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특별한 탄생
Author
kgmcc
Date
2020-12-1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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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
<마태복음 1장 18-25절>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올 한해가 시작된지 얼마전인 것 같은데 벌써 이번 주일하고 다음 주일을 맞이하면 2020년 올 한해도 다 지나가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일년 365일 하루하루가 다 우리에게는 중요하지만 그래도 사람들마다 특별히 기념이 될만한 어떤 날들이 있습니다. 그날이 주로 어떤 날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특별히 중요한 날이 될 것입니다. 인터넷에 났던 뉴스인데 자기 남편이 자기들의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리고 그냥 넘어갔답니다. 회사일이 바쁘다 보니 그럴수도 있겠지 하고 꾹참고 지나갔는데 아내인 자기 생일도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가더랍니다. 그래서 이 남자하고 살아가면 더 이상 소망이 없겠다라고 생각하고 이혼을 해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배우자의 생일만큼은 기억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챙겨도 자상하고 좋은 남편이라는 인정을 받았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념해야 할 날이 참 많다고 합니다. 만난지 백일째 되는 날, 만난지 일년째 되는 날, 또 만난지 일천일이 되는날까지도 잊지않고 챙겨주어야 좋은 남자라고 합니다. 일 천일째 되는 날이면 대략 2년 8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이날까지도 만난날을 기억해서 챙겨준다면 안심하고 결혼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빼빼로 데이도 있습니다.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인데 숫자 1자 네 개가 마치 뻬빼로를 세워놓은 것과 같다고 해서 빼빼로를 선물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3월 3일은 삼자가 겹으로 나온 날이라고 해서 삼겹살을 먹는 날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기념하는 날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살아가는동안 이렇게 잊지 않고 챙겨야 하는 특별한 날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날은 생일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탄절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신 날입니다. 물론 12월 25일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날이냐 아니냐 따지는 분들도 계시는데 사실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찾아오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 인류 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만큼 중요한 사건은 없습니다. 이사건이 인류의 역사에 얼마나 중요하면 예수님이 오신 것을 기준으로 해서 인류 역사가 BC와 AD로 나뉘어졌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인간이 태어나는 것과는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인간과 어떻게 다른 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어떻게 탄생하셨습니까?
1.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
본문 18절입니다.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약혼자 요셉이 마리아와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당시의 결혼 제도를 잠시 생각해보면 그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혼하기전에 반드시 약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약혼을 하고 난후에 1년이나 록은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난후에 결혼식을 올리고 그리고난후 합법적인 동거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동거를 하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약혼을 하게 되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같이 살고 있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미 부부로서의 존재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두사람 중 한사람이 간음을 하지 않는한 약혼은 파기 될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부부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당시 이스라엘의 결혼 제도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을 하고 결혼하기 전에 초자연적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메시아를 잉태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 라고 말씀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몸이 평상시와는 다름을 보면서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성경학자들은 마리아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요셉에게 알려주었을 것이다 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약혼자인 요셉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결혼을 할려고 하는데 아내가 될 사람이 이미 임신되어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을 마리아로부터 듣었지만 이 요셉은 마리아가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많은 고심을 한 후에 조용히 파혼을 하고자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20절입니다. 20.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사실 요셉이 무서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당시 유대나라 법대로 하면 마리아는 자기에게 임신시킨 남자이름을 밝혀야 합니다. 이 때 마리아가 정혼한 요셉이라고 거짓말을 해도 요셉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히면 마리아는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임신이 다른 유부남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면 두 사람 모두 죽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사실을 생각하면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오는 일이 무서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마리아가 임신하게 된 것은 불륜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 네 아내를 집으로 데려오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아라‘ 라고 말합니다. 그래요.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성경에 많이 예언되어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예언된 말씀은 창세기 3장 15절에 있습니다.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 이라는 의미는 남자없이 여자의 자궁만을 빌려서 태어날 후손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이미 메시야로 오실 그리스도가 여자의 후손으로 올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인해서 사탄의 상징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것을 이미 창세기 3장 15절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입니다. 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래서 오늘 본문 23절을 보시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여기 사용된 '처녀'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파르텔로스’ 인데 성적인 경험이 전혀 없는 순결한 여자를 가르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성적인 경험이 전혀 없는 순결한 상태에서 성령으로 잉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입니까? 처녀가 아무것도 안했는데 임신을 했다니까 이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이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시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도 이사실을 믿고 마리아를 데려왔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냥 파혼을 하지 왜 집에 데려왔겠습니까? 그리고 또 창조자이신 하나님에게는 쉬운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탄생하신 예수님은 평생동안 성령안에서 살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시작하십니다.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게 되는 성령 충만한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난후 성령에 이끌리시어 광야에 가셔서 40일 금식을 하시고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내쫒으시고 능력을 행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0장 21절입니다. 2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그리고 성령의 힘을 입어 십자가 구속의 사역을 마칠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1장 4절을 보게 되면 성령으로 부활하셨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생애는 성령과 함께 하신 삶이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십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시고 성령으로 기뻐하십니다. 성령의 힘으로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마치시고 그리고 성령으로 부활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시작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인을 쳐주셨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을 믿었을 때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2장 3절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고전 12장 3절)
