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감사예배가 왜 중요한가?

Author
kgmcc
Date
2020-11-21 22:14
Views
25
본문 : 시편 50편 22-23절

날짜 : 2020년 11월 22일



 

<50 : 22-23>

22.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제가 어렸을때는 추석이나 설날이 다가오면 어머니께서는 시장에 가서 새옷을 한 벌 사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새 옷을 입을려면 추석이나 설날이 될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명절날이 되어 새옷을 입어보면 옷 사이즈가 언제나 컸습니다. 커도 너무너무 컸습니다. 소매는 겨우 손가락만 보이고 바지는 한, 두 번은 접어야 길이가 맞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금방 키가 자라게 되고 또 그당시 옷은 한번 빨고 나면 사이즈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더 오래 오래 입으라고 옷 사이즈가 아주 큰 옷을 사주셨던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감사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어때요. 아이들에게 옷을 선물 해주면 그날이나 그다음날 즉시 입고 다닙니다. 그리고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평을 합니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다 칼라가 마음에 안든다. 유명 브랜드 제품이 아니다 이렇게 감사보다는 불평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옛날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과 더 풍성한 환경 속에 살아가지만 감사하는 마음은 점점 없어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을 살펴보면 감사할 것이 참 많습니다. 백명중에 80명은 아주 힘들고 열악한 환경가운데 살아가고 있고 백명중에 8 명만이 저축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백명중에 20명은 글자를 알지 못하는 문맹인입니다. 그리고 백명중에 한사람만이 대학 교육을 받았고 또한 백명중에 한명만이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내가 대학교육을 받았고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면 인구 비율로 볼 때 나는 세상에서 1퍼센트에 들어가는 최상위 그룹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먹을것이 있고 잠을 잘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세상 사람 중 20퍼센트에 해당하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내게 은행구좌가 있다면 나는 이세상의 사람들중 8퍼센트에 해당하는 부자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사하지 못합니다. 생각해보면 감사할 것이 너무 많은데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은 모두 환경적인 차원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는 제가 어렸을 때 처했던 환경보다는 지금은 더 살기 좋아진 환경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각각 처한 그 환경고 속한 그 형편을 비교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럼으로 제가 말씀드린 것은 환경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환경이 엣날보다는 더 나아졌다는 것이고, 그리고 지금 내가 속한 환경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처한 환경보다 더 나은 데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은 우리에게 환경이 더 좋아졌기 때문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내가 그사람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 있기 때문에 감사하라고도 말씀하지 않습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감사하는 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예수님게서는 칭찬하시기도 하고 책망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을 때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감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아간다’ 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본문 23절 전반부입니다.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수준이 높은 성가대의 찬양이 아닙니다. 크고 화려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 이시간 저와 여러분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인생의 실패가운데 있고, 슬픔과 아픔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감사할수 있다면 지금 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감사는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수있을뿐만 아니라 그 감사가 우리가 가진 믿음의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 종류의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에 대해 살펴보시겠습니다.

1.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

22절입니다. ‘22.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지금 하나님은 누구를 향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방인입니까? 아니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언약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잊어버렸다’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아니면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번도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한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상관이 없어요’ 이렇게 공개적으로 대놓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원망 불평을 한적은 있어도 하나님은 없다고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원망 불평 한다는 것을 뒤집어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이방신을 섬겼던 적도 있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열심히 하나님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본문 앞의 8절입니다. 8.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하나님께서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너가 항상 번제를 내게 드렸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수없이 많은 예배를 드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릴 때 번제를 드린 것처럼 우리도 빈손이 아니라 예물를 가지고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들은 나를 잊어버렸다‘ 라고 말씀하신다면 저와 여려분에게도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실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들은 나를 잊어버렸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A. 감사로 제사를 드리지 아니했기 때문에.

