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하나님 말씀을 따라

Author
kgmcc
Date
2020-10-31 20:40
Views
33
본문 : 열왕기상 17장 1-7절

날짜 : 2020년 11월 1일


 

<열왕기상 171-7>

1.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 평범한 사람 엘리야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감당하게 하시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아브라함 과 야곱 그리고 요셉 과 다윗은 모두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들입니다. 신약에 들어와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아도 모두가 다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전에는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평범한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사람은 바로 엘리야입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후에 엘리야는 능력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모세가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엘리야는 능력을 행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나옵니다. 엘리야는 기도로 하늘의 문을 닫고 하늘 문을 열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르밧 과부집의 기름병과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행합니다. 그리고 그 과부의 아들이 죽게 되자 그 아들을 살립니다. 뿐만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벌여서 승리를 하고 그들 모두를 기손 시냇가에서 죽인 능력의 사람입니다. 특별히 이 엘리야 선지자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승천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보통 선지자들이 평생에 한번 행하기도 어려운 기적을 계속해서 행하였던 선지자가 바로 이 엘리야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라고 하면 능력의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용하심을 받기 전에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1절 전반부입니다. 1.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길르앗에 우거하는 디셉사람 엘리야가’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엘리야를 소개하면서 엘리야의 아버지나 그의 조상에 대하여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어떤 중요한 사람을 소개할 때에는 대부분 부모나 아니면 조상의 이름을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수많은 능력을 행하고 영향력을 미쳤던 엘리야 선지자를 소개하면서 오직 그의 출생지만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엘리야가 그의 아버지나 그의 조상들로부터 특별히 기록할 만한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환경속에 지내온 사람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평범했던 엘리야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바 되자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 배경을 문제 삼아서는 안됩니다. ‘부모님이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하면서 부모를 원망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환경이나 출신을 탓해서는 안됩니다. 울창한 산 숲속에 가서 서있는 나무들을 자세히 보면 나무 하나 하나가 그렇게 화려하거나 우람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못생기고 비틀어져 있습니다. 산속의 나무를 가져올수도 없지만 가져온다 할지라도 자기집에 심어놓을 만한 나무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들은 서로서로가 조화되어 아름답고 멋진 숲을 이루고 그 가운데서 여러 짐승들과 새들이 평화롭게 살아가게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엘리야처럼 그렇게 평범합니다. 그리고 산속에 있는 나무처럼 볼품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붙드시면 우리도 엘리야처럼 능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 될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그당시 이스라엘 왕이었던 아합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그당시 아합왕 곁에는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여인이라 할수 있는 이세벨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아합왕을 찾아가 담대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사명을 감당해 나가도 힘겹게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고, 담대하게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해나갑니다. 평범했던 엘리야가 이렇게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할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먼저 엘리야가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해 나갔던 배경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해 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담대할수 있는 이유

1.하나님 앞에 서있었기 때문에

오늘 본문은 엘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엘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첫 번째 사역은 무엇입니까? 1절 중간부 이하입니다. ‘1.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수년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이런 심판의 메시지를 아합왕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심판의 메세지를 아합왕에게 선포하라고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당시 아합왕은 이방인 출신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리고 아합왕은 이세벨의 영향을 받아 바알신을 숭배하게 됩니다. 원래 이세벨은 시돈지역에서 바알신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이었는데 아합왕은 이세벨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신을 섬기게 합니다. 이세벨이 섬기는 바알신은 때에 맞추어 비를 내리게 함으로서 수확기에 농작물을 풍요롭게 해주는 신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왕에게 ’앞으로 수년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라고 선포한 것은 ’너희가 비를 내리게 해주고 그래서 풍요를 준다고 믿는 바알신은 가짜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알 신을 섬기는 아합 왕 앞에 가서 ‘바알은 가짜 신이다’ 라고 선포하는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엘리야 선지자가 이렇게 아합 왕에서 담대하게 말할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라고 아합왕에게 말할떼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란 말의 히브리어의 원래 의미는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라는 의미는 ’내가 살아있는 하나님앞에 서있으므로 맹세하여 말하니‘ 라는 의미입니다. 엘리야는 분명히 아합 왕 앞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혼과 마음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는 사람이나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크게 보이면 사람은 작게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나 환경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됩니다. 무슨일을 한다 할지라도, 또 어떤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앞에 서있다 라는 믿음을 가지면 우리는 담대하게 신앙생활 해나갈수 있습니다.

