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세상에 오직하나 완벽한 것

Author
kgmcc
Date
2020-10-24 21:20
Views
49
본문 : 골로새서 2장 13-15절

날짜 : 2020년 10월 25일


 

<골로새서 213~15>

13.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이번 주가 지나고 다음주가 되면 11월이 됩니다. 그리고 11월이 지나고 나면 올해 마지막 달인 12월입니다. 올해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연말 연시가 되어도 샤핑몰이나 식당에 사람들이 예전보다는 훨씬 더 적게 모일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대신에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해서 성탄절과 같은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연말 연시에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세상에 완전한 사랑은 없습니다. 성탄절날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그리고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서 서로 주고 받지만 사실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동안 더 잘 대해주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평상시에 잘대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의 표시도 그 선물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사이에도 평상시에 더 잘 대해주지 못한 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이세상에는 완전한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완전한 사람도 없고 완전한 제품도 없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가정도 없고 완전한 직장도 없습니다. 물론 완전한 교회도 없습니다. 우선 보기에는 완전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가 다 부족함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이지 모든 것에는 다 문제가 있고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완전한 것이 있습니다. 정말 부족함이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있습니다. 완전 완벽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해줍니다. 그래서 죄인이 의인이 되게 합니다. 죽었던 영혼을 구원하고 살립니다. 지옥에 가는 영혼을 천국으로 가게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망가지고 실패한 사람도 복음을 통해서 새롭게 회복되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절망하고 낙심했던 사람도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이암아 저와 여러분에게 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복음은 이세상의 모든 저주를 끊어버리고 자유하게 하는 일에 부족함이 없고 완전한 것입니다. 이세상에 있어서 오직 하나 완전하고 완벽한 것은 복음뿐입니다.

 

□ 다른 복음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완전한 복음에 무엇인가를 첨가할려고 하는 사람들이 초대교회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있어 왔습니다. 이 완전한 복음에 뭔가를 더 추가하는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9절 하반부입니다. "9.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다른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이외에 다른 것을 보태면 다른 복음이 됩니다. 복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거기에다가 무엇인가 더 보태면 다른이 복음 됩니다.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중에 예수도 믿고 또 육체의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할례도 같이 받아야만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주장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수 있다고 하니까 우리 인간이 할수 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할례를 받으면 내가 구원받기 위해 무엇인가 한 것 처럼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고 천국가기위해선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할례를 받으면 내가 구원을 위해 그래도 무엇인가 했으니까 우선 보기에 훨씬 더 이치에 맞는 구원의 방법인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은 예수를 믿어야 하고 그리고 또 그 외 다른 것도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로마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연옥이라는 교리입니다.

이 연옥(Purgatorium-푸가토리엄) 은 따지고 보면 다른 복음입니다. 카톨릭에서 말하는 연옥은 그사람이 살아 생전에 천국에 갈수 있을 정도로 아주 선하고 위대한 일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지옥에 떨어질 정도로 악한 죄를 짓지 않고 죽었을 때, 그런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가기전 중간장소가 바로 이 연옥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죽어 그 영혼이 연옥에 있는 동안 이 땅에 살고 있는 그 사람의 자녀들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헌금을 많이 하게 되면 그 영혼들이 사함을 받고 깨끗해져서 마침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교리입니다. 이 연옥은 초대 교회때 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1336년 베네딕토 교황이 이 연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서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 연옥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초대교회에는 없었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완벽하게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었는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연옥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다른 복음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음은 예수님이 내죄를 사해주시는 구세주임을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안식교에서는 주일이 아닌 안식일인 토요일을 지키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야 하지만 거기에다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또 다른 복음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리는 그자체로 완전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진리에 무엇을 보태거나 빼게 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 원리로 복음에다가 무엇을 보태거나 빼면 진리가 아닙니다. 다른 복음은 진리가 아닙니다.

자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의 복음이 얼마나 완전하고 충분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왜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에게 완전하고 충분한 것입니까?

