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세상에서 가장 축복된 믿음

Author
kgmcc
Date
2021-01-02 23:18
Views
71
본문 : 창세기 5장 21-24절

날짜 : 2021년 1월 3일

<창세기 521-24>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지나간 한해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서 각 교회들마다 계획을 했었던 많은 프로그램들이 취소되었습니다. 아마 그중에는 성경퀴즈 대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 퀴즈 질문 내용을 살펴보면 자주 출제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창세기 5장에 있는 내용중에서도 종종 문제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예를 들어보면 ‘그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았습니까?’ 이러한 질문은 창세기 5장을 읽어보면 대답할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첫 번째 질문인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간 사람은 에녹’ 입니다. 또한 창세기에 나오지는 않지만 엘리야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세상에서 가장 오랜 살았던 사람은 ‘므두셀라’ 이고 이 므두셀라는 969살 까지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퀴즈의 한계가 있다면 단답형으로 질문하고 단답형으로 대답해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실제로 도움이 되고 유익한것은 이러한 단답식의 대답이 아니라 설명이 필요한 대답들입니다. 다시말해서 ‘에녹의 이름을 묻어보는 질문이 아니라 에녹이 왜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의 대답을 아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더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므두셀라가 가장 오래 살았고 969살 까지 살았다는 대답보다는 왜 이 므두셀라가 가장 오랫동안 살았을까?‘ 라는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아는 것이 우리 인생에 피가되고 살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퀴즈 대회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면 교회 성도들이 ’뭐 그런식으로 문제를 출제하느냐‘ 하고 항의를 할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정말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은 사람 이름이나 그 나이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 사람은 죽지 않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는가‘ 하는 것 과 ’왜 그사람은 온 인류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게 되었는가‘ 를 아는 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가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되고 유익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5장 뿐만 아니라 창세기 4장과 비교해서 읽어야 합니다. 창세기 4장과 5장은 서로 정반대의 내용이 대조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그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창세기 5장에는 셋과 그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창세기 4장과 5장을 읽어 보면, 한 가지 공통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가인의 족보와 셋의 족보에서 각각 7대손에 해당되는 인물이 강조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성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가인과 셋의 각각 7대손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각각 족보의 특징을 완전하게 드러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가인의 7대손은 “라멕” 이고,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셋 의 7대손은 “에녹” 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보다 좀 더 잘 이해할수 있습니다. 좀전에 말씀드렸지만 오늘 본문이 나오는 창세기 5장은 셋의 후손들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이 누구입니까?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하나님이 그 아벨을 대신하여 허락해주신 인물이 바로 셋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셋의 후손에 관한 족보는 곧 믿음의 후손들에 관한 족보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에 관한 족보라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셋의 후손들의 족보를 보면 공통된 점이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시간관계상 이시간에는 두 명의 인물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6절에서 8절입니다.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그리고 계속해서 9절에서 11절입니다.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1.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그러니까 ‘누구 누구는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살고 죽었더라’ 라고 하는 이런 문장 형식으로 족보가 기록되어있는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셋의 후손들의 족보를 읽으면 우리는 대체로 두가지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는 ‘모두 다 굉장히 오래 살았구나‘ 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런데 결국은 다 죽었구나‘ 입니다. 그당시 셋의 후손들은 오래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에녹에 대한 기록은 다른 셋의 후손과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 21절에서 23절입니다.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하나님과 동행하며 이내용이 다른 셋의 후손과는 다름) 자녀들을 낳았으며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은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셋의 후손들은 ‘누구 누구는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살다가 죽었더라’ 이런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 했다 라고 하는 표현이 따로 보태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셋의 후손들중에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평범하게 몇 년을 살고 죽었다‘ 라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까? 셋의 후손들 중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지내며’ 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는 그냥 지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럼으로 올해 이 시간부터는 저와 여러분이 단순하게 ‘이세상에 태어나서 아들과 딸을 낳고 몇 년을 살다가 죽었다‘ 라고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녹은 아담의 7대손이 되고 노아의 친 할아버지가 됩니다. 그리고 이 에녹은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한 능력이나 지혜가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용사도 아니었고 특별한 음악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에녹이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녹이 사람들앞에 내세울수 있었던 것은 단한가지 뿐입니다. 그런데 그 한가지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입니다. ’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그다음에는?)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이 한일은 하나님과 동행한 것밖에 없습니다. 에녹이 살아생전 큰 일을 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에녹을 정말 기뻐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셨으면 에녹을 이땅에서 저 하늘로 그대로 옮기셨겠습니까? 추측하건데 에녹은 그날도 평상시처럼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에녹을 대화도중에 점점 하늘로 옮기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에녹은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중이라 자기가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도 모르고 하나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때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승천하고 있는 에녹의 모습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녹에게는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동행하고 있는 것이 더 귀하고 소중했지, 이땅이나 저 하늘이냐 하는 것에는 그당시 별로 상관이 없었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셋의 후손들에 관한 내용을 읽을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에녹이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 했다’ 라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래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가셨다’ 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나머지 사람들은 누구는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살다가 죽었더라 는 내용으로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삶과는 다르게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라는 것을 강조해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창세기 5장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어떤것인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2021년도 올한해를 살아가는 동안 저와 여러분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1.일상 생활속에서의 삶.

