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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kgmcc
Date
2021-01-16 20:41
Views
68
본문 : 사도 행전 3장 1-10절

날짜 : 2021년 1월 17일

 

<사도행전 31-10>

1.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일어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성전 문 앞에 앉아서 구걸을 하다가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육신의 장애가 고침을 받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문 8절입니다. 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그런데 사실 오늘 본문이 보여주길 원하는 것은 이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서고 걷게 되었다’ 라는 사실 만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이 살아가고 있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에 있습니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니...’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들어갈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입장권을 가질수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원리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시겠습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입장권에 대해 맨처음 기억해야 할 것은

1.하나님 나라 입장권은 무료

하나님 나라는 공짜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세상나라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무료로 선물을 드립니다.’ 라고 하는 이메일이나 인터넷 광고를 보신 성도님들이 계실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무료(Free) 라는 단어를 보고 크릭을 하고 자신의 신상 정보를 기입하면 그때부터는 전화나 이메일에 각종 스팸 광고를 자주 받게 됩니다. 오래전의 일인데 스타벅스 설립 40주년을 기념해서 50 달러 기프트 카드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광고가 았었니다. 광고에 나와있는 ‘공유(Share)’ 버튼을 누르고 댓글 난에 ‘I love starbucks' 를 타이핑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유(share) 버튼을 누르고 댓글난에 ’I love starbucks' 를 타이핑하면 ‘축하합니다‘ 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리고 50달러 짜리 기프트 카드를 받을 수 있도록 이름과 집주소와 이메일 주소 그리고 전화번호 등 입력하라는 팝업 창이 동시에 뜹니다. 그래서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입력했던 사람들은 후에 기프트 카드가 아니라 각종 스팸 광고가 이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공짜로 기프트 카드를 준다는 그 광고는 스타벅스가 낸 광고가 아니었고 스타벅스를 가장한 가짜 광고이었던 것입니다. 이사실을 알게 된 스타벅스에서는 ’지금 인터넷에서 나도는 스타벅스 공짜 기프트 카드 광고는 가짜이니까 속지 말라‘ 라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가짜 광고를 보고 자신의 정보를 기록한 사람들은 신상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을테니까 이메일 주소를 변경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일 인터넷에서 Free라는 단어를 보게 되면 일단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세상의 법칙은 공짜가 없다는 것에서부터 생각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따른다고 한다면 사실은 내가 그만큼 그사람에게 해주는것이 많기 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내가 그냥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그 사람이 그만큼 수고하고 노력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세상에는 Free(공짜)가 없습니다. 나의 시간과 땀과 노력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과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법칙은 "no pain no gain" 입니다.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얻을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무료입니다, 그것은 내가 서류에 사인을 하는 순간 나에게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무료입장권이 그냥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람이 아무런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9.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그냥 주어진 것입니다. 그당시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이 사람이 걷는 것을 보면서 놀랐을 것입니다. 육신의 병이 낫게 되고 온전하게 된 것을 보면서 놀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이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 가장 놀라운 일입니다. 이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모든 일은 공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공짜입니다. 세상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왜 이런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과 같이 지내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하심 때문에 우리를 천국에 그냥 들어오게 하십니다. 그럼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무료이라는 사실을 믿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낼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입장권에 대해 두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2.왜 무료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별로 가치가 없기 때문에 무료가 아니라 무료가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값을 지불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2절입니다. “2.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나면서부터 못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자,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혼자의 힘으로 성전에 들어갈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하늘나라에 아무런 댓가 없이 그냥 들어가게 하시는 이유는 이 사람처럼 내 스스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성전 문 앞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 앉은뱅이를 메고 온 사람은 가족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족이나 친구라면 ‘사람들이 메고‘ 라는 표현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사람들이 이 앉은뱅이를 메고 성전 앞에 데려온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아마도 가족이나 친척들은 이미 이 사람을 포기한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이사람이 어린 아기때는 온전하게 걸을수 있게 하기 위해 가족들이 노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가족이나 친척들도 이사람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사람은 육신적인 장애 때문에 가족들이나 친척들로 부터 도 외면을 당하고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바로 이런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사람처럼 육신적인 장애는 아니지만 인격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입니다. ‘12.한사람으로 말미암아(아담을 의미)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이 죄로 인해 우리는 태어나면서 심각한 인격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것입이 욕심과 욕망과 이기심과 시기 질투가 있습니다. 이것은 배워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문제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인격적인 장애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오래전에 샬롯 지역 교회 연합 부흥집회에 강사로 오셨던 피종진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국내 전도 집회를 빼고 해외 부흥 집회만을 위해 비행기를 탄 거리를 합해보면 이 지구 둘레를 60바퀴이상을 돌만큼 많이 돌아다녀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가는 곳 마다 모두가 다 상처를 가지고 있고,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많이 가진 부자도, 많이 배운 사람도, 잘생긴 사람도 모두가 다 깊은 상처와 힘든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돌아다 보니 인간은 다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우리 인간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앉은뱅이처럼 우리는 모두가 다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땅에서 살아가기도 힘들고 벅찬데 이런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하늘나라를 준비하면서 살아갈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땅에서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인생이 어떻게 저 하늘나라를 준비하면서 살아 갈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무료 입장권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천국에 들어갈 능력도 없고 준비도 할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앉은뱅이는 육신적인 장애 이외에 또 다른 심각한 장애가 있었습니다. 8절과 9절입니다. ”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이 본문을 보시면 두 번 강조되는 단어가 나옵니다. 8절 전반부에 ‘뛰어 서서 걸으며’ 중간을 보시면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며’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이 사람이 걸었다.’ ‘이사람이 뛰었다‘ 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사람이 이전에는 하지 못했고 할수도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두 번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도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8절 후반부를 보시면 ‘...하나님을 찬송하니’ 그리고 9절 후반부에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을 두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사람이 이전에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다가 찬송하기 때문에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사람은 육체적인 장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장애를 겪고 있었다는 것을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사람은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는 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2절 후반부입니다. 2.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미문' 이라는 것은 한자어로 ‘아름다울 미’자 '문 문' 자입니다. 아름다운 문. 그래서 영어로는 Beautiful Gate입니다. 그당시 성전에 들어가는 몇 개의 문 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문이 바로 이 미문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는 아름다운 미문 앞에서 이 사람은 가장 초라하게 앉아있습니다. 영적인 장애자의 인생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가야 품위가 있고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운 모습은 우리의 영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초라하고 볼품이 없는 것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도 아닙니다. 이 사람은 성전 문 앞 에앉아서 날마다 살아왔습니다. 이 앉은뱅이 바로 등 뒤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허리가 아프면 성전벽에 기대어서 쉬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눈앞에 성전에 들어가는 아름다운 문이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성전 가까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구걸하며 살아가는 장소이었습니다. 자기 육신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을 채우는 장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와 찬송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성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수있습니다. 비즈니스를 위해서, 친교를 위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그 외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을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앉은뱅이처럼 영적인 장애자들입니다. 그럼으로 나도 본문에 나오는 이 앉은뱅이처럼 영적인 장애자 일수도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이시간에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할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 보다는 나의 필요와 나의 요구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런 영적인 장애자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시고 그냥 무료로 천국에 들어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첫째로 무료 입장이라는 것과 둘째로는 이렇게 무료로 입장할수 있게 된 이유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내가 들어갈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입장권에 대해 마지막 세번째로 기억해야 할 내용은

