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믿음과 감사

Author
kgmcc
Date
2020-11-14 19:45
Views
860
본문 : 골로새서 2장 7-8절

날짜 : 2020년 11월 15일


 

<골로새서 2장 6-7절>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벌써 11월 달이 들어선지 세 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11월은 기독교계에서 감사의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감사의 달이니 모두가 다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라고 말한다고 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 믿는 성도들에 있어서 감사는 믿음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김현승 시인이 쓴 ’감사‘ 라는 시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감사는 곧 믿음이다. 감사할 줄 모르면 이뜻도 모른다. 감사는 반드시 얻은후에 하지 않는다. 감사는 잃었을 때도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요 감사는 곧 믿음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곧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감사의 수준은 곧 믿음의 수준과 비례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믿음의 초보자는 ‘만일~’ 이라고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만일 ~해주신다면 감사 하겠습니다’ 이런 조건부 감사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믿음이 조금 더 성숙하게 되면 ‘~때문에 감사’ 하는 수준의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셨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만일에 해주신다면' 이라는 조건을 달지 않았는데 그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되어진 일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러한 믿음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믿음이 가장 성숙한 사람이 가진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입니다. 어렵고 슬픈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범사에 감사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 때문입니다. 구원의 주님, 소망의 주님,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향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만이 ‘범사에 감사하라’ 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감사는 믿음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7절 하반부입니다. ‘7.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감사를 넘치게 할수 있습니까? ‘믿음에 굳게 서서’ 믿음에 굳게 서있는 사람만이 감사를 넘치게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보면 감사는 상황과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느낌의 문제도 아닙니다. 감사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범사에 감사할수 있기도 하고 감사할수 없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믿음생활을 오래했다 할지라도 내가 믿음에 굳게 서있지 못하면 상황과 환경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그사람은 감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내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에 대해 의심이 생기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은 생각이 되는데 어떻게 감사할수 있겠습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홍해를 건널 때 그들이 얼마나 감사를 했습니까?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올 때 얼마나 놀라워하면서 감사를 했습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들은 불평과 원망의 말을 쏟아내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사실을 고백하면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는 감사할수 있지만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을 보면 그는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감사를 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갈때도 감사를 했고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하게 될 때도 감사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감사할수 있게 됩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시면 열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으로 인해 고침을 받았는데 그들중 한명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리며 감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감사하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7장 19절입니다.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렇게 감사는 믿음이 있어야 나오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내 믿음이 어느정도의 믿음인가를 알려면 인생의 풍랑과 고난앞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면 정확하게 내믿음의 깊이를 알수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중에서라도 감사할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 믿음이 성숙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감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 굳게 서있는 사람이 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믿음이 굳게 세워지기 위한 세가지 단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본문에서 말씀하는 세가지 믿음의 단계를 통해서 매사에 감사함이 넘치는 생활을 해나갈수 있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이 굳게 서게 되는 단계

첫 번째 단계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는 일.

6절 상반부입니다.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받았으니‘ 여기서 받았다는 의미는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여서 자신의 것으로 취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그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은 골로새서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골로새서 교회 성도를 향한 메세지입니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빌레몬서 강해를 시작하고 있는데 사실 빌레몬서와 골로새서는 바울이 같은 시기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고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에바브라 라는 교역자와 빌레몬이라는 평신도 지도자가 같이 세운 교회입니다. 그당시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가르쳤고 그리고 골로새 지역의 부유한 유지였던 빌레몬은 자신의 집을 예배처소로 내놓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 에바브라와 빌레몬이 예수님을 믿기전에 에베소 도시를 방문한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후 이 에바브라와 빌레몬은 자기 고향인 골로새에 돌아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이 에바브라와 빌레몬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골로새 교회가 세워지게 된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전해준 그 복음을 듣고 우리도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전에는 내가 내 마음의 주인 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하고 내 감정대로 하였습니다. 내 원대로 결정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난이후에 이제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요. 저와 여러분이 이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바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은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에 굳게 설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야 합니다.

 

믿음이 굳게 서게 되는 단계

두 번째 단계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일.

