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기적의 비밀을 아는 길

Author
kgmcc
Date
2020-11-28 21:37
Views
219
본문 : 요한복음 2장 1-11절

날짜 : 2020년 11월 29일


<요한복음 2장 1-11절>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기적의 사건이 기록 되어있습니다.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이것은 다른 음식들을 아무리 많이 잘 준비해놓아도 욕을 얻어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잔치집에는 포도주만 있으면 음식이 좀 부족해도 괜찮지만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포도주가 없으면 잔치분위기는 망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예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가서 말을 합니다. 3절입니다.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지금 이때는 예수님께서 이제 막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고 있는 초창기 시절입니다.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이 지니고 계신 기적의 능력을 모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포도주가 없을 때 네가 기적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너를 믿고 따를 것이 아니겠느냐. 그 능력을 사용해라” 라는 어머니 마리아의 속마음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절입니다.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잘 이해 할수 없는 말씀이지만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을 예수님께서 거절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기적의 능력을 행할 때가 아직은 안되었다 라는 뜻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사실 요한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때’ 라고 하는 단어를 쭉 살펴보시면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때’ 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수있습니다. ‘때‘ 라고 하는 단어를 살펴보면 요한복음 12장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이전에는 예수님께서 “내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2장 이후를 보시게 되면 예수님께서 “내 때가 이르렀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볼수있습니다. 먼저 ’내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 라는 말씀을 대강 살펴보겠습니다.

7장 6절 : “내 때는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장 8절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7장 30절 :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8장 20절 :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그런데 요한복음 12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주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게 됩니다. 이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내때가 이르렀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12장 23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12장 27절 :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왔나이다.”

13장 1절 :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6장 32절 :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죠

17장 1절 :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내 때’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 인간이 진 죄값을 치루시기 위해서 바로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그때를 의미하고 있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한 말씀은 ‘아직 내가 십자가를 질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에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삼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혼인 잔치집에서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부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직 내가 십자가를 질때가 아니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대신에 예수님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변하게 하시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건을 오늘 본문은 11절에서 표적이라고 말씀합니다. 11절입니다.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표적이라고 하는 단어가 나올 때 우리가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표적이 보여주고자 하는 그 실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진짜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표적은 진짜가 아니라 진짜가 어떤것인지 알게 하는 역할을 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기적' 은 영어로 miracle이고 '표적' 은 영어로 sign 입니다. 그리고 기적은 초자연적인 사건 그자체입니다. 예를 들어서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한아이가 한달동안 무너진 건물 더미속에 깔려 있엇는데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이사건은 기적입니다. 기적은 실상입니다. 그자체입니다. 하지만 사인이라는 뜻을 가진 표적은 실상이 아닙니다. 보다 더 중요한 실상을 더 잘알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85번 고속도로를 타고 조지아 아틀란타로 가고 있는데 아틀란타 20마일이라는 사인을 보았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나요? 20마일 더가면 아틀란타라고 하는 실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인은 아틀란타가 아닙니다. 아틀란타가 있는 위치를 좀 더 잘알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인 표적이 하는 역활입니다. 그러니까 사인은 많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인은 그저 적당하게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실상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수 있을 정도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속도로 일마일 마다 사인판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서너 개 정도의 사인판만 있어도 아틀란타가 다 왔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충분히 알수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매일같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는 식으로 기적을 구하는 그 마음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기적을 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하면 어떤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자,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문이 하인들의 입을 통해서 온 동네에 퍼지고 다른 동네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이후로 부터 잔치가 벌어지는 집마다 예수님을 초대합니다. 왜요? 그이유는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잔치집에서 음식은 충분하게 준비해놓아도 포도주는 적당하게 준비해놓을 것입니다. 왜요? 그 이유도 아실 것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시는 분은 주님이 정말 그 마음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어쨌든 적당히 포도주를 준비해놓았다가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지면 예수님에게로 가서 이렇게 요청 할것입니다. “예수님 포도주가 다 떨어졌습니다”. 기적을 베풀어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십시다. 그래서 모두가 다 맹물만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원망과 시비가 많이 일어나겠습니까? ‘누구집에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고 말이야. 누구집에서는 맹물만 먹이느냐? 이렇게 사람 차별할 수가 있느냐’ 이렇게 따질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을 구하고 표적을 구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갈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자기 자녀를 결혼시켰을때 포도주가 모자라서 그렇게 놀랐으면 다른 사람들은 그일을 교훈삼아 자기 자녀를 결혼 시킬때는 보다 다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상적인데 오히려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표적을 구하고 기적을 구하는 마음은 내가 적당하게 해놓고 무조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식으로 나타나선 안됩니다. 기적을 구하는 마음은 내가 최선을 다하고 난후에 그위에 더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소망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돌맹이 다섯 개를 준비해서 골리앗과 싸우러 나갔습니다. 왜 돌맹이 다섯 개 입니까? 자기 주머니에 돌맹이 다섯 개 밖에 들어갈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주머니에 돌맹이 열 개가 들어갈수 있다면 다윗은 돌맹이 열 개를 준비해서 싸우러 나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개의 돌맹이로도 얼마든지 골리앗의 이마를 맞추고 쓰러트릴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믿음은 달랑 돌맹이 한개를 가지고 싸우러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게으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돌맹이 하나들고 나가 싸우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제가 돌맹이 하나만을 가지고 갑니다. 돌맹이 한개이지만 하나님 역사를 하여 주실줄 믿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믿음은 내가 가져가질수 있는 돌맹이를 최대한 준비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최대한 옵션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첫 번째 돌맹이에 역사를 하시든지 두 번째 돌맹이에게 역사를 하시든지 아니면 마지막 다섯 번째 돌맹이 중에 역사를 하시든지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에게 최대한 옵션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선택할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할 행동입니다. 내가 달랑 돌맹이 하나만 들고 가서 세상의 골리앗과 싸우러 나갔다가 아주 형편없이 깨져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을 우리는 종종 볼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믿음은 내가 최선을 다하고 그위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는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그위에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물로 포도주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첫 표적이다 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표적은 실상을 더 잘 알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표적의 실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 일어나는 사건인 것을 이제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된 이 표적을 보면서 주님의 때가 되면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이 표적이 주는 교훈은 즉 주님의 때에 일어나는 사건은