3.원래는 공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무료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무료입장권은 하나님께서 이땅에 보내신 예수님께서 이미 다 지불하셨기 때문에 무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서류에 사인만 하면 그냥 들어갈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저희집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맨 처음에 저희 큰딸이 대학교 다니던 시절 차를 구입했을 때 제 딸은 보험회사 에이젼트가 내준 서류에 사인만 했습니다. 사인만 하고 차 보험금은 내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차를 타고 다닐수 있었습니다. 왜요? 보험회사가 좋아서 그렇게 했습니까? 아니죠. 부모인 제가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서류에 동의하는 사인만하면 그냥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시면 베드로가 앉은뱅이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6.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는 이 사람에게 그냥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주었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누가 내 이름을 불러가면서 욕을 하면 나를 욕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 이름을 대가면서 칭찬을 하면 나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름은 그사람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는 ’이제부터 앞으로 내 이름으로 기도해라 그리고 내 이름으로 간구하라‘ 라는 말씀을 여러번 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입니다.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이름은 그사람 자체를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앉은뱅이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은 것은 곧 예수님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천국입장 신청 서류에 사인을 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신청 서류에 사인을 하는 순간 천국 무료 입장권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돌아다니는 가짜 무료 광고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진짜 공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에 나오는 말씀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예수 이름을 믿는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 이름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무료입장권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까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게 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보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하나님 아들의 영은 바로 성령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무료입장권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과 7절입니다. 6.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성령,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일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시고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신앙 생활 할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장 22절 입니다. “22.그(하나님)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 ‘보증으로 우리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성령님이 저와 여러분을 보증해주십니다. 변호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제가 보증 합니다‘ 이렇게 성령님이 하나님앞에서 나를 보증해주시면 하나님은 나를 보시지 않고 성령의 보증을 보시고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령이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천국입장권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땅을 살아가는 동안 성령님과 동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외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게 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이세상 나라에는 Free(공짜)가 없지만 하나님 나라 입장은 공짜입니다. 왜 공짜입니까? 공짜가 아니면 그누구도 들어갈수 없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짜이지만 하나님은 값비싼 값을 치루셨습니다.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가 지은 죄값을 치루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치게 하셨습니다. 이를 믿고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령을 보증으로 받았습니다. 그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이땅에서 살아가다가 저 하늘나라에 하나님 자녀로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가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 이 성전에서 예배와 찬양을 드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내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갈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마지막 9절과 10절입니다. 9.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은뱅이가 변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전에서 걸으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변한 모습을 보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변한 모습을 보는 다른 사람들이 놀라워하면서 자신들도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도 저와 여러분처럼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생활을 하시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생활을 날마다 해나가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고 천국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