 

담대할수 있는 이유

2.하나님 말씀 때문에

엘리야가 담대할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결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1절 후반부입니다. 1.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내 말이 없으면...’ 여기서 ‘내 말‘ 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비가 내리고 안 내리고는 엘리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도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순종해서 ’앞으로 비가 오지 않으리라’ 라고 내가 선포했는데 비가 내리면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또 반대로 하나님이 ‘비가 오리라’ 말씀하셔서 그대로 선포했는데 비가 오지 않으면 그것도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그러니 엘리야가 아합왕앞에서 당당할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사업에 실패 했어도, 건강이 좋지 않아도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습니다. 사실 환경이나 신분이나 배경을 보면 엘리야가 아합왕앞에서 담대할수 있는 근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앞에 서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 누구앞에서라도 담대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바로왕을 무서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바로왕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히브리서 11장 27절입니다.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그당시 애굽나라는 최 강대국가이었고 바로는 그 강대국가의 왕이었습니다. 그런 바로왕이 분노했지만 모세는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모세가 담대할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바로왕에게 가서 말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종살이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롭게 풀어놓게 하라고 당대하게 말한 것입니다. 바로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쉽게 보내겠습니까? 쉽게 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에 바로왕은 할수없이 항복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줍니다. 그런데 그때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떠납니까? 밤중에 몰래 도망치듯이 떠납니까? 아니죠. 당당하게 그들은 떠납니다. 그들은 종의 신분이었지만 주인인 애굽사람들을 찾아가 의복과 금은 패물을 달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당당하게 떠납니다. 출애굽기 12장 35절 36절입니다. 35.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떠나가게 하실때에 빈손으로 떠나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종의 신분이었지만 그동안 일한 품삯을 다 받아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녀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비록 종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돈이 없다 할지라도, 내세울 학벌이나 배경이 없다 할지라도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는 인도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비록 가진 것이 없고 내세울만한 것이 없어도 모두 담대하게 살았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갈때도 물맷돌만 있었지만 얼마나 당당하게 나갑니까? 다윗이 키가 크고 힘이 있고 가진 무기가 많아서 당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때문에 당당한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사방으로 우겨삼을 당하고, 거꾸러짐을 당하고, 온갖 환난을 당해도 비굴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살다가 당당하게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내가 아무리 배우지 못하고 내가 아무리 가진 것이 없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당하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내가 육체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예수님도 세상에서 담대하게 사시다가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33.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렇게 주님이 우리에게 담대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말씀을 하셨기에 우리는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당당하게 살아갈때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바라옵기는 어떤 상황속에 있다 할지라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왕에게 가서 담대하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는데 그이후에 이 엘리야를 숨어지내게 하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이 알고 싶다’ 입니다. 왜 하나님은 엘리야를 숨어 지내게 하십니까?