본문 22절입니다.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그후에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동행을 하며‘ 그리고 또 그다음에 에녹이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며 외딴곳에 가서 선교를 하든지 아니면 용문산에 올라가서 기도생활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다음을 보시면 ‘자녀들을 낳았으며’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에녹은 선교지나 기도원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 적용시켜보면 자녀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거나, 아니면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하는 이런 일상 생활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세상과 동떨어져서 혼자 특별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특별한 지역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런 사명을 받고 그러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에녹은 그저 자녀를 낳고, 그 자녀를 키우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은 양을 치면서 그리고 양을 돌보면서 하나님과 동행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을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입니다.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뿐이니라 소금은 저와 여러분이 일상 생활을 하는 동안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루 세끼 아침 점식 저녁 식사를 하시면서 단 한끼조차도 소금이 없는 음식을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소금이 든 음식이나 과자를 먹으면서 우리는 하루하루 생활해 나갑니다. 이렇게 소금이 일상생활에서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는 것처럼 에녹도 매일의 일상상활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특별한 삶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일상 세상속에서의 삶이다’ 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새해에는 일상생활속에서 하나님과 늘 동행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2.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

동행이라는 단어는 한자어로서 풀이하면 ‘같을 동‘ ’행동할 행’입니다. 그러니까 문자적으로 풀어보면 같이 행동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동행을 오늘날 우리는 ‘같이 함께 걷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이 함께 걷는다고 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행이라는 단어가 히브리 원어로 ‘할라크’ 가 사용되어졌는데 이 할라크는 두사람이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걸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쉽게 말하면 서로의 마음과 뜻이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에녹과 하나님은 서로 가진 생각과 뜻이 같았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동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사람의 마음과 뜻이 서로 통해야 합니다. 같이 동행하지만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르면 같이 동행하는 것이 굉장히 짐이 되고 고역이 됩니다. 단체 여행을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일행중에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 여행은 힘들어 지게 됩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음식 맛에 대해 불평을 하고, 관광지역에서도 볼게 없다고 불평을 한다면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의 기분은 망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끼리 마음과 생각이 같아야 제대로 동행 할 수가 있습니다. 아모스 3장 3절입니다. 3.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이렇게 두사람이 올바르게 동행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동행을 할려면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내가 마음과 뜻이 같게 될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내 생각과 내 뜻을 내려놓고, 내 생각과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이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생각을 깊이 한다 할지라도 죄성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의 뜻과 생각이 온전하지 못할때가 참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온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언제나 옳고 온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언제나 하나이었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같았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그런데 예수님의 바램과 하나님 아버자의 뜻이 충돌될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러나 내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이렇게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생활하셨기에 예수님께서는 늘 하나님과 동행하실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앞에 내려놓았다면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저와 여러분은 에녹처럼,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동행을 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실 주님의 뜻을 따라가는 방법은 아주 단순 합니다.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 내가 싫어하면 됩니다.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 내가 좋아하면 됩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것 내가 사랑하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을 맞추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부부 싸움을 하고 도박하는 것을 주님이 좋아하신다고 생각하시면 나도 좋아해야지요. 날마다 부부싸움하고 날마다 도박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보실 때 싫어하시겠다라고 생각하면 나도 싫어하면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 내가 좋아하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말은 쉽지민 실제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믿었을때 성령이 내안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도와주시는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요한 일서 4장 13절입니다. ‘13.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그러니까 우리는 늘 끊임없이 성령과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내안에 계신 성령은 내가 물을때마다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은 하루를 시작할때도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안에서 살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 살아가는 동안 이런 저런 일을 만나게 되면 ’주님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식으로 늘 주님과 대화를 하면서 내뜻보다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실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11:5)

