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Author
kgmcc
Date
2019-12-22 21:17
Views
190
본문 : 마태복음 1장 18-25절

날짜 : 2019년 12월 22일

<마태복음 118-25>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올 한해가 시작된지 얼마전인 것 같은데 벌써 이번 주일하고 다음 주일을 맞이하면 2019년 올 한해도 다 지나가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일년 365일 하루하루가 다 우리에게는 중요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생각이 나는 특별히 기념되는 어떤 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날이 어떤 날입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일이나 결혼한 사람일 경우에는 결혼기념일을 중요하게 생각할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미국에서는 발렌타인 데이에 남녀 모두가 다 선물을 주고 받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발렌타인 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그리고 한달뒤에는 화이트 데이라고 해서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에 선물을 주고 받지 못한 사람들이 한달후에 따로 모여서 짜장면을 먹는 블렉 데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선물을 주고 받았는데도 안받았다고 하면서 짜장면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빼빼로 데이도 있습니다.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인데 숫자 1자 네 개가 뻬빼로를 세워놓은 것과 같다고 해서 빼빼로를 선물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빼빼로처럼 살을 빼고 날씬해져라고 하는 소망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3월 3일은 삼자가 겹으로 나온 날이라고 해서 삼겹살 데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무슨 날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잊지 않고 챙겨야 하는 특별한 날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생일은 우리에게 특별한 날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속에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태되어 어머니의 자궁속에 열달을 지내다가 세상에 나온날이 생일이니 얼마나 특별한 날입니까?

그런데 성탄절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신 날입니다. 물론 12월 25일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냐, 아니냐 하는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찾아오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 인류 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만큼 중요한 사건은 없습니다. 이 사건이 인류역사상 얼마나 중요하면 예수님이 오신 것을 기준으로 해서 인류 역사가 bc와 ad로 나뉘어졌겠습니까? 그만큼 예수님의 탄생은 믿는 성도이든 믿지 않는 불신자이든 너무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해서 탄생하셨는가와 왜 탄생했는가에 대하여 천사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시간에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탄생했는가? 그리고 왜 이땅에 오셨는가에 대해 본문을 살펴보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탄생하셨는가?
  1. 성령으로 잉태됨
본문 18절입니다.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약혼자 요셉이 마리아와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당시의 결혼 제도를 잠시 생각해보면 그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혼하기전에 반드시 약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약혼을 하고 난후에 결혼식을 올리고 그리고 합법적인 동거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동거를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혼을 하게 되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미 부부로서의 존재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두사람 중 한사람이 간음을 하지 않는한 약혼은 파기 될수 없었습니다. 왜요? 이미 부부로 인정받았으니까? 이것이 바로 그당시 이스라엘의 결혼 제도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을 하고 결혼하기 전에 초자연적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메시아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표현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기에도 임신한 모습이 분명히 드러나 보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배가 불러 있는 것이 사람들 눈에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약혼자인 요셉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자기와 같이 잠자리를 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될 사람이 이미 임신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와 약혼한 여자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약혼녀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니까 요셉의 머리가 복잡해지고 생각이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많은 고심을 한 끝에 요셉은 조용히 파혼을 하고자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당시 율법에 의하면 여자가 부정을 저질러 임신을 하면 돌맹이로 맞아 죽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래도 자기가 사랑해서 약혼한 마리아가 사람들이 던지는 돌맹이에 맞아 죽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냥 조용히 자기가 물러서는 선택을 내립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요셉은 참 마음이 넓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20절 입니다. 20.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요셉이 무서워할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마리아를 데려왔는데 부정으로 임신된 사실을 알게 되면 마리아는 사람들에게 돌맹이를 맞아 죽게 됩니다. 그사실을 생각하면 무서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네 약혼자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은 부정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 네 아내를 집으로 데려오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아라’ 그래요.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사실은 일찍이 성경에 구체적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예언된 말씀이 어디있나요?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이라는 의미는 남자없이 여자의 자궁만을 빌려서 태어날 후손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이미 메시야로 오실 그리스도가 여자의 후손으로 올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인해서 사탄의 상징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것을 이미 창세기 3장 15절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뱀의 머리는 사탄의 왕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약 700년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입니다. 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래서 오늘 본문 23절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여기 사용된 처녀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파르텔로스인데 성적인 경험이 전혀 없는 순결한 여자를 가르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성적인 경험이 전혀 없는 순결한 상태에서 성령으로 잉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비과학적입니까? 사실 아니땐 굴뚝에 어떻게 연기가 납니까? 어떻게 처녀가 아무것도 안했는데 임신을 했다니까 이게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입니까? 그래서 기독교인 중에서도 이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자 이시간 잠시 예수님이 탄생하신 예언이 이루어질 확률을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예수님은 야곱의 후손으로부터 태어나도록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으므로 야곱의 아들 중 유다가 메시아의 조상이 될 확률은 1/12 입니다.