첫째로 신분의 변화가 있다는 것 입니다.

9절 전반부입니다.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표적이 보여주는 실상은 신분의 변화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질과 성분이 완전히 변화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자 우리 인간의 죄값을 치루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대신해서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이사실을 믿는자마다 사망의 신분에서 생명의 신분으로 옮겨지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하나님이죠)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 인간에게 사망이 오게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죄가 없으면 죽지 않고 영생을 할 수 있습니다.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온 인류가 지었던 죄와 그리고 앞으로 지을 죄까지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우리 인간을 대신해서 죄값으로 생명을 바치십니다. 그럼으로 이제는 이세상에 죄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죄를 다 짋어지시고 생명으로 죄값을 치루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9절입니다. 9.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의 죄와 허물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서 죽으심으로 그 생명으로 내 모든 죄값을 지불해주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 때문에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실을 믿지 못하면 믿지 못하기 때문에 죄는 그 사람에게 여전히 머물러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죄를 용서해주고 싶지만 그사실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사해줄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은 그냥 죄가 남아있고 그 죄의 결과로 사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믿는 사람들은 사망의 신분에서 생명의 신분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육적인 자녀의 신분에서 영적인 하나님 자녀의 신분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아무 향기가 없는 존재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존재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아무 색깔이 없는 존재에서 아름다운 색깔을 지닌 존재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가치가 없는 존재에서 고귀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물과 포도주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더 분명히 알수가 있게됩니다. 믿는 성도들은 포도주처럼 남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존재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아름다운 향기가 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모습과 품위가 있고 가치가 있는 행동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나로 말미암아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즐거워져야 합니다. 이런 신분으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되고 그래서 그 신분에 합당한 품위있는 생활을 할 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이 표적이 보여주는 교훈은 성화에 있습니다.