14절 전반부입니다. ‘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무슨 말입니까? 제사를 드리고 있지만 제사를 드리는 그들의 마음에 무엇이 없었다는 의미입니까? 감사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제사의 횟수나 제물의 양에 대해서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를 드리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진실함이 없는 가식적이고도 형식적인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사를 드리는 그들의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그들의 마음속에는 감사함이 없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소유의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말하면 그들은 자기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니까 감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다 내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9절에서 13절까지 하신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너희들이 내게 드리는 모든 번제물들은 너희의 것이 아니라 나의것이다’ 10절과 11절입니다. 10.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이렇게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다 내것‘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곧바로 14절 앞부분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그러니까 너희들이 많은 제사를 드리고 있지만 감사로 내게 드리는 제사는 없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소유의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두명의 어부가 각각 자기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 열 마리를 잡았습니다. 갑돌이 어부도 물고기 열 마리, 을돌이 어부도 물고기 열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물고기 모두가 원래 나의것 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갑돌이는 그 물고기 열 마리가 모두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허락해주신 것으로 믿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중 한 마리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예배를 합니다. 그런데 을돌이는 열 마리 모두가 자기가 수고해서 잡은 자기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마다 갈등합니다. 물고기 한 마리를 가져가야 하나 아니면 반토막내어서 반마리를 가져가야 할까? 갈등하다가 아깝지만 크게 마음을 먹고 한 마리를 가져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예배를 받으시겠습니까? 당연히 갑돌이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물의 횟수나 양에 대해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많은 제물과 제사를 드리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감사가 없다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드리는 우리 중심을 보십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속에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쩔수 없이 의무감 때문에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이방종교에서 이방인들이 제사를 드리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방 종교에서 드리는 제사와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배와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그 예배의 대상과 그 형식이 다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의 차이입니다. 이방인들이 드리는 제사는 자기들이 섬기고 있는 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 신의 축복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볼려고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는지 모릅니다. 이전에 제사를 지내보셨던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모태 신앙이었지만 안 믿는 집안으로 시집을 가셨던 탓에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 제사를 드린적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없는 가운데서도 제사때는 제일 좋은 음식을 장만해서 제사준비를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날은 아버지와 같이 동네 목욕탕에 가서 몸을 깨끗하게 하고 밤 열두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다음날 아침에 저는 학교에 가야 했고, 또 아버님은 일하러 가셔야 했지만 그전날 밤 열두시까지 잠도 못자고 기다렸다가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정말 지극 정성입니다. 아마 지극 정성을 따지자면 예수 믿는 성도님들이 드리는 예배를 능가 할것입니다. 왜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제사드립니까? 조상님들을 노엽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모양으로 나타나는 행동은 지극 정성이지만 마음속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조상이나 신을 노엽게 하면 안된다고 하는 두려움은 있지만 제사를 드리는 대상에 대해서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축복이 너무 크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제사의 본질인 감사를 잊어버리고 감사하는 마음도 없이 억지와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감사함이 없이 제사를 드리는 그들을 향해서 ’너희는 나를 잊어버렸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너희들은 나를 잊어버렸다고 말씀하십니까?

b.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던져버렸기 때문에

17절입니다.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이 말씀 앞에 있는 16절을 보시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언약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약속해주신 언약의 말씀이 있었는데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을 미워하고 자기의 뒤로 내던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와 여러분이 내 자녀에게 무엇을 주었는데 그 자녀가 자기 뒤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때 부모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등뒤로 던졌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당하거나 소홀히 여김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어떠했다는 것입니까? 도둑들과 연합을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회 생활하는 동안에 이런 저런 이권에 개입을 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도둑질 하지말라고 하는 말씀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속에서는 도둑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간음하지 말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지만 간음하는 자들처럼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고 살아가는 영적인 간음을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적인 삶속에서는 도둑질하고 간음을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나를 잊어버렸다‘ 여러분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등뒤로 던져버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비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요? 22절입니다. 22.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왜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까?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하나님이 나라를 찢으신다면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나라가 두동강이 날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찢으신다면 남편과 아내간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모와 자식간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사업을 찢으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우리의 건강을 찢으시면 우리 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에배를 드릴 때 늘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리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고 그 말씀이 나를 구원해주시는 귀한 것으로 여기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2.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