첫째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기 때문입니다.

13절입니다. 13.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자 예수님을 믿기 전에 저와 여러분은 범죄와 무할례로 죽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 본문에 나오는 '범죄' 는 무엇입니까? 아담으로부터 온 원죄를 포함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지은 모든 잔 범죄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육체의 무할례' 는 또 무엇입니까? 하나님과는 아무관계 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사람을 바로 ‘육체의 무할례자’ 라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기 전에 우리는 죄를 짓고 살아가던 범죄자이었고 육체의 무할례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우리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살리셨습니다. 어떻게 우리를 살리셨습니까? 13절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요 ‘죄야 사라지거라’ 라고 큰소리로 명령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내가 죄를 지었는데 그 죄를 없애기 위해서 선을 행하고 구제를 한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지은 죄에 대하여 죄 값을 치루어야만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반드시 죄값을 치루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값은 사망입니다. 죄에서 사함받기 위해선 죄값을 치루어야 하는데 그죄값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래서 이 죄 때문에 우리인간에게 사망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루어 주시고 죽으셨습니다. 죄의 값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은 마지막 단계이고 죽기까지의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죄로 인해 경험하게 되는 것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수치이고 둘째는 형벌이고 세째는 사망입니다.

첫째는 수치입니다, 부끄러움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느낀것이 바로 수치,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기 몸을 가리고 숨었던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먼저 수치와 부끄러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 죄값을 치루시기 위해서 수치를 당하셨야 했던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발가벗기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침뱉음을 당하시고 뺨을 맞으셔야 했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수치와 멸시를 당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죄값은 형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시면류관을 쓰셨고 로마 병정이 휘두르는 채찍에 맞아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셔야 했던 것입니다. 양손과 발목에 못으로 박히셔야 했고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내가 목이 마르다고 고통스러워 하시면서 죽으셔야 했던것입니다. 죄값으로 인해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죄의 값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은 아시다 시피 '영적인 죽음''육적인 죽음' 이 두 종류의 죽음이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 내 영이 단절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영적인 죽음을 경험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심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이었습니다. 분리가 되신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인의 신분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리셨을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아들로 인정하시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 순간은 아들과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죄수와 재판장이었던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예수님이 아버지 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대답하시고 친밀하게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셨을때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등을 돌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외치셔야 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고 말씀하시면서 늘 하나님 아버지의 자랑이요 기쁨이셨던 아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때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위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죽음입니다. 그래서 지옥은 바로 하나님과 분리가 된장소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빛이십니다. 그런데 빛이 없으니까 그곳이 얼마나 어둡겠습니까? 사랑이 없으니까 그곳이 얼마나 차갑겠습니까? 뿐만아니라 형벌까지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영원한 고통속에서 살아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래도 이땅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으로 이렇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은 영적인 죽음뿐만아니라 육신의 죽음도 경험하셨습니다. 육신의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께서는 죄의 값인 수치와 형벌과 죽음을 모두 다 경험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죽으시면서 ‘다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이루었다‘ 라는 단어는 잘 아시겠지만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 인데 우리말로는 ‘값을 지불했다 값을 치루었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위에서  ‘내가 다 지불했다’라고 외치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요. 예수님께서는 수치와 형벌을 받고 죽으심으로서 우리의 죄값을 다 치루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된것입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나 마음을 보시고 사해주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가 무엇인가를 해서 구원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나같은 사람을 구원해주실까에 대해 확신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와는 관계없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공로에 힘입어 구원 받았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기에 완전한 것입니다.

 

왜 십자가의 복음으로 충분합니까?

둘째 십자가에서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못 박으셨기 때문입니다.