9절 후반부터 10절까지 입니다. “9.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세상사람들은 처음에는 예의를 갖추고 좋게 시작합니다. 자기 간이라도 빼줄 듯이 친절합니다. 천사같이 행동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좋지 않게 끝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처음에는 별로 볼품이 없어보여도 점점 귀하게 되어집니다. 처음에는 천하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곳곳에 품위가 스며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겨자씨 한알처럼 미약하고 작지만 나중에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그 나뭇가지에 새들이 집을 짓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성화의 과정‘(센티피케이션)이라고 말합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갔을 때 가장 큰 칭찬은 바로 이 말 한마디인줄 믿습니다. “얘야 너는 나를 참 많이 닮았구나”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옛날처럼 별로 좋지않은 모습으로 돌아갈려고할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이 보다나은 성화과정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기는 모든 성도님들 마다 인격이 점점 더 성숙되어져가는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오늘 표적이 보여주는 교훈은 순종 하는 자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자가 기적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9절입니다.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여기서 연회장은 이날 혼인잔치의 음식과 친교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문제가 일어나게 되면 신랑과 신부 측 뿐만 아니라 이 연회장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순종한 하인들을 통해서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된 것입니다. 자 우리의 인생은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 잔치집과 같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식장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해야만 할 상황에서도 문제와 걱정꺼리가 생겨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생길때 우리가 먼저 가져야 할 마음은 기적이 아니라 순종에 있습니다. 혼인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때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포도주가 떨어졌단다” 이것은 기적을 바라면서 요청을 한것입니다. 그래요 문제가 생기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마리아처럼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기서 ‘여자’ 라는 단어가 여인을 아주 높일 때 사용하는 존칭이라고 해석을 하시는 목사님들도 계십니다만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그냥 평범한 여인을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이말씀은 “내가 기적을 행하면 다른사람들이 나를 더 잘믿고 더 잘 따른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한 당신은 평범한 여자입니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사람들이 기적을 보면 더 잘믿고 신앙생활을 더 잘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너희가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될 것이고 그래서 믿음이 성장하게 될것이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의 생각은 기적이 먼저이지만 주님의 생각은 순종이 먼저입니다. 마리아는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바라는 마음에서 순종을 하는 마음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인들에게 순종을 하라고 지시합니다. 5절입니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그러자 예수님께서 7절 8절에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가득채웠다는 의미죠)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이 순종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지금 포도주가 떨어졌으니까 주인이 얼마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겠습니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하인들이 포도주가 아니고 물을 손님에게 가져다 주는 것을 보게 되면 주인이 그냥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가만 두겠습니까? 그러니까 하인들의 이 순종은 보통 모험이 아닙니다. 순종에는 모험이 필요합니다. 순종을 하기 때문에 듣지 않아도 될 듣기 싫은 소리와 오해를 받을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종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힘이 들면 저마다 핑계를 대면서 교회를 떠납니다. 봉사의 자리를 떠납니다. 순종의 자리를 떠납니다. 그리고 섬김과 봉사의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틀린말을 하지 않습니다. 맞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순종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맞는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순종을 통해서 기적을 이루어나가십니다.

기적이 일어난 비밀은 누구도 몰랐지만 하인들은 알았습니다. 9절 다시 봅니다.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물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이 혼인 잔치집에 있는 사람들중에 가장 큰 기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하인들이었습니다. 그 혼인잔치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면 할수록 그집 하인들의 기쁨은 더욱 더 클것입니다. 이러한 큰 기쁨은 물을 떠오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순종의 물. 봉사의 물. 헌신의 물. 섬김의 물’ 을 떠온 사람에게만 이러한 기쁨을 누릴수 있게 됩니다. 왜요? 주님은 이런 사람들에게만 기적의 비밀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잔치집에가서 그냥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는 일도 기쁩니다. 질이 좋은 포도주를 마음껏 마시게 되는 일도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잔치집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큰 기쁨을 경험한 사람은 순종한 사람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사역을 해오면서 순종을 해던 성도님들에게 여러 가지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제가 사역을 했던 개척 교회에 온지 몇 개월이 안된 부부가 경배찬양을 했습니다. 이전에는 교회를 다녀본 일이 없었던 젊은 부부이었지만 경배 찬양팀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유산을 여러번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자궁이 작아서 태아가 몇 개월 자라 성장하면 자궁이 더 이상 감당을 못해 유산할 수밖에 없다는 판정을 받았던 자매이었습니다. 그런데 임신을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5개월 정도까지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산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5개월이 되면 제왕 절개수술을 해서 아이를 꺼집어 내어서 인큐베이터에 넣어서 길러야 한다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매는 정상적으로 분만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아이를 낳기 한 주전까지 교회에 와서 경배찬양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도 예수 찬양하다가 낳은 아이라 해서 예찬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얘기를 한 김에 그당시 얘기를 또 하나 더하자면 개척교회를 할 당시 여선교회 회장이었던 집사님이 4개월만에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당시 총무이었던 집사님이 맡아서 궂은일을 다했습니다. 그다음해에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해에도 또 회장이 되었습니다. 얼마든지그 봉사의 자리를 떠날수도 있었지만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키면서 순종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미국이 2008년도에 금융위기를 맞이해서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던 경제 불황기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게는 날로 날로 잘되어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의 가게까지 사들여서 가게를 확장시켜나갔습니다. 여러분, 기적은 기적을 바라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을 할 때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순종을 한 사람만이 기적의 비밀을 알수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의 비밀을 안 사람들만이 참다운 기쁨을 누리며 신앙생활을 해나갈수가 있습니다. “물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잔치집에서 일어난 기적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하인들은 기적을 경험한데서 오는 참 기쁨과 감격을 경험했습니다. 순종한 사람들에게 만 이러한 기적의 참기쁨을 누릴수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성도님들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적의 참 기쁨을 누릴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