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특별체험이 필요한 이유

Author
kgmcc
Date
2020-12-12 23:11
Views
93
본문 : 마태복음 17장 1-8절

날짜 : 2020년 12월 13일


 

<마태복음 17 1-8절>

1.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시는 동안에 여러가지 힘든일이 있을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힘드신 일을 하나 선택해보시라고 한다면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라고 제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전혀 변화가 없는 성도들을 보는 것” 일것입니다. 아무런 변함이 없이 꾸준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을 볼때마다 목회자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자기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버지니아 지역에 있는 어느 한 교회서 전도사 생활을 할 때 권사님 한분이 저에게 일종의 간증처럼 얘기 해주셨던 내용이 기억납니다. 자기 남편이 20년이 넘게 교회를 다녔는데 하나도 변하지 않더랍니다. 그렇다고 자기 남편이 교회 주일예배를 빠지는 것도 아닌데 그 20년 동안 한결같이 변하지 않고 옛날 성질 그대로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더랍니다. “어쩌면 저렇게 사람이 변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참 이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라고 그 권사님은 그렇게 생각을 해왔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남편이 변했습니다. 수요 예배를 마치고 난후 담임목사님이 기도를 하시는데 그날 무너지고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그 남편이 기도소리만 들으면 눈물을 흘린답니다. 그래서 남편 감동받으라고 이전보다 더 많은 기도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저는 그 권사님의 남편이 변하고 난 몇 개월 후에 그 교회 사역자로 갔기 때문에 그분의 이전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변하기 전에는 말하는 것이나 행동모습이 꼭 조직 폭력배같은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분을 보면서 어린아이와 같이 참 순수한 모습만 보았습니다. ’이제는 신혼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기분 같다‘ 고 말하시면서 행복해하시던 그 권사님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그당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제가 목회를 하다보니까 ’담임 목사님께서도 그 권사님 못지 않게 기쁨과 보람을 느끼어 셨겠구나’ 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변하지 않던 성도들이 어느 날 변하여 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목회자에게 있어서 더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변화되어지는 것은 대부분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을 통해서 이고 또다른 하나는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다가 혹은 말씀을 듣다가 그 말씀으로 인해 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믿음과 확신이 오면서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기도와 관련해서 변하여집니다. 기도응답을 받았다든가, 아니면 기도 중에 치유나 방언, 환상, 예언 같은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다가 혹은 기도하다가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성경적인 용어로 ‘변화산상의 체험’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변화산상의 체험을 하게 되면 사람이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이 내 심령을 찌르거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면 사람은 변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내가 말씀의 자리나 기도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의 자리에도 기도의 자리에도 있지 않으면서 특별한 체험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오늘날 영적인 세계가 많이 혼탁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특별한 역사는 정말 급한 경우외에는 반드시 말씀과 기도와 연관되어 일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변화산상에서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본문 1절입니다. “1.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성경학자들은 이 산을 갈릴리 바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다볼산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나사렛 마을에서 갈릴리호수를 향해 동남쪽으로 10㎞ 정도를 가게 되면 마치 바가지를 엎어놓은 듯한 둥근 바위산이 나타납니다. 그산이 바로 다볼산입니다. 다볼산의 의미는 ‘높은 산’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볼수 있을만큼 높은산 이라고 해서 다볼산으로 불려졌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기억하시기 쉽겠습니다. AD 326년에 이 다볼산 정상에 수도원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후에 오랜 시간이 흘러서 1924년에 그 터 위에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세워졌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말로는 주변모 기념교회 라고 부릅니다. 주님이 변모하신 모습을 기념하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자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제자들이 경험을 했던 이런 특별한 변화산상의 체험이 왜 믿는 성도들에게 필요한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중에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될 때 그 체험을 하게 된 이유를 올바르게 깨닫고 신앙생활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자들이 변화산상에서 경험한 특별 체험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영광스런 모습을 향한 소망 때문

