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알곡의 삶(5) 은혜의 삶을 살라

Author
kgmcc
Date
2020-10-10 22:42
Views
30
본문 : 창세기 47장 27-31절

날짜 : 2020년 10월 11일


 

<창세기 4727-31>

27.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8.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29.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그동안 계속되어진 알곡의 삶 시리즈는 이번 주일로 마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었을 때 믿는 자의 심령속에 성령이 거주하십니다. 껍질안에 알맹이가 있으면 알곡이듯이 성령이 내 심령속에 계심으로 우리는 영적인 알곡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알곡의 신분으로 살아가는데 합당한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주에는 돌 던지지 말라 이었고 두 번째 주는 예수님을 초청하라 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주는 흔들리지 말라 이었으며 지난 주에는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야 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은혜의 삶을 누리며 살아야 할 것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언제인가 제가 잠시 언급한적이 있지만 오스트레일리아 호스피스 병원에서 시한부 말기 암 환자를 돌보았던 간호사 브로니 웨어가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만들어 출간 했습니다. 그 책제목은 ‘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 인데 그대로 해석하면 ‘사람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 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책 제목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로 되어 출간되었습니다. 그냥 원문대로 ’죽어갈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가지‘ 이렇게 제목을 정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으로 책제목을 정한것은 아마도 원제목으로 번역하면 사람들이 너무 위협감을 가질 것을 염려해서 조금은 감성적인 제목으로 정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책에 의하면 죽음을 앞두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다섯가지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첫째는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던 것‘ 을 후회한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에 맞추어서 삶을 살았던 것을 후회를 하는 것이죠. 남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바람에 결국 내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는 것이죠.

둘째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해왔다는 것‘ 입니다. 대부분 남성 환자들이 이런 후회를 했었는데, 그들은 직장 생활이나 사업 때문에 아내, 자녀들과 함께 따뜻한 가정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스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기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 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긴 것이 어쩌면 지금의 `병`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답니다.

넷째는 `옛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진 것을 후회했다는 것‘ 입니다. 죽음을 앞두고서 오랜 친구들이 보고파서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들의 연락처조차 알 수 없어 후회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살아보지 못했던 것’ 을 후회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오래된 습관과 익숙해진 그 패턴에 머물러서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추구했지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것을 후회 했습니다. 그리고 브로니 웨어는 그 책에서 이렇게 말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은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지나온 시절을 돌이켜보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았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후회하는 일이 많은 것은 믿는 성도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난일을 돌아보면서후회하고 안타까워 하지만, 성도들은 지난일을 돌아보면서 후회하기 보다는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더 바라본다는 것에 가장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믿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세상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도 자기가 죽을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지난시절을 돌아봅니다. 본문 29절 전반부입니다.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여기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새로 주신 이름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서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삶이었다는 고백을 합니다. 본문 29절 중간부입니다. “29.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지금 야곱은 자기 아들 요셉을 불러서 내가 너에게 은혜를 입었다라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표면적인 의미을 보면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고백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궁극적인 의미는 ‘야곱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았다’ 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사람으로 받은 은혜도 알게 됩니다. 왜요? 하나님의 은혜는 대부분 사람들을 통해 오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아들 요셉을 통해서 누릴수 있게 되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애굽 바로왕으로부터 받았던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누리게 된 것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고 있다면 감사인사를 그사람에게 하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사람의 손을 통해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고 그 말을 받고 있는 상대방도 믿음의 사람이라면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도움의 손길을 줄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래요 본문에 나오는 야곱처럼 저와 여러분도 인생의 마지막날에 이렇게 여러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후회스러운 일들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왜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수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왜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까?