3, 4절입니다. 3.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요단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아니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아합왕에게 가서 당당하게 말하게 하셨으면 그 이후로도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책임져주셔야지 왜 숨어 지내게 하시는 것입니까? 이렇게 엘리야가 당당하게 나왔다가 숨어지내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겠습니까? 한번 칼을 뽑았으면 죽든지 죽이든지 해야지 칼을 도로 집어넣고 도망 가버리게 하실려면 차라리 칼을 뽑지나 말게 하셔야지요.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훈련을 위해서입니다.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보내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 훈련을 통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훈련을 통해 하나님만이 피난처가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훈련을 통해 엘리야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신 내용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또 숨어 지내는 동안 까마귀가 먹이를 가져다 주는 기적을 경험하면서 모든 은혜와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이 엘리야처럼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시고 크게 사용하시기 전에 외로운 광야에서 훈련을 시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외롭고 거친 미디안 광야로 모세는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40년동안 양떼를 돌보면서 숨어 지냅니다. 하지만 모세가 광야에서 지냈던 이 40년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기 위한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40년의 훈련이 있었기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을 해도 인내하면서 그들을 가나안땅 앞까지 인도 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어릴 때부터 이스라엘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 이었지만 골리앗 장군과 싸워 그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이후 부터는 다윗은 오랜 기간동안 사울왕으로부터 도망쳐 숨어지내는 생활을 해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사울왕을 물리치고 다윗을 왕으로 세울수 있지 않습니까?.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울보다는 다윗이 왕으로서 자격이 훨씬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세우기 위해서 오랜 기간동안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겨낼수 있는 훈련을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주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했던 바울을 즉시로 예루살렘에 가게 해서 열두 제자들과 같이 협력하여 복음을 전하게 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바울을 아라비아 광야로 가게 해서 3년동안 훈련 시키십니다. 그리고 그 외롭고 거친 그 광야에서 침묵과 고독 가운데 모든 것을 비우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체험하는 훈련을 쌓게 하십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바울이 더욱 확신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자들을 만나 같이 협력하면서 이방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역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 그릿 시냇가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훗날에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의 사용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릿 시냇가에서 훈련시키는 중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인내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따르는 삶

5절입니다. 5.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릿 시냇가에 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이후 엘리야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에 대한 행동의 기준은 바로 여호와의 말씀에 있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 사역의 특징은 한 마디로 ‘말씀을 따라’ 입니다. 엘리야는 말씀을 따라 움직였고, 말씀을 따라 나아갔고, 말씀을 따라 숨었고 말씀을 따라 선포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시대적 분위기나 환경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말씀이 동으로 가라하면 동으로 가고, 멈추라하면 멈추고 뛰라고 하면 뛰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이고 말씀을 따라 사역했습니다.

신앙생활이 뭡니까? 말씀과 같이 하는 생활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말씀과 같이 하는 사역이었기에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저와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역시 엘리야처럼 내세울 것 별로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선 단 한가지이면 충분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도 엘리야처럼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숨어지내는 동안 까마귀를 통해 먹는 것을 해결 받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6절입니. ‘6.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까마귀를 통하여 엘리야를 먹이신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까마귀를 통하여 어려운 자를 도우시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까마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보낸 까마귀는 어디에 있을까?’ 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적어도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까마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까마귀가 되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받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특별히 공짜로 얻는 것을 보면 더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까? ‘주는 자가 받는보다 더 복이 있다’ 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는 사람을 부러워하면 주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을 부러워하면 항상 받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의 속성은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님까지 내주심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복된 분이 되셨습니다. 아마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면 우리는 먼저 천국에 있는 성도들로부터 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섬김의 나라요 주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다 섬기고 주니까 천국에서는 모두가 다 왕처럼 섬김을 받게 될 것이고 그래서 모두가 다 왕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땅에 있는 동안에도 주는 자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평생 주는 자로 살아갔습니다. 사도행전 20장을 보시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붙잡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눈물의 작별인사를 하면서 바울은 유언과도 같은 말을 그들에게 합니다. 사도행전 20장 34, 35절입니다. 34.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바울은 자기 몸이 허락하는 동안에, 자신의 몸을 때워서라도 언제나 남에게 주는 자로 살아갔던 것을 고백합니다. 왜요? 예수님의 삶이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마땅히 주는 자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주는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럼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있을때 까마귀를 통해서라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코로나 19으로 인해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까마귀가 되어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더욱 기뻐하시고 더욱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우리가 까마귀의 도움을 받으며 이 세상을 살아가기보다, 이 시대에 까마귀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더 큰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