본문 24절입니다.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하나님은 에녹과 같이 지내시는 게 너무 좋아서 헤어지기 싫어서 그냥 데려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잘 이해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서로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거닌다고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요.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가지신 것입니다. 젊은 연인들이 같이 있다가 헤어지는 시간이 되면 헤어지기가 너무 싫어서 여자 친구 집에까지 바래다 줍니다. 그런데도 여자 친구 집 앞에서 헤어지기가 싫어서 한참동안 같이 있습니다. 이렇게 헤어지기가 너무 싫다가 보니까 우리 이렇게 헤어지지 말고 같이 함께 살자 라고 계획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바로 결혼이 아닙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녹에게 가진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 삶을 살아가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기쁨을 참으시지 못하신 하나님은 하루는 그대로 에녹을 천국으로 옮겨서 영원토록 같이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외롭고 고독하고 힘든 것이 아닙니다. 사막 같은 길을 걷는 것처럼 힘들고 재미없고 따분한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더불어서 같이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입니다.

창세기 15장을 보시면 밤중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장막 바깥으로 불러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세어보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아 저기 저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보아라’ 그래서 아브라함이 별을 세어봅니다. ‘별 하나 별둘 별 셋, 별 넷, 별 다섯 별 여섯... 하나님, 별이 너무 많아서 다 못 세어보겠네요’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래 아브라함아, 별이 너무 많아 다 세어보지 못하겠지. 너의 자손이 저렇게 별과같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내가 약속하마’ 그때 하나님이 말씀을 듣었던 아브라함의 가슴이 얼마나 벅찼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면 아브라함처럼 가슴이 벅찬일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외로운 한밤중에도 ‘저별은 나의 별 저별은 주님별’ 하며 사랑의 노래를 부를수 있습니다.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데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 것입니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주님이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보다 더 기쁘고 신이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만이 경험하게 되는 일니다.

다윗은 시편 43편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4.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수금을 치면서 찬양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당한 자라고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다윗이 쓴 시편들을 보십시요. 다윗이 하나님과 친밀하고 기뻐하는 교제가 없이 어떻게 그러한 시들을 지었다고 생각할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시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재능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없이는 시편에 나오는 그러한 시를 지을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34편은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서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지역에 숨어지내다가 자신의신분이 발각되자 미친체하면서 그 위기를 벗어난 직후에 지은 시 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럽고 비참한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34;1,2입니다. ‘1.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그당시 다윗이 처한 상황은 정말 부끄럽고 비참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랑하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기뻐하게 될 것이다 라는 내용의 시를 썼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에녹은 언제 하나님과 동행 하였습니까? 가인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말씀을 시작하면서 잠시 설명했지만 가인의 칠대손이 라멕이고 셋의 칠대손이 에녹입니다. 그러니까 에녹이 살던 시대는 라멕이 살았던 같은 시기이었습니다. 라멕은 사람을 죽이고도 그 일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며 다니는 아주 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보다도 훨씬 더 사악한 인간이 라멕이었습니다. 창세기 4장 24절입니다.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한 말입니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무슨 의미입니까? 자기의 조상 가인이 칠배의 벌을 받았다면 나 라멕은 칠십 칠배의 벌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라멕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웃고 빈정대고 살았던 인간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살인 한 일에 대해 자랑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는 타락한 시대에 에녹이 살고 있었습니다. 에녹은 이렇게 죄악이 가득한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주변 환경을 살펴보면 정말 영적으로 타락한 환경을 쉽게 보게 됩니다.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다투는 것을 보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이가운데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나라를 화합하고 하나가 되는 일에 정말 앞장서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째든 지금 내 주변상황을 보고 지금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녹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더 죄악이 만연한 환경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세상을 핑계해서는 안됩니다. 내 주변 환경을 변명해서도 안됩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녹은 일년 이년도 아닌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삼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어떻게 우여곡절이 없겠습니까? 타락한 시대에 살아가는데 아무런 일이 없이 평탄하게 지내왔겠습니까? 우리가 사오십년 신앙생활을 해오는 동안에도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은데 에녹이라고 없었겠습니까? 에녹이 그런 환경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다면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에녹은 인간이 누릴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가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 하나님에게는 얼마나 큰 기쁨이 되시는 것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올 한해 주님과 늘 동행하시길 축원합니다.

그런데 에녹이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갔던 이유가 있습니다. 평범하게 살았던 에녹이 인생 터닝 포인터가 된 사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에녹의 아들인 므두셀라가 창세 이래 인간으로서 가장 오래 살아야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평범하게 살아왔던 에녹의 인생 터닝 포인터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므두셀라가 가장 오래 살았던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다음주 이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