선지자 미가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이 이루어질 확률은 그당시 유다 지파가 베들레힘 근교지역에서 약 100 개의 촌락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니까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확률은 1/100 이라 할수있습니다. 그러면 두 예언, 즉 야곱후손에 관한 예언과 미가의 예언이 함께 성취될 확률은 1/12×1/100, 즉 1/1200입니다. 이런식으로 해샤 피터 스톤 박사가 예수님에 관한 8가지 예언(탄생, 출생지, 침례 요한의 메시아 길 예비, 가룟 유다의 배반, 은 30에 팔리심, 십자가의 죽으심, 옷이 제비 뽑힘, 부자의 무덤에 장사됨)이 그대로 이루어질 확률을 계산해서 미국 과학협회의 검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미국 과학 협회의 검토를 받고 그계산이 정확하다는 인정을 받고 발표했는데 그 수학적 확률은 10의 17승 분의 1이라고 합니다. 물론 수학을 잘 모르는 우리는 이 숫자가 어느정도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확률이 어느 정도인가하면 25센트 짜리 동전을 미국 텍사스 주 전 지면에 약 5피트(1.5 미터)의 높이로 깔아놓습니다. 그런데 텍사스 주의 크기는 대한민국(남, 북한 포함) 크기의 7배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크기의 5배정도의 크기입니다. 이러한 크기의 텍사스 주 전지역에 동전을 약 5피트 높이로 깔아놓고 그리고 동전 하나에만 매직 펜으로 십자가 표시를 합니다. 그런후에 그 동전을 텍사주 지면에 깔린 동전들속에 넣어둡니다. 그리고 사람의 눈을 가리고 깔려있는 동전속에 손을 넣어 한번만에 찾으라고 했을 때 이루어지는 확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300여가지가 더 있습니다. 이 예언이 한사람인 예수에게 성취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요? 이 지구 전체보다도 더큰 지면에 동전을 다 깔아놓고 표시한 동전 하나를 단 한번에 찾을수 있는 확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탄생이 우연히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예언하신대로 탄생하셨고 성경에 예언하신대로 행하시면서 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예언이 이루어진 사실을 그냥 '우연'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리아 남편인 요셉이 천사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를 집에 데려왔던 것이죠.

믿지 않았다면 그냥 파혼하지 왜 집에 데려왔겠습니까?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마리아를 데리고 살 약혼자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믿게 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갈 때 한치도 의심없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2장 3절입니다. 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 이렇게 믿는 성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어 이땅에 오심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 성경의 말씀을 이루신 분이심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었을뿐만아니라 성령안에서 삶을 사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시고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마치시고 그리고 성령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가운데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시작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령안에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삶을 살다가 우리의 마지막도 성령안에서 마무리 되어야 합니다.

왜 이세상에 오셨는가?
  1.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21절입니다.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자기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예수님이 왜 이땅에 오셨습니까? 자기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수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그냥 ‘죄야 사라져라’ 이렇게 말씀하시면 됩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가 있는데 그리고 죄의 삯을 지불하지 않고서 그냥 ‘죄야 사라져라’ 할 수는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죄값을 물으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이라고해서 그냥 봐줄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평하신 분이 아닌 것이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불행은 바로 죄의 결과입니다. 우리에게 질병이 오고 우리에게 두려움이 오고 우리에게 어려움이 오는 것은 바로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 인간은 힘들고 어려운 인생을 살아가다가 결국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고 믿고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러한 근본적인 축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임을 믿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다 원죄와 죄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그 죄값을 치룰수 있습니까? 물에 빠져가는 사람이 자기 손으로 자기 머리를 쥐고 살릴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에게는 죄없는 인간이 필요합니다. 죄없는 인간이 와서 그 죄를 뒤집어쓰고 그 죄를 담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화목제물로서는 흠없고 티없는 짐승이어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땅에 오실때에 우리 인간들처럼 정자와 난자가 수태하여 태어났다면 아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원죄와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없는 인간으로 오시기 위해서 그분은 마리아의 자궁을 빌려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땅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우리를 경제나 육신적인 환경에서 구원하실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구원자이십니다.

        2.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23절입니다.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이 왜 이땅에 오셨습니까? 임마누엘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육신으로는 우리의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을 때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가운데 찾아오셔서 지금 우리안에 함께 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땅을 떠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입니다. 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천년전 이땅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주님이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믿는 자의 심령에 부어넣어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입니다. 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구원의 복음을 듣고 ... 믿어...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었을 때 우리는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표현은 쉽게 말해 성령님이 내안에 들어와 계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은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성령‘ 이라고 표현한것이죠. 그리고 이성령은 ’예수의 영‘ 이라고도 불립니다. ’예수님의 영‘ 인 성령이 지금도 우리안에 거처를 정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우리에게 기적과 능력을 행하십니다. 그럼으로 믿는 성도들은 아무리 고독하고 외로워도 우리는 이세상에 버려진 고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안에 계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럼으로 내 사랑하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아픔을 이겨낼수 있는 것입니다. 내힘으로가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겨낼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과 아픔중에서도 이겨낼수 있는 것은 주님이 임마누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고 연약하고 어려운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성탄은 바로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날입니다. 그럼으로 이 성탄절에 임마누엘의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임마누엘의 주님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복된 성탄절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