2절입니다. “2그들(제자) 앞에서 변형되사 그(예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이 변화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어느 정도는 자신의 신적인 영광을 제한하신채로 생활을 해오셨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예수님 자신이 지니신 그 영광을 그대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이 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구약의 위대한 신앙의 사람인 모세와 엘리야와 같이 대화를 하십니다. 이러한 장면을 제자들이 보게 된 것입니다. 얼굴은 그사람 자체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행이나 관공서에 가서 그 사람이 나인 것을 증명해야할 필요가 있을때는 반드시 내 얼굴이 담긴 ID 카드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얼굴은 곧 그사람인 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졸업식 사진 앨범을 보면 이름위에 자기의 얼굴이 나와 있습니다. 이름을 적어놓고 발바닥이나 손바닥을 찍어놓은 졸업식 앨범은 없습니다.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어도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찍지 발바닥만 모아놓고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그 사진관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얼굴은 그사람의 원래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을 조금 다른말로 얘기를 하자면 예수님께서 ‘변화산 사진관‘ 에서 사진을 찍으셨는데 그 사진을 보니 해같이 빛나는 얼굴이었다 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적이 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장 12절) 예수님의 본래 영광스러운 모습은 해같이 빛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천국에 가셔야 하는데 그 길을 모르시겠다면 가장 빛나는 곳을 향해 가시면 될 것입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면 예수님처럼 얼굴에 광채가 나게 되어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입니다. 29.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40일 동안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살았던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얼굴을 빛이 나게 해주는 최고급 화장품은 아모레 화장품이나 참존 화장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지난주 수요일에 성경공부 영상을 찍는데 보통은 이른 아침에 영상을 찍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정오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 영상을 찍었습니다. 나중에 영상을 보니 륨안에 빛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제 얼굴이 정말 해같이 빛난 얼굴이 되었습니다. 빛이나도 너무 빛이나서 아무리 보아도 이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같아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배경을 조금 어둡게 처리하고 편집을 했습니다. 제가 편집을 하면서 햇빛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내 얼굴이 빛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그래요. 우리가 빛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살아가다보면 나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환하게 되어짐을 믿어야 합니다. 고후 3장 18절입니다.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해같이 빛난 예수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된다는 것이죠)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영화의 교리(Doctrine of glorification)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변화가 되어 저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보다 조금 나은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질이 다른 모습으로 저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믿는 성도들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상에서 변화하신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변화산상에서 경험한 특별 체험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주님께 더욱 더 순종할 수 있기 때문

5절입니다.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구름속에서 이러한 소리가 들리게 된 것은 베드로가 한 행동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감격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4절입니다.  4.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주여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자 하나님께서 ”너희는 그의 말을(예수님의 말씀) 들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우리가 특별한 체험을 하거나 은혜를 받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주고 있는 교훈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변화 산에 올라가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너무너무 좋았다’ 라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1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제자들중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렇게 세사람만 변화산에 올라간 것을 알수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명의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서 다른 제자들에게 자기들이 특별히 체험한 것을 자랑삼아 말하면서 특별한 의식을 가진다면 그들은 아주 잘못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 예배에서나 부흥 집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았다면 ’야, 그날 너무너무 좋았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래서 뭐 어짾다는 것입니까? 그날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자랑만 하고 다니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았다면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것입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것이 바로 은혜를 받고 특별 체험을 할수 있게 된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진짜로 특별한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간증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받은 특별한 경험보다는 그런 체험을 하고 난이후의 나의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건에 대해서 베드로가 먼훗날에 이렇게 간증을 합니다. 베드로 후서에 오늘 본문의 사건에 대한 베드로의 간증 내용이 나옵니다. 베드로 후서는 AD 65년 경에 기록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AD 33년 경에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갔습니다. 그러니까 65 빼기 33하면 얼마가 됩니까? 이게 계산이 안되면 세상 살아가기가 고달파지십니다. 32년이죠 그러니까 베드로는 오늘 본문의 사건을 경험한 이후 적어도 30년이 지난후에 간증한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1장 16절에서 19절입니다. “16.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오늘 본문의 사건을 말합니다) 19.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자신이 경험한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다는 것이 예언 즉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그래요 이제 순교를 앞둔 베드로는 적어도 30년이 지난후에 그날 그 사건을 간증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구약의 위대한 신앙의 사람인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으니 어떻게 그일을 잊을수 있겠습니까? 어제 일어난 일처럼 선명하고 확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이 경험했던 그 사건보다도 더 확실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예언 즉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고 말합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 어두움을 비추는 등불이 되게 하고 샛별이 되게 하라 그래서 그 말씀이 너희들의 앞길을 인도할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라’  라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떤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면 결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로 나타나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내게 베풀어주시는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더 주님의 말씀을 따라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자들이 변화산상에서 경험한 특별 체험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고난을 이길 힘을 얻게 하기 때문