첫 번째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 것들은 오직 은혜로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28절입니다. “28.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야곱이 애굽땅에 십 칠년을 거주하였으니’ 야곱이 자기 후손들과 같이 가나안땅을 떠나서 애굽의 고센땅에 들어가 살게 된지가 17년이 되었습니다. 17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27절입니다 “27.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생업을 얻어’ ‘생업’ 이것은 재물, 재산을 의미합니다. 야곱이 가나안땅에서 애굽에 들어갈 때 자기 모든 소유를 가나안땅에 다 두고 왔습니다. 왜냐하면 아들 요셉이 거기 그냥 다 놔두고 오시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의 빈손으로 애굽땅에 왔습니다. 하지만 17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엄청난 재물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지금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생육하고’ 그들은 ‘생육했습니다’ 이것은 ‘자녀들을 많이 낳았다’ 는 뜻입니다. 그당시에 가장 큰 축복 중에 하나가 바로 자녀들을 많이 낳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야곱과 그 후손들의 재산이 넉넉하게 있기 때문에 자녀들을 제때에 잘 먹이고 그래서 건강하게 키울 수 있었다고 우리는 쉽게 추측해볼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자손들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또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번성하였더라’ 번성했습니다. 규모가 커지고 힘이 강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의 후손들은 이제 숫자적으로 불어났고 그래서 힘이 있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축복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습니다. 아들만도 열두명입니다 그리고 그 열두명의 자녀들이 저마다 자녀들을 많이 낳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 저와 여러분중에 아들이 열두명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십시다. 그래서 여기 제일 앞줄에 열두명의 아들을 앉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뒷줄에는 며느리들을 앉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뒤줄부터는 손자 손녀들 그리고 증손자 증손녀들을 앉힙니다. 모두가 번성해서 자녀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제가 서있는 이 자리에 서서 여기에 꽉찬 내 자손들을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겠습니까? 이것은 정말 너무 축복받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후손들이 많습니다. 야곱의 인생 말년에 이러한 축복을 누리면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야곱은 이 애굽 나라에 오기 전까지는 많은 고생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애굽나라 고센땅에 와서는 고생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17년이라고 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짦은 기간 동안에 이런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제 자신이 죽게 될 날이 가까워 오게 되자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자기 재산이 늘어나고 자기 자손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힘이 있는 민족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자기가 평생동안 남을 속이고 속임을 당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노력을 해서 얻었던 것 보다 여기 애굽나라에 와서 십칠년동안 별로 한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훨씬 더 많은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렇게 노력을 하며 살았던 이전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재물과 자손들 보다 더 중요하고 귀한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으십니까?

저와 여러분이 내 자식들에게 좋은 옷을 사주고, 좋은 학교에 보내주고 좋은 직장에 들어갈수 있게 한다고 해서 자식이 행복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내게 많은 물질이 있고 나의 후손이 많이 있다고 해도 그중에 몇 명이 사기꾼이 되고 강도가 되어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차라리 자식이 없는 것이 축복일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기쁨과 진정한 만족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가능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는 내가 수고해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내 인생이 은혜를 입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설사 나에게 아무런 소유가 없다 할지라도 그리고 내가 사람들한테 존경 받고 살아가는 신분이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나는 만족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를 은혜 입은 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까? 그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은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까?