14.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만드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 란 것은 무엇입니까? 율법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율법은 '우리에게 불리한 법조문'이라고 표현하였습니까? 그것은 '율법이 우리 인간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라고 요구하는 법 문서' 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알면 알수록 지켜 나가야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사람을 불리하게 합니다. 하지만 율법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인간들은 그 율법을 다지켜 행할 수가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면 구원이 가능하지만 그아무도 100 퍼센트 온전하게 지킬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주 우수한 야구 선수의 타율은 3할대입니다. 타자가 타석에 서서 투수가 던진 공을 10번 쳐서 3번 안타를 치고 나가면 그것이 3할입니다. 그러면 아주 야구를 잘하는 선수로 인정받습니다. 열 번 타석에 서서 일곱 번은 안타를 치지 못하고 죽었지만 우수한 야구선수로 인정받습니다. 열 번 쳐서 열 번 다 안타 날리는 선수는 없습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율법을 모두다 행하여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야구선수는 열 번중에 세 번만 잘쳐도 잘했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99번을 잘하다가 한번 그율법을 행하지 않으면 죽어야 마땅할 죄인으로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그누구도 율법을 지킴으로서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얼마나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 율법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값을 치루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법조문으로 쓴 증서 즉 율법을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율법이 우리 죄를 정죄하거나 고소하지 못하도록 십자가에 못을 박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음으로서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된 사람에게는 더 이상 율법의 정죄와 고소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입니다.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왜요? 율법을 십자가로 못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으로 인해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왜 십자가복음으로 충분합니까?

셋째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15절입니다. 15.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여기서 그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앞에 나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한마디로 어둠에 있는 영의 세력들을 의미합니다. 이 어둠의 영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유혹하고 넘어지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이 악한 영들을 무력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온천하에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무장해제 시켜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전쟁을 하게 되어 이겼습니다. 그래서 상대편 군사들을 포로로 붙잡았습니다. 그러면 잡은 포로에게 맨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무장해제' 시키는 일입니다. 상대편 군사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와 소지품을 다 빼앗는 것이죠. 어떤 경우에는 팬티만 입히고 두손을 머리에 붙이게 하고 끌고 갑니다. 그러니까 전쟁에 진 포로들은 모든 것이 다 드러나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공동번역으로 보시면 더 잘 이해할수 있습니다. 15.그리고 십자가로 권세와 타락한 천사들을 사로잡아 그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아 끌고 개선의 행진을 하셨습니다(공동번역서)

이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시고 사탄마귀를 무장해제 시키시고 당당하게 개선 행진을 하신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요 예수를 믿기 전에 우리는 죄와 허물로 인해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죄 값을 대신해서 받으시고 다 지불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가 우리 죄를 고소하고 정죄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전쟁에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정죄하고 고소하는 사탄마귀의 권세를 붙잡아서 무장해제 시켜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사탄마귀는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수치를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값이 치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함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죽어야 할 죄값을 치루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경험하신 수치와 형벌과 사망은 이제 도리어 사탄 마귀의 수치와 형벌과 사망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말씀합니다. 자 여기서 이기셨느니라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이미 이겨 놓으신 영적인 전쟁을 지금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기셨다" 는 말은 '승리하다' 는 뜻도 있지만 ‘경축한다. 축복한다’ 는 뜻도 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기신 것만큼 더 경축하고 축복할만한 일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집에 좋은 일이 생기면 이웃 사람들을 부르고 축복하고 경축을 합니다. 사업터나 직장에서도 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람들이 와서 축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축복만한 사건인 것입니다. 로마 장군이 전쟁터에 나가서 승리를 하고 돌아올때에 로마시민들은 자기 일처럼 감격하고 노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일에 대해 기뻐하고 찬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십자가를 볼때마다 가슴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는 경향이 있어왔습니다.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래야 할때도 있겠지만 사실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상징입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은 완전합니다. 이 십자가 복음만이 우리를 구원해줍니다, 이 십자가 복음만이 이세상에 완전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슬퍼하는 것보다 기뻐하는 마음을 가질수 있어야 합니다. 가슴아파하는 것보다는 찬양을 할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기는 이 십자가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의 모든 능력이 되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