6절입니다.  6.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다음에요?) 그 안에서 행하되 ’그안에서 행하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다면 반드시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안에서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행하는 행위는 별개가 아닙니다.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입니다.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내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행하여야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행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 안에서’입니다. 여기서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니까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생각하고 예수님 안에서 말하고 예수님 안에서 결정하고 예수님안에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5.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 아무리 크고 멋진 가지라 할지라도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똑똑하고 재능이 있고 많이 배웠다 할지라도 예수님 안에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열매는 맺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령의 열매는 예수님 안에서 행할때만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입니다.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저와 여러분이 주님안에 거할 때 이루어지는 기도응답이 축복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밖에 있는데 내 원함대로 이루어진다면 진정한 축복은 아닙니다. 그 응답 때문에 그사람은 교만해지거나 해서 하나님과 더 멀어질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이루어지는 기도응답이 참된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머물러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아무리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도 본래의 자리에서 떠나있으면 추하고 더러운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입안에 있는 침이 내 입안에 있을때는 정말 가치가 있고 중요합니다. 침이 있어야 목이 마르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소화시킬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침이 내 입안에 있지 않고 밖으로 흘러내리면 얼마나 추하고 보기 흉합니까? 제가 설교를 하는데 침을 밖으로 질질 흘리면 보기가 얼마나 흉하겠습니까? 머리카락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은 머리카락 숱이 많아서 귀찮다고 말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저는 그럴때마다 속이 상합니다. 저도 젊었을때는 머리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머리숱이 빠지는데 머리감기가 겁날 정도로 빠지더라고요. 그리고 지금은 머리를 감은후에 빠져있는 머리카락을 보면 아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머리카락 한올 한올이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머리카락이 머리에 있을때 소중하고 귀한 것이지 이 머리카락이 밥이나 국안에 있어보세요. 그래서 밥을 먹는데 머리카락이 쭉 나와보세요. 기분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물고기가 어항속에 있어야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 것이지 침대 매트리스에 있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그날은 그 매트리스에서 잠을 잘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에도 '더러움은 자리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Dirty is out of the place)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가장 아름답고 가치가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서 굳세게 될려면 반드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성경을 잘 알면 믿음이 자라서 굳세어 질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에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지 믿음이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적으로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해서 믿음이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자랄려면 반드시 내가 해야할 일이 있는 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님들은  제게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목사님 왜 이렇게 믿음이 안자랍니까?“ 그것은 사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절입니다.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장 24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때 비로소 그때서야 신앙의 집이 지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의 집은 지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 하반부입니다. ‘7.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교훈을 받은대로’ 교훈은 말씀을 의미하니까 말씀을 받은대로 실천할때에 우리의 믿음이 굳게 세워진다는 뜻입니다. 다시 정리를 합니다. 감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합니까? 믿음에 굳게 선 사람이 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단계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일이 가장 먼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수님안에서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굳게 서게 되는 단계

세 번째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받는 것.

