습니다. 간단히 설명해드리면 ‘유기적인 영감‘ 이라는 말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 경험과 재능 등 이러한 모든것이 총동원 되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지식이나 재능이나 성품 이런 모든 것을 다 참조해서 가장 정확하고 가장 올바르게 결정할수 있도록 하신다라고 믿는 것이 바로 유기적 영감이라 할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 우리가 술 취한 사람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평상시보다 이성이 더 밝아지고 더 초롱초롱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결정할때를 정확하게 알고 그리고 그 결정을 단호하고도 확실하게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주변사람들이 뭐라고 말해도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왜요?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는 성령님이 내가 가진 지식과 내가 가진 재능과 내가 가진 성품을 총 동원하셔서 결정을 내리시도록 나를 몰아넣으셔서 결정을 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손익계산을 해서 결정을 내렸다면 내 주변에서 나에게 말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나도 그렇게 결정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손익계산을 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몰아세우셔서 하신 결정이기 때문에 확신있게 신앙생활을 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내리는 결정은 결코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와 말씀으로 충만해 져야 하는 것에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성령 충만해 진 후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헤아리고 결정을 내릴수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 질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는 환경은 어떤가?

오늘 본문 내용에서 우리가 두번째로 생각해보아야 할 내용은 성령님이 인도하셨지만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따라 어떤 결정을 내렸다고 가정을 해보십시다. 그렇다면 그 결과가 모두 만사형통한 것입니까? 좋은 환경에 처하게 된 것입니까? 사실 그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좋은 환경에 이르게 되었다고 간증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성경에서 말씀하는 원리는 아닙니다. 13절입니다. 13.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그래요. 예수님은 분명히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축복의 가나안땅이 아니라 광야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십니다. 육신적으로는 40일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는 굶주림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들짐승의 먹이감이 될수도 있는 환경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갔는데 그 장소가 좋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으로 편안하고 좋은 길이 내앞에 놓여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내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 받지 않았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길을 갔는데 오히려 일이 더 잘 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나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요나가 니느웨 성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다시스로 가기위해 욥바 항구에 가니까 때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길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요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냥 배를 타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일이 잘 풀려 질때도 있습니다. 이와 반대의 경우를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구름기둥을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홍해 바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애굽의 군사들이 쫓아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갈수도 없고 뒤로 물러 설수도 없는 사면초가의 지경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갔지만 그곳에 시련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내가 참된 신앙인인가 아닌가를 분별할수 있습니다. 참 신앙인은 그곳이 비록 광야이고 홍해 바다 앞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의지할곳이 없는 광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더욱 느끼고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광야이기 때문에 내힘과 내 능력으로는 단 하루도 살아갈수가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절실히 느끼고 살아갈수 있습니다. 광야이기 때문에 가나안땅이라고 하는 목적지를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홍해바다 앞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다가 갈라지고 그 바다를 마른육지처럼 건너게 되는 기적을 경험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와 홍해바다 앞으로 인도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에게 더욱 의지하게 함으로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는 깊은 섭리가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랐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곳이 얼마나 좋으냐 그곳이 얼마나 편안하고 얼마나 안전한 곳이냐 하는 것보다 이곳으로 나를 인도하신 주님의 뜻이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라옵기는 성령의 인도하신곳이 비록 견디기 힘든 환경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뜻이 있다고 믿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질문

하나님의 시험인가? 사탄의 유혹인가?

마지막 세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시험은 테스트가 될 수가 있고 또 유혹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다시한번 봅니다. 13.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십니다. 사십 일을 광야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보낸 40년의 모습이 생각나게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약에 애굽나라에서 400 년이 넘게 종살이를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하지않고 곧바로 가나안땅에 들어갔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들에게는 노예근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땅에 들어간후에 싸워서 독립하지 못하고 가나안땅 족속들에게 종살이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40년 동안의 거친 광야 생활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고 20살 미만인 젊은 사람들과 담대한 지도자인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서도 가나안 부족들과 싸우면서 약속한 땅을 쟁취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광야생활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는 동안에 어떻게 지냈습니까? 감사하고 순종하면서 지냈습니까? 아니죠. 원망과 불순종 하며 지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광야의 역사는 또 다른 말로는 원망과 불순종의 역사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하면서 넘어졌지만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어 내십니다. 하나님은 시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테스트가 될 수가 있고 유혹이 될수도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니 라고 할 때 그 시험은 ‘페이라스모스’ 라는 헬라어 단어가 사용되어졌습니다.