이렇게 저와 여러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었을때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령안에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이 이세상을 떠나 하나님앞에 가게 될 때 성령이 나를 보증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서 1장 22절입니다. ’22.그가(하나님)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앞에 갔을 때 보증이 되십니다. 저희 아버님은 공무원이셨는데 그당시 공무원 봉급으로는 5남매를 키우기에 경제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님이 한복을 만드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한복을 만들 옷감을 고르기 위해 여러 가지 옷감이 있는 가게에 가실 때 제가 따라간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런데 어떨 때는 어머니가 원하시는 옷감이 그가게에 없을때가 있는데 그때는 그 옷감을 주문해야 합니다. 그때 어머니는 지불해야 할 돈의 일부를 선금으로 줍니다. 그러면 옷감 가게 주인은 선금을 받았다는 영수증과 함께 어머님이 주문하고자 하는 그 옷감의 일부를 가위로 잘라서 영수증에 붙여서 어머니에게 줍니다.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는 영수증에 붙어있는 그 옷감을 가지고 그 옷가게 주인에게 가져가서 최종적으로 그 옷감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영수증에 붙어있는 그 옷감 이것이 바로 보증이 하는 역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성령으로 인쳐주셨습니다. 가게 주인이 손님에게 줄 그 옷감의 일부를 손님에게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옷감이 보증이 되어 나중에 가게주인을 만나게 되면 그 옷감을 달라고 주장할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이 나중에 하나님앞에 갔을때 보증이 됩니다. 그 성령의 보증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우리의 자녀로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마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게 되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면 성령안에서의 삶을 살다가 성령으로 마칠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세상에 오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다 원죄와 죄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입니다. 그럼으로 죄인인 우리가 그 죄값을 치루기 위해서는 죽어야 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죄인인 우리인간은 죽지 않고서는 도저히 죄값을 지불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물에 빠져가는 사람이 자기 손으로 자기 머리를 쥐고 살아날려고 하는 것과 같이 자기 생명을 구해낼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죄없는 인간이 필요합니다. 죄없는 인간이 와서 그 죄를 뒤집어쓰고 그 죄를 담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자기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예수님은 자기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가 있는데 불쌍하다고 해서 그냥 ‘죄야 사라져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없으신 예수님을 인간의 몸을 입히시고 이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시기 전에는 인간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화목제물로 흠없고 티가 없는 짐승으로 제사드리게 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땅에 오실 때 우리 인간들처럼 정자와 난자가 수태하여 태어나셨다면 아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원죄와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인간으로 오시기 위해서 마리아의 자궁을 빌려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땅에 오셔야 했던 이유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어떻게 탄생하셨습니까?
2.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탄생
21절입니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예수님은 이땅에 오시기 전에 이미 이름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당시에는 아기의 이름을 그 아기의 아버지가 지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이름을 예수라 하라’ 고 전해서 지어졌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직접 예수라는 이름을 지으시는 권한을 행사하신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이름을 요한이라 지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 13절입니다. ‘13.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택하신 자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시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 와 ‘구원’ 이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것으로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의 의미는 죄에서 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21절 전체를 보시면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예수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라는 이름을 직접 지으신 것입니다. 성령춤만 받은 베드로는 수많은 군중들앞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입니다.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러니까 우리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려는 계획은 바로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구원하시는 것에 있음을 우리는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인해서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은 일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은혜입니다. 예베소서 2장 8절입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사실 그당시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가진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곳 미국의 존이나 탐처럼 많고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렇게 흔하고 평범했던 예수라는 이름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내는 가장 귀한 이름이 된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너무나 흔해서 평상시에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이 공기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습니다. 마스크도 없이 자유롭게 마실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이었습니까?
그동안 별 생각없이 필요하면 그로서리에 가서 자유롭게 물건을 샀던 그 샤핑생활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할수 있었던 그 생활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이제사 우리는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이 메시지를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많이 들어왔습니다. 너무 자주듣었기 때문에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게 됩. 허자먼 나중에 하나님앞에 갔을 때 깨닫게 되면 너무 늦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깨닫게 된 사실을 마음에 지니고 앞으로 남은 생애동안 살아갈 기회는 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게 되면 우리는 자유롭게 공기를 마시고 샤핑을 하고 외식을 하면서 이런 일상적인 생활을 할수 있음에 대해 감사하면서 살아갈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다고 하는 메시지가 이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있는 일이었구나 사실을 이세상을 떠난 후에 깨닫게 된다면 너무 늦습니다.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귀하고 소중한 이름은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붙잡고 가야 할 가장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14절입니다.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내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 이름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죄에서 구원해주실 뿐만아니라 모든 문제속에서도 구원자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날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찬양하면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그리스도는 어떻게 탄생하셨습니까?
3.임마누엘의 이름으로 탄생
23절입니다.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이 왜 이땅에 오셨습니까?
임마누엘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육신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을 때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가운데 찾아오셔서 지금 우리 안에 함께 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땅을 떠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입니다. 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게 해주겠다‘ ’예수를 믿으면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아가게 해주겠다‘ 라고 성경은 약속해주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고 살아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오고 가난을 경험할수도 있게 됩니다. 그리고 또 억울한 일을 당하며 살아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십니다. 이천년전 이땅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지금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성령으로 우리에게 기적과 능력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34절입니다. ’34.다시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성령이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늘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날마다 중보기도 해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령과 성자 예수님의 간구하심을 받으시면서 저와 여러분을 올바르고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임마누엘의 축복을 우리에게 약속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인생의 어떠한 아픔을 이겨낼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가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겨낼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고 연약하고 어려운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습니다. 성탄절은 바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날입니다. 그럼으로 이 성탄절에 임마누엘의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임마누엘의 주님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바라옵기는 이렇게 좋으신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복된 성탄절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