둘째로 왜냐하면 내 능력으로는 얻을수 없는 것을 얻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29절 중간이후입니다. “29.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자기의 장사지낼것에 대해 부탁합니다. 그동안 야곱은 하나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죽은후에 자기 육신이 가나안땅에 묻히는 것입니다. 사실 야곱은 가나안 땅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나안 땅은 자기의 할아버지가 묻힌 땅이요, 자기 아버지가 묻힌 땅이었기 때문에 야곱은 가나안 땅에 살다가 그땅에 묻히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을 정말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그 땅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22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애굽나라의 총리가 된 자기 아들 요셉을 보고 싶은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자기가 애굽땅으로 가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야곱은 가나안땅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17년 동안 애굽 땅에 살아오면서 가나안땅을 잊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래서 죽어서라도 가나안땅에 묻히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의 이 소원을 자기힘으로는 이룰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야곱은 자기가 살아 오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은 자기가 수고해서 자기 손으로 얻어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마지막 소원인 이것만큼은 자기의 힘으로 도저히 이루어 낼수 없는 것입니다. 죽으면 끝인데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요. 우리 인간이 언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는지 아십니까? 내 자신의 한계를 발견할 때입니다. 내 자신의 무력함을 발견할 때입니다. 내가 자신만만하고 내가 능력이 있다고 믿을때는 그렇게 은혜를 받을려고 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뭐 괜찮아’ 말하고 무시하고 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반드시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는데 내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인생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실 야곱이 자기 아들에게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은혜를 입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자존심이 강한 야곱이 자기 아들에게 “요셉아 내 인생은 너의 은혜를 입고 살아왔다”라고 말을 한것입니다. 왜요? 그다음에 대답이 있죠. ‘청하노니...’ 부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죽거든 조상이 누워있는 가나안땅에 묻히게 해달라고 아들 요셉에게 부탁을 합니다. 야곱이 애굽땅에서 살수있었던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총리가 된 아들 요셉 때문이었습니다. 아들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야곱은 은혜로 받아 들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소원도 요셉이 이루어주기를 부탁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내게 힘주시고 능력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내가 이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오게 된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이 이 미국땅에 왔을 때 대부분 빈손으로 왔을 것입니다. 저도 이 미국땅에 올 때 한국돈을 미국돈으로 바꾸어 온 액수가 여권에 찍혀있는데 그 액수가 150불입니다. 거의 빈손으로 이 미국땅에 온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럼으로 지금 내게 있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미국땅에서 자녀를 키우고, 가게를 열고 일을 하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라옵기는 앞으로 소원하시는 일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왜 은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까?

마지막 세 번째로 이땅의 삶이 마지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리는 은혜로 영원한 가나안땅에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30절입니다. “30.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요셉이 누구입니까? 그당시 초강대국가인 애굽나라의 총리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총리의 아버지입니다. 야곱이 애굽에서 장사를 지내게 되면 적어도 바로왕 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에 못지 않은 대단한 장례식을 치룰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러워 할만큼 굉장한 장례식을 치룰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애굽에서 그런 대접을 받는 길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소원은 가나안땅에 가서 묻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애굽과 같은 이땅에서 살아가다가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인 가나안땅인 천국에 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가나안땅인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피나는 노력을 해서 많은 재산과 많은 자녀를 얻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은 그것으로 끝입니다. 재물과 자녀들이 나를 도와주지 못합니다. 그것들이 내죽음 이후를 책임져 주지 못합니다. 내 죽음이후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제 저도 나이가 들어가니 젊은 시절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기도를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 있는 모든 가족들이 죽음이후에 모두 천국에서 만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날마다 기도합니다. 지금 믿음의 생활을 하고있는 가족들은 주님을 만날 소망을 가진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직 천국에 갈 준비가 되지 않은 가족들은 주님을 믿는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날마다 두 번씩 기도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죽음이후에 천국에서 온 가족들이 만나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을 정도로 선하지 못합니다. 선택받을만한 어떤 귀한 가치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름은 하나님 나라의 명단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너무너무 모자라고 실수투성이지만 우리는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입니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래요.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도 은혜요 구원도 은혜입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실력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 힘과 내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이땅을 살아가는 사람은 축복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사모하며 이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축복된 인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이라고 하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넘어지고 실수를 하는 허물많은 사람이지만 우리의 죄는 용서함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실수투성이의 삶을 마치게 되는 날 우리는 죽음이후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껍질안에 알맹이가 있으면 알곡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겐 성령이 그 심령안에 거주하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모두 영적인 알곡입니다. 쭉정이가 가는 곳은 불에 태워지는 곳이지만 알곡이 마지막으로 가는 장소는 곡식을 쌓아두는 곳간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알곡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은 하늘나라의 곳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 남은 생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나라 곳간에 도달하게 되는 은혜를 누릴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