‘페이라스모스’ 는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test이고 또다른 하나는 temptation입니다. 그러니까 페이라스모스 하는 분이 하나님이실때는 시험(test) 이라는 의미가 있고, 사탄 마귀일때는 test가 아니라 유혹(temptation)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유혹하지 않습니다. 시험하실 뿐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인간을 시험하지 않습니다. 유혹할 뿐입니다. 그리고 시험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믿음을 더욱 성숙시키시고 강건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복받을 대상이 되게 하셔서 복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유혹은 사람의 믿음을 파괴하고 망하게 하기 위함에 목적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입니다. 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기에 나오는 시험은 영어성경을 보시면 temptation(유혹) 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보다 시험대신에 유혹을 집어넣으면 더 정확한 의미가 되는 것이죠. 사람이 유혹을 받을때에 내가 하나님께 유혹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유혹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유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것이 더 정확한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 13절 말씀도 13.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에서 시험 대신에 유혹을 사용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시며’ 라고 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의미가 됩니다. 주기도문을 보시면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Lead us not into temptation) 여기에 영어성경을 보시면 템프테이션이 사용되었습니다.유혹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라는 의미가 더 정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페이라스모스(시험)’ 으로 의도하신 것을 유혹이 되도록 변질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에덴동산의 선악과입니다. 선악과는 시험이 될수도 있고 유혹이 될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면서 이 우주만물과 에덴동산과 인간을 지은 창조조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먹을수 있고 마음대로 할수 있지만 먹지 못하는 선악과를 보면서 아담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이 모든 복을 누릴수 있는 피조물임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선악과는 시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선악과를 유혹으로 변질시켰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 이렇게 유혹한 것입니다. 욕망을 불러 일으킨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광야도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Test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예수님을 세가지 내용으로 유혹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는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육신의 질병으로 시험이 올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험이 될수도 있고 사탄의 유혹이 될수도 있습니다. 육신의 질병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방법이 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에서 멀어져가는 유혹이 되기도 합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Test가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물질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유혹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가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사업의 문제, 교회의 문제 이 모든 것은 시험이 될수도 있고 유혹이 될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할 때 이겨낼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자 성령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셨다면 그 분이 책임을 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시험을 받아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13절 후반부입니다. 13.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을 들더라‘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도우시고 힘을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그 고통의 순간들을 이겨내게 하십니다. 야곱처럼, 여호수아처럼, 다윗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이 사회에서 겪고 있는 이 모든 시험에서 이겨낼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픔이고 지금은 고통이라 할지라도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사탄의 유혹이 아닌 주님의 시험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이고 들리는 환경만을 보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며 지냈습니다. 물이 없다. 물이 쓰다. 고기가 먹고 싶다. 옛날이 좋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리고 날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게 되는 일에 감사하면서 지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나님도 좋고 성도들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언제나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다음달 11월이 감사의 달입니다만,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감사하는 것만큼 믿는다고 할수있습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행복하고, 감사하는 것만큼 풍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것만큼 성숙한 것입니다. '누가 진짜 믿는 사람입니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까?’ 감사하는 사람 입니다. ‘누가 진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구별된 사람입니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진짜 강한 사람이고 부자입니까?’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은 내가 처한 환경이 좋으냐 나쁘냐하는 것 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살아갈때에 일어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일어납니다.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고 시험을 받으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지만 광야이었고 40일 금식을 해야 했으며 사탄의 유혹을 받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함께 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시험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사탄은 유혹으로 변질시킬려고 한다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유혹이 올 때 성공하게 되면 하나님의 테스트에 성공한 것입니다. 반대로 유혹에 넘어지면 하나님의 테스트에 성공하지 못한것임을 같이 연관지어 생각해야 합니다. 테스트에 실패하면 계속 테스트를 받게 됩니다. 성공할때까지 말입니다. 이부분에 관해선 언젠가 따로 다루어볼 계획입니다. 알곡은 껍질속에 알맹이가 있습니다. 알맹이인 성령이 내안에 계시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알곡입니다. 이 알곡이 커지고 성장하게 되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테스트를 받을 때 내가 성공할때마다 나는 알곡으로서 성장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시험이 올 때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서 그것이 시험이든 유혹이든 감사하면서 이겨낼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