본문 7절 말씀입니다.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여기서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식물과 건물의 예를 들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뿌리' 는 식물을 의미하고 '세움' 은 건물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나무를 볼 때 가지와 잎과 꽃을 보고 그 나무를 판단할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뿌리에 있습니다. 아무리 나무 가지가 좋고 잎이 무성하고 꽃이 화려하게 보여도 뿌리가 병들고 썩어가고 있으면 그 나무는 곧 시들고 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의 풍랑을 이겨내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려면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 박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네가지 종류의 밭 중에 '길가' 와 '돌짝 밭' 과 '가시덩굴이 있는 밭' 이 세가지 종류의 밭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가 힘들다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밭은 뿌리가 잘 내려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뿌리를 내릴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물도 마찬가지로 기초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크고 모양이 좋은 건물이라 할지라도 든든한 기초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곧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유다서 1장 20절을 보게 되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신을 세우며' 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내 신앙의 집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 무엇입니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복음의 진리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반석이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된다는 것을 믿는 이 믿음' 입니다. 이 믿음위에 우리의 신앙의 집을 지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믿음위에 우리의 신앙의 집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 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 라고 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말한 그 신앙의 고백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그럼으로 우리는 복음의 진리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터 위에 아름다운 신앙의집을 지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신앙의 지식, 내가 알고 있는 신앙의 경험, 세상의 이론과 철학 이런 것 위에 신앙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이렇게 집을 지어나가게 되면 환난의 바람이나 유혹의 손길을 만나게 되면 흔들리고 넘어집니다. 그래서 구원파나 신천지 같은 이단이 들어와서 교회와 지도자를 비판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그럼으로 우리 신앙은 반드시 지극히 거룩한 믿음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서 굳게 세워지게 되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감사함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7절 하반부입니다. ‘7.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 표현은 잔에 담은 물이 철철 넘치듯이 그렇게 감사를 풍성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감사가 차고 넘치는 사람은 숨겨 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감사가 충만한 사람은 예배시간에도 알수 있습니다. 찬양을 할때도 감사함으로 찬양을 합니다. 말씀을 받을때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누가 봐도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알수있게 됩니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의 모습은 숨겨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감사의 삶을 살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감사를 하게 되면 은혜가 더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4장 15절입니다. ‘15....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그러니까 우리가 말을 할때마다 감사의 말을 사용한다면 은혜가 더하여 넘치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감사’ ‘은혜’ ‘영광’ 이라는 단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감사하면 은혜가 넘쳐나고 은혜가 넘쳐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릉 원하면 감사를 하면 됩니다. 사실 감사는 우리 주변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끌어 모으는 자석과도 같습니다. 옛날에 자석을 가지고 모래나 땅을 막 휘저으면서 놀아 보신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자석을 가지고 모래나 땅바닥을 막 휘저으면 자석 끝에 쇳가루 같은 것들이 묻어나옵니다. 그러니까 내가 감사를 표현하고 감사의 노래를 부르면 내 주변에 있는 하나님이 주셨던 많은 은혜들이 끌어 당겨져서 모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를 하면 이전에 내눈에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고 또 다른 은혜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은혜를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습니다. 그럼으로 할수만 있다면 감사를 표현할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감사는 강한 전염력이 있습니다. 부모가 감사하면 자녀들도 감사하게 됩니다. 반대로 내가 불평과 비판을 하면 나의 온 가정이 불평과 비판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감사에도 바이러스가 있지만 불평불만에도 바이러스가 있어서 전염이 됩니다. 이 감사와 불평의 전파력은 지금 극성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보다 그 전염성이 훨씬 더 빠르고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요?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전염력이 강한 원망 불평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가까이 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혜롭고 믿음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원망 불평하는 사람보다는 감사하는 사람을 늘 가까이하며 교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강한 전염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동영상에서 본 한 장면을 말씀드리고 마치고자 합니다.

추운 겨울날 두 친구가 어떤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한 친구가 약속한 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해서 급하게 식당에 들어가고 있는데 그 식당 입구 옆에서 꽃을 팔고 있는 할머니가 그 친구를 보면서 말을 건넵니다.

‘아가씨, 이 꽃을 좀 사주세요’, 그래서 급히 식당에 들어가던 그 친구가 잠시 멈추고는 그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할머니 이렇게 날씨가 추운데 왜 꽃을 팔고 계세요?’, 그러자 그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사실은 제 손녀가 아픈데 약 값이 없어서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렇게 꽃을 팔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들은 그사람은 할머니가 부르는 꽃값보다 좀더 많은 돈을 주고 꽃을 삽니다. 꽃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오자, 친구가 창문 밖에 있는 꽃 파는 할머니를 가리키며 묻습니다. ‘너 그 꽃 저 할머니에게 샀지?’, ‘그래, 어떻게 알았어?’, ‘저 할머니는 거짓말장이야. 항상 손녀 딸이 아프다고 하면서 꽃을 팔고 있어. 사실 저 할머니는 손녀딸이 없어’

그러자 속았다고 화를 낼 줄 알았던 그 친구의 얼굴 표정이 갑자기 환해집니다. ‘그래? 네 말이 진짜야? 손녀가 없어? 그러면 저 할머니 손녀딸이 아픈 것이 아니네. 정말 다행이네!’

그렇습니다. '생각의 차이가 감사의 차이' 를 만들어 냅니다. 감사와 생각은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감사하다의 의미의 영어 단어 Thank 는 사실 생각하다의 의미인 Think 에서 파생되어졌습니다. '생각을 잘하면 감사를 잘할수 있다' 는 의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모든일에 믿음과 연결시켜 생각하며 살아갈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예수님안에서 뿌리를 내리는 믿음의 생활을 하게 되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늘 소망과 희망으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굳건해지면 질수록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굳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생활을 해나간다면 그 믿음은 가짜입니다. 제 말이 아니라 성경말씀입니다. 감사하면 은혜가 넘칩니다. 은혜가 넘치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 에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어떠한 환경이나 조건에도 불구하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수 있는 굳센 믿음의 사람이 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