23절입니다.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예배를 드릴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을 보시면 감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예배를 받으시지 불평과 원망속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아무런 감정이 없이 형식으로 드리는 예배도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입니다.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하지 말고 너희 구할 것을’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기도를 할때도 찬양을 할때도 그리고 또 말씀을 들을때도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싶어도 들을수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몇년전에 북한 지하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인터넷 동영상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예배를 드리거나 아니면 성경책을 가지고 있다가 발각이 되면 그 즉시 총살형이나 아니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서 평생 중 노동하다가 거기서 죽습니다. 지금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있는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수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속에서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 우리나라 TV에 방영되었습니다. 2007년도에 예배를 드렸던 장면인데 그 장면을 보시면 벽에 붙어있는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떼어서 뒤집어 놓습니다. 우상숭배를 할수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중에 한 자매님은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왜 우리에게는 자비를 베풀어주시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나서 찬양을 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우리는 이 찬양을 부를 때 그냥 부르지만 이분들은 이 찬양을 부를 때 목숨을 걸고 부릅니다. 누군가가 그 찬양 소리를 듣으면 죽는 것이니까 목숨을 걸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 이분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을 방영한 것입니까? 이분들이 다 처형을 당했기 때문에 방영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찬양을 부르다가 발각이 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라고 찬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마음껏 말씀을 듣고 찬양을 드릴수 있음에 감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A.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

23절입니다.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은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감사함으로 찬양을 하고 감사함으로 기도를 하고 감사함으로 헌금을 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함으로 말씀을 받고 감사함으로 세상속에 나아가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수준높은 성가대의 찬양이 아닙니다. 크고 화려한 예배가 아닙니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뒤집어보면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때가 많습니다. 내가 돈벌고 출세하고 유명해지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때로는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게 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한가지 사실은 내가 인생의 풍랑과 어둡고 고통의 인생의 밤 가운데있을지라도 그 가운데서도 ‘주님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감사의 기도와 감사의 찬양을 드릴수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시간 저와 여러분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실패가운데서도 감사할수 있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홀로 있어도 혼자가 아닙니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한미순 씨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한미순 씨의 소원은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이 너무 가난해 공부를 할 수 없게되자 서울로 올라와 낮에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밤에는 전자 부품 공장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방송통신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기로 하였는데 결혼을 한 달 앞두고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교통사고로 목 아래로 신경이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절망의 자리에서 절대 희망이 되시는 주님을 붙잡았습니다. 움직일수 있는 목위 부분인 입술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인은 그 책에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입에 붓을 물고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는 순간 저는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치아가 뻐근하고 입에선 침이 흘러나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입안이 다 헐어 하루에도 수십 번 붓을 뱉어버리고 싶었지만,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시 붓을 물었습니다. 뜻밖에 찾아온 고난으로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절망하며 수없이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언제나 함께 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닙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녀는 절대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잃어버리고 사라진 것을 인하여 불평하고 원망하기 보다 새로운 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어떤 고통, 어떤 아픔 속에서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왜 우리가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B. 하나님을 볼수 있기 때문.

23절입니다.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무슨 의미인가 하면 감사로 예배를 드리면 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될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그 행위를 옳게 하는 것은 바로 앞의 문맥을 보면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만나고 그 능력을 경험하게 하리라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의 인생을 살펴보게 되면 억울하게 당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한번도 누군가에게 원망이나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이나 보디발 장군의 그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만일에 요셉이 보통 사람들처럼 형들을 원망하고 보디발과 그 아내를 원망하고 살았다면 하나님이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워주셨겠습니까? 우리가 요셉처럼 감사할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병도 낫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닫혔던 것이 열려지게 되고 감사할 때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것입니다. 감사하십시다. 비록 내상황이 감사할 상황이 아니라 할지라도 감사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면 더 감사할 환경이 주어지지만 불평하면 있는것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찢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찢으시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성숙하게 하심에 목적이 있습니다. 호세아 6장 1절입니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와 감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낫게 해주십니다. 그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감사로 예배를 드림으로 행복하고 축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어떠한 환경속에 있다 할지라도 날마다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심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실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