8절입니다. “8.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저와 여러분이 어떤 특별한 은혜와 체험을 하게 되면 그다음날 부터 나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게 될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특별한 은혜와 체험이 있은 이후에 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내게 다가올 어려움을 이기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은혜를 주시고 먼저 귀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이 이 변화산을 내려가고 난 이후에 앞으로 제자들에게 큰 고난과 어려움이 있게 될 것을 예수님께서 예고하십니다. 마태복음 17장 22-23절입니다. “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고 난후에 제자들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라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는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기들이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도망을 해야 하는 일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제자들이 어려움과 고난을 만나게 될 때 극복하게 하기 위해서 변화산에서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신의 경우를 잠시 언급하자면 저도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수 있게 되었음을 이시간에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변화 산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그 영광은 우리가 앞으로 누리게 될 영광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미래에 그런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면 오늘은 좀 힘들어도, 오늘은 좀 괴롭고 아프다 할지라도 견딜 만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저와 여러분이 처한 환경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승리할수 있는 방법은 바로 오늘 본문 8절 마지막 말씀에 있습니다.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우리가 잘되든지 못되든지 기쁨속에 있든지 슬픔속에 있든지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곁에 게십니다. 문제는 저와 여러분이 내곁에 계신 예수님을 볼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떠한 형편에 있든지 예수님이 내눈에 보인다면 우리는 내가 처한 문제를 이겨내며 극복해나갈수 있습니다.

롬 8장 18절 말씀입니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여기 대조되고 있는 단어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현재’ ‘장차’ 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고난’‘영광’ 입니다. 내가 현재의 이 고난속에 있어도 낙담하고 주저앉지 말아야 할 이유는 바로 나에게 장차 예비 된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차 내게 주어질 그 영광을 바라보고 살아갈 때 우리는 지금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은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나온 기독교 역사를 보시면 장차 주어질 영광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을 수없이 볼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서 탁월한 경건한 목회자로 알려진 로버트 맥체인(1813-1843) 목사님은 22세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후 7년동안 목회를 하다가 29살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목사안수를 받고 7년 동안 목회를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로버트 맥체인 목사님은 성 베드로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후 주일 예배뿐만 아니라 매일 저녁예배를 거행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가 속한 <던디>의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변화를 받게 되는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느날 하루는 이 로버트 맥체인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옃개월 전에 이런 설교를 한적이 있습니다.

"나는 오래 살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제 앞에 있는 여러분들도 모두 죽을 것입니다. 이 교회는 다른 목사가 올 것이며 다른 성도들로 채워 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고 나서는 회개, 중생, 은혜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어떤 목사가 여러분에게 설교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이 은혜와 거듭남의 시간입니다. 지금 이 시간을 사용하십시오."

이 설교를 한 이후 목사님은 마지막 성찬예식을 거행합니다. 그리고 그후 한달동안 스코틀랜드 지역을 다니면서 부흥집회를 합니다. 그리고 1843년 3월 12일 본 교회에 돌아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관하여 설교를 합니다. 그 설교를 한 다가온 화요일에 결혼식을 주례하였고 그 날 저녁에 이 로버트 맥체인 목사님은 쓰러집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후에 이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이 로버트 맥체인 목사님은 정말 짧은 인생을 사셨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시다가 짧은 인생을 사셨던 사람들중에 생각나는 분이 있다면 바로 흑인 운동을 하셨던 마틴 루터킹 목사님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1968년 백인우월주의자가 쏜 총탄에 맞아 39세의 나이로 죽기 전에 이런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 긴 장례를 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긴 조사도 하지 말아주십시오. 또 내가 노벨상 수상자라는 것과 그 밖에 많은 상을 탄 사람이라는 것도 언급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날, 마틴 루터 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려고 노력했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려 했으며, 전쟁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또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기 위해 애썼으며, 인간다움을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 몸바쳤다는 것이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로버트 맥체인 목사님이나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너무나도 짧은 인생을 사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에 오래 살았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눈물과 아픔이 있는 이땅에서 힘들어하고 비실비실 거리면서 오래 오래 살아가는 것 보다는 차라리 하루라도 일찍 고통과 아픔이 없는 천국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일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아직 이땅에 남아있는 것은 주님이 주시기 원하시는 그 상급을 받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울때는 예수님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매달려야 할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면서 도중에 몇 번씩이나 쓰러지셨습니다. 그때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서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다가 넘어지셨다면 당연히 우리도 넘어질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곁에 구레네 시몬을 보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는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구레네 시몬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이것 하나를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계획은 십자가가 끝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하나님의 마지막 계획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승리에 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내가 해같이 빛나는 모습으로 이땅과 저 천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믿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의 고난과 고생은 우리의 마침표가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쉼표인 것을 믿으십시다. 어둡고 침침한 고난의 구름위에 떠있는 밝고 빛난 태양을 소망하며 힘든 순간을 말씀을 통하여 이겨내십시다. 말씀을 읽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갈 때 저와 여러분의 눈에 오직 예수님만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내눈에 보이시는 예수님의 뒤만 따